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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고 싶은 가을, 이왕이면 예술기행
[세명대 인문주간] 청주박물관과 이응노미술관 방문
2019년 11월 06일 (수) 00:26:51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3일 아침 30여 명 제천시민이 제천의병도서관에 모였다. 단풍처럼 형형색색의 등산복과 나들이옷을 입은 이들이 전세버스를 타고 가는 곳은 국립청주박물관과 대전 이응노미술관. 세명대가 지난 26일부터 진행해온 ‘인문주간’ 행사의 하나인 ‘인문예술기행’을 떠나는 길이었다.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 김은정 연구원은 “인문학적인 학습경험을 제공하려고 기획한 프로젝트”라며 “실학박물관과 황순원문학관을 방문하며 역사 문화체험을 한 어제에 이어 오늘도 맛있는 점심도 먹고 예술도 보며 즐겁게 다녀오자”고 여행 분위기를 띄웠다.

   
▲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예술기행’에 참여한 제천시민들이 국립청주박물관 앞에서 함께 사진을 찍었다. ⓒ 임지윤

우리 지역 조상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청주박물관을 자랑하자면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아주 다양한 유적이 원본으로 보관되어 있습니다.”

주말이면 청주박물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박형미 해설사는 같은 충북도민인 제천시민들을 반갑게 맞았다. 청주박물관은 충북지역 문화유산을 조사·연구·전시하고 다양한 문화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중원문화의 특색을 조명하려고 1987년 개관했다. 청주박물관은 충북지역에서 출토된 구석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유물 2,300점을 네 시대별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 청주박물관 선사문화실에서 선사시대 유물을 보며 해설을 듣고 있는 인문예술기행 참가자들. ⓒ 임지윤

맨 먼저 들른 곳은 선사문화실. 충북은 바다가 없는 유일한 도이지만 남한강과 금강으로 흘러 드는 크고 작은 하천 주변에 넓은 평야와 나지막한 구릉이 발달하고 풍부한 삼림이 있어 선사시대부터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주먹찌르개, 빗살무늬토기, 민무늬토기, 간돌검 같은 유물들은 풍족한 자연환경 속에서 충북에 살았던 선사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참가자들은 짐승 사냥과 식물 채집에 사용한 구석기 유물부터 농경과 정착생활에 사용한 신석기를 거쳐 충북에서 특히 많이 발굴된 초기 철기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유물들을 살펴봤다.

 
청주박물관 선사문화실에는 구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와 초기 철기시대까지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 임지윤

소백산맥은 문화의 장벽이 되지 못했다

충북지역은 한반도 북서지역의 문화를 받아들이며 남동지역과는 소백산맥의 여러 고갯길로 소통해 선사시대부터 문화 중심지 구실을 했다. 충북에는 기원 전후부터 마한의 54개 소국이 있었으며 점차 백제·고구려·신라 삼국의 치열한 접전과 교류 속에서 다양하고 독특한 문화가 꽃피웠다. 미호천 유역에서 발견된 ‘와질토기’는 영남지역에서만 만들어지던 토기와 매우 닮은 것이어서 소백산맥을 넘어서도 밀접한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증언한다. 이 밖에도 송풍관과 제사토기 등 백제 유물은 철 생산에 주력했던 시대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 충북 미호천 유역에서 발견된 ‘와질토기’는 영남지역에서도 많이 발견되는 토기여서 소백산맥을 넘어 문화교류가 있었음을 말해준다. ⓒ 임지윤

고대문화실 중앙에는 환한 조명 아래 섬세한 조각으로 다듬고 ‘계유’라는 제작연도를 새긴 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이 자리잡고 있다. 다른 곳을 관람하던 시민들도 하나둘 다시 모여들었다. 비석처럼 생긴 돌에 불교조각상과 발원문을 새긴 불비상을 가리키며 박형미 해설사가 “예쁘죠”라며 동의를 구하자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사진 찍기에 바빴다. 그는 “국보 106호인 이 불비상에는 ‘계유(癸酉)라는 제작 시기와 목적,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과 관직명이 네 면에 새겨져 백제 멸망 뒤인 673년 당시 사회상을 파악할 수 있다”며 “현재 남아있는 통일신라시대 불비상 7점중 가장 다양한 도상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고대문화실에 전시된 국보 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 ⓒ 임지윤

고려문화전시실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직지심체요절>의 복제판이 있다. 청주는 사뇌사, 용두사, 흥덕사를 중심으로 불교 금속공예와 인쇄문화가 꽃핀 지역이다. 특히 흥덕사는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直指)를 만든 곳으로 기록됐지만 원본은 프랑스에 있다. 박 해설사는 “1800년대 후반, 주한 프랑스공사를 지낸 플랑시가 구매해서 본국으로 가져간 뒤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기부한 것을 연구원이던 박병선 박사가 중국 고문서 더미에서 발견해 세계에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고려문화실에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심체요절’ 복제판이 전시돼 있다. ⓒ 임지윤

세계적 건축가에 영감 준 이응노 화백 그림

 
두 번째 행선지인 대전 이응노미술관 앞에서 시민들이 가을의 잔광을 즐기고있는 가운데 인문예술기행 참가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다. ⓒ 임지윤

청주박물관에서 나와 버스를 타고 1시간쯤 이동해 도착한 곳은 대전 서구 둔산대로변에 있는 이응노미술관이었다. 고암 이응노 화백 등의 작품 설명은 김지수 전시해설사가 맡았다.

2007년 프랑스 출신 세계적인 건축가 로랑 보두엥(Laurent Beaudouin)은 고암의 작품 <수>(壽) 속에 내재된 ‘조형적 구조’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 속 드로잉적 요소를 구조로 전환하여 고암의 문자추상을 건축적으로 해석하고 상징화했다. 이 미술관에는 고암은 물론이고 다국적 신진 작가들 작품도 다양하게 전시돼 있다.

 
이응노전시관에서는 고암과 다국적 신진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다. ⓒ 임지윤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난 이응노 화백의 작품에는 전통 필묵을 사용하면서도 서양화의 명암법과 원근법을 적용한 근대적인 사실주의 시각이 드러난다. 고암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인간이 중심에 있다. 60년대에는 추상화 속에 반 추상화한 인간의 형태를 넣었고 70년대에는 문자추상 속에서 기호화한 형태로 사람을 등장시켰다. 인간을 향한 애정은 늘 그의 작품 속에 자리잡고 있다. 특히 <군상>에는 한 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는 일격의 운필이 무한히 반복된다. 한지에 그려진 한 사람 한 사람은 고암의 연륜과 속세를 벗어난 필력에 의해 마치 살아 숨 쉬는 인간과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 이응노 화백의 <군상>은 한 번의 붓놀림이 곧 한 사람이 되어 마치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기운을 느끼게 한다. ⓒ 임지윤

김 해설사는 이 미술관에서 사람들이 가장 흥미롭게 보는 작품으로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쉬빙의 <백그라운드 스토리: 루 산>을 꼽았다. 그는 “작품 앞면을 보면 허백련의 <제후 산수>와 똑같지만 뒷면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고 말했다. 작품 뒷면을 본 시민들은 정말로 놀라며 같이 온 이들과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크릴판으로 작업한 그림 뒷면에는 나뭇가지와 솔잎, 털실, 비닐 등 온갖 재활용 쓰레기를 재료로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상의 모든 것이 재료’라는 작가의 세계관이 반영된 것으로 김 해설사는 “이 작품을 두고 우스갯소리로 ‘쓰레기 작품’이라고 말한다”며 사람들에게 웃음을 줬다.

 
쉬빙의 <백그라운드 스토리: 루 산>은 온갖 재활용 쓰레기를 재료로 허백련의 제후 산수를 그려 일명 ‘쓰레기 작품’이라 불린다. ⓒ 임지윤

박물관과 미술관 순례를 마친 참가자들은 제천행 버스에 탑승한 뒤 대개 10분도 안 돼 잠들 만큼 지친 기색이었지만 잠들기 전에는 옆자리에 앉는 이들과 만족감을 교환했다. 제천시 화산동에서 온 이미은(44) 씨는 “인문포럼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어서 안 들었는데, 인문예술기행을 와보니 나중에 또 참여하고 싶을 만큼 좋았다”고 말했다.

지역의 대학과 지방자치단체가 주민들에게 인문체험의 장(場)을 마련해줄 목적으로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이 주관하고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한 ‘인문주간’ 행사는 ‘인문예술기행’을 끝으로 올해 일정을 마무리했다.


편집 : 임지윤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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