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EX-Now 5’ 참관기

‘마음먹은 대로’ 찍어낸 실험영화의 향연

“말하는 대로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될 수 있다고 그대 믿는다면
마음먹은 대로 내가 마음먹은 대로~”

유재석과 이적의 노래 한 구절이 절로 생각나는 실험영화의 현장이 거기 있었다. 9월 1일 개막돼 7일까지 열리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그 중에서도 일요일인 지난 4일 오후 7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상영된 ‘국내 경쟁 EX-Now 5’는 감독들이 그야말로 ‘말하는 대로, 마음먹은 대로’ 찍어낸 실험영화들이었다.

 ▲ 2011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포스터.
짧으면 3분, 길면 15분 정도의 영상 13편으로 구성된 실험영화들은 영화의 신세계를 경험하게 했다. 매일 수없이 많은 영상을 수시로 접하며 사는데도 ‘새롭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새로움’은 실험영화를 판단하는 가장 큰 가치이기도 하다.
 
실험영화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문득 ‘내가 제대로 보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우리가 쉽게 접하는 상업영화에서 중심이 되는 ‘스토리’가 실험영화에서는 힘을 쓰지 못한다. 알 수 없는 이미지들이 난무하는 데다, 불빛의 번쩍임이 눈을 괴롭히며, 감정선을 자극하는 갖가지 소리가 동원되기도 한다.

물론 부담 없이 편안히 볼 수 있는 작품도 없지는 않다. 어디선가 봤을 법한 영상이나 제목을 보면서 예상할 수 있는 이미지가 등장하는 작품을 만나면 반갑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영상에 접근하는 방법이 새로워야 실험영화라 할 수 있다.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의 ‘EX-now’는 매년 공모를 통해 출품된 미학적 실험의 최전선에 있는 영상작가들의 근작을 소개하며 실험영화를 사람들에게 알린 프로그램이다. 올해도 몇 가지 전통적인 실험담론 안에서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영역들을 확장하고 있는 작품들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출품된 작품들은 구조주의적 영화부터 뮤직비디오,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내러티브 영화 등 장르와 형식의 폭이 방대했다.

국내 경쟁작품은 작가에 대한 개인적 친분 등 사적 감정이 반영될 여지를 없애고 심사에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작가의 프로필과 이름은 의도적으로 보지 않은 상태에서 작가의 연출의도, 시놉시스 등만 참고해서 40여 편을 가려냈다고 한다. 모두 관객들에게 영상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안겨주려고 미학적 요소들을 고려한 작품들이다. 참관했던 ‘EX Now 5’ 13편의 작품도 영상으로 공감을 시도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였다.

“보라, 그리고 상상하라”

<Watching Video>(2005-2010)는 최종한 감독이 지난 5년간 만들었던 싱글채널 비디오 작업의 극장 상영용 리믹스 버전이다. 갤러리에서 감상하는 비디오아트 작품과 극장에서 상영하는 실험영화의 경계를 허물어보고자 하는 시도로 기획되어 비디오 이미지의 탄생과 분열, 성장, 상처 그리고 소멸의 과정을 차근차근 담아냈다.

▲ 출품작 <Watching Video>. ⓒ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Video의 어원은 ‘I see’ 즉 ‘나는(신은) 바라본다’라고 한다. 곧 이 작품은 ‘Watching I see’라고 할 수도 있다. 관객이 보고 있는 비디오 이미지와 내가 보고 있는 이미지의 끊임없는 투쟁 속에서 ‘Video’의 본질을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최 감독은 “관객들이 내러티브가 있는 상업영화만을 편식하지 말고, 늘 새로운 영상을 접하며 건강한 영화 보기를 했으면”하는 바람을 전했다.

변재규 감독의 <Living Symmetry>는 새로운 시공간을 창조해 영상에 담아낸 작품이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도래로 ‘공간/풍경의 경험’은 실 공간의 시각체험과는 전혀 다른 시각체험을 생산해낸다. 이러한 요소를 다채로운 영상 구성으로 관객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제공했다.

미학을 전공했다는 관객 임정훈(남, 27) 씨는 끊임없이 대칭적으로 영상이 꿈틀대며 등장하는 모습을 보며 ‘영상의 탄생과 죽음을 대칭적인 자궁의 이미지에 비유한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실제로 감독은 건물 주차장 복도의 이미지를 재구성하여 이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렇듯 보는 사람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험영화의 열린 재미를 논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밖에도 복사된 신체 이미지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진 <지난 날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운드와 이미지 사이의 관계를 탐색한 <귀를 기울이면>, 사람들의 소통법을 탁구에 비유해 표현한 <대화법–2. 탁구>, 네트워크 사회의 연결성 문제를 다룬 <접속>, 필름 입자와 운동의 조합이 빛과 반응하는 과정의 에너지를 시각화한 <우리가 등장함으로> 등이 소개됐다.

▲ '국내 경쟁 EX-Now 5' 출품작 모음.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증발', '시간의 침묵', '교토 댄스', 'Living Symmetry'. ⓒ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공식 홈페이지

또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오래 전 꾸었던 꿈을 상기시키는 <시간의 침묵>, 불교 악기중의 하나인 singing bowl을 사용해 스크린 안에서 자연스러운 흐름과 부자연스러운 긴장감을 나타낸 <어웨이큰 Awaken>을 비롯해 <교토 댄스> <그녀의 이미지> <증발> <진실 [모순] 거짓> 등의 작품이 등장했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영상을 본다. 하지만 제대로 보고 있을까? 실험영화는 낯설다. ‘우리가 매일 먹는 김치를 초콜릿으로 만든다면’이라고 상상하는 것만큼이나. 하지만 이루어질 것 같지 않고, 만들어질 것 같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도 실험영화이니 할 수 있는 시도가 아닐까?

낯선 도시를 찾은 이방인은 처음 대하는 음식을 먹을까 말까 망설이다가도 꼭 먹어보는 것, 그것이 그 도시를 가장 잘 아는 방법일 수 있다. 아직 실험영화를 맛보지 않은 당신이라면, 7일까지 진행되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에 가서 첫 경험을 해 보자. 모든 프로그램은 무료로 상영돼 부담 없이 관람할 수 있다.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