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드라마 종영 직후 만난 김선아 "아직도 가슴 끝이 아프지만..."

 ▲ 최근 종영한 SBS특별기획 <여인의 향기>. ⓒ SBS

추석 연휴 중 단 하루가 김선아에게 허락된 자신만의 시간이었다. 하루 중 반나절을 잠으로 보냈다며 웃으며 말하기도 했다. 7개월 하고도 이틀, 그리고 그 이후를 그는 살아내고 있었다.

"아쉬움이 큰 것 같고, 시원한 건 하나도 없어요. 너무 정신없이 찍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이렇게 빨리 흐를 줄 몰랐어요. 회식 한번 제대로 못하고 밥 한번 제대로 못 먹고, 16회까지 일만하고 달려온 듯 하네요. 아이고! 이거 잘못 들으면 밥 못 먹어서 서운한 줄 알겠네!  다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종영 이후 공식적인 첫 인터뷰였다. <여인의 향기>의 종영일이었던 지난 일요일(11일)까지도 촬영을 했던 탓일까. 14일 오후 명동 인근의 한 식당서 만난 김선아는 몸과 마음으로 고통을 감내해갔던 이연재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청자들, 시한부의 버킷리스트 작성ㆍ실행기에 몰입

어릴 때 아버지를 잃은 가정환경으로 남의 눈치를 그렇게도 보며 살았던 유약한 소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고 스스로도 소심하고 줏대 없는 사람이라 비하했던 그가 시한부라는 운명을 받아들이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버킷리스트'를 작성해 내가는 연재의 모습에 시청자들이 몰입하는 것도 마찬가지였을 테다. 소녀에서 여인이 된 이연재에게 시청자들은 저마다의 감응을 담아 함께 바라보고 반응하기까지 했다. 결말을 앞두고 '연재를 살려달라'는 목소리를 냈던 시청자들 이야기를 단순한 에피소드라 치부할 수 있을까.

 ▲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지만 꿋꿋하게 밝은 모습을 살아가는 이연재 역을 소화한 김선아. <오마이스타>와 인터뷰 전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오마이스타

 - <여인의 향기> 종영 후에 느낌이 아직 남아있어 보여요. 연재라는 캐릭터를 정리해 나갈 법도 한데 어떤가요?

"정리요? 제가 정리를 잘 못해요. 바보 같은데, 한 작품 끝나고 나면 많이 힘들어 하는 것 같아요. 혼자 있는 시간이 힘들기도 하고 편하기도 하고, 요즘 그래요. 동창들을 만났다고 해봐요. 얘는 누구고 쟤는 누군지 알겠는데, 이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느낌? 작품 끝나고는 2~3개월 정도 집에만 있었던 것 같아요. 작품을 같이 했던 분들 만나기도 했고요. 다른 작품을 빨리 들어가는 게 약일 수도 있어요. 저한테나 다른 배우들에게도."

- 그만큼 캐릭터가 힘들었다는 말이군요. 처음 캐스팅이 됐을 때부터 연재라는 인물이 녹록치 않을 거라는 걸 예상 했나요?

"예측은 했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아프고…. 모르겠어요. (명치끝을 치면서)여기, 엄마들이 여기를 치잖아요. 그렇게 가슴이 내내 아팠던 것 같아요. 캐릭터 자체가 몸이 아픈 거랑 가슴이 아픈 게 공존하다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삼순이 이후로 저한테는 평생 못 잊을 작품이 또 하나 생긴 듯 해요."

예쁘게 보이기보다 배역에 철저히 녹아드는 것을 택한 김선아

 ▲ 소심한듯 보이지만 사람과 세상을 품을 줄 아는 이연재는 극중 캐릭터지만 실제 김선아의 모습과도 많이 맞닿아 있었다. 김선아는 "그간 해왔던 역할 중 가장 김선아스러웠다"며 인터뷰 중 밝히기도 했다.  ⓒ SBS 

'이 여름에 무슨 죽어가는 노처녀 이야기?' 본인 스스로도 시청자들이 따라올 수 있을까 크게 고민했을 법 했다. 기우였다. 1회부터 15.8%(AGB닐슨 전국 기준)의 시청률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여인의 향기>는 꾸준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시청자들이 이연재의 삶에 금세 공감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드라마를 이끌어 가는 주요 인물인 만큼 그 역할을 분하는 김선아 만의 숨은 노력이 있을 법했다.

"단순히 노처녀라 '뽀글' 머리에 안경을 쓴 게 아니에요. 하나씩 디테일하게 들어갔어요. 연재는 이미 죽을 걸 알았고 시간이 없는 상황이었죠. 렌즈를 할 시간도 없었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안경을 썼을 거고, 암 환자다 보니 함부로 머리에 제품을 바르거나 드라이, 스트레이트를 하지 않을 것 같았죠. 물론 예쁘게 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지만 머리 하나하나가 중요하잖아요?"

철저한 계산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 아버지를 잃었다는 과거로부터 출발한 이연재는 소심하면서도 답답한,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내면의 자신을 향해 말을 걸고 주변을 사랑할 줄 아는 인물이었다. 김선아는 그 인물에 조금씩 천착해 가는 방법을 택했다.

"에고, 소리 지르는 장면이 없어서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이 친구가 말을 막 크게 하거나 입도 크게 안 벌리잖아요. 이게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 생긴 버릇이겠구나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귀를 막고 입을 닫은 거죠. 그러다보니 목이 수그려지고 주눅 들어 있고요. 말을 하기 전에 몸부터 반응하는 친구에요. 몸을 비틀거나 머리를 비비 꼰다거나 호흡을 먼저하고 나서 반 박자 느리게 말이 나오죠. 눈치를 봐야 하니까요.

삼순이는 말을 먼저 해야 하는 인물이었어요. 말로 우선 소리를 질러놓고 시작하는 사람이죠. 욕도 잘 하고요. 삼순이 하면서 속이 다 시원하기도 했었는데, 헤헤. <시티홀>의 신미래는 정치인이니까 철저하게 계산해서 연기를 했죠. 말을 또박또박 토시하나 틀리면 안 되니까요. 저만의 연기방식이라기 보단 삼순이나 신미래는 그럴 것 같았고 연재는 왠지 이럴 것 같았고, 뭐 그런 차이?"

<내 이름은 김삼순> 삼순이, <여인의 향기> 이연재... 그 이후는?

 ▲ 지난 일요일까지 이어진 촬영으로 피곤함이 엿보였지만 김선아는 인터뷰 내내 다양한 표정을 잃지 않았다.  ⓒ 오마이스타

"제 성격이 좀 답답해요. 그렇게 안 생겼죠? 히힛. 연재와 비슷해요. 결정적인 말을 못 꺼냈던 사람이었어요. 화를 내거나 소리를 못 내고 살았죠. 삼순이를 보면 막 괄괄하고 그럴 것 같은데, 제가 절 봐도 정말 답답해요. 동생이랑 싸우면 삼 사일동안 말 한마디 안 하다가 편지 써서 '띡' 주고는…."

정신없이 16회 분의 촬영을 위해 달려왔다는 그에게 이번 작품이 특별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아직 헤어지면 안 되는데 더 있어야 하는데~"라며 짙은 아쉬움을 표하는 김선아에게서 작품에 임하는 자세와 그만의 철학을 조심스럽게 엿볼 수 있었다.

- 이번 작품을 끝내고 나서 어떤 생각들이 들던가요? 물론 아직도 끝이라고 하기엔 아쉬움이 강하겠지만요.

"작품을 좀 자주 해야겠어요. 그리고 엄마에게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언제였지, 촬영 끝나고 집에 며칠 만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엄마가 '우리 딸 안아보자, 사랑해' 하는데 '어머 왜, 왜' 하면서도 울컥하면서 못 쳐다보겠더라고요.

이 드라마가 저를 비롯해 여러 사람에게 선물을 줬다고 생각해요. 주변에서 여러 사람들이 부모님에게 용기를 내서 함께 여행가자고 했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매 작품이 끝날 때마다 뭘 하나씩 주고받는 것 같아서 뿌듯해요. 제 홈페이지에도 환자분 가족들이 글을 남기는데 '살아줘서 고맙다, 진짜 용기내서 살겠다'고도 그러시고요."

- 어떤 인물을 연기하든 김선아라는 배우는 캐릭터를 본인 스스로가 잘 녹여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어떤 비결이 있나요?

"조금 부끄럽다고 해야 하나? 제가 연기를 전공한 게 아니라 더 이를 악물고 해오는 건데. 그래서 연기 수업도 받고 있죠. 배움에는 끝이 없다고 생각해요. 잘 한다고 생각하다가도 이번 작품을 하니 또 어려운 거 있죠?

사람들이 '왜 네가 연기 수업을 받아?' 그럼 전 '어려우니까!'라고 답하죠. 기초가 없이 시작했기에 지금껏 배우고 있어요. 10년 가까이 곁에서 연기를 모니터 해주시는 선생님도 계세요. 그러고 보니 이번에 선생님들이 칭찬 너무 해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던데요? 칭찬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잖아요. 저도 주변에 좋은 얘기를 많이 해야겠다고 느껴요."

- <여인의 향기>가 배우 김선아에게 있어서도 사람이나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하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앞으로 어떤 배우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나요?

"그냥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꾸준히 열심히 했으면 좋겠어요. 딴에는 초심을 잃지 않고 간다고 생각 했는데 어느 순간 사람이 귀찮아질 수 있고 잠시 정신 줄을 놓을 수도 있고(웃음). 큰 목표가 있는 게 아니에요. 캐릭터에 대해 하는 말을 귀담아 듣는 편도 아니고요. 6년 내내 '삼순이' 소리를 들었더니 이젠 또 뭐 살 빠졌다고 그러지 않나. 어쩌라는 거에요?  하하.

시간이 지나면 앞으로도 향기를 남기는 작품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사실 감사한 게, 평생에 그런 작품 만나기가 너무 힘든데 삼순이에 이어 이번에 또 만났잖아요. 인기나 명예를 다 떠나서 스스로 얻은 게 많아서 한 인간으로서 성숙해져 가지 않나 생각해요." 


 * 이 기사는 <오마이스타>에도 실렸습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