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 제정임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우리 사회에 유명브랜드 신발과 의류가 막 대중화되기 시작했던 30여 년 전, 대학가에서도 은근히 상표를 따지는 분위기가 번져나갔다. 청바지의 '리바이스'나 '죠다쉬', 운동화에 붙은 '나이키'나 '아디다스' 등의 로고를 과시하거나 그걸 부러워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반면 정치적 억압의 시대에 대학생이 저항의 선봉에 서야한다고 생각한 학생들은 그런 분위기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말뿐인 공생, 실종된 동반성장

그런 어느 날, 한 남학생이 학교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왔는데, 친구들이 모두 배꼽을 잡고 뒤로 넘어갔다. 고무신 발등에 시커멓게 '나이키'라고 써 넣었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나이키일 리가 없는 하얀 고무신. 그걸 신고 호기롭게 캠퍼스를 누볐던 그는 겉치레에 집착하는 일부 학우들을 꼬집은 것일 테다. 그런데 그 후 나는 그 맥락과 상관없이, 이름과 실상이 맞지 않는 어떤 것들을 볼 때마다 '나이키 고무신'을 떠올리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 첫 해인 2008년 8ㆍ15 경축사에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내걸었을 때 불현듯 '나이키 고무신'이 떠올랐다. 4대강 사업 등 대규모 토목공사로 강바닥을 파내고 습지 등 생태환경을 파괴하고 있으면서 녹색성장이라니. 환경운동가들이 절대 '녹색'으로 인정하지 않는, 가공할 위험을 지닌 원자력발전소를 더 지어 원전밀집도 세계 1위를 만들려고 하면서 녹색성장이라니. 이 얼마나 '나이키 고무신스러운' 작명인가.

이듬해 나온 '친서민 중도실용' 구호도 그랬다. 그해 3월 출자총액제한제를 없애는 등 각종 규제를 풀어 재벌의 경제력집중에 '모터'를 달아주고,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텃밭과 자영업자들의 골목상권까지 잠식하도록 해 놓고는 친서민이라니. 대기업과 부유층은 감세의 단맛을 만끽하게 하고, 노동자들에 대해선 '비정규직 100만 해고대란설'까지 퍼뜨리면서 열악한 처우를 고착하려 한 정부가 친서민이라니.

2010년의 '공정사회' 구호도 마찬가지다. 집권 이후 '고소영(고려대 소망교회 영남)', 'S라인(서울시 인맥)'등의 신조어가 쏟아질 만큼 편향된 인사가 이어졌고, 고위공직 지명자마다 병역기피, 위장전입 등의 비리가 굴비두름처럼 나왔던 이 정권에서 공정이라니. 차명계좌와 탈세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건희 삼성 회장을 2009년 말 사면함으로써 '유전무죄의 유구한 전통'을 재확인한 이 정부가 공정사회를 외쳤을 때, 많은 이들이 중얼거리지 않았을까. '너나 잘 하세요'라고.

지난달 8ㆍ15 경축사에서 이 대통령이 강조한 '공생발전'은 앞서 내놓은 모든 구호의 집대성이라고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개발과 자연생태의 공존,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을 지향한다. 시대적 요구를 제대로 짚어냈는데, 역시 또 하나의 '나이키 고무신 작명'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기업 중소기업 공생을 말하면서도 바로 그 일을 위해 일찌감치 구성했던 동반성장위원회를 '식물기구'로 만들고 있지 않은가. 노동자의 협상력을 높여 정당한 대우를 받게 해야 공생이 될 텐데, 사용자만을 위해 공권력을 동원하고 있지 않은가. 대기업과 부유층에게서 충분한 세금을 걷어 복지 등 안전망을 확충해야 할 텐데, '부자감세'는 계속하고 복지확충은 '포퓰리즘'이라 곤란하다지 않는가.

미국의 위기에서 교훈 얻어야

로버트 라이시 미 버클리대 교수는 최근 펴낸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2008년 금융위기의 근본원인이 대공황 때만큼 극심해진 미국사회의 소득불평등을 대출 확대로 미봉하려던 데 있었다고 지적했다.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극심한 사회불안으로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심화되는 양극화, 불어나는 가계부채 등으로 신음하는 우리와 무관하지 않은 진단이다. 정부의 '공생' 구호가 끝내 '나이키 고무신 작명'에 머문다면 라이시의 전망이 우리의 내일이 될 지도 모른다.


* 이 칼럼은 한국일보 9월 6일자 <아침을 열며>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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