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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곡 보도로 노동 탄압 앞장서는 언론
[미디어공공성포럼]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 언론의 불편한 진실’
2019년 11월 20일 (수) 19:51:53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프랑스 사회는 노조에 우호적인데 프랑스 회사, 프랑스인 점장이 왜 노조를 거부하나요?”

“여기(한국) 서는 그래도 되니까. 여기서는 법을 어겨도 처벌 안 받고 욕하는 사람도 없고 오히려 이득을 보는데 어느 성인군자가 굳이 안 지켜도 될 법을 지켜가며 손해를 보겠소? 사람들은 대부분 그래도 되는 상황에서는 그렇게 되는 거요.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요. 사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 JTBC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 ⓒ JTBC

2015년 JTBC 드라마 <송곳>에서 나온 대사다. 노조 가입률 10.2%로 OECD 평균인 27.8%의 절반도 안 되는 우리나라에서 ‘노동’을 얘기하기는 쉽지 않다. ‘노동권’을 주장하는 사람은 ‘빨갱이’ 등 색깔론에 몰리기 십상이고 ‘파업’은 시민에게 불편함을 가져다 주는 이기적 행위로 인식된다. 대한민국 제1기업이라 불리는 삼성에는 노조 활동이 아예 없거나 미약하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노조단결권까지 없애자고 한다. 대통령이 나서서 ‘노동조합’을 지지하고 심지어 경찰이나 군인 노조까지 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의 노동 인식은 왜 이렇게 낮을까? 그 이유를 찾고자 19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에서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 언론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주제로 포럼이 열렸다. 미디어공공성포럼이 지난 6월 ‘가짜뉴스가 한국경제 망친다’는 주제로 포럼은 연 데 이어 두 번째 행사다.

기울어진 운동장 더 기울게 만드는 언론

발제를 맡은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하종강 교수는 먼저 노동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최근 기사들을 지적했다. 첫 번째로 그는 지난 8일 <아시아경제>가 보도한 ‘화장인가 노동인가, ‘꾸밈 노동’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기사를 꼽았다. 이 기사에서는 샤넬코리아노조가 사측에 임금 청구 소송을 제기해서 패소한 내용이 나온다. 이에 관해 하 교수는 “소송 쟁점은 화장 시간도 노동 시간이라는 게 아니라 영업 준비를 1시간 이내 끝낼 수 있는지, 직원들이 실제로 30분 일찍 출근했는지 사실관계를 입증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 보도 이후에 나온 <위키트리>의 ‘샤넬 화장품으로 ‘맘껏’ 화장하는데 30분 일찍 출근했다고 소송?’ 기사 역시 정말 나쁜 보도라고 지적했다.

   
▲ 하종강 교수가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 언론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 임지윤

그는 지난 14일 <매일경제>가 보도한 ‘미국은 처벌 규정도 없는데… 한국은 52시간 위반하면 ‘징역 2년’’ 기사도 언급했다. 우리나라에서 노동법이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되는 것처럼 보도하지만 실제로 이를 어겨서 징역 간 사용자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같은 날 <중앙일보>의 [노트북을 열며] 칼럼 ‘요기요 배달원의 근로자의 지위’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칼럼에서는 배달 노동자 권익 보호를 위한 시민단체 ‘라이더 유니온’을 ‘특정 단체’로 언급하며 그들이 배달원들의 종합보험 문제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정치투쟁의 도구로만 노동자를 이용하는 것처럼 호도한다”며 “이는 실제로 라이더 유니온이 종합보험 문제로 얼마나 많은 인력과 노력을 쏟아 붓는지 취재도 안 하고 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보도는 노사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더 기울게 만들고 있다. 하 교수는 한국과 외국 언론의 보도 사례를 비교하며 “한국 언론은 노동운동을 바라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부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 15일부터 파업을 이어가고 있는 전국철도노조에 관해 언론은 일제히 ‘지연 운행에 따른 불편’에만 초점을 맞췄다. 9일 열린 ‘2019 전국노동자대회’를 보도할 때도 ‘서울 일대 교통마비 예상’이라는 제목이 거의 모든 언론사에 달렸다.

   
▲ 영국 BBC의 한국어판 등 외국 언론(오른쪽)은 한국 언론(왼쪽)과 달리 파업이 일어난 이유에 주목하지, 파업 자체를 비난하지 않는다. ⓒ 하종강

노조를 탄압하기 위해 악의적으로 왜곡하는 보도도 많다. <동아일보>는 2013년 12월 12일 컨테이너 박스가 많아 보이는 사진을 1면에 내세우며 철도 파업 때문에 수출해야 할 컨테이너가 발이 묶여 있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 관해서는 <중앙일보> 김성룡 기자가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전국 화물의 운송 부담 비율에서 열차가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며 파업 안 할 때 쌓인 모습도 이와 같다”고 반박했다.

   
▲ <동아일보>가 사진을 악의적으로 왜곡했다고 지적하는 <중앙일보> 김형룡 기자 SNS 게시글을 공유 중인 한 누리꾼. ⓒ 하종강

또한 평상시에 언론이 자주 표현하는 ‘노조 하나에 계파만 9개’, ‘대사업장도 외면하는 산별 투쟁’, ‘대안 없는 반발 목소리’ 같은 기사도 노조를 이익집단으로 몰고 가며 시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도록 힘을 빼는 보도다. 하 교수는 “이러한 보도에는 노조가 9개면 왜 안 되는지, 고임금 노동자 임금은 적게 인상하고 중소영세기업 노동자 임금은 많이 인상하는 ‘산별 투쟁’이 왜 나쁜 것인지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대안 없이 ‘결사반대’나 ‘전면 철회’하는 방법이 노동자가 가지는 파업권 중 마지막 수단이라는 점 역시 간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노사간 대치 상황에서 노동자 폭력성만 강조해서 보도하는 행태나 크로스 체크 없이 사측이 주는 보도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행태 역시 바뀌지 않는 언론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지난 5월 현대중공업 노동자들이 주주총회장 점거농성에 들어가며 발생한 회사와의 충돌 상황을 <중앙일보>를 포함해 최소 22개 매체는 농성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현대중공업 사원이 기자들이 있는 단체 대화방에서 뿌린 주장만을 그대로 받아썼다. ⓒ <중앙일보>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 2009년 전국철도노조 파업 당시 <연합뉴스>는 ‘철도노조 파업 5일째…’승객들 화났다’’라는 기사를 냈다. <중앙일보>는 ‘파업으로 열차 멈춘 그날 어느 고교생 꿈도 멈췄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며 파업의 부정적인 영향을 강조해 파업이 중단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이 기사는 석 달이 지나서야 언론중재위원회를 통해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고 그 언론사는 끝까지 정정보도를 하지 않다가 법원의 1·2심 재판을 거쳐 2년이 지나서야 작은 반론 보도문을 실었다. 같은 해 쌍용차노조가 파업할 때는 ‘민노총, 비틀거리는 경제 아예 목을 조르겠다는 건가’라는 제목을 단 <조선일보>처럼 대부분 언론은 쌍용차 노조를 경제 악화 주범으로 몰았다. 10년 동안 변함없이 노동자 파업을 부정적으로만 보도한 것이다.

   
▲ 이창현 미디어공공성포럼 위원장(왼쪽) 등 청중들이 강연을 듣고 있다. ⓒ 임지윤

‘노동 운동은 정치적’ 비난, 교육의 문제

‘중산층이 중심이 되는 사회는 경제가 성장한다고 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 행동을 통해서 만들어진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미래를 말하다>)

‘세계화의 주된 추진력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주장하듯 기술이 아니라 정치, 즉 인간의 의지와 결정이다.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나쁜 사마리아인들>)

정치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모든 사회 구성원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매우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문제다. 각자가 사회를 살아가는 주인으로서 행사할 수 있는 권리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동자 생존보다 정치투쟁 우선하는 민주노총’, ‘’정치 투쟁 싫다’ 건국대병원 노조, 민노총 탈퇴’ 등의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노동자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는 것에 매우 부정적이다. 하 교수는 “’정치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 자체가 오히려 매우 강력한 정치적 입장”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의 노동운동은 오히려 정치 활동이 너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노동조합의 정치적 활동이 없었다면 전교조나 공무원노조는 아직까지 합법화하지 못했고 비정규직 차별도 사라지지 않게 될 것”이라며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변화를 촉구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미국보다 더 보수적 태도를 취하며 노동을 절하하는 이유에 관해 ‘자본에 기댄 언론’과 더불어 노동자 권리를 가르치지 않는 교육 문제를 짚었다. 기자들부터 노동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언론사에 들어가니 자신들이 노동자라는 생각은 안 하고 자본에 편승돼 노동 문제를 부정적으로만 보도한다는 것이다. 그는 “외국에서는 아주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노동권을 가르친다고 말했다. 독일 초등학교에서는 모의 노사 교섭 수업을 연간 여섯 차례 정도 진행하며 프랑스 ‘시민-법률-사회’ 교과서에서는 3분의 1 정도 분량이 단체교섭의 전략과 전술을 짜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다. 영국에서는 노동조합 간부가 지역에 있는 학교에 직접 와서 아이들에게 노동권을 가르치기도 한다. 미국과 일본 역시 방법에서만 차이가 날 뿐, 노동권을 철저히 가르친다.

   
▲ 우리나라와 달리 외국에서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노동권’을 교육하고 있다. ⓒ 하종강

하지만 한국은 ‘노동권’을 교육하지 않을 뿐 아니라 교과서조차 깎아내리는 내용이 대다수이다. <오마이뉴스>가 2012년 1학기에 출판된 사회 교과서 62곳을 조사한 결과, 노동과 관련한 분량은 0.92%에 불과했다. ‘구조조정’이나 ‘비정규직’에 관해 설명하는 교과서는 10%도 되지 않으며 정부와 기업은 경제 성장의 주역이라고 표현한 것에 견주어 노동자는 별다른 수식어조차 없다. 최저임금 인상에 관해서는 ‘일부 노동자들의 소득은 올라가지만 다른 노동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명시하며 최저임금제가 노동자의 권리라는 인식을 가려 버렸다.

파업으로 인한 불편, 누구 책임인가

이러한 교육 차이는 노동을 바라보는 시각 차이를 만들어 낸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최저임금을 40% 인상할 때 반대하는 공화당 의원들에게 “최저 임금 생활, 당신이 직접 해봐라”고 자신 있게 외치면서 노조 가입을 적극 권유했다. 테투 사보라이넨 핀란드 보건복지부 차관은 한국을 방문했을 때 “나도 노동조합원”이라고 말했다.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할 수만 있다면 총리도 ‘역사의 주인’ 노동자 신분을 유지하면서 노동조합비를 계속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기자회견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들이다. 더 놀라운 건 노조가 거의 모든 직업에 있다는 것이다. 하 교수는 프랑스 판사노조, 교장도 가입하는 영국과 핀란드의 교원노조, 호주 벨기에 피지 파푸아뉴기니의 소방관노조, 캐나다 미국의 경찰노조, 유럽연합의 군인노조와 영국의 MI6 비밀요원노조까지 보여주며 “지위나 학력 또는 연봉이 높다고 노동조합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매우 잘못된 인식”이라고 말했다.

   
▲ 노조는 무조건 비난하고 보는 우리나라 정서와 달리 대부분 나라는 노조 가입과 활동이 자유롭다. 보수적인 나라라고 인식되는 미국에서조차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노조 가입을 권유한다. ⓒ 하종강

이러한 문화는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나타난다. 하 교수는 지난 2016년 <CBS 노컷뉴스>의 ‘’현대차 임금협상 타결’ 노조 2차 합의안 찬성 가결’ 기사에서 ‘기본급 4천원 올리자고 3조원 날렸다’란 소제목을 보여주며 “외국이라면 어떻게 보도했을까요”라고 질문했다. 청중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이 그는 “’기본급 4천원 올려주지 않으려고 기업이 3조원 날렸다’고 적겠죠”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영화 <빌리 엘리엇(Billy Elliot)>이나 <뉴욕 남자 파리 여자> 등에서 일반 시민이 아무렇지 않게 파업을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것처럼 외국에서는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권리를 용인하는 ‘똘레랑스(관용)’가 보편화했다”고 말했다. 청소노동자가 파업하면 ‘세금 받으면서 하는 일 아니냐’ 또는 ‘일은 하면서 권리를 주장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비난하는 우리나라 시민과 달리 쓰레기를 모아 그 지역 시장 집 앞에 투기하는 등 지역주민이 가지는 분노의 화살이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에게 향하는 것이다.

이날 토론자로 참석한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를 비롯해 <미디어오늘> 손가영 기자, <뉴스타파> 강혜인 기자는 직접 노동 관련 취재를 하며 가진 고민들을 털어놓았다. 이들 모두 노동 관련 교육이 현직 기자들에게 턱없이 부족하다며 아쉬움을 드러냈고 특히 노동전문기자로서 공인노무사 자격증까지 취득한 강진구 기자는 ‘노동 보도 준칙’ 정립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 ‘노동자가 사라진 한국 언론의 불편한 진실’에 관해 토론중인 <경향신문>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 임지윤

김언경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노동 문제를 악의적으로 계속 왜곡하는 언론사는 비판, 감시를 넘어 고소까지 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문제 해결은 힘들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아직까지 언론에서는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라는 의미를 가진 ‘노동’이라는 단어를 ‘부지런히 일하는 존재’를 뜻하는 ‘근로’(勤勞)로 표기하고, ‘민주노총’에서 ‘민주’라는 의미를 퇴색시키는 ‘민노총’ 표기도 계속되고 있다”며 관행적인 표기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임윤옥 KBS 시청자위원은 “힘 있는 사람은 말만 해도 뉴스거리가 되는데 힘없는 사람은 고통만이 뉴스거리다”며 “고등학교 졸업 이후 바로 계절노동자로 공장에 들어가 노조도 못 만들고 온갖 힘든 일을 다 맡는 청년 노동자나 아직도 성폭력에 고통받는 여성 노동자, 최저임금조차 못 받고 일하는 돌봄 노동자 등 우리 주변에 소외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 : 양안선 PD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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