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스쿨 인문교양특강] 월드컵과 미디어의 사회학 / 강재호 교수

리버풀FC에는 왜 ‘광팬’이 많을까

"저는 리버풀FC 광팬입니다. 여러분은 어느 팀을 좋아하나요? 축구가 아니면 어떤 스포츠를 좋아하십니까?"
 

▲ 리버풀FC를 응원하는 관중. ⓒ 리버풀FC 공식 홈페이지

1982년, 초등학생이던 그의 집에 컬러TV가 생겼다. 컬러 화면으로 축구를 본 첫 경기가 리버풀과 아스날의 경기였다. 그라운드가 녹색의 잔디라는 것, 리버풀의 유니폼이 빨간색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결과는 리버풀의 승리. 그때부터 리버풀 팬이 되었다. 그는 흑백이 아닌 '컬러 화면'의 강렬함을 아직도 기억한다.
 
리버풀FC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레 비틀즈의 도시 리버풀과 영국의 대중문화로 이어졌다. 당시 리버풀은 훌리건의 본고장이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축구팬들이 열정적이었다. 축구장으로 쏟아져 나온 노동자들은 손에 술잔을 들고 한 손은 하늘로 치켜든 채 한 목소리로 응원했다. 빼곡하게 경기장 주변을 메운 관중을 보며 그는 생각했다. '저 감정은 어디서 오는 걸까? 리버풀 팬이라는 이유로 몸을 부딪치고, 얼굴을 맞대고, 노래하게 하는 게 무엇일까?' 이런 의문들이 뉴욕의 뉴 스쿨(New School)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강재호 교수로 하여금 '미디어 스펙터클'을 연구하게 했다.
 
대중문화가 대중을 비판적 집단으로 만들 수도 
 
그는 미디어가 사회에 끼치는 영향을 판단하는 두 가지 견해에 대해 얘기했다. 첫 번째는 매스미디어가 대중의 사회비판력을 약화하고, 지배질서에 순응하게 만드는 도구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문화도 산업이며 그 안의 콘텐츠는 결국 상품에 불과하다는 관점이다. 반대로 대중문화는 대중을 비판적 집단으로 만들고 주체로 만드는 해방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견해도 있다. 대중은 미디어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고, 이것이 참여의 바탕이 된다는 것이다.
 
양극단에 서있는 두 견해에도 공통점이 있다. 미디어의 영향을 따지기 전에 미디어 자체가 이미 흥미와 정보, 그리고 정치를 복합적으로 포함하며 이것이 '스펙터클'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미디어를 통해 수많은 뉴스와 스포츠 경기 등을 접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정보를 가지고 있고, 흥미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정치적이죠. 현대 사회는 미디어를 통해 대중들의 정체성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복합적 요소들로 구성된 미디어가 하나의 '스펙터클'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 ⓒ 이지현

스펙터클이 작용하는 사회란 결국 실제보다 이미지가 중시되는 사회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미디어다. 미디어는 이미지를 '광폭'시켜 대중에게 전달한다. 이 때문에 대중은 실제와 점점 멀어지고, 다른 문제들에 집중하게 된다.
 
"스펙터클 사회는 미디어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미디어라는 매개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죠.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미디어 환경 속에 있을까요? '신문을 읽는다'는 표현이 언제까지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나요?"
 
그는 신문이라는 개념도 변하고 있다고 말했다. 내용보다는 내용을 접하는 방식과 기술, 즉 환경이 중시되는 사회다. 영화도 필름이란 매체를 통해 접하는 시대는 지나갔다. 컴퓨터로 볼 것인지 TV나 휴대전화로 볼 것인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이는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미디어 환경의 문제다.
 

▲ 강재호 뉴스쿨 대학 교수가 미디어 스펙터클로서 월드컵을 설명하고 있다. ⓒ 서동일

빠르게 발달하는 미디어 환경은 집단적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이를테면 2010년 남아공월드컵의 경우 전세계 360억 명이 같은 화면을 보았다. 경기장에 설치된 카메라는 총 24대였다. 24대에 찍힌 영상을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경험한다. 스펙터클의 폭이 지구 전체를 감쌀 만큼 커진 것이다. 강재호 교수가 월드컵, 올림픽, 세계박람회 등 글로벌 메가 이벤트를 엔터테인먼트로 보아야 할지, 이데올로기로 보아야 할지, 아니면 한 국가의 공적인 영역으로 보아야 할지 묻는 이유다. 
 
미디어 스펙터클이 시청자를 매혹시키는 방식
 
강 교수는 글로벌 메가 이벤트, 곧 월드컵과 같은 미디어 스펙터클이 전세계 시청자들을 어떻게 매혹시키는지를 ‘경쟁(Contest), 정복(Conquest), 대관식(Coronation)’ 이 세 가지 원리로 설명했다. 
 

▲ 강의 중인 강재호 교수. ⓒ 서동일
“먼저 ‘경쟁’은 미국 대선후보 토론처럼 어떤 주체들이 경쟁하는 현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정복’은 경쟁이 끝나고 승리자가 탄생하는 장면이고, ‘대관식’은 승리자가 극적이고 웅장한 방법으로 승리를 인정받고 축하받는 장면을 의미합니다.”
 
그는 미디어 스펙터클을 볼 때 이러한 접근 방식이 필요한 이유를 설명했다. 
 
“한 국가 또는 전세계 시청자들이 통일된 생중계 영상을 통해 어떻게 집합적으로 미디어스펙터클을 경험하고 그를 통해 어떻게 하나의 정체성을 갖게 되느냐는 질문 때문에 연구를 하는 거죠. 과연 월드컵을 즐기는 게 축구를 좋아해서 일까요? 집행부에 의해 조직된 행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면서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지는 않을까요? 아니면 새로운 국가적 정체성을 형성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어서 강 교수는 ‘스펙터클’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 특히 텔레비전이 가져오는 영향들을 축구와 관련지어 설명했다.
 
“예전에 축구를 본다는 것은 직접 경기장에 가서 노래하고 춤추고 마시는 집합적 문화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특별한 공적 장소에 가지 않아도 집에서 텔레비전을 봐도 된다는 거죠.”
 
TV가 문화의 동질화 초래
 
이처럼 직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아도 텔레비전을 통해 어떤 미디어 이벤트들을 경험할 수 있게 되는 특징을 탈영역화라 한다. 텔레비전이 주는 또 하나의 영향은 동질화다. 
 
“유럽축구연맹(UEFA) 대회가 유럽에서 열리지만 20억 명 이상 아시아인이 새벽에 축구를 시청합니다. 텔레비전을 통해 같은 경험을 함으로써 어떤 동일한 형태의 문화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죠.” 
 
또한 지역적인 요소가 세계화와 결합하면 새롭지만 강력한 변화를 가져오기도 한다. 지역 축구가 세계화하면서 비싼 입장권을 사는 대신 집에서 축구 경기를 즐기는 축구의 탈영역화 또한 이런 변화의 한 부분이다. 축구의 상업화 또한 텔레비전이 가져온 것이다. 전세계 대부분 사람들이 텔레비전을 통해 축구를 즐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텔레비전 중계료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남아공 월드컵은 총 1조3000억 원 매출 중 2000억 원이 국제축구연맹(FIFA)의 이득이고, 그 중 80%가 중계료입니다.”
 
그는 2002년 한일월드컵이라는 집합적 경험을 언급하며 질문을 던졌다. 
 
▲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붉은악마. ⓒ 게티이미지닷컴
“우리는 축구라는 하나의 미디어 스펙터클을 만나면서 한국에서 나타난 현상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또 그것이 특별한 형태로 드러났을 때 어떤 주체들이 형성될까요?”

 
강 교수는 미디어 스펙터클을 바라보는 여러 접근 방식들을 통해 우리 사회에 일어나는 촛불시위 등 대규모 집회에 대한 스펙터클의 영향과 정치적 관계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의를 마무리하며 이론과 실천의 상호작용도 강조했다. 
 
“새로운 개념과 분석적 방법론들을 만들어 지속적으로 적용과 반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새로운 개념들이 효과가 있다면 축구의 역사나 한국 스포츠 이벤트의 역사를 다른 형식으로 의미 있게 보면서 그것이 정치적인 공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도 체계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다가올 미래를 오래된 시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사회교양특강>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로 구성되며, 매 학기 번갈아 개설되고 서울 강의실에서 일반에 공개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학기 <인문교양특강I>은 강재호, 이택광, 심보선, 이현우, 정희진, 오동진, 고미숙 선생님이 맡는데,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의를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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