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김병만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웃기는 개그맨 아닌 울리는 개그맨”

한 가지 일에 빠져 남다른 재주를 갖게 된 사람을 ‘달인’이라 한다면 개그맨 김병만(36)은 ‘달인’이 아니다. 그는 KBS 2TV <개그콘서트>에서 ‘중심잡기의 달인’, ‘줄타기의 달인’, ‘흡입의 달인’, ‘공중돌기의 달인’, ‘링의 달인’, ‘방귀의 달인’ 등을 전전해왔다. ‘각종 달인’으로 연기를 해온 지 어느덧 3년 9개월, 온갖 묘기와 슬랩스틱 코미디를 선보이던 그가 이번에는 책을 냈다.

▲ 김병만의 책 표지.

그는 자전에세이집 <꿈이 있는 거북이는 지치지 않습니다> 책 머리에서 “남보다 많이 배운 것도, 가진 것도, 특별한 것도 없는 사람이 코미디의 한 장면을 위해서 어떻게 참고 극복하고 노력해 왔는지 그 과정을 얘기하기로 마음먹었다”며 “부끄럽고 감추고 싶은 얘기도 있지만 삶에 지친 분들에게 작은 희망을 드릴 수 있다면 행복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가 일찌감치 자서전을 쓰게 된 것은 이응진 KBS 드라마PD의 권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PD는 김병만에게 개그지망생이든 누구든 힘들고 지친 사람들에게 힘이 될 수 있는 책을 쓰자고 제안했다. 김병만은 그동안 기록했던 것을 모아 대여섯 달이나 걸려 책을 내면서 자신을 거북이에 비유했다. 조금 느릴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겠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책이 나온 지 보름 만에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다.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문체가 투박하면서도 솔직하고 내용이 개그를 향한 열정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 PD는 김병만을 웃기는 개그맨이 아니라 울리는 개그맨이라고 말한다. 그의 개그에는 노력과 성실이 담겨 있고 사람들은 그것에 감동한다. 이 책도 그의 개그와 다르지 않다.

“무작정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MBC 공채 개그맨 시험에 4번, KBS에 3번 떨어졌습니다. 오디션에서 입도 한 번 못 열어보고 소품을 챙겨서 나온 적도 있습니다. 나란 사람은 개그맨이 될 수 없나? 계속 되는 오디션 탈락에 약국을 돌아다니며 수면제 40알을 모았습니다. 죽고 싶을 정도로 좌절했습니다. 오죽했으면 같이 연극하던 선배가 너처럼 운 없는 놈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대방동 옥탑방 난간에 서서 엉엉 통곡했습니다. 하지만 고개를 들었을 때, 여의도 방송국 불빛이 보였습니다. ‘난 저기 꼭 들어간다. 방송국, 기다려라. 지금은 내가 여기서 너를 보지만, 언젠가는 방송국에서 여기를 볼 날이 있을 거다.’ 저는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는 책에서 구구절절 자신의 실패담을 얘기한다. ‘달인’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겪었던 온갖 우여곡절이 책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개그맨 공채 시험에 떨어졌을 때와 연기를 전공하기 위해 여러 차례 대학문을 두드렸지만 낙방했던 이야기, 서울의 작은 극단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잤던 ‘추억’ 등 갖가지 역경이 적나라하게 쓰여 있다.

▲ 연습삼아 대기실에서 물구나무를 서고 있는 김병만.

그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삶과 밀접하기에 독자들은 그의 이야기에 공감한다. 이 책을 읽은 한 누리꾼은 “매끄러운 문장과 조리 있는 전개로 가득 찬 책만 보다가 투박하고 짧은 문체의 책을 보았다. 하지만 그 어떤 책보다 진실하다”라는 감상평을 남겼다. 글 솜씨는 결코 좋은 게 아니지만, 그 안에는 마음을 흔드는 대목이 많다.

그가 어머니 가슴에 못 박은 이야기는 코끝을 찡하게 한다. 그는 심야에 귀가할 택시비가 없어서 마로니에공원에서 자주 노숙을 했다. 한번은 잠에서 깨고 보니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갑자기 서러움이 북받쳐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엄마, 난 왜 이렇게 가난하게 만들었어! 난 빽도 없고 이게 뭐야? 말 좀 해봐. 나 이렇게 살아야 돼? 세상이 다 거지같아. 엄마? 엄마!”

자다가 전화를 받은 어머니는 잠자코 듣다가 딱 한마디, “미안하다”고 했다. 연기자로서 그의 꿈은 희극배우지만, 아들로서 그의 꿈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는 거라고 말한다. 그는 힘든 삶 속에서도 늘 웃음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한다. 책에는 그가 돈을 벌기 위해 공사판에서 막노동을 하다 4층 높이에서 떨어져 죽을 뻔했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와중에도 그는 입원했던 병원 간호사와 러브스토리를 만들어 웃음을 자아냈다.

일상생활에서 번뜩이는 개그 본능

책에는 힘든 상황에서도 개그를 찾는 그의 본능이 곳곳에 숨어있다. 씻을 곳이 없어 새벽에 한 건물 화장실에서 몰래 목욕을 하다 건물 관리자에게 들킨 적도 있다. 그는 알몸으로 선 채 10분이 넘도록 욕을 얻어먹고는 ‘에이, 그지 같은’이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눈물이 핑 돌았지만 그는 그 순간에도 그 상황을 개그 소재로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그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개그를 짜내는 노력을 소홀히 하지 않았다. 그런 수많은 기록과 노력이 그를 지금의 ‘달인’으로 만들었다.

▲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본인의 의지가 담긴 책 안 소제목.

키 158.7cm인 그는 ‘너는 안 된다’는 소리를 더 많이 듣고 자랐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7전8기 끝에 2002년 공채로 KBS 개그맨이 됐다. 꿈을 이뤘지만 그는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함께 입사한 개그맨은 정형돈, 권진영, 이정수, 김다래, 김민정, 이경우였다.

‘개그콘서트’에서 ‘달인’을 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소극장에서 연기를 했던 내공과 적어놨던 아이디어들로 천천히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달인’을 하면서 이름을 알린 그는 드라마에서 감초 역할을 맡아 MBC ‘종합병원2’, ‘친구, 우리들의 전설’, KBS ‘다함께 차차차’, ‘전설의 고향’, ‘드라마 스페셜’, SBS ‘아테나’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SBS ‘일요일이 좋다-김연아의 키스앤크라이’에 출연해 김연아가 그의 노력에 눈물을 흘리는 등 열광적인 반응을 얻기도 했다.

김병만은 독한 사람이다. 오기와 악으로 지금까지 버텨냈다. 멈추지 않는 그의 열정과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가 지금의 그를 만들어냈다. 이 책은 지금 힘들지언정 포기하지 말라는 강렬한 메시지를 계속해서 보내온다. 작은 키와 가난한 집안 형편, 학력 콤플렉스, 끊임없는 실패에도 그는 거북이처럼 묵묵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장기인 텀블링을 하다가 양쪽 발목뼈가 부러진 적이 있다. 부서진 뼛조각을 꺼내야 하지만 수술도 안하고 있다. ‘석 달쯤 쉬어야 한다’는 의사의 말에 팬들로부터 멀어질까 봐 두렵기 때문이다. 미련하기까지 한 프로근성은 그를 ‘개그의 달인’으로 만들었다.

“달인은 목표가 아니라 과정입니다. 걸어온 길보다 걸어갈 길이 아직 멉니다. 꽃은 계속 피어있지 않습니다. 꾸준히 가꾸고 물을 줘야 합니다. 출발지점보다 지금 순간이 더 노력할 때라는 것을 잘 압니다. 제 꿈을 향해서 기어서라도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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