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한국 ‘오컬트’의 현주소, <사자>

김주환 감독의 영화 <사자>가 지난 7월 31일 대중을 만났다. 개봉 53일 만에 누적 관객 1,249만을 돌파한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과 디즈니 실사 영화로는 처음 1,000만 관객을 돌파한 <알라딘>이 극장가에 그대로 걸려있는 상황이라 경쟁이 불가피하다. 치열한 경쟁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화를 개봉한 이유가 있다. 국민 배우 안성기부터 흥행 보증수표 박서준, 대세 배우로 자리 잡은 우도환의 첫 영화라는 점도 있지만, 이 영화가 우리에게 생소한 ‘오컬트’ 장르라는 점이다. 폭염에 지친 관객들은 공포물을 찾는다.

▲ 김주환 감독의 영화 <사자>가 7월 31일 개봉했다. ⓒ 키이스트

<사자>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으로 대중에게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는 ‘오컬트’ 영화로 분류된다. 오컬트(occult)는 사전적으로 ‘신비스러운, 불가해한, 초자연적인, 마술적인’이라는 뜻이다. 초자연적 현상이나 악령, 악마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일종의 심령 영화로 공포영화의 하위 분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 영화 <사자>는 <검은 사제들> <사바하> <곡성> 등과 같은 ‘오컬트’ 영화로 분류된다. ⓒ 키이스트

‘초현실주의 오컬트’ 표방 영화

“영화는 살아 움직이는 회화여야 한다.”

1919년 로베르트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세트 디자이너 헤르만 바름이 한 말이다. 공포영화의 원조라 불리는 이 영화는 다양한 선과 색채로 새로운 세상을 구현한다. 기우뚱하게 기울어진 건물, 찌그러진 사각형 문, 지그재그로 뻗은 길 등 대중에게 낯선 장면들이 대거 등장한다. 몽유병 환자가 등장할 때마다 벽에 그림자가 생기게 하거나, 창문 사이로 들어온 빛과 반대편 어둠을 대비해 그를 공포스러우면서도 초현실적인 힘을 지닌 존재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 영화는 몽유병 환자, 흡혈귀 등 비현실적이고 낯선 존재들이 등장하는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대표작이다.

영화 <사자>를 보는 동안 한 번이라도 오싹한 기분이나 낯선 느낌을 받았다면, 그것은 이 영화가 위에 말한 ‘초현실주의’ 기법을 따랐기 때문이다. 영화 배경으로 사용된 공간을 보자. 검은 주교 ‘지신’이 어리거나 약한 영혼을 바치고 ‘부마자’를 고통스럽게 위협하는 공간은 ‘지하 제단’이다. 이 공간은 클럽 ‘바빌론’이라는 건물에 있다.

▲ ‘지하 제단’이 있는 클럽 ‘바빌론’ 건물은 대표적인 상상 속 공간이다. ⓒ 키이스트

수많은 고대 도시 중 지금까지 전세계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영광과 굴욕의 양극단을 맛보게 하는 도시가 ‘바빌론’이다. 성경에서 하늘을 향해 끝없이 올라가는 건축물 ‘바벨탑’을 만들어 신의 권위에 도전하고 실패하는 공간이다. 이 모티프는 영화에 그대로 녹아있다. 천장 높이 6m가 넘는 공간에 8톤의 물을 채운 우물과 나무뿌리 등을 활용해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한 세트장을 만들었다. 푸른빛 속에 보이는 제사상에는 요동치는 심장이 놓여 있고, 우물과 대화하는 ‘지신’의 얼굴은 그림자에 드리워진 채 동공만 붉은색으로 바뀐다.

▲ 악의 화신 ‘지신’이 등장하는 장면은 빛과 그림자를 통해 악의 이미지가 명확히 구축된다. ⓒ 키이스트

안타고니스트 ‘지신’이 등장하는 장면에서는 그림자를 통해 악의 이미지가 명확히 구축된다. 어둠 속에 그가 등장할 때 푸른색 조명에 천정이나 벽에 벌레처럼 보이는 악의 그림자가 등장한다. 신약성서에서 사탄의 별명으로 사용된 ‘바알세불’이 파리 형상을 띠고 있는데 그것과 닮았다. 이 그림자는 악의 모습을 초현실적으로 표현해 관객에게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선악의 대립과 ‘악’의 유혹에 걸려든 존재들

‘오컬트’ 영화를 이해하려면 공포영화에 관한 설명이 필요하다. 신화나 전설, 민담 등에 기초한 공포영화는 소수 열광 팬들만 즐기는 주변 장르였다. 1919년 비네 감독의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 이후, 공포영화는 당대 사회에 대한 대중의 집단 심리를 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를 비판적으로 읽어낼 필요성을 발견하면서 정신분석학, 사회심리학, 페미니즘 등의 방법론을 동원한 공포영화 비평이 등장했다. <칼리가리 박사의 밀실>은 1차세계대전 패배로 독일 국민이 겪게 된 혼란과 불안을 형상화하고 있다.

공포영화에서는 보통 지배적 힘에 억압당해온 존재들이 사탄의 권능을 빌어 초월적 힘을 가진 존재로 변신한다. 억압은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법, 관습, 도덕 등의 ‘기본 억압(Basis repression)’과 특정 문화에만 국한되거나 특정 체제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기인한 ‘과잉 억압(Surplus repression)’으로 나누어진다. 이런 가운데 억눌린 개인이나 집단은 자신을 억압하던 종교, 가족제도, 법과 규율 등 기존 체계를 전복하지 못하는 대신, 대중들이 공포와 죄책감, 트라우마를 느끼는 존재로 환원되어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 영화 <사자>는 다른 공포영화와 마찬가지로 선과 악의 대립구조가 명확하다. 악으로 대표되는 뱀, 벌거벗은 인간, 여성, 아이 등은 기득권에서 배제된 채 억압과 규제를 받은 ‘타자’로서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 키이스트

영화 <사자>에서 선과 악의 대립구조는 명확하다. 예수의 십자가를 통해 뭉친 주인공 ‘용후’와 ‘안 신부’는 선이고, 뱀의 형상을 띤 검은 주교 ‘지신’은 악이다. 악을 대표하는 ‘지신’의 상징으로 나오는 뱀은 성경에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 가장 간교한 동물’로 등장한다. 에덴동산에서 하느님이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하와가 먹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뱀은 신으로부터 “네가 이런 일을 저질렀으니 너는 모든 집짐승과 들짐승 가운데에서 저주를 받아 네가 사는 동안 줄곧 배로 기어 다니며 먼지를 먹으리라”는 저주를 받는다. 뱀으로서는 순간의 잘못으로 수천 년 ‘신의 저주’라는 억압을 받게 된 것이다.

악을 대표하는 ‘지신’의 유혹을 받는 인물들은 들짐승 또는 원주민처럼 보이는 벌거벗은 인간, 여성, 아이 세 종류다. 세 부류는 상대적으로 기득권에서 배제된 채 억압과 규제를 받는 사회적 약자를 상징한다. 이들이 초월적인 사탄, 즉 ‘지신’과 힘을 합쳐 나타나면 문명, 남성, 어른 등은 공포를 느끼게 된다.

‘공포’보다 ‘유치함’을 느꼈다면

영화에서는 인물 간의 선악 대립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공포를 느끼게 하는 장면으로 관객을 몰아넣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많은 의문이 남는다. 이 장르가 가진 특성이 무엇이며, 주인공이 왜 이토록 악과 치열하게 싸우는지 이해가 잘 안 되기 때문이다. 관객들은 영화 후기에서 공포보다 ‘유치함’을 느꼈다는 평을 남겼다. ‘오컬트’보다 ‘판타지’ 또는 ‘액션 히어로’ 장르로 이 영화를 소비한 것처럼 보인다.

영화를 만든 김주환 감독도 <스포티비 뉴스>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장르가 ‘오컬트’보다 ‘판타지’에 가깝다고 했다. 그는 “악의 세력이 점령한 어둠 세계를 구원하는 이야기가 담긴 영화 <콘스탄틴>을 만든 프란시스 로렌스 감독도 자신의 영화를 ‘오컬트’가 아닌 ‘슈퍼내추럴 스릴러’라고 표현했다"며, “장르가 갖는 역사, 관객의 최근 경험에 따라 규정이 다른 것 같다"고 했다.

▲ 영화 <사자>를 만든 김주환 감독은 이번 작품의 장르가 ‘오컬트’보다 ‘판타지’에 가깝다고 했다. ⓒ 키이스트

보통 공포영화는 심리적이고 기괴한 요소를 더 삽입한다는 이유로 ‘사실주의’보다 ‘표현주의’로 분류한다. 공포영화를 ‘판타지’ 장르로 구분하는 이도 있다. 최근 <블레어 위치> <파라노말 액티비티> <곤지암> 등은 리얼리즘을 살린 ‘페이크 다큐멘터리 공포영화’인데 다른 방식으로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사자>는 리얼리즘보다 초현실주의 기법을 주축으로 하고 있어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표현주의’에 가까운 영화다.

관객들은 왜 이 영화에서 ‘공포’보다 ‘유치함’을 느꼈을까? 이유는 하나다. 악으로 야기된 공포를 짓누르는 선의 힘이 너무나 강력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용후’는 ‘신을 믿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손자국이 선명한 자신의 손에서 나오는 불로 모든 악을 물리친다. 악마인 검은 주교 ‘지신’도 ‘용후’의 불꽃 펀치에 무릎을 꿇는다.

선과 악의 아슬아슬한 대결에서 비롯되는 긴장감을 무산시키는 스토리텔링은 관객에게 ‘어이없음’을 전달한다. 공포영화는 이성적으로 따지기보다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으로 관객이 빠져들게 해야 한다. 내 삶과 직접적, 사실적으로 관련된 어떤 대상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라는 공포스러운 체험을 관객들은 원한다. 영화에서는 강력한 주인공 ‘용후’가 나타나기만 하면 악마들은 별다른 저항도 못 하고 처참하게 쓰러진다. 악마들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관객은 충분히 예측 가능한 전개로 ‘지루함’을 느끼게 된다. 무더운 여름을 씻어줄 ‘오컬트’ 영화를 기대했던 관객들은 동심으로 돌아가야 이해할 수 있는 ‘뜨거운 주먹’을 선물 받고 허탈해 한다.

<검은 사제들> <곡성> 등으로 ‘오컬트’ 영화에 눈을 뜬 한국 영화계는 <사자> 후속편으로 <사제>를 예고했다. 후속편에서는 ‘유치함’을 넘어 현실에서 이해할 수 없는 오싹한 상상의 영역을 보여줄 수 있을까? 판타지의 표현주의 장치도 그래야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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