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리스를 홈으로] ③ 집이 답이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이맘때쯤이면 밤이 더 두렵고 긴 사람들이 있다. 거리에서 밤을 지새는 홈리스(homeless)들이다. 집은 단순히 잠자고 머무는 공간만이 아니라 ‘휴식 공간’이다. 홈리스는 잠 잘 곳이 없으니 당연히 쉴 수 있는 공간도 없다. ‘비적정 주거’는 사회구조적 문제이며, 국가가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거리를 떠도는 홈리스의 실태와 그들을 위한 정책을 점검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홈리스를 홈으로’ 기획을 세 차례로 나눠 싣는다. (편집자)

서울에서 10년 넘게 노숙과 재활 시설을 오가며 살았던 김용한(가명·60) 씨는 요즘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들을 보내고 있다. 따뜻한 방에서 발 뻗고 자고 집에서 지은 밥을 먹는 것이 이렇게 푸근하고 좋은 것인 줄 몰랐다. 많지 않은 수입이지만 식당 대리기사로 일하는 것이 매우 보람차고 뿌듯하다. 10년 이상 못 해본 성내천 산책도 하고 못 만나고 지내던 동생도 만났다. 최소한의 것만 갖추고 살지만 수천억 갑부가 부럽지 않고 더 바랄 것도 아쉬운 것도 없다.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집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1년 넘게 살다 보니 동네 주민 중에 오다가다 인사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 생활을 10년 넘게 안 했거든요. 만나는 사람이라곤 다 같은 노숙인이고… 동네가 주거 지역이라 시끄럽지도 않고 너무 좋아요. 더러 혼자서 성내천에 산책도 해요. 나도 여기 주민이다, 떳떳하게 집을 나서니 정말 좋죠.”

“지원주택 입주 후 사람답게 사는 것 절감”

김 씨는 택시 운전을 하다 술 때문에 일을 그만두고 집을 나온 지 10년이 넘었다. 그동안 노숙은 물론 고시원과 재활시설을 들락날락하는 생활을 해왔다. 재활 시설에서 공공근로를 하며 약간 돈을 모았지만 좋아하는 술 마시기로 다 써버렸다. 5년 전에는 시설을 나와 월세 25만 원짜리 고시원을 전전했다. 화장실도 공용으로 바깥에 있고 창문 하나도 없는 싼 방이었는데, 그마저 금세 돈이 떨어져 서너 달을 못 버티고 다시 노숙을 했다. 그는 그렇게 10년 넘게 떠돌다 작년 2월 말 서울 강동구에 있는 서울시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지난달 16일 지원주택에서 만난 김 씨는 “여기 와서 너무 많이 달라졌다”며 “사람답게 사는 걸 몸으로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고시원에 있을 때는 나오다가 누가 보나 두리번거리게 되고, 들어갈 때도 내 공간이지만 내 집이라는 생각이 안 들었다”며 “여기 와서는 ‘내 집이다’ 하는 게 느껴지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된다”고 덧붙였다.

▲ 지원주택 입주민 김용한 씨는 지난 7월 50만원을 들여 새 에어컨을 마련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지원받은 돈에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아 샀다. ⓒ 최유진

지원주택은 집이 없거나 거처 유지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서울시가 싸게 공급하는 독립형 주거 공간이다. 치료, 일자리 등 대상자에게 필요한 서비스를 함께 제공한다. 김 씨는 노숙인 재활 시설인 서울시립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지내다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김 씨가 사는 지원주택에는 지금 노숙인 19명이 입주해 있다. 5층 건물 15~18㎡짜리 원룸 19개에 방마다 한 사람씩 독립 가구로 입주해 산다. 

술 줄이고 일자리 알아보며 홀로서기 준비

김 씨는 작년 2월 재활 시설인 서울시 비전트레이닝센터 사회복지사의 권유로 지원주택에 입주했다. 처음엔 알아보지도 않고 권유를 뿌리쳤다. 시설 생활을 관두고 혼자 나가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 겪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원주택을 직접 방문해본 뒤로 마음이 달라졌다. 어느 정도 돈이 드는 걸 감수하고도, 이곳에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다. 집에서 살게 되면 일도 생기고 살 수 있는 길이 있겠다는 자신감도 들었다.

“재활시설에서 나올 때는 돈 들고 어깨 힘주고 나왔는데, 얼마 안 되는 돈 다 써버리고 갈 데도 없어 다시 시설로 돌아가게 돼요. 그냥 나가면 시설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거의 99%라고 봐요. 내 경험인데 정말 더 망가져서 돌아와요. 그런 걸 네 번째 되풀이했을 때는 그야말로 폐인이 됐어요. 우리도 창피한 줄 알고 부끄러운 줄 아는데, 돌아가면 동료들 어떻게 볼까… 시설에서 어느 정도 적응하는 사람들은 지원주택에서 생활해보게끔 유도해주면 좋겠어요. 나만 이렇게 좋은 거 누리고 있는데, 더 많이 (지원주택이) 생기면 좋겠어요.”

김 씨는 지원주택에 들어온 뒤 일자리도 열심히 알아보면서 틈틈이 아르바이트한다. 그의 한 달 고정 수입은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받는 50만 원이 전부다. 13만6천원을 지원주택 사용료로 내고 나머지로 한 달을 산다. 지원주택 입주보증금이 200만~300만원인데 이 부분은 이랜드재단이 지원해주고 있어 노숙인들은 보증금 없이 입주할 수 있다. 그는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데 생활비 중 15만원 정도를 술·담뱃값으로 쓴다. 하지만 이전에 견주어 술과 담배를 절반 이하로 줄였다. 보조금만으로는 생활비가 부족해 한 달에 서너 번 식당 대리 주차 아르바이트를 해서 20만~30만원을 번다.

▲ 김용한 씨는 입주 당시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식기 도구와 전기밥솥을 선물로 받았다. 냉장고는 중고로 구매했다. ⓒ 최유진

“이젠 동생들이랑 왕래하고 지내요”

“여기 와서 제 나름대로 계획을 세워 사는 게 재밌어요. 예전엔 상상도 못 할 일이었죠. 동생 집에도 가끔 놀러 갑니다. 술 한잔하고, 당구도 한 게임 치고... 예전에는 술도 대책 없이 막 먹었다 치면, 지금은 꼭 밥이랑 반찬 해서 먹는다든지, 그러면 아무래도 덜 먹게 되고… 예전처럼 술 취해서… 술 취하면 항상 사고가 생기거든요. 이젠 그런 거 없이 사니까 너무 만족해요.”

집안의 맏이인 김 씨는 집 나온 뒤로 동생들과 왕래를 끊고 살았다. 보고 싶지만 보러 갈 형편이 안 돼 갈 수도 없었다.

“동생들은 제가 어디 사는지 알질 못했어요. 그렇게 10년 살았어요. 작년 초 여기 와서 연락하기 시작했어요. 내가 잘만 살면 여기서 이제 10년, 20년이고 살 수 있다. 이런 얘기 듣고서 동생들도 찾아오고 흐뭇해해요. 넓은 공간은 아니더라도 깨끗하고 괜찮잖아요. 엊그제 추석이었는데 동생들이 나를 차에 태워 부모님 성묘도 가고, 또 집에다 데려다주고… 이 집에 와서야 왕래를 해요.”

김용한 씨는 그동안 명절이 있는 줄도 잊은 채 살았다. 그런데 작년과 올해 추석은 동생들과 함께해서 너무 좋았다. 그동안 명절이면 혼자 술을 더 마셨는데, 이번엔 동생들과 연휴를 같이 보냈다. 그는 “제가 큰아들인데 차례상도 못 차렸다”며 “제수씨한테 봉투에 넣어 간 30만원을 주었는데 굉장히 기분 뿌듯했다”고 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택시 운전하던 경험을 살려 식당 대리주차 일을 하고 있어서다.

“지금 당장은 한 달 일해 월급 받는 그런 일은 아직 못할 것 같아요. 일자리도 많지 않고요. 그래서 아르바이트 같은 것을 구해서 짬짬이 일 나가 조금씩이라도 돈을 벌어오는 거, 그리고 그냥 지금 생활을 잘 유지하면서 흐트러지지 않고 살려고 해요.”

그는 지원주택 입주 뒤 재활 시설에서 담당 사회복지사와 같이 다니던 병원 진료를 혼자 받으러 간다. 병원 갈 때는 깨끗하게 씻고 차려입고 향수도 한 번 쫙 뿌리고 간다. 집에서 사니까 사람처럼 제대로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다.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커뮤니티’ 생활

김 씨는 최근 지원주택 입주민들과 함께 춘천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여행’하는 기분을 느꼈다. 그는 “시설에선 아무래도 많은 인원이 우르르 가니까 자유로운 느낌이 덜했다”며 “시설에서 목적지를 정하고 가는 것과 달리 우리가 의견 내서 가자고 정한 것이라 너무 좋았다”고 했다.

김 씨가 사는 지원주택에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냉장고, 세탁기, 건조기, 에어컨, TV가 마련돼 있어 가전제품을 구비하지 못한 입주민들이 공용으로 쓸 수 있다. 이곳에서 다 같이 밥을 해 먹기도 한다. 밥과 반찬을 준비하고, 설거지를 나눠서 한다. 물론 완벽하게 역할 분담이 안 될 때도 많다.

▲ 김용한 씨가 생활하는 지원주택에는 ‘커뮤니티 공간’이 있다. 냉장고나 세탁기 등 가전제품을 마련하지 못한 입주민들은 이곳에서 공용으로 쓸 수 있다. ⓒ 최유진

하지만 이곳에 모이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김 씨도 사실 ‘혼자’서 시간을 보내왔다. 이곳 사람들과 어울릴 생각을 안 했다. ‘동굴’ 같은 방 안에 혼자 있으면 술도 더 마시게 되고 사고가 난다는 걸 안다. 그는 “잘해 먹진 못하더라도 여기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오늘은 내가 찌개 끓여서 대접하면 다른 날은 저쪽 방에서 또 그렇게 한다”며 “집에서 직접 요리해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공간에는 사회복지사들이 종종 들린다. 서울시립 비전트레이닝센터 윤치상 사회복지사는 “지원주택에서 입주민들이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걸 공론화해주는 것이 저희 역할”이라며 “계획한 일이 실제로 이뤄질 수 있도록 옆에서 지원해 드린다”고 말했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을 계획하고 실천해 보는 경험이 쌓이면 스스로 실행하는 능력이 살아나고 자립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윤 씨는 “이런 것이 이뤄져 ‘지원주택’에 사회복지사들이 오지 않아도 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노숙인이라고 노년의 나이 많은 사람만 입주해 있는 것이 아니다. 김 씨 이웃에는 50대 초반 ‘신혼부부’가 입주해 산다. 이곳에 들어온 뒤 결혼한 이들인데 열심히 살려고 하는 모습이 다른 입주자들한테 꿈과 희망을 주고 있다.

▲ 김용한 씨가 사는 지원주택 5층 이웃집 모습. 이 집 입주민은 노숙 생활을 벗어나 이곳에 들어온 뒤 결혼까지 했다. 월 11만원 주거비를 내고 ‘신혼부부’가 사는 방이다. ⓒ 최유진

서울시만 알코올중독 정신질환 노숙인 지원주택 운영

어쩔 수 없는 사정으로 집에서 나와 거리를 떠돌며 살아야 하는 노숙인들. 그들을 다시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려면 우선 거처할 집을 마련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란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서울시가 시행 중인 지원주택은 김 씨가 사는 알코올중독 등 보호가 필요한 대상자를 위한 시설 1개 동(20호)과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정신질환 여성 노숙인을 위한 시설 한 곳(18호) 등 두 곳이 전부다. 서울시는 올해 지원주택 노숙인용 100호, 어르신용 40호, 정신질환자용 16호 등 216호의 지원주택을 증설하는 등 2022년까지 816호의 지원주택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워 추진 중이다.

하지만 다른 지방자치단체나 중앙정부 차원의 노숙인 장기근본 대책은 아직 없다. 서울시 지원주택도 지금은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자 보호용으로 한정돼 있어 일반 노숙인들을 위한 장기 지원주택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캐나다 에드먼턴시 ‘노숙의 종결’ 프로그램

캐나다 에드먼턴 시는 2009년부터 ‘노숙의 종결’(End Homelessness)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노숙인에게 주거와 생활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2008년 토론토와 캘거리에서 시작한 ‘하우징 퍼스트’(Housing First)라는 실험적 정책이 성공한 결과다. 이미 미국 미니애폴리스와 뉴욕 등에서도 관련 정책을 시행해 성공을 거뒀다.

에드먼턴시는 이런 주거 우선 정책으로 2008~2016년 노숙인 수를 61% 줄였다. 또 12개월 내 노숙 생활 재복귀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졌다. 노숙인 문제에 관해 단기해결책이 아닌 주택공급 등 장기대책을 꾸준히 추진한 결과다. 2017년까지 무료 주거지 1,263채를 공급했다. 지난해 시의회 발표에 따르면, 4년간 2,500채 저렴한 주택을 건설할 계획이다. 또 916채 영구임대주택을 빈곤층에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시는 노숙인 분포지도 오픈 데이터 활용과 대중교통 이용권 지급 등 여러 각도에서 접근했다.

최근 사회복지의 정책 이슈는 ‘커뮤니티 케어’다. 돌봄(care)이 필요한 계층이 자택이나 그룹홈 등에 거주하면서 개인의 욕구에 맞는 서비스와 급여를 받고, 지역사회와 함께 어울려 살아가도록 하는 사회서비스 체계를 뜻한다. 커뮤니티 케어 시스템을 처음 도입하고 보편화한 곳은 영국이다. 탈시설화 논의가 시작되며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영국은 전후 복지국가를 확립하는 ‘시설 케어’(Residential Care)를 중심으로 돌봄 서비스를 확대했다. 그러나 1950~60년대에 시설 내 열악한 환경과 학대 문제가 보고됐다. 이에 대규모 시설에 관한 문제가 제기됐고, 탈시설의 필요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1980년대에 28개 지역에서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등을 대상으로 3년간 시범사업을 실시해 커뮤니티 케어의 다양한 모델을 마련했다. 이후 1990년 국민보건서비스와 ‘커뮤니티케어법(NHSCCA)’을 제정해 제도화했다. 지역사회 내 사회서비스 전달체계와 지방정부의 역할이 명확히 법적으로 규정됐다.

보건복지부는 8개 지자체를 선정해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선도사업은 지난 6월 시작돼 2년간 진행된다. 노인, 장애인, 정신질환자, 노숙인 4개 분야로 나눠, 돌봄이 필요한 국민이 살던 곳에서 본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통합적으로 누릴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이다. 2026년 지역사회 통합돌봄을 보편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모델을 발굴·검증하는 과정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최종 발표한 선도사업 지자체 신청 현황을 보면, 노숙인을 돌보겠다는 지자체는 전체 29곳 중 단 1곳도 없었다.

▲ 지난 3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지역사회 통합돌봄 선도사업은 당초 4개 분야였으나 29개 지자체 중 1개도 신청이 없어 ‘노숙인 분야’가 사라졌다. ⓒ 보건복지부

종교계노숙인지원민관협력네트워크 강민수 간사는 “탈노숙 지원주택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몇몇 신문사에 전화하고 관련 자료를 보냈지만 아무런 답이 없었다”며 “사회가 그다지 주목하지 않지만 분명 집 하나로 인생이 달라지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미 ‘2017년 사회보장제도 평가결과’에서 “주거지원사업은 시설보호를 넘어선 독립적 개체로서 주거를 공급받아 노숙을 탈피하고 독립을 이룰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말만 무성할 뿐 노숙인 주거지원사업은 구체화한 것이 없다. 더 이상 말로만 할 게 아니라, 서울시 지원주택 같은 실질적인 정책을 시행해 ‘홈리스가 홈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 주어야 할 때다.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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