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한끼, 맘 한끼] ⑩ 다섯 번째, 소화 안 된 음식 탐색하기 수업 인트로

아이의 뱃속은 늘 움츠러들어 있었어요. 아이에게 가족이 모이는 식사 시간은 어깨와 등 그리고 위장까지 오그라드는 시간이었거든요. 부모님이 자주 다투셨는데, 그 다툼이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죠. 너울 치는 바다 위 뗏목에 매달려 있는 것 같았던 밥상의 분위기. 어느 날은 배가 불러도 밥알을 입안에 넣어야 했고, 또 어느 날은 배가 고픈데도 숟가락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미안함, 두려움, 자책감으로 마음이 움츠러들었고, 입을 꽉 다물 듯 뱃속도 움츠러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이 위장은 음식물을 잘게 부수고 영양분을 몸으로 흡수하는 ‘소화’라는 작업을 잘 해내지 못했어요.

[몸 한끼, 맘 한끼] 다섯 번째 시간에는 소화되지 않은 음식으로 마음을 탐색하는 ‘해독: 그릇 비우기’ 작업을 합니다. 세 번째 수업 때 내 몸에 음식이 자리 잡은 상태를 심상화하여 그림으로 표현했는데요. 그때 떠올린 음식 중 여전히 불편한 느낌으로 남아있는 음식이 있는지, 있다면 왜 소화가 되지 않은 건지 살펴볼 거예요.

먼저 찰흙으로 나를 상징하는 그릇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안에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만들어 넣습니다. 동글동글할 수도, 삐죽빼죽할 수도, 얇고 넓적할 수도 있어요. 다음엔 캔버스 천에 나의 밥상 환경을 그립니다. 내가 느끼는 밥상의 분위기를 추상적으로 표현하는 거예요. 그림 그려진 천은 식탁보라고 할 수 있어요.

식탁보 그림이 완성되면 음식이 든 그릇을 그 위에 올려놓습니다. 가만히 내려다보아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이제 그릇을 비웁니다.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옆에 덜어내요. 빈 그릇을 들고 가만히 내려다봅니다. 이렇게 자기만의 의식(ritual)을 행합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작업의 느낌을 구성원들과 나눕니다.

▲ 밥상의 환경은 나의 소화능력에 영향을 줍니다. © 이현지

해독(解讀)으로 해독(解毒)하기

‘해독’이란 단어에는 두 가지 뜻이 있죠. 몸에 들어간 나쁜 물질의 작용을 없앤다는 의미의 해독(解毒)과 어려운 문구나 기호를 풀이하고 이해한다는 뜻의 해독(解讀)이요. 진정한 해독(解毒)을 위해선 해독(解讀)이 필요합니다. 몸-마음에서 일어나는 아픔을 치유하려면 나 자신을 읽어 풀이하고 이해하는 작업을 선행해야 하는 거죠.

소화가 잘되지 않고 자주 배가 아프다면 나의 마음, 그리고 나의 ‘밥상 환경’을 해독해보아야 합니다. 소화 능력은 정서적∙심리적 상태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인데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교감신경이 활성화해 신체는 긴장 상태가 되고, 위장이 제 구실을 못 하게 됩니다. 위액 분비도 줄어들어 위의 연동운동이 저하돼 음식물이 잘 쪼개지지 않고요. 그러다 보면 음식물이 위에 남아 불편감을 주게 되죠.

그러니 밥상 환경이 긴장되고 불편하고 힘들다면, 그래서 나의 소화 능력이 떨어져 있다면, 나를 읽고 이해하고 풀이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밥상이 주는 분위기가 내 몸과 마음에 어떤 느낌을 주었나요?
먹는 행위가 무의식적인 작용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갔나요, 혹은 몸과 마음이 애써야 하는 어려운 일이었나요?

[몸 한끼, 맘 한끼] 다섯 번째 시간은 ‘소화되지 않은 음식’을 통해 나의 ‘밥상 환경’을 돌아봅니다. 음식을 먹고 소화하는 일에 어려움이 있다면 함께 탐구해보아요. 나의 몸-마음을 편안히 비워내는 데 도움을 줄 거예요.

늘 뱃속이 움츠러들었던 아이는 잘 자라냈습니다. 하지만 밥상이 주는 느낌은 아직 그때에 머물러 있죠. 어른이 된 아이는 조금씩 자신을 해독(解讀)하고 몸과 마음을 해독(解毒)합니다.

몸과 마음을 비우고 오롯이 자신으로 서기 위해서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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