[여론광장] ‘민주화와 언론개혁의 한 길을 함께한 사람들’

30일 오후 3시 서울 용산구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2층에서 ‘민주화와 언론개혁의 한 길을 함께한 사람들’이 나와서 민주화와 언론운동의 역사를 뒤돌아보는 이야기 모임을 열었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주최한 이 행사에는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부사장, 신홍범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과 언론운동가 등 50여 명 시민들이 참석했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행사에서 자유언론실천선언(1974), 보도지침 폭로(1986), <한겨레> 창간(1988)의 주역인 출연자들은 한국 언론운동과 민주화의 발자취를 돌아보며 현 언론상황에 관해서도 후배 언론인들에게 따끔한 질책을 했다.

“내년 <조선> <동아> 100주년, 허위 까발리겠다”

▲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언론 자유 투쟁의 장을 열었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의 역사를 들려줬다. ⓒ 윤종훈

동아언론자유수호투쟁위원으로 활동해온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은 1974년 10월 24일 박정희 유신정권의 언론통제에 맞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언론인들이 들고 일어났던 ‘자유언론실천선언’의 과정을 밝혔다. 그는 “당시 유신체제에 저항했던 사람들을 공산당 사주를 받은 것으로 치장하기 위해 민청학련, 인혁당 사건이 조장되면서, 사형, 무기징역, 20년 징역 등이 소낙비처럼 쏟아졌다”며 “사내는 오랫동안 유신권력에 길들여진 간부들이 언론 보도를 방해했기 때문에 집단적인 단결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동아일보>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조를 결성하게 됐다”고 말했다.

<동아> 기자 180여 명은 ‘언론에 대한 권력의 감시를 거부한다’고 선언했고, 같은 날 <조선> 기자들도 ‘언론자유를 위한 선언문’을 채택하며 동참했다. 그러자 유신정권이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넣어 <동아일보>에 광고를 내기로 했던 회사들이 무더기로 해약하는 이른바 ‘백지광고’ 사태가 같은 해 12월 일어났다. 이 이사장은 “이때 신문을 보는 사람들이 격려 광고를 보내주기 시작했다”며 “어느 이화여대생은 ‘동아야, 너마저 배신하면 나 이민 갈 거야’라고 보내줬는데 지금도 이 얘기를 하면 목이 메인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24일 자유언론실천선언 45주년을 맞이해 ‘조선∙동아 거짓과 배신의 100년 청산 시민행동’은 동아일보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이사장은 “박정희∙전두환 권력에 부역하고 친일에 앞장섰던 <조선> <동아>가 마치 독립운동과 민주주의에 앞장선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며 “우리가 노력했음에도 <조선> <동아>의 거짓을 극복하지 못한 걸 스스로 참회한다는 뜻에서 삼보일배를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내년이면 <조선> <동아> 창간 100주년인데 그들이 자축하는 걸 막기 위해 그들의 100년 역사를 축약한 전시회나 여러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87년 6월 항쟁의 도화선 된 ‘보도지침 사건’

▲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보도지침 사건’을 터뜨리며 공익제보자 구실을 제대로 했다. ⓒ 윤종훈

전두환 정권 당시 <한국일보> 기자였던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은 문화공보부에서 각 언론사들에게 시달한 688건의 보도지침들을 폭로하며 1986년 9월 6일 월간 <말>에 보도한 사건을 소개했다. ‘보도지침’은 전두환 정권이 언론인 강제해직이나 언론 통폐합 등을 통해 언론통제 수단을 다지면서 문화공보부 안에 홍보조정실을 두어 보도통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는 “보도지침이라는 것도 과거 유신독재 이후 박정희정권이 저지른 해악을 이어받은 것”이라며 “신문 편집국이나 방송 보도국에 언론인 출신 홍보조정관들이 제 집처럼 드나들며 보도지침이 제대로 지켜지는지 파악했다”고 말했다.

모든 기사에 제목을 달고 게재 크기를 정하는 편집부에 보도지침이 내려오기 때문에 당시 편집을 담당하던 김주언 기자는 갈등과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침 중에는 ‘물가 인상’이라는 용어 대신 ‘물가 현실화’, ‘개헌’ 대신 ‘현안 논의’로 바꾸라는 것도 있었고, 기사 안에 야당 지도자인 김대중 씨를 나타내는 사진이나 이름을 넣지 말라는 내용도 담겼다.

김 전 협회장이 이를 폭로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게 ‘부천서 성고문 사건’이었다. 서울대에 재학하던 권인숙 씨가 1986년 6월 노동운동을 위해 주민등록증을 변조하고 위장취업한 혐의로 부천경찰서에 조사받던 중 성적 모욕과 폭행을 당한 사건이다. 그는 “재야 인사들이 성고문 사건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지만 ‘검찰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절대 쓰지 말 것’ ‘신문사가 독자적인 취재를 하지 말고 공안당국이나 정부 발표만 쓸 것’이라는 지침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운동권 학생은 성을 혁명 도구화 한다’는 공안당국 발표 내용을 반드시 기사에 내라는 지침은 전두환 정권의 실상을 보여줬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 동기인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민통련)의 김도연과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의 이석원 등과 보도지침을 어떻게 알릴지 논의하다 월간 <말>에 폭로했다. <말>은 언협에서 신문에 보도되지 않은 사건들을 중심으로 매월 내던 잡지다. 이 사건으로 당시 김태홍 언협 사무국장, 신홍범 실행위원,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 등이 국가보안법 위반 및 국가모독죄로 남영동 대공분실에 연행돼 구속됐다.

▲ 신홍범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은 ‘보도지침’을 폭로하는 과정에서 김정남 씨의 도움이 컸다고 밝혔다. ⓒ 윤종훈

신홍범 전 조선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장은 “보도지침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 한 분이 옆에 계신 김주언 선생과 8년 전에 세상을 떠난 김태홍 선생”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때 언협이 힘 있는 단체가 아니어서 보도지침이라는 폭발력 큰 사건을 세상에 알리게 되면 폭로한 사람도 피해를 입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며 “사회적 파급력을 키울 수 있을까 궁리하다가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힘을 합쳤다”고 말했다. 이때 언협과 정의구현사제단이 ‘보도지침’ 발행에 이르는 과정에서 다리를 놓아준 사람이 영화 <1987>에 나온 김정남 씨다.

“박종철 고문한 진범 따로 있다고? 못 들은 걸로 할게”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5층에 박종철 기념 전시실이 있다. 1980년대 사회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 윤종훈

이부영 이사장은 1987년 영등포교도소에 수감될 때 박종철 군을 고문한 남영동 대공수사단 두 명도 수감된 기억을 되살렸다. 이 이사장은 “이 사람들이 밤새도록 잠을 안 자고 찬송가를 부르거나 울었다”며 “남을 매일 고문해서 교도소를 보낸 사람들이 자신도 교도소에 오면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영등포교도소 보안계장이 (박종철을 고문한) 다른 진범이 세 명 있다는 사실을 귀띔해줬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보안계장을 안심시키기 위해 “여보게, 안 들은 걸로 할게. 나하고 면담한 내용은 다 없애버려”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는 말과는 다르게 감옥에서 몰래 보내는 편지를 뜻하는 ‘비둘기’를 날려 진범이 따로 있음을 폭로했다.

이 보안계장은 2004년 교도관을 정년퇴직한 한재동 씨로 이부영 이사장에게 옥중 편의를 봐준 인물이다. 재소자에게 필기구와 종이 소지가 금지되던 시절 볼펜과 종이를 찢어서 이 이사장에게 건네준 한 씨는 빽빽이 적힌 편지를 건네받고 김정남 씨에게 전달했다. 이 이사장은 ”보도지침 사건이 폭로되면서 언론통제가 어렵게 된 데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축소∙조작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518 민주화운동에 이어 6월 항쟁까지 발전하는 계기가 됐다”고 설명했다.

“<한겨레>는 우리 역사가 창간했다”

▲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부사장은 <한겨레>가 탄생한 것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고 밝혔다. ⓒ 윤종훈

임재경 전 한겨레신문사 부사장은 군사정부 후신 격인 노태우 정부가 들어서고 국민들의 허탈감이 커지자 국민의 손으로 우리 신문을 갖자는 정신으로 <한겨레> 창간을 현실화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물적 기초가 없으면 신문사를 만들 수 없지만 돈만 가지고 좋은 신문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하다”며 “1조원을 내서 신문사를 만들겠다고 하면 좋은 설비, 좋은 기자들을 많이 불러올 수 있겠지만 독자 30만, 50만은 돈으로 살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동아투위 자유언론실천선언, 보도지침 사건, 학생운동, 518민주화운동 등 한국 현대사가 쌓아온 결실이 <한겨레>”라며 “몇 사람이 만든 게 아니라 해직언론인 등 창간에 참여한 모든 국민들이 고생한 결과”라고 답했다.

“지금처럼 한국 언론이 타락한 적 없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끝으로 현재 한국 언론의 현실을 두고 제안할 말이 있는지 물었다. 이에 신홍범 전 위원장은 “해방 이후 지금처럼 한국 언론이 타락하고 혼란을 조장한 적이 없었다”며 “특히 <조선> <중앙> <동아> 같은 극우언론의 정체를 밝혀 거짓된 언론, 사악한 언론을 국민들이 거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주언 전 협회장은 “이명박 정권 때 종편 채널을 4개나 허용해주고 신문과 겸영하도록 허용해주면서 확인되지 않은 가짜뉴스를 양산한 게 가장 큰 문제”라며 “민언련을 중심으로 시민단체들이 연합해 종편 방송이나 신문들을 모니터링하고 잘못 보도된 내용들을 지적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 행사가 끝나고 일부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 윤종훈

한국은 보수·진보의 기울어진 언론 지형과 극성스런 가짜뉴스 등으로 건전한 여론형성이 힘든 사회입니다. 제대로 이슈화가 안 되니 아무런 결정도 내리지 못하고 갈등이 잠복하는, 이른바 ‘Non-issue, Non-decision Society’가 바로 한국입니다. 주요 정책이나 법을 결정할 때 공론화 또는 숙의 과정이 한국에서 특히 중요한 이유입니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학계 또는 소수자의 건강한 목소리조차 기성 언론은 외면하기 일쑤입니다. <네이버> <다음> 포털과도 뉴스검색제휴를 한 <단비뉴스>가 여러분의 목소리를 확성하는 [여론광장]을 개설합니다. 자료를 미리 보내주시면 취재에 도움이 됩니다. (편집자)

편집 : 양동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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