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2040년 ‘스마트폰 소통’

▲ 양안선 PD

나는 불가촉천민이었네. 스마트폰이 없어 사회 접촉을 할 수 없는 자 말일세.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나였지. 허허 너무 놀라는군. 아직도 그런 사람이 있냐고 말하지 말게나. 우리 부모는 가난했지. 어느 정도였냐 하면 나무껍질을 뜯어다 먹어야 할 형편이었으니까. 그 흔한 스마트폰도 사주지 못했지. 지문 인증할 스마트폰이 없으니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다네. 기록에 나는 없는 사람이었지.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뒷골목을 청소하는 일뿐이었네.

운명의 시간은 그날이었어.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폭우가 쏟아졌지. 그런 날이면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지만,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불가촉천민에게 쉰다는 건 사치였네. 우비를 입고 있어도 속옷까지 푹 젖어버리는 비를 뚫고 거리에 나갔지. 거리에 사람은 보이지 않았네. 배달 앱으로 주문을 받았는지 거리를 이동하는 드론만 가득했어.

거리 구석에 있는 쓰레기장을 정리할 때였지. 쓰레기 무더기 옆에 한 남자가 쓰러져있었어. 가슴을 움켜쥐고 쓰러진 남자는 손에 스마트폰을 꼭 쥔 채였어. 코 밑으로 조심스레 손가락을 갖다 대고 기다렸지. 숨결이 느껴지지 않더군. 심장마비로 죽은 것 같았어. 그때 손에 있던 남자의 스마트폰은 꺼져 있었거든. 배터리 방전이었지. 스마트폰만 됐어도 응급신호가 보내져서 살았을 텐데… 아니, 길을 지나가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어서 빨리 발견만 했어도 그는 살았을 텐데…

나는 남자 손에 들려 있던 스마트폰을 낚아채고 달렸네. 불가촉천민의 삶을 끝내고 싶었거든. 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동굴 같은 삶에 한 줄기 빛이 비쳤다고 생각했어. 청소일로 한 푼, 두 푼 모은 내 전 재산으로 충전기를 샀어. 스마트폰을 켜니 그 남자의 신상정보가 다 들어있었지. 한 대학 법학과 학생이야. 스마트폰 일기를 살펴봤어. 부모는 죽었고 고아로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지. 저장된 사진첩에서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봤어. 어딘지 나와 비슷하게 생긴 그의 사진을 보자 번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어. ‘그로 살아야겠다!’

첫날을 잊지 못하네. 하루아침에 법대생이 되어 대학교로 나간 첫날, 혹시 누가 알아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했거든. 놀랍게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어. 그의 스마트폰이 내 손에 있었기 때문에 난 그가 될 수 있었지. 출석도 스마트폰 인증만 하면 되고, 사람들은 대화도 스마트폰 문자를 통해서만 했어. 누구와도 만나지 않았지만, 대학 생활을 마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네. 스마트폰 덕분이었지. 그 뒤는 자네도 알고 있는 내용이야. 인권변호사가 되고, 나 같은 사람들을 구제해주는 일을 하다 보니 정치권의 러브콜을 받았지. 이 도시의 시장까지 될 수 있었던 건 자네 덕분이야. 정치판 새내기인 나를 자네 같은 유능한 보좌관이 옆에서 도와줬으니 말일세.

▲ 스마트폰으로만 소통하는 2040년의 비대면 사회. ⓒ Pixabay

임종을 눈앞에 두고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있네. 난 이 도시의 불가촉천민을 위해 일했어. 나 같이 사회에서 지워지는 이들이 없도록 스마트폰을 무상으로 보급하는 복지 정책 기억하는가? 그런데 내가 어리석었어. 내 상상력은 겨우 현상에 머물렀던 거야. 우리 도시의 계급성은 여전하네. 계급을 무너뜨리지 못하고 그 안에서 몸부림친 거지. 그래서 내 이야기를 하는 걸세. 내가 불가촉천민이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알려 주게나. 사람은 스마트폰 밖에 있네. 이렇게 채팅으로만 이야기하는 걸 멈추고, 서로 얼굴을 마주 보면서 만나야 해. 서로 다른 계급도 같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게 말일세.

[A 님이 퇴장하셨습니다]

A 시장이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도시는 슬픔에 잠겼다. 얼마 뒤 그의 보좌관이던 AI가 A에 관한 책을 냈다. 그가 불가촉천민이라는 이야기는 책에 없었다. 사회 구조를 유지하라는 명령어를 이행한 AI의 선택이었다. 이제 이 세상에 A의 진정한 과거를 아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정말로 그는 세상에서 지워졌다.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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