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한끼, 맘 한끼] ⑨ 네 번째, ‘내가 먹어온 길’ 작품 인터뷰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관심 있는 사람에게 꼭 하는 질문이죠.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면 그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니까요. 여럿이 왁자지껄하게 먹는 음식을 좋아하는지, 혼자 깔끔하게 먹는 음식을 좋아하는지, 또는 맵고 자극적인 음식이 좋은지 단순하고 싱거운 음식이 좋은지 등 음식 취향 따라 성격과 성향, 건강상태까지도 유추할 수 있죠. 나이, 학력, 출신, 직업처럼 사회가 정한 규격이 아닌 개인의 취향으로 그 사람을 알아가는 건 신비로운 일이에요.

무언가를 마음에 새기고 있다는 것, 좋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 대상에서 자신만 아는 고유한 감정과 정서, 느낌, 생각을 연상한다는 것이겠죠. 좋아한다는 것에는 생각보다 많은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이냐는 질문으로 상대를 알아가는 것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나를 알아갈 수 있는 거죠.

▲ [몸 한끼, 맘 한끼] 네 번째 클래스가 열렸습니다. © 이현지
▲ 밀크티와 마들렌을 먹으며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 이현지

[몸 한끼, 맘 한끼] 네 번째 시간에는 ‘내가 먹어온 길’이란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밀크티와 마들렌을 먹으며 리플렛 자료를 함께 읽었어요. 그리고 음식이 주는 기억과 정서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선명하게 기억에 남은 음식을 칸칸이 나뉜 종이에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슬프고 속상한 기억의 음식도 있었지만 대부분 좋은 기억으로 남은, 좋아하는 음식이었어요. 마지막으로 칸칸에 그린 그림을 가위로 잘라 큰 색지에 재배열해 붙이고, 그 위에 덧작업까지 하여 작품을 완성했습니다.

▲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그리기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 이현지

그림 작업을 시작하고 얼마나 흘렀을까요. 음식이 준 감정과 느낌이 차오르는지 눈물을 훔치는 분들이 한 분, 두 분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조용히 각 테이블에 티슈를 놓아두었습니다. 눈물을 닦고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뒤 다시 그림을 그려 나갔어요. 잔잔하고 부드러운 음악 소리가 흐르는 더하기본부, 그 안에서 한 시간 반가량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각사각, 슥슥 소리와 함께 마음과 마음이 공간을 흘러 다녔어요.

작품을 완성한 뒤 다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술 작업을 하며 어떤 성찰을 했는지 떠오르는 대로 나누었어요. 자기 속마음을 모두 이야기할 필요 없이, 원하는 만큼만 자신을 열어 보이기로 했습니다. 마음을 다해 완성한 작품들에는 반짝반짝 찬란하게 빛나면서도 가슴 찡하게 아려오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었습니다.

▲ 작품의 의미를 설명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 이현지
▲ 영화 필름을 배경으로 그린 이지영 님의 음식 일대기입니다. © 이현지

사랑, 애정과 연결된 음식들이 많았습니다. 영화 필름을 배경으로 작업한 이지영 님 작품의 첫 장면은 ‘녹즙’이었습니다. 엄마가 ‘일어나라~’ 하며 딸을 깨웠던 음식이 바로 녹즙이었죠. 지영 님의 하루를 시작하게 해준 녹즙은 ‘엄마의 정성’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녹즙을 정성을 다해 키워야 하는 난초로 표현했어요. 은은하고 곱게 칠한 배경에 단정하게 그린 작은 난초에서 어머니의 섬세한 정성이 느껴졌어요.

▲ 조수빈 님이 음식일대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 이현지
▲ 아빠의 사랑이 그림의 여백을 달콤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 이현지

빨간색 하트가 가운데 크게 그려져 있는 ‘달고나’에서 무엇이 느껴지나요? 조수빈 님이 그린 네 가지 음식 중에 세 가지가 아빠를 떠올리게 하는 음식이었는데요. 특히 달고나는 아빠의 사랑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음식입니다.

“저는 작업하면서 아빠 생각이 많이 났어요. 울컥하는 느낌이 많았어요. 아침마다 냉장고를 열면 뽑기가 있었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 뽑기를 진짜 좋아했는데요. 아빠가 출근할 때마다 아침마다 뽑기를 만들어서 냉장고에 두고 가셨어요. 그때는 그게 당연한 거라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아침에 출근 준비도 바쁜데, 그걸 맨날 만들어주신 거예요. 아, 왜 눈물이 나죠. 아빠랑 함께 했던 추억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수빈 님은 왼쪽 상단에 아빠가 만들어주신 닭볶음탕도 그렸습니다. 그 오른쪽에는 친구들과 놀러 갔을 때 친구들에게 만들어준 돼지김치찜을 그렸죠. “친구들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아빠는 닭볶음탕을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며 다른 그림보다 촘촘하게 선을 그었다고 합니다. 촘촘한 선으로 섬세한 정성을 표현한 것이죠. 수빈 님은 “좋은 음식이 소중한 사람을 많이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는 감상을 전했습니다.

▲ 이지현 님이 할아버지와 함께한 추억이 담긴 알사탕을 그리고 있습니다. © 이현지
▲ 할아버지가 엄마 몰래 주셨던 알사탕이 마음 속에 알알이 빛나고 있습니다. © 이현지

가족의 사랑이 담긴 음식 이야기가 속속 흘러나왔습니다. 할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항상 엄마 몰래 주셨던 동그란 알사탕은 이지현 님이 느낀 할아버지의 사랑을 의미합니다. 심연 같은 배경에 알록달록한 사탕이 알알이 빛나고 있어요. 사탕 그림 오른쪽 위에는 살며시 빛이 내리고 있네요. 지현 님의 마음에 내리는 빛처럼 느껴지죠. 지현 님이 맨 처음에 가장 정성스럽게 그린 음식이 바로 이 알사탕인데요. 알사탕 그림을 화면 가운데 배치했어요. 주변의 다른 그림들과 다르게 단단하고 깊은 느낌을 주네요. 지현 님에게 가장 소중하고 중요한 정서적 기둥이 할아버지의 사랑인 듯합니다.

▲ 밤율 님의 작품입니다. © 이현지
▲ 명정숙 님의 작품입니다. © 이현지

스물한 살의 눈 내린 어느 추운 겨울날, 엄마와 처음 민속촌에 놀러 가서 먹었던 따뜻한 장터국밥 이야기도 마음에 남아요. 잔칫날 할머니가 해주신 갈비찜과 물김치, 이 두 가지 음식만 있으면 뚝딱 밥을 먹던 이야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를 짓게 해주었죠. 없는 살림에도 내 생일에만 만들어주신 엄마의 만두 이야기는 또 어떻고요. 할아버지가 밤을 주워와 맛있게 삶아주셨던 날의 추억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 글에 다 담지 못한 그림에도 저마다 고유한, 그래서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있었습니다. 둘러앉아 내면의 이야기들을 풀어내면서 나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묻고 싶어요.

“어떤 음식 좋아하세요?”

그 음식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나요?

내가 좋아하는 것에서 잠자고 있는 의미를 한번 찾아보세요. 마음의 수면 위로 끌어올리고 하나하나 탐색해보세요. 기억과 정서를 심상화하고 마음을 읽어보는 거예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이해하는, 그리고 보듬고 사랑해주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거예요.

좋아한다는 것에는 의미가 있죠. [몸 한끼, 맘 한끼]에서 함께 찾아가 보아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임지윤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