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 년 걸려 만든 유로존, 그리스 처리에 운명 달려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조용래의 생생토크

박경철(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이번 주엔 그리스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이 다시 한 번 요동을 쳤습니다. 메르켈 독일총리와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이 긴급회담을 통해서 ‘그리스가 유로존(유럽공동통화지역)에서 이탈할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그렇다고 뚜렷한 대안도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위상이 어떻게 달라질 지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는데요, 9월 셋째 주 국내외 경제뉴스 정리해보겠습니다. 국민일보 조용래 편집위원,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제정임 교수 두 분이십니다. 이번 주에 어떤 뉴스들 꼽으셨습니까?

조용래(국민일보 논설위원): 우선 프랑스의 2위, 3위 은행이 신용등급 강등을 받았지 않습니까? 물론 배경은 그리스 문제라든가 유로존 전체 문제와 관련되는 것이고요. 다음으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바뀐다는 얘기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로는 마이크로소프트(MS)사가 ‘윈도8’을 공개했습니다. 지금까지 애플사가 모바일을 ‘PC(개인용컴퓨터)화’했다면 PC의 선두주자였던 MS사는 이번에 PC의 ‘모바일화’에 한 발 다가섰다는 뉴스라고 하겠습니다. 글로벌 정보기술(IT)산업의 판도를 새로 바꿀 수 있는 뉴스가 아닌가 해서 뽑아봤습니다.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저도 그리스의 디폴트 우려 등 유로존 위기가 심화하고 있다는 뉴스와 삼성그룹의 순환출자 해소가 임박해 지배구조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는 소식을 조 위원님과 비슷하게 꼽았습니다.  세 번째로 미국의 빈곤율이 금융위기 여파로 17년 만에 최악 수준이 됐다는 뉴스가 나왔는데요, 소득의 양극화에 따른 부채증가가 경제위기를 낳는다는 측면에서 우리에게도 경고가 되는 것이어서 때문에 특별히 주목했습니다.

그리스 위기, 채권자가 손실 분담하는 방안(PSI)도 있어

박: 저도 앞의 두 가지는 두 분과 같고, 세 번째는 환율변동성이 단기적으로 보면 표준편차를 벗어나는 움직임이 상당히 거슬린다는 것, 표준편차를 일시적으로 벗어나면 괜찮은데 폭발적으로 벗어나면 상당한 우려가 있기 때문에 골라봤습니다. 먼저 이슈의 중심인 유로존 재정위기, 지금 얼마나 심각합니까?

조: 추석 연휴가 시작되기 전부터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죠. 그리스의 디폴트 가능성에 대한 얘기가 꾸준히 나오면서 일차적으로 유럽연합(EU), 유럽중앙은행(ECB), 국제통화기금(IMF) 등 세 곳에서 구제금융을 하기로 이미 지난 7월에 합의를 했는데, 석 달에 한번씩 중간 점검을 해서 계속적으로 구제금융을 할 건지 말 건지를 정하기로 했죠. 마침 실사를 하는 단계가 지난 주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그리스가 실제로 (재정)긴축 부분에서 개혁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해서 실사를 중단했어요. 그래서 구제금융에 안 들어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런 와중에 유럽중앙은행 금융정책위원회의 독일 쪽 위원 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는 못하겠다’며 사퇴를 했어요. 거기다 독일의 볼프강 쇼이블레 재무장관이 “그리스가 긴축개혁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절대로 돈을 줄 수 없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가 디폴트로 갈 수밖에 없다’, 아니면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빠져나갈 것이다’는 등의 설들이 난무하고 주가가 떨어지고 난리가 났죠. 그래서 이걸 수습해야겠다 싶어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이 부랴부랴 나서서 그리스측과 화상 회담을 하면서 ‘절대로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빠져나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구제금융을 지속할 것’이라고 약간은 수습을 했죠. 미국도 이 부분에 대해서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이 두 번 다시 유럽에서 지난 2008년에 있었던 리먼쇼크 같은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거니까 안심하고 믿어달라면서 수습하고 있는 단계입니다.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습할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뭔가 터질 수 있는 상태라고 볼 수 있죠.

박: 제 교수님, 마을에서 공동으로 품앗이를 하는데, 백 마지기 가진 집이나 한 마지기 가진 집이나 똑같이 한 명씩 나와서 일하면 이상하잖아요. 이게 지금 유로존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결과적으로 독일과 프랑스 같은 백 마지기 집이 빠지든지, 아니면 한 마지기짜리가 빠지든지, 어느 정도는 대충 맞춰야 될 텐데요. 어떻게든 잘 해보자 하는데, 백 마지기짜리가 나눠주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 텐데요.

제: 프랑스와 독일이 나서서 의지표명을 한 것은 ‘그리스가 국가부도를 내도록 방치하지 않겠다’, ‘그리스를 유로존에서 내쫓거나 혹은 유로존 자체가 깨지도록 방치하진 않겠다’는 다짐을 한 것입니다. 왜냐면 유로존이라는 것이 2차 대전 이후 50~60년을 거쳐 고통과 갈등을 겪어가면서 오늘날까지 추진돼 왔기 때문에, 이게 깨지도록 나둬서는 안 된다는 의지가 유럽 안에 굉장히 강하거든요.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한 마지기짜리와 백 마지기짜리가 같은 동네에서 대외적으로 동등한 통화를 쓰면서 과연 버틸 수 있을 거냐는 의구심은 처음부터 제기돼 왔던 것입니다. 어쨌든 독일, 프랑스 등 마을의 부자들이 책임을 다해서 이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고 가져가 보겠다는 견해 표명을 한 것이고, 이걸 뒷받침하기 위해서 유럽중앙은행도 역내 은행들에게 달러를 적기에 공급하겠다며 다독거리기도 했죠. 하지만 역시 문제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독일과 프랑스 등이 엄청나게 부담을 져야 하는데, 각자 국내의 반대 여론을 어떻게 극복하고 정치적으로 어떻게 실현해 낼 것이냐는 부분입니다. 국제경제전문가들은 그리스에 대해 ‘이미 썩은 생선을 안 썩었다고 주장하면서 안 버리는 상태’라고 비유합니다. 이게 구제금융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의 단기국채 이자율이 100%를 넘으면서, 전문가들의 표현으로는 ‘저울의 눈금범위를 이미 벗어난 상태’라 이미 디폴트라고 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독일을 중심으로 일부에서는 현실적인 해결이 필요하다고 지적합니다. 그것은 채권자들이 손실을 분담하는 것입니다. 채무자인 그리스에 국제기구가 돈을 자꾸 빌려주면서 그 돈으로 기존 빚을 갚도록 하는 방식이 아니고, 그리스에게 돈을 빌려준 선진국의 금융회사들이 원금과 이자의 일부를 깎아주어서 그리스가 갚을 수 있는 수준까지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것입니다. ‘민간채권자 손실분담(PSI)’이라는 국제금융용어가 있는데, 그렇게 하자고 일부에서 주장하고 있습니다만 채권금융회사들의 이해가 얽혀있어 선진국들이 대부분 반대합니다. 과거 아르헨티나의 경우는 스스로 부도를 내고, 1달러 빌려준 낸 선진국 금융회사에 0.2~0.3달러 정도만 갚은 일이 있는데, 이런 방식으로 아르헨티나는 되살아났죠. 사실 채권자들은 이미 고금리로 돈을 빌려주는 동안 이익을 챙길 만큼 챙겼거든요. 지금은 그런 식으로 채권자들이 손실을 분담하는 대안을 받아들이느냐 마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습니다. 

EU, 경제적∙ 정치적 통합 강화하는 방향으로 갈등 해결해야

조: 그리스를 비롯한 유로존의 문제는 EU의 탄생과정과도 관계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은 오랫동안 세계 문화의 중심지이자 정치 경제의 중심지였는데, 20세기 들어와서 미국 쪽으로 역전이 됐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아주 치열한 피흘림의 역사를 겪었죠. 어떡하든 유럽이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강자로 다시 태어나자는 취지에서 수십 년간 유럽연합의 단결이 추진된 것이죠. 그러나 아직 치밀하지 못한 측면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EU의회가 경제규모에 따라 어떻게 표를 배분할 것인가 등에 있어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죠. 그러다 보니 그리스 사태처럼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책을 찾기 어렵고,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실험 자체도 망가질 수 있는 위기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제: 조 위원께서 ‘실험’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사실 우리가 인류 역사상 굉장한 실험을 지켜보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 실험이 기로에 놓였는데요, 그리스가 빠져나가면서 유로존이 와해되는 결과로 갈 것인가, 아니면 공동통화를 쓰면서도 재정정책은 따로 가져가는 불일치한 상황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통합을 가속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인가의 갈림길에 있는 것입니다. 유로존이 재정정책도 공동으로 수행하고, 정치적 통합도 더 강력하게 해서 하나의 경제단위 혹은 정치단위로 가는 움직임을 가속화할 수 있을 것인가가 주목됩니다.

조: 그렇습니다. 지금 그리스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다들 문제를 안고 있지 않습니까? 그 여파가 프랑스 영국은 물론 독일에도 미칠 것입니다. 만약 이대로 유로존이 붕괴된다면 유럽은 말할 것도 없고 세계경제가 망가지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번 상황을 해결함과 동시에 조금 더 탄탄한 공동체적 자율성과 연대를 강화시키는 방법들이 모색돼야 한다고 봅니다.

박: 결국 해법은 두 가지 아닙니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유럽(유럽합중국)’으로 가느냐 아니면 깨느냐. 사실 지금과 같은 상태로는 안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로 가자니 이미 망가진 곳이 너무 많아서, 자칫 잘못하면 암을 도려내지 않고 두었다가 전체에 번질 우려가 있는 것이죠. 조 위원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 상황이 진화가 될 것으로 보십니까?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터질 거라고 했는데요.

조: 어차피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터지면서 어떻게 수습할 거냐가 관건이라 봅니다. 터지지 않고서는 이 문제는 수습이 안 된다고 봅니다. 어차피 신용등급 강등 갈 거고요. 그리고 은행들이 100억 유로를 빌려줬다면 50억 유로의 손실은 감당하겠다던가, 아니면 단계적으로 간다거나 하는 식의 해법들이 나올 겁니다. 그런 것 없이 순조롭게 구제금융 집어넣어서 해결하는 방식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금융안전망 강화해서 해외악재로부터 국내경제 보호 필요

박: 제 교수님, 유럽 자체가 해결할 수 없다면 구원투수가 나서야 하지 않습니까? 중국은 사실상 정부가 하겠다고 마음 먹으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는 체제이니, 중국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해도 될까요? 중국의 고위관료가 유로본드 구매 등의 의사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제: 중국은 이런 위기 국면에서 자국의 위상과 영향력을 과시하면서, ‘우리가 도와줄 수도 있다’는 사인을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결코 손해 볼 짓은 안 할 겁니다. 휴지조각이나 마찬가지인 그리스 국채를 사주는 등의 일은 안 할 것이고요, 독일이나 프랑스 같은 ‘형님 나라’들이 보증을 해 주는 유로본드(유럽채권)가 나온다면 사 줄 수 있다는 입장이죠. 우리가 ‘비단장수 왕서방’을 잘 알듯이 중국 사람들이 얼마나 계산이 빠릅니까? 손해 볼 일은 절대로 안 할 것이고, 확실한 보증이 있는 상황에서 뭔가 판이 마련되면 구원투수로 나서는 그런 쪽으로 나갈 것입니다.

박: 결국 유럽위기의 해법은 EU가 공동 보증하는 유로 공동본드 발행 외에는 해법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조: 문제는 프리라이더(무임승차자)가 생긴다는 것인데요, 그 부분을 역내 국가들이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가 주목됩니다. 아까 중국 얘기가 나왔는데요, 중국이 요즘 자기의 위상을 과시하면서 동시에 ‘비시장경제지위’ 해소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2001년도에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뒤, 본래 사회주의 국가는 무역거래에서 투명하지 않기 때문에 ‘비시장경제’로 지명해서 일종의 페널티(벌칙)를 주고 있거든요. 오는 2016년까지는 덤핑으로 제소당했을 경우 굉장히 애로사항이 많이 생기는 불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유럽, 미국, 일본이 아직 중국의 시장경제지위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 이번 기회에 유럽에 그걸 요구하는 분위기입니다. 이웃 집 불 난 것을 빌미로 자기 이익을 챙기겠다는 의도가 보이는 것이죠.

박: 제 교수님, 리먼 사태 때는 영화 <미스트>처럼 안개 속 괴물의 정체를 잘 몰랐다면 이번에는 괴물의 정체를 알지만 해법이 안 나오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 글쎄요, ‘예고된 위기는 위기가 아니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그리스가 어려운 것을 진작 알았어도 디폴트가 임박했다고 하니까 또 한번 시장이 출렁이지 않습니까? 그런 파장은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유럽 문제의 해법 역시 방법은 보이지만 프랑스나 독일 같은 큰 나라들이 자국 내부의 정치 상황을 돌파하고 실현할 수 있는가가 관건입니다. 그리스의 디폴트는 불가피한데, 질서 있는 디폴트로 갈 거냐 아니면 정말 통제가 되지 않고 와르르 무너지는 도미노처럼 갈 거냐가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선진국에서 그런 문제가 터졌을 때 우리가 전 세계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경제 규모에 비해서 대외의존도가 높고 수출 등 실물과 금융에서 모두 너무 열려있는 나라입니다. 비바람 치는 바다의 조각배 같은 경제인 것이죠. 이 부분을 사실 굉장히 많이 고민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지적된 해법은 지나치게 대기업 중심이고 수출 의존적인 경제구조를 내수를 탄탄하게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죠. 수십 년 동안 나온 얘기인데 아직 근본적인 정책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그 방향으로 빨리 가야 합니다. 또 하나 당장 급한 게 금융시장입니다. 우리 증권시장, 외환시장은 너무 열려있습니다. 지금도 유럽이 조금만 움츠리면 우리 시장을 ‘현금인출기’라고 할 정도로 외국인들이 주식 팔고 달러 바꿔서 나갑니다. 그러니 주가가 급락하고 환율은 치솟고, 시장이 출렁이죠. 이렇게 취약한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가 통제장치를 가져야 합니다. 자본유출입에 대한 통제장치 말이죠. 그런 개념에서 도입돼 있는 게 은행세 같은 거죠. 거시건전성부담금. 그런데 그것은 은행들의 장단기외채에 대해, 아주 일부에 대해서만 부과하는 통제 수단이고 이제는 브라질이 단기외화자금 유출입에 대해서 세금을 부과하고 있는 것처럼 토빈세 개념의 금융거래세를 부과해야 한다고 봅니다. 과거에 이런 얘길 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세금을 부과하면 외국자금이 경쟁국으로 다 달아난다’고 했는데, 브라질의 사례를 보면 워낙 이익기회가 많으니까 금융거래세에도 불구하고 외화자금이 많이 들어옵니다. 우리도 핫머니, 즉 금방 들어왔다가 시장을 교란시키고 확 나가는 단기외화자금 유출입에 대해 금융거래세를 물리는 등 통제수단을 마련해야 합니다.

순환출자구조 바뀌어도 삼성가 지배력은 변함없을 듯

박: 하나만 더 다뤄보죠. 조 위원님, 삼성지배구조의 변화, 어떤 내용입니까?

조: 그간에 삼성의 지배구조는 순환출자구조라고, 꼬리에 꼬리는 무는 출자관계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삼성에버랜드가 삼성생명의 지분을 가지고 있고,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의 지분을, 삼성전자는 삼성카드의 지분을, 삼성카드는 다시 에버랜드를, 하는 식입니다. 이런 순환출자의 가장 큰 문제는 적은 자본으로 그룹 전체 계열사를 화끈하게 지배한다는 것입니다. 또 이 안에 가공자본이 올라옵니다. 예컨대 삼성카드가 삼성에버랜드에 출자한 지분은 그룹 내부 자금인데도 삼성에버랜드의 자산으로 잡히거든요. 마치 외부에서 돈이 들어온 것처럼 뻥튀기가 되는 것이죠. 이와 관련해서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이 금융기업은 비금융기업 계열사 지분의 5% 이상을 가질 수 없도록 정했는데, 초과분을 해소하도록 한 5년의 유예기간이 내년 4월에 끝납니다. 그래서 지금 삼성카드가 갖고 있는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 중 21% 정도를 시장에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삼성카드와 삼성에버랜드의 관계가 끊어지면 그간의 순환출자구조가 이제 수직지배구조로 바뀐다는 내용입니다.

박: 제 교수님. 이런 표면상의 이유 외에 지배구조개편이 묘하게 맞물리는 게, 자녀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떤 식으로 삼성그룹이 축을 형성할 것인가 아니겠습니까?

제: 지금 조 위원님 설명해 주신 것처럼 일단 시기적으로 금산법에 따라 내년 4월까지 초과지분을 해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지난 2008년에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비자금 사건을 폭로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 삼성쪽에서 이 불투명한 순환출자구조를 몇 년 안에 해소하겠다고 약속한 일이 있어요. 그러니까 그 약속을 이행하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박 원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자녀들에 대한 승계구도를 정리하는 의미도 있지 않나 하는 관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자녀가 셋인데, 수십 개의 계열사 중 아들인 이재용 사장에게는 삼성전자와 전자관련계열사, 금융계열사를 물려주려고 한다는 관측이 있습니다. 또 큰 딸인 이부진 사장에게는 호텔신라와 삼성물산, 둘째 딸 이서현 부사장에게는 제일모직과 제일기획 등의 계열사를 물려 주려 하는데, 순환출자구조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경우에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직구조로 단순화한 다음 이걸 정리해서 분가시키는 수순이 아닌가 하는 얘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박: 조 위원님, 에버랜드 주식을 매각할 때, 누구에게 팔 것이며 적정 가치는 어떻게 계산할 것인가도 관심사 아니겠습니까.

조: 삼성에버랜드는 상장사가 아니기 때문에 장외시장에서 거래가 됩니다. 대충 한 주당 200만원이 넘을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21% 지분이라면 1조 원에서 1조 6000억 원 어치가 됩니다. 이것을 어떤 식으로 누구에게 매각할 것인가가 문제인데, 지금까지 나온 얘기로는 일괄매각 방식으로   해외에 있는 제3의 투자자에게 판다는 설도 있습니다. 지금 투자은행(IB)들에 의뢰하려는 상황이라고 하고요. 물론 실질적으로 계열사나 관계인사들이 인수한다는 등 다른 관측들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팔아도 삼성에버랜드의 지분은 이재용 사장과 친인척들이 45% 넘게 갖고 있고 여기에 계열사들 보유분을 포함하면 60%가 훨씬 넘기 때문에 지배력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고 합니다. 다만 한가지 덧붙여 말씀 드리자면 이렇게 해도 순환출자가 끝났다고 볼 수 없는 것이, 삼성카드의 에버랜드 지분이 팔리더라도 에버랜드에서 삼성생명, 삼성전자, 삼성 SDI, 에버랜드로 다시 이어지는 순환고리는 남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앞으로 어떻게 처리해 갈 것인지도 볼거리입니다.

박: 이후의 진행상황을 지켜봐야 겠군요. 오늘 두 분 좋은 말씀 고맙습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 상 생략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9월 17일자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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