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극단 ‘각인각색’ <결혼 피로연>

결혼풍속도- 브뢰헬의 그림과 체홉의 연극 사이

▲ 브뢰헬의 그림 <농가의 결혼식>.

나이 찬 처녀총각들은 추석 연휴에 스트레스깨나 받았으리라. 만나는 친척마다 인사말이 돼버린 “결혼은 언제 해”라는 말에 대답이 궁색했을 테니까. 나 자신 친지들의 결혼식에 다녀온 것만도 이미 십여 차례, 은근한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결혼식장에 갈 때는 결혼이 부러울 때도 있지만 저렇게 결혼하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을 한 적도 많았다. 하객이 너무 적은 것도 안쓰럽지만 많다 해서 꼭 축복받은 결혼은 아니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결혼식은 어느새 가족친지와 마을의 잔치가 아니라, 가문의 위세,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재력을 과시하는 이벤트가 되고 말았다. 하객들도 얼굴을 내미는 데 목적이 있을 뿐 진정 ‘축하하는 손님’ 곧 ‘하객(賀客)’으로 온 사람은 드물다. 접수대에 축의금만 내고 돌아서는 이가 있는가 하면, 예식도 지켜보지 않고 바로 식당으로 향하는 이가 태반이다.

이런 때 떠오르는 그림이 네덜란드 화가 브뢰헬(브뤼겔)의 <농가의 결혼식>이다. 이 그림에서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와 신랑만이 아니다. 신랑은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신부도 배경으로 두른 푸른색 휘장이 없다면 찾아내기조차 어렵다. 신부의 얼굴에도 술기운이 돌 정도로 잔치 분위기가 꽤 고조된 듯 사람들 시선이 신부를 향하는 이는 없고 모두들 옆 사람과 얘기하기에 바쁘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이게 바로 인간 본능이고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헛간에서 치르는 결혼 피로연에 음식이라곤 빵과 죽밖에 없지만, 높다랗게 쌓인 짚 더미 앞에서 서로들 올해 농사를 치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흥을 돋우느라 음식 먹을 짬이 없었던 악사의 시선이 음식을 향하는 건 가식 없는 본능이다. 비록 결혼식을 핑계 삼아 모였을망정 결혼식은 허례허식이 아니고 하객들에게서도 허위의식을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모두가 축제의 객이 아니라 주역이다. 

과시의 이벤트가 되고만 결혼식 풍경 

▲ 연극 <결혼 피로연> 의 한 장면. ⓒ 극단 각인각색

지난 3일 대학로에서 본 안톤 체홉의 연극 <결혼 피로연>은 변질된 결혼식의 의미를 곱씹어 보게 했다. 피로연(披露宴)은 원래 ‘기쁜 일을 알리고(披) 드러내는(露) 잔치’란 뜻이었는데 요즘 세태로 보면 피로연에 초대받은 사람 중에 기쁘게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 

연극 무대에는 여느 피로연 장소처럼 식사용 테이블이 차려져 있고, 벽에는 화풍이 뒤섞인 초상화들이 걸려있다. 어느 유럽 중산층 집안이 배경인데 천장에는 조금 과한 듯해 보이는 샹들리에가 달려 있다. 객석과 무대 사이에 말없이 앉아 있는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가 눈에 띄었다. 분주한 객석과 텅 빈 무대에는 곧 정반대 상황이 연출된다. 관객들은 시나브로 조용한 하객이 되었고, 무대는 곳곳에서 등장한 배우들로 조금 전 객석처럼 분주해졌다. 연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 연극은 부유한 러시아 관리 쥐갈로프(조주현)의 집에서 벌어지는 딸 다쉔까(고가연)의 결혼 피로연 이야기다. 쥐갈로프의 아내 찌모페예브나(백현주)는 부와 명성을 뽐내려 돈을 주고 한 장군을 초대하지만, 몇 시간 째 나타나지 않아 초조한 모습으로 집안을 오간다. 결혼 지참금 문제로 장모에게 불만이 생긴 아쁠롬보프(홍재범), 피로연보다 장군을 만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그리스인 뒴바(김승환) 등이 뒤섞여 피로연은 축하 대신 ‘잿밥’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로 온통 뒤숭숭하다. 사또 행차에 아랫사람들만 바쁜 모양새랄까? 자리의 ‘격’을 높여줄 장군을 기다리던 손님들은, 결국 정체가 드러난 ‘장군 각하’에게 실망해 피로연을 난장판으로 만든다.   

정작 이날의 주인공인 신부는 딱 세 번 말할 뿐인데, 다른 사람들이 말이 많다. 연극은 현실을 풍자하고, 명예에 집착하는 세태를 비웃으며 한편으로 객석에 앉은 관객에게도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당신은 어떤가? 새로 가정을 이루는 부부를 축하해주기보다 어쩔 수 없이 결혼식에 참석해 ‘주말을 공쳤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가? 축의금을 얼마나 낼지 신경 쓰고, 결혼식장과 음식 품평으로 시간을 때우지는 않았던가? 하객들끼리 혼주나 신혼부부에 대한 추억담을 나누며 그들이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축복과 소망을 나눠 본 적이 있는가?

▲ <결혼 피로연> 포스터 사진. ⓒ 극단 각인각색
물론 이런 생각에 오래 빠질 만큼 연극이 한가하지는 않다. 19세기 말 러시아 의상과 소품을 바탕으로 연극 초반 펼쳐지는 러시아 민속춤의 리듬은 절로 박수를 치게 한다. 정중함을 지키기 위해 가문이나 아버지 이름을 이어 붙인 러시아식 긴 이름을 외우면서도 유머러스한 표정을 지으며 ‘장군 각하’를 외치는 하객들을 보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미리 배치된 테이블이 해군 함선이 되는 진기한 풍경을 보고 있을 때쯤, 일순간 의문이 떠오른다. 결혼은 누구를 위한 것이고, 피로연은 무엇을 축하하자는 연회일까?  

연출을 맡은 이정하 세명대 방송연예학과 교수는 “본래 단편작품인데 러시아 색채가 드러나는 춤과 음악을 넣어 1시간 20분짜리 장편으로 만들었다”며 “그 덕에 배우들이 연습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모스크바에서 연극을 공부하고 귀국해 2000년 극단 ‘각인각색’을 창단한 이 교수가 10주년 기념작품으로 <결혼 피로연>을 선택한 것은 단원들과 즐겁게 연습하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연극 속에서 가장 순수한 마음으로 결혼식을 축하하러 온 사람은 결국 퇴역 해군중령, 곧 사람들이 ‘장군 각하’라고 부르며 기다린 까라울로프뿐이었다. 돈이 오가는 피로연, 속고 속이며 서로를 헐뜯는 군중을 향해 그는 절규한다, 실은 소통이 안 되는 이 세상을 향해.

“출구 어디 있소! 사람 어디 있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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