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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여행하며 속을 끓였던 까닭
빠르고 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에 신음하는 국토
경쟁지상주의 탈피, 개발주의 제어하는 언론활동 절실
2011년 08월 30일 (화) 21:32:22 이봉수 hibongsoo@hotmail.com

   
올여름 영국에 볼일이 있어 출국한 김에 유럽을 여행했는데, 지난 5일에 마침 <비비시>(BBC)가 한국 관련 뉴스를 심층보도하는 게 아닌가. 한국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이 일하지만 휴가는 1년에 평균 11일밖에 안 간다는 내용이었다. 한국인은 휴가를 가면 자신이 불필요한 사람으로 여겨질까 봐 두려워하고 고용주들은 휴가를 떠난 직원과도 연락이 닿기를 바란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막상 유럽의 관광지에는 휴가 나온 한국인이 너무나 많으니 어찌된 걸까? 지레짐작으로 내린 결론은 한국인은 휴가도 일 처리하듯 한다는 것이다. 유럽인이 순회여행보다 휴양지 한곳에 틀어박혀 그야말로 여유를 즐기려 한다면, 한국인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한 많은 곳을 돌아다니려 한다. 배낭여행은 한국 여행업계 최대 히트 상품이고, 방학이면 우리 젊은이들이 이른바 ‘스펙’을 쌓기 위해 줄줄이 외국으로 향한다.

나 또한 영락없는 한국인임을 확인한 여행이기도 했다. <비비시>가 보도한 것처럼 숙소를 예약할 때는 인터넷이 잘 되는지를 첫째 조건으로 삼았고 숙소에 도착하면 컴퓨터를 연결해 보고서야 안도했다. 휴가는 거의 매일 장소를 옮겨가며 하는 ‘일’이었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상소가 쓴 책을 일부러 갖고 다니며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를 실천하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국인은 어느새 경쟁지상주의가 속속들이 내면화해,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거나, 멀티태스킹, 곧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해야 안도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더 빨리, 더 높이, 더 세게’는 육상선수권대회의 구호만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지침이 되고 말았다. 느린 것은 게으르고 무능하며, 낮고 작은 것은 열등하고, 오래된 것은 낡았다고 생각한다. 나라 재정이 빚더미에 오르건 말건 좁은 국토는 온통 고속철도와 고속도로로 훼손되고, 도시의 익숙한 공간들은 초고층빌딩에 밀려난다. 그러나 개발주의자들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는 끝내 보복을 당하기 시작했다. 산사태와 도시홍수가 그것이다.

환경감시는 유럽 언론이라면 가장 중요시하는 기능 중 하나이다. 20만부 안팎의 작은 신문 <인디펜던트>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1면 머리기사로 끈질기게 보도해 세계적 이슈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한겨레>를 포함한 한국 신문은 재해가 발생하자 한동안 지면을 펼쳐 정부를 탓하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 조용해졌다. 정부의 책임이 크긴 하지만 우리 모두의 의식구조 속에서 진정한 원인을 찾고 지속적으로 의제를 끌고 나가는 곳은 없었다.

개발은 곧 성장과 발전이라는 확고한 믿음 속에 언론은 빠르고 크고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을 무한 확대하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제2롯데월드는 그런 믿음의 바벨탑이다. 한국에서 일고 있는 초고층빌딩 경쟁은 미국에서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지을 때 공황이 닥쳤던 것처럼 음울한 조짐인지도 모른다. 한국 언론이 경탄해 마지않던 두바이에서도 마천루의 저주를 목격하지 않았던가. 신도시 하나가 공중에 건설되는 것과 다름없는 제2롯데월드를 허가해줄 때도 교통영향평가 등만 형식적으로 했을 뿐이다. 도시홍수가 문제가 되는 시대에 그 ‘신도시’가 배출할 엄청난 하수에 신경 쓰는 언론은 없었다.

사실상 지방자치단체의 관할 밖에 있는 군부대의 자연 훼손도 심각하다. 기자들이 수없이 지나다니는 길목인 과천 남태령 꼭대기에 군부대가 산림을 베어내고 골프연습장을 지어놓았는데도 눈길 한번 주는 언론이 없다.

4대강 사업을 둘러싼 언론의 공방은 한국 언론의 수준을 드러낸다. 자연 훼손과 생태계 교란 그리고 타당성 여부가 가장 큰 쟁점인데도 최근에는 엉뚱하게 홍수 피해 논쟁으로 번졌다. 대통령과 보수신문들은 4대강 사업 이후 홍수 피해가 줄었다며 사업의 타당성을 강변했다. <한겨레>가 사설(11일)에서 지적했듯이 4대강은 전 정부에서 재해예방 사업이 거의 끝나 본류에서 홍수 피해가 난 적이 없다. 뇌출혈과 뇌졸중도 실핏줄이 터지는 것이다. 4대강에 과잉투자된 돈은 지류·지천이나 복지 쪽으로 돌렸어야 했다. 막대한 재정적자를 생각한다면 오히려 쓰지 않는 게 더 타당했다.

   

그러나 <한겨레>도 4대강 사업에 관한 한 처음에는 ‘운하가 아닐까’ 하는 의혹을 제기하는 데 집중하면서 환경과 생태계 파괴 문제를 지적하는 데는 소홀한 측면이 없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4대강에 사라지는 내성천 모래밭’(12일) 같은 기사는 반가웠다. 빠름에 대한 욕망은 찻길뿐 아니라 물길까지 직선으로 바꾸어놓았다. 굽이굽이 흐르면서 물을 정화하고 동식물을 길러내고 빼어난 경관을 보여주던 우리의 4대강을 단순한 ‘수로’ 또는 ‘하수구’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한 곳을 먼저 시행해보는 방법도 있었는데 모든 강 모든 구간에서 전격적으로 착수한 것도 조급증 때문이었다. 

토목으로 입신한 대통령의 눈에는 곱게 깔린 모래와 자갈이 골재로만 보였을까? 직선으로 콘크리트 둑을 쌓아 직강화해놓은 게 자랑스러웠을까? 그렇지 않고서야 4대강 사업 관련 홍보물 등을 전시하는 녹색성장 홍보체험관 건립에 900억원을 들일 생각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한번 훼손되면 복원하기 힘든 자연에 손을 대는 일은 신중해야 하기에 여론수렴은 필수적이다. 강정마을 진통도 대형 개발사업 추진과정의 비민주성을 그대로 보여준다.

유럽의 풍경이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던 건 자연경관 때문만은 아니었다. 튀는 고층건물보다 수수한 건물이 전체 도시를 아름답게 한다는 사실, 낡은 것은 편안함이고 느린 것은 여유로움이라는 사실을 재발견했다. 작은 것이 아름답고 짧은 것이 곧 긴 것이었다. 근무시간이 짧아지면 휴식시간이 길어지지 않던가. 내가 보고 싶어한 것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변하지 않고 서 있는 것이었다. ‘나라는 망해도 산하는 그대로 있다’(두보: 國破山河在) 했는데, 산과 하천마저 온통 망가지고 있는 조국의 풍경이 자꾸만 대비됐다.


* 이 기사는 <한겨레>와 동시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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