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효석문화제] 메밀꽃 필 무렵에 열리다

소설의 서정성과 마당놀이의 익살

산굽이를 돌고 돌아 해발 600m 표지판을 지나자 차창 밖으로 온통 하얀 들판이 펼쳐졌다. ‘설국’까지는 아니어도 싸락눈을 뒤집어 쓴 듯 메밀꽃이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메밀 막국수’ 간판이 눈에 들어오는가 했더니 이내 봉평읍이었고 읍내가 모두 축제장이었다.

▲ 주행사장에서 강을 건너면 펼쳐지는 메밀꽃밭.  ⓒ효석문화제 홈페이지

소설 한 편의 힘이 이토록 큰 걸까? 이효석과 그의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주제로 하는 ‘효석문화제’는 해마다 방문객이 70만 명에 이를 정도로 인기가 높다. 이 무렵 평창 일대 고산지대의 빼어난 풍경 속으로 들어가보는 것은 추억 속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감수성 예민하던 고교 시절 <메밀꽃 필 무렵>을 읽으면서 떠오르던 감상에 다시 젖게 한다. 허생원이 물레방앗간에서 하룻밤 사랑을 나누었던 ‘성서방네 처녀’는 어떻게 됐을까? 같은 왼손잡이라는 이유만으로 허생원이 동이를 아들처럼 여기는데 동이는 진짜 그의 아들이었을까?

전통 연희 극단 ‘떼이루’의 마당놀이 <메밀꽃 필 무렵>은 관객들의 오래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다. 처음에는 물론 허생원과 동이도 자기들이 부자지간이란 것을 모른다. 주막집 충주댁에서 기생들과 노닥거리고 있는 동이를 꾸짖는 허생원의 넋두리와 동이의 대꾸가 압권이다.

허생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대낮부터 계집과 분탕질이여. 그걸 모르는 부모는 지 자식 귀한 줄만 알고, 허리가 휘도록 고생만 하는구나! 무자식이 상팔자로다~. 

동이: 너!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여?

그러나 일행은 제천장을 보러 갔다가 동이네 주막집에 들르게 되고, ‘성서방네 처녀’였던 동이의 어머니가 허생원을 알아보게 됨으로써 해피엔딩으로 마당놀이가 끝난다. 작가 이효석의 의중이 무엇이었건 허생원의 소원 하나 들어주는 게 뭐 어려우랴? 그런 것이 축제이거늘.

  

원작은 서정성 강한 단편소설이지만 마당놀이는 국악과 광대놀음을 유쾌하게 버무린 흥겨운 놀이판이다. 대사 사이사이를 메우는 풍물놀이는 구경꾼들이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장단에 맞춰 두 놀이꾼이 버나(사발) 돌리기 대결을 펼치는 장면이나, 당나귀가 가세해 ‘원숭이 뺨치게’ 놀아대는 장면은 그 익살로나 재주로나 마당놀이의 백미였다. 소설 원작이 기억나지 않아도 좋고, 추임새를 언제 넣을지 몰라도 좋다. 장구장단, 북장단에 맞춰 웃다 보면 어느새 “얼쑤”하고 외칠 정도로 신명나는 한판이다. 그 옛날 봉평장터에서도 장돌뱅이들의 노곤함을 풀어주는 놀이판이 종종 열렸을 터이다.

지난해 효석문화제에서 처음 선보인 마당놀이 <메밀 꽃 필 무렵>은 <신 뺑파전>과 <국악뮤지컬 아기돼지 꼼꼼이> 등을 공연해 온 극단 '떼이루'가 최초로 시도한 작품이다. 올해도 지역 어린이와 주민들이 참여해 효석문화제 중심 공연으로서 의미를 더했다. 18일까지 저녁 시간에 주행사장에서 펼쳐진다.

 ▲효석문화제 후반기의 일정표. 후반기에도 마당놀이는 계속 되고, 송골매 공연, 전통혼례식 등도 주말 나들이객을 기다리고 있다. ⓒ 최원석

‘소설처럼 아름다운 메밀꽃 밭’ 이라는 주제로 마련한 축제답게 행사장 주변에는 메밀밭들이 많다. ‘충주집’이 복원되어 있는 가산공원에서 다리 건너 이효석 문학관과 생가에 이르는 길 주변까지, 소설처럼 소금을 뿌린 듯이 하얗게 핀 메밀꽃들이 산책하는 흥취를 돋아준다. 주차시설이 잘 되어 있어, 걷기 어려운 방문객들도 편리하게 주요 장소에 들를 수 있다.

막국수만큼 놓쳐선 안 될 밤 풍경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지난 9일부터 오는 18일까지 다양한 행사가 펼쳐진다. 지금까지 '문학의 밤' '남사당패 공연' '신 뺑파전' 등이 열렸고, 남은 기간에는 마당놀이 <메밀 꽃 필 무렵>은 물론이고 '달맞이 농악대 공연' '전통혼례식' '김형과 7080 콘서트' 등이 열린다. 20년 만에 재결성한 송골매의 공연(16일)도 방문객들의 어깨를 들썩거리게 할 것 같다.

 ▲메밀꽃 밭의 밤 풍경.  ⓒ 최원석

축제 전반부에는 날씨가 흐려 달이 뜨지 않은 날이 많았다. 그렇다고 성급히 발걸음을 돌리면 밤풍경을 놓친다. 막국수 한 그릇 천천히 먹으며 기다리면 이내 어둑어둑해진 메밀밭 위에 환상적인 조명이 켜진다. 낮에 보는 경치가 초록색 산자락에 안겨 있는 메밀밭이라면, 밤에 보는 풍경은 새까만 산 그림자 아래 눈 내린 듯 빛나는 메밀꽃 밭이다. 풍경도 대단한 장관이지만, 무엇보다 함께 간 사람과 멋진 사진을 남기기엔 밤 풍경이 제격이다. 하나 더 팁을 주자면, 원두막 뒤 식당이 문 닫는 시간까지 기다릴 것. 간판 불빛이 사라지면 흰 꽃은 더욱 빛나고 반사되는 불빛이 없어 사진 찍기에 좋다.

▲ 메밀꽃 필 무렵 전문을 볼 수 있는 QR코드. ⓒ (사)이효석문학선양회
메밀막국수 메밀묵 메밀전병 등 메밀로 만든 담백한 음식들을 즐길 수 있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주행사장에서 다리를 건너 이효석문학관 주변 등에 막국수 전문점들이 있고, 행사장 주변에는 지역 특산물도 판다. 관광안내소 제공 안내도에 나온 주요 장소 다섯 곳에서 도장을 찍으면 메밀과자를 기념품으로 받을 수 있으니 발품을 팔아볼 만하다. 혹시 소설 원작이 가물가물 하면 홍보물 첫 장에 인쇄된 QR코드를 스마트폰으로 찍으면 된다. 삽화와 함께 전문을 읽어볼 수 있다. 행사 안내와 문의는 이효석문학선양회 033-335-3434, 평창군 관광경제과, 033-330-2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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