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범상치 않은 치유 선사하는 <평범한 날들>

 ▲ 9월 29일에 개봉하는 독립영화 <평범한 날들> 포스터.
권태의 끝에 서 있는 한 사람과 개인의 삶에서 극적인 비극에 몰린 사람들의 이야기는 결코 유쾌하진 않다. 허나 분명 이런 이야기가 우리네 삶에서 끊임없이 생산되고 공유되는 이유는 발화와 듣기의 과정에 생기는 치유의 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여기 각기 다른 세 이야기가 있다. 올가을 우울함에 내면으로 깊이 침잠해 있는 이들이 반가워할 법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인 영화 <평범한 날들>이 16일 오후 서울 왕십리 CGV에서 공개됐다.

감독의 표현을 빌리자면 <평범한 날들>은 말 그대로 '평범하고 그런 영화'다. 평범하단 건 우리 주변에서 분명히 있을 법한 이야기고 그런 영화라는 건 어찌 보면 참 이기적인 표현이지만 받아들이는 이에게 전적으로 해석을 맡길만한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반갑다 송새벽, 연기력 또다시 입증한 한예리 그리고 신예의 발견

신기한 조합이었다. 상업영화로 자리매김을 분명히 해오고 있던 송새벽, 독립영화에서 뛰어난 연기력으로 조금씩 지평을 넓히고 있는 한예리 그리고 2007년 <청계천의 개>로 데뷔 후 급성장세인 이주승. 이 세 배우가 각기 독립된 세 가지의 이야기를 힘 있게 이끌어간다.

▲ "영화를 찍은지 시간 꽤 지난 상태서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다"며 소감을 전한 송새벽은 작품에 대해 "평범한 날들인데 우리네 일상이 평범하지 않는 날들 많지 않나"면서 "웃는게 웃은 게 아닌 그런 평범하지 않은 날들 표현하려고 했디"고 나름의 의도를 언급했다. ⓒ 이난필름 태그

물론 시기상으로 촬영은 그 이전이었지만 소속사와 분쟁으로 두문불출이었던 송새벽은 이번 영화를 통해 공식 활동을 알리게 됐다. "뭔가가 굉장히 저랑 닮아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숙제들과 닮아있어 하고 싶었어요"라고 말하는 송새벽의 모습은 진중했다. 송새벽이 출연한 이야기는 'Between'이란 제목이다. 무능한 보험설계사 '한철'로 분한 송새벽은 그간 보여주었던 가볍고 경쾌한 모습이 아닌, 철저히 우울하고 가라앉은 모습을 연기해냈다.

<그림자>로 데뷔해 <파주>를 통해 존재감을 알리고 그동안 단편과 장편 독립영화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꾸준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한예리. 그가 이끈 작품은 'Among'이다. 5년간 사귄 남자친구에게 일방적인 이별 통보를 받고 여기에 교통사고까지 당해 귀향하게 된 '효리' 역을 맡았다. "매일 어떤 상실을 겪는 사람에게 필요한 영화가 아닌가 생각한다"고 나름의 감상 포인트를 전한 한예리는 "상처를 갖고 있는 것보단 밖으로 보내는 게 나은 방향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영화를 보고 발걸음이 가벼웠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전했다.

<평범한 날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또 다른 수확은 이주승이란 배우의 발견이다. 허진호 감독의 연극 <낮잠>에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던 이주승은 이번 영화를 통해 원톱으로서의 가능성까지 입증한듯 보인다. 현재는 입대로 잠시 활동을 중단한 상태지만 성유리와 함께 한 영화 <누나>가 10월에 개봉예정이라 올해 말까지 꾸준히 작품을 통해 만날 수 있다. 'Distance'라는 소제목으로 이주승은 고아가 되어버린 바리스타 '수혁'의 역할을 맡았다.

이 영화, 호연이 빛나면서도 뭔가 수상하다 

▲ "고등학생을 때리는 장면이 많이 어려웠다"고 운을 뗀 한예리는 "분노가 한꺼번에 터진 적이 없었다"고 말해 해당 장면이 가장 연기하기 힘들었음을 토로했다. 이에 대한 감독의 해결책은? 이난 감독은 한예리에게 칼을 쥐어주며 "이런 느낌이다"라고 했다고. ⓒ 이난필름

영화는 전형적인 옴니버스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군데군데 상징적인 이미지를 넣는 예술영화의 면모를 취했다. 유난히도 한국 옴니버스 영화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선례를 떠올려 본다면 신선함에서 점수를 줄 법하다. 각 이야기에서 주인공으로 분한 배우들의 개성도 뚜렷하고 힘도 있어서 이야기는 산만해지지 않고 밀도 있게 흘러간다.

30대, 20대, 10대로 젊어지는 각 이야기 주인공의 면모를 통해 각각 말의 의미와 몸과 마음의 상관관계를 전하는 시도가 호기롭다. 아내를 잃은 후 자꾸만 말이 꼬이고 무의미한 말을 내뱉다 자살을 시도하는 한철, 애인과 결별, 교통사고로 마음과 몸의 상처를 입은 효리, 막노동을 했던 할아버지의 죽음이 자신이 어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수혁. 세 인물 모두 상실을 공통분모로 하면서 저마다 무언가를 상실한 현실에 반응한다. 영화는 이 반응들을 놓치지 않고 예리하게 담아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영화의 호흡 조절이 다소 거칠다는 점이다. 내면의 갈등이든 외부의 충격이든 세 인물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괴로워한다. 일종의 정화 의식일 수도 있는데 문제는 이들이 겪는 상황이 각기 다름에도 그것을 조명하는 방식이 획일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세 인물은 모두 '결국 울음을 터뜨린다'로 끝나는데 기계적인 통일감이 아닌 세 이야기마다 관객들이 색다르게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변주'가 필요하지 않았나 본다.

이런 이유로 배우들의 감정선을 쫓기까지가 쉽지 않을 수 있다. '사연 있는' 관객이 아닌 평범한 일상에서 별 감흥이 없는, 정말로 평범해 보이는 일반인들에겐 어렵게 느껴질 법 하다.

독립된 이야기지만 세 이야기를 관통하는 시간과 사물, 그리고 인물들을 발견하는 재미는 신선하다. 나뭇가지, ET 손목시계, 그리고 넘어가는 달력의 숫자 등 사물들이 영화에서 메시지를 전하는 상징물로 작용하니 머리 안 아플 자신이 있는 관객들은 내심 생각해 보는 것도 영화를 즐기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이 영화에 출연했던 송새벽과 한예리의 행보도 주목하자. 송새벽은 올 11월 연극 <해무>를 통해 관객들과 소통을 이어간다. 한예리는 하지원 주연의 탁구 영화 <코리아>에 출연해 첫 상업영화 데뷔식을 치를 예정이다.

영화 <평범한 날들>은 오는 9월 29일 개봉이다. 독립영화인만큼 개봉관 수는 그리 많지 않다. 인디플러스, 상상마당 시네마, KU시네마테크의 예술 영화 상영관과 함께 CGV 대학로, 상암, 압구정, 인천, 동수원, 서면에서 만나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오마이스타>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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