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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까지 발 벗고 나선 ‘공론장 복원’
[미디어비평] 생활 이슈 ‘토론 배틀’
2019년 10월 31일 (목) 23:11:11 임지윤 기자 dlawldbs20@naver.com

‘술과 담배 중 뭐가 더 건강에 해로운가?’ ‘양치, 세수, 머리, 상체, 하체 중 어떤 순서로 씻는 게 맞나?’ 누가 당신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근거를 들기는 어려워도 의견까지는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의견을 당당히 얘기하는 순간 다른 의견과 충돌할 수도 있다. 반대로 공감받을 수도 있다. 그러다 보면 원래 술이 더 해롭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담배가 더 해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샤워할 때 양치를 가장 먼저 했지만, 오늘은 머리를 먼저 감아볼 수도 있다. 정(正)과 반(反)이 대립하다 합(合)으로 귀결되는 과정은 공론장에서 다반사로 일어난다. 무인도에서 혼자 살면 겪지 못하는 일이다.

   
▲ 파일럿 프로그램인 JTBC <괴팍한 5형제>와 SBS <신동엽 vs 김상중>은 전자는 예능이고 후자는 시사교양이지만 ‘공론장 복원’이라는 저널리즘의 본분을 따른다. ⓒ JTBC, SBS

무너졌던 공론장이 복원되기까지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는 공론장을 ‘공중으로서 모인 시민 개개인의 의견 참여 공간’으로 규정했다. 공론장은 민주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다.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된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이곳에서 토의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적인 결과물이 도출되기 때문이다. 공론장 구실을 하는 첫 번째 기구는 ‘언론’이다. 모든 시민이 직접 ‘아고라’와 같은 광장에 모여 정치적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언론이 그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다. 그리스 아고라 광장에서 시작해 식민지 시대 미국의 선술집에 이르기까지 저널리즘은 항상 공적 토론의 장이었다. 1947년 미국 허친스위원회(Hutchins Commission)는 “매스커뮤니케이션 매체는 공공 토론을 위한 전달매체(common carriers)를 자임해야 한다”며, 이 사명을 진실을 말해야 하는 의무 바로 뒤에 두었다.

   
▲ 최근 우리 언론은 같은 사안을 다르게 보도함으로써 공론장 기능이 오히려 후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 KBS

언론의 공론장 기능이 퇴행하고 있다. 민주적 토론은 문화 산업이 발달하면서 오히려 억제되고 있다. 매스 미디어와 대중 엔터테인먼트의 확산은 공적 영역의 쇠퇴를 초래한다. 정보통신기술의 발달과 매체 수 증가는 수많은 뉴스를 제공한다. 그러나 정파성을 띤다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해 시민들은 거리에 나와 ‘언론 개혁’을 외친다. 2019년 <시사인> 조사에 따르면, 공영방송으로서 신뢰도가 부동의  1위여야 할 KBS는 뉴미디어 유튜브에 밀려 신뢰도 3위에 머물렀다. 

조국 관련 보도는 권력 감시 측면에서 필요하다. 하지만 조국 사퇴 보도 속에서 정말 다뤄야 할 ‘교육 개혁’이나 ‘사법 개혁’ 보도는 찾기 힘들다. 공론장에서 시민들이 토론해야 할 중요한 이슈를 언론이 놓치거나 외면한 것이다. 차고 넘치는 뉴스지만, 언론이 던져야 할 질문을 던지지 않으니 진보와 보수 양쪽 시민은 자기 진영논리에 갇혀 더욱 확증편향에 빠진다. ‘공론장 복원’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단순화, 극단화한 토론 구조를 보여주는 주장문화(Argument Culture)는 시민을 공공토론에서 멀어지게 만들 뿐이다. ‘시민들이 자유로워지고 자신을 스스로 통제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저널리즘의 목적을 언론 스스로가 돌이켜봐야 할 때다.

‘줄타기 방식’이 주는 ‘논쟁의 즐거움’

저널리즘의 변화 필요성을 읽은 방송사들이 행동에 나섰다. 2013년 JTBC가 가장 먼저 <썰전>을 내놓는다.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두 패널이 나와 정부 정책과 시사 현안에 관해 논쟁하는 형식이다. 이에 맞서 TV조선은 <강적들>, MBN은 <판도라>를 선보인다. 얼마 전 유튜브 방송에는 <홍카콜라>의 홍준표와 <알릴레오>의 유시민이 만나 논쟁을 펼치는 <홍카레오>가 등장했다. 

모두 여야 대립 구도로 설정돼 있고, 한 MC가 사회를 맡는 ‘시사평론 예능’이다. MBC <100분 토론>의 진지함보다는 전개 방식이 부드럽지만, tvN <코미디 빅리그>의 코너 ‘사망 토론’보다는 내용이 무겁다. 내용은 시사 현안을 그대로 가져가되, 연예인이 참여하는 등 전개방식을 달리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알아야 할 정보와 느끼고 싶은 재미를 동시에 제공하며 시청자를 TV 앞으로 끌어들인다.

   
▲ JTBC <썰전>은 사상과 캐릭터가 대립되는 전원책 변호사와 유시민 작가를 내세워 정보와 재미를 선사했다. ⓒ JTBC

이는 분명 이전 토론 포맷과 다르다. 토론 프로그램은 할린(Hallin)이 말한 ‘합의’ ‘논쟁’ ‘일탈’이라는 저널리즘의 세 영역 중 ‘논쟁’의 영역에 속하는 포맷이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주제를 가지고 양극단에서 누가 옳은지 싸운다. 합의가 불가능한 지점에서는 첨예하게 대립한다. 주장과 근거를 제시하며 상대방을 납득시키려 애쓴다. 다양한 통계 자료를 제시하고 역사적 배경 설명이 뒷받침된다. 목소리를 부드럽게 하며 웃기기도 하고, 인상 찌푸리며 목소리를 높이는 ‘설득의 기술’도 발휘한다. 

그러면서 서로 동의하는 부분은 공감하며 합의점을 찾아간다. 자기 목소리만 높이며 싸우는 ‘언쟁(dispute)’이 아니라 ‘논쟁(debate)’을 하는 것이다. 한 가지 문제에 관해 여러 의견을 끄집어내는 ‘논의(discussion)의 영역도 포함한다. 이는 처음부터 싸우자는 자세로 나오던 기존 토론 프로그램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논쟁’의 즐거움이다.

일상 속에 숨겨진 대화거리

9월 12일 밤 11시에 방송된 JTBC <괴팍한 5형제>와 9월 14일부터 이틀간 밤 11시 20분에 방송된 SBS <신동엽 VS 김상중>은 둘 다 파일럿 프로그램인데, 전자는 예능, 후자는 시사교양을 주축으로 하기 때문에 저널리즘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두 프로그램은 ‘공론장 복원’이라는 본분을 따른다. 

<괴팍한 5형제>는 포맷 자체가 단순하다. 박준형, 서장훈, 김종국, 주우재, 백현 다섯이 형제를 이뤄 어떤 주제가 나오면 다섯 가지로 순서를 나눈다. ‘양치, 세수, 머리, 상체, 하체 중 어디를 먼저 씻을지’나, ‘화장실, 배고픔, 졸림, 추위나 더위, 갈증 중 가장 고통을 참기 힘든 게 무엇인지’ 등이 예다. 출연자들은 제각각 자신의 경험에 따라 근거를 들며 어느 하나를 주장한다. 보다 보면 ‘이걸 가지고 왜 저렇게 흥분하지’ 싶다가도 ‘나는 어디를 먼저 씻더라’ ‘무슨 고통이 제일 참기 힘들까’ 고민하게 된다. 그리고 괜히 옆에 있는 누군가와 그에 관해 얘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줄 세우기’라는 간단한 방식으로 생활 속 소소한 주제를 대화하게 만드는 프로그램 전략은 성공적이다.

   
▲ <괴팍한 5형제>는 포맷 자체가 단순하다. 박준형, 서장훈, 김종국, 주우재, 백현 5명이 형제를 이뤄 어떤 주제가 나오면 5가지로 순서를 나눈다. ⓒ JTBC

시청률 5.9%를 기록한 <신동엽 vs 김상중>의 ‘술이 더 해로운가, 담배가 더 해로운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지만, 우리 일상생활에 깊이 침투한 소재를 가져와 각종 근거를 대며 한 판 붙는다. 한 마디로 ‘논리 격돌 쇼’다. 여론조사부터 통계자료 제시, 전문가 인터뷰, 일란성 쌍둥이 실험, 직장인 심층 인터뷰, 역사적 사례나 해외 사례 비교 등 다양한 데이터가 뒷받침된다. 

평소 애주가로 알려진 신동엽과 애연가로 알려진 김상중이 자기를 변호하며 청중과 공감한다. ‘담배는 건강에 해롭습니다’ 또는 ‘술은 당신을 해칩니다’ 같은 교훈적 문구를 자꾸 띄우는 것보다 새롭게 다가온다. 서로 주장을 반박하며 내미는 객관적 자료를 통해 자신이 가진 논리적 한계를 깨닫기도 한다. 이 논쟁에서 승리는 무의미하다. 결국 술, 담배 둘 다 해롭다. 구체적으로 어떤 해로움을 가지는지, 왜 끊을 수 없는지 대화하며 서로를 알아가는 게 핵심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합의점에 도달한다.

‘공론장’이 일상 속에 스며들려면

두 프로그램 모두 포맷 자체가 단순하기 때문에 충분히 지속성이 있다. 또한 일상 속에 토론 주제는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확장성도 충분하다. 이런 이유 때문일까? <괴팍한 형제들>은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31일 정규 첫 방송을 확정했다. 

하지만 지금 방식에는 아쉬운 부분도 있다. <괴팍한 5형제>는 기존 MBC <무한도전>이나 KBS <1박2일>, JTBC <아는 형님>에서 보였던 남자들끼리 시시콜콜한 대화 주고받기와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캐릭터나 구성 측면에서 식상함이 느껴진다. 시작 부분에 나오는 ‘역할극’ 또한 많이 봐왔던 방식이다. 1시간 30분 가량 방송에서 끝나기 20분 전 게스트로 출연한 배우 김소은은 ‘5형제들’ 남매라며 뜬금없이 등장한다. 출연진이 “우린 가족관계가 복잡해”라며 은근슬쩍 넘어가지만, 기획단계부터 게스트 역할이나 등장 타이밍에 큰 고민이 없었던 것 같다. 또한 대화를 통해 줄 세운 다음 무언가가 없어서 전하려는 메시지도 모호하다. 정규 방송에서 시청자를 불러 모으려면 개선이 필요하다.

   
▲ <괴팍한 형제들>은 정규 방송으로 승격했지만 <무한도전> <1박2일> <아는 형님>에서 보던 남자들의 시시콜콜한 대화 주고받기를 벗어나지 못했다. ⓒ JTBC

먼저 왜 남자들로만 출연진을 구성했는지 답을 내놓아야 한다. ‘줄 세우기’라는 포맷이 군대와 경쟁 문화에 익숙한 남성의 전유물이라서? 남성들만 출연한 프로그램이 그동안 큰 인기를 유지해왔기 때문에? 만약 그런 이유라면 여성은 들어갈 수 없었던 아고라의 ‘반쪽짜리 민주주의’와 뭐가 다른가? 일상의 대화가 가능한 공론장에서 여성 출연자를 배제했으니 말이다. 

‘5형제와 5자매’ 또는 ‘괴팍한 5남매’와 같은 컨셉을 잡아서 남성, 여성이 번갈아 출연하거나, 같이 출연하는 방식은 어떤가? 가족이 아닌 직장, 농촌, 중고등학생, 국회 등 매 방송 대화 주제에 맞게 공간과 캐릭터를 새롭게 연출하는 건 어떤가? 더 다양한 사람이 참여할수록 ‘공론장’의 대화가 활발해진다는 면에서 프로그램의 확장성을 높일 수 있게 된다. 이는 자연스럽게 시청률로 이어질 것이다. 

‘스포츠 스타 줄 세우기’ 이후 고등학생 100명이 뽑은 스타 순위와 비교했던 방식처럼, ‘만나기 싫은 직장 상사 줄 세우기’ 이후 직장인 100명이 뽑은 만나기 싫은 직장 상사 순위를 맞추는 미션이 계속해서 주어진다면, 출연자들이 더 활발하게 토론하고 시청자 공감을 끌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일상적 주제이니 과거 JTBC <마녀사냥>에서 했던 것처럼 시민과 화상 연결을 시도해보는 보는 것도 고려할 수 있겠다. 

<신동엽 vs 김상중>은 추석특집 프로그램 중 시청률 상위권에 들었지만, 아직 정규 편성은 되지 못했다. 얼마나 많은 아이템을 이 포맷에 맞출 수 있을지 의심했던 그대로다. ‘담배와 술 중 무엇이 건강에 해로운지’는 많은 사람이 관심 가지는 주제이며 치열한 토론이 가능하다. 그러나 방송 막바지에 신동엽이 제시한 것처럼 ‘소금과 설탕 중 무엇이 건강에 해로운지’ ‘말 안 듣는 후배와 잔소리하는 선배 중 누가 건강에 해로운지’ 등은 신동엽과 김상중 본인들도 몰입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시청자 관심도도 떨어질 수 있다. 흥미 있는 아이템을 선정하지 못하면 실패할 가능성이 농후한 포맷이다. <100분 토론>만큼 무겁게 가지는 않으면서 <코미디 빅리그>의 ‘사망 토론’보다 깊이 있는 정보를 담는 중간 지점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지만, 경계지점에 서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 <신동엽 vs 김상중>은 추석특집 프로그램 중 시청률 상위권에 들었지만 술이나 담배 끊는 것처럼 이 포맷에 맞는 아이템을 개발하는 것이 관건이다. ⓒ SBS

두 프로그램은 모두 죽어가는 ‘공론장 복원’에 힘썼다는 점에서 평가를 받을 만하다. 예능이든 시사교양이든 방송 프로그램이라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고 어떤 게 필요한지 찾아내야 한다. 그에 맞는 아이템을 발굴하고 전달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갈수록 대화가 없어지고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아지는 시대, 갈수록 자기가 원하는 정보만 취득하고 그게 옳다고 생각하는 확증편향이 강화되는 시대에 ‘솔직한 대화’는 절실하게 필요하다. 

두 프로그램 제작진은 그 지점을 잘 찾아냈다고 할 수 있다. 저널리즘의 신뢰가 추락하는 시대에 예능까지 발 벗고 공론장 복원에 나서는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면서 장하다. 제작진의 의도가 시청자에게 잘 전해져 일상생활이나 특정 이슈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 표출이 자유로운 저널리즘 생태계가 복원되기를 바란다.


편집 : 정재원 기자

[임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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