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를 말하다]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 "현실? 고민하는 척도 안해"

▲ <오월愛>는 5·18 광주시민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육성을 직접 담아 제작한 다큐멘터리다. ⓒ 시네마달

살다 보면 그 존재만으로 감사함을 느낄 때가 있다. 어릴 땐 미처 몰랐던 우리를 감싸고 있는 소중한 존재들. 태양, 공기, 물과 흙 등등. 어릴 적 뭇 아이들을 설레게 했던 그러니까 땅·불·바람·물·마음의 반지가 모이면 등장하는 영웅 '캡틴 플래닛'도 아닌 이게 무슨 낭만적인 소리냐고?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를 만났다. 아는 사람은 다 안다는 독립영화판의 일등공신 중 한 사람이다. "독립영화는 결국 우리에게 공기와도 같은 겁니다" 독립영화에 대한 그의 정의였다.

간첩 혐의로 고국 땅에서 거부당한 재독학자 송두율 교수의 이야기를 담은 <경계도시> 시리즈, 광주민주화항쟁 산 증인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전했던 <오월愛>, 한 대학생과 쿠바 청년의 사랑을 통해 한국과 쿠바 사회를 재조명한 <쿠바의 연인> 등을 <시네마달>에서 배급했다. 면면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극영화가 아닌 다큐, 그것도 인디 다큐를 전문적으로 배급하는 곳이 시네마달이다.

독립영화전용관은 전국에 하나밖에 없어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있는 시네마달의 사무실은 아담했다. 건물 1층 카페에 김일권 대표와 마주앉았다. 대표라는 직함이지만 <송환> <택시블루스> <은하해방전선>을 제작해 피디로 이름을 알려온 그였다. 그만큼 뼈아픈(?) 이 바닥의 현실에 대해 엿들을 수 있을 법 했다.

 - 다들 독립영화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왜 이것이 중요한가에 대한 논의는 생략되어 있다. 대체 왜, 얼마나 중요한 것일까?

"흔히들 문화 다양성을 얘기하지 않는가? 얼마나 다양한 의견과 목소리가 사회에 함께 어우러져 있는가가 한 나라의 문화수준, 발전수준을 가늠하는 잣대가 될 수 있다. 독립 영화는 우리 주변은 물론 사회 소수자의 목소리 등 다양한 목소리를 전할 수 있고 다양한 취향들을 담아낸다. 보다 대안적이고 한두 발짝 앞서 간 실험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전체적인 문화 수준 높이는 거다.

영화 산업 면으로 봐도 건강을 유지하려면 독립영화가 얼마나 만들어지고 상업 영화와 서로 교류하고 자극을 주는가에 따라 파이도 커지고 영화산업 전반의 영향력도 커진다. 결국 (독립영화는) 공기와 같고 유기농 채소와 같은 거다. 근데 유기농은 비싸기라도 하지 독립영화는 참 저렴하다.(웃음)"

▲ 시네마달의 김일권 대표. ⓒ 시네마달

- 지금은 배급을 하고 있지만 제작 피디로 데뷔 한지 십 년이 조금 넘었다. 독립영화부문에서 잔뼈 굵다고 할 수 있는데 독립영화분야의 큰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아무래도 배급이 아닐까 한다. 인디영화 극영화나 다큐나 마찬가지겠지만 전국에 독립영화전용관은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에서 운영하는 거 하나고 예술영화 전용관이라고 해봐야 전국에 30개가 안 된다. 극장 개봉, 온라인, 방송 등. 방송도 지상파, 케이블 등 배급의 영역이 다양한데 독립영화는 이들 상영관과 온라인밖에 없다.

방송국이라 봐야 KBS <독립영화관>이란 프로가 없어졌다가 생긴 것 하나, 그리고 케이블에 '인디필름'인가 하는 전문채널이 있지만 아직까진 힘겹게 버티는 것 같다. 이것 빼곤 케이블이나 지상파에서 독립영화를 볼 기회가 없다. 그렇다고 CGV 채널 등에서 독립영화를 쿼터로 트는 것도 아니고. 배급의 통로가 여전히 한계가 있다."

- 독립영화의 수익구조도 상업영화의 그것과 비슷할 텐데 어떤 상황인가?

"30개가 채 안 되는 극장과 온라인에서 무언가 이뤄내지 않으면 딱히 활로가 없다. 독립영화에서 만 명 관객이 흥행의 상징적 숫자로 얘기되지 않나? 그거 홍보비용을 빼고 얘기하는 거다. 홍보와 배급 비용 정도가 회수되는 거지 제작사의 제작비가 환수되거나 감독이 다음 작품을 할 수 있는 차원은 아니다. 심각한 거다. 사실상 (독립영화를) 만드는 데 의미 두는 거다."

- 영화를 틀 공간이 부족하단 건 독립영화 관련한 여러 제도적 틀을 만들어 가야 하는데 출발도 못 한 상황 아닌가?

"그런 거다. 정부 당국은 '너희 독립영화전용관 하나 있잖아' 하고 마는 거다. 우리나라 전체 스크린이 2200개 정도 된다. 그중에 20여 개지 않나? 정부가 영화산업에서 독립영화가 차지하고 비중을 단 1%도 안 보고 있단 얘기다."

- 그럼 아까 언급한 주요 상영관에서 일정 시간 독립·예술 영화를 틀어주는 '독립영화쿼터제' 이런 것도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하나가 대안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다양한 사람들이 머리 맞대고 실험해서 우리 현실에 맞는 방법 찾으면 된다. 지금은 그런 시도도 고민도 안 하고 있다. 화제가 되는 독립영화 나오면 반짝 관심 갖고 그 뒤론 아무것도 없다. 대통령이 와서 영화를 봤는데 시스템이나 정책 운영은 더 후퇴하는 이게 웃긴 거 아닌가. 제2, 제3의 <워낭소리> <똥파리> 나오려면 제도와 구조 측면을 고민해야 하는데 상황적으론 주목받았는데 내용적으론 실행된 게 없다."

관객과 '직접' 만나며 소통하는 독립영화

그가 몸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깨친 한국독립영화의 취약점은 배급 문제였다. 김일권 대표는 '새롭고 다양한 만남'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여러 실험을 하며 일종의 대안을 만들어 가던 중 내놓은 방안 하나가 바로 '공동체 상영'이었다. 지역사회 주민, 학교, 관공서 등을 돌면서 직접 영화를 들고 대중들과 만났다. 그만큼 품이 더 들었지만 반응은 꽤 좋았던 편. <경계도시2>로 첫 만 명 관객을 기록한 이후 <쿠바의 연인>이나 <오월愛>등의 감독들과 함께 직접 관객을 만나면서 한국독립다큐의 저력을 실감하고 있다는 그였다.

▲ <오월愛>의 김태일 감독(좌)이 관객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우측에 김일권 대표가 함께 서 있다. ⓒ 시네마달

- 독립영화 그것도 왜 하필 극영화가 아닌 다큐영화의 배급을 작심했나?

"시네마달이 배급을 시작할 2008년 당시에 개봉할 수 있는 다큐가 많아지고 있었고 공동체 상영 등 대안적 배급의 실험도 많았다. 그런데 그런 일들을 좀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단위가 없었다. '인디스토리' 하나 정도? 다큐도 하긴 했지만 극영화 중심인 곳이었다. 특화시킬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완성된 다큐를 공동체 상영하며 상업화시키자는 얘기가 있었다. 다큐는 만들어지는데 극장과 만날 기회가 적으니까 그걸 만들어보자는 취지였다. 그래서 다큐 중심으로 시작한 것이다."

- 영화를 배급하는 데에 다큐가 극영화보다 특별하거나 다른 점이 있을 것 같다.

"다 알겠지만 극영화엔 배우도 있고 이야기가 있다. 반면 다큐는 관객들이 낯설어하기도 하고 다루는 내용 또한 어렵거나 무겁기 쉽다. 특별히 관심 있지 않으면 궁금해하지도 않고. 너무 우울한 특별함인가? (웃음)

일의 기간이 좀 더 긴 편이다. 우린 다른 영화 배급이나 홍보보다 더 일찍 시작한다. 블로그도 일찍 하고 글도 더 많이 올린다. 극장 개봉 이후 바로 공동체 상영회로 연결되니까. 보통 극영화는 개봉하면 바로 다음 영화로 넘어가지만 다큐는 개봉 전부터 개봉 이후 좀 더 늦게까지 관리를 한다."

- 지금까지 배급한 작품 수가 150편이나 된다. 그동안 현장에서 여러 뜻깊었던 순간이 있었을 법하다.

"(잠시 고민한 후) 지난 5월 광주에서 <오월愛> 시사회를 한 적이 있다. 5·18 재단 대강당에서 시사했는데 1층만 5~600석으로 꽤 크다. 어느 순간부터 그런 단위의 큰 공동체 상영 진행이 잘 안 됐기에 기대를 안 하고 있었는데 생각했는데 많은 분이 오셨다.

광주 시민을 대상으로 광주 이야기를 처음으로 공개하는 거라 긴장도 많이 했었다. 어떻게 볼까 노심초사였는데 생각보다 젊은 친구들도 많이 봤다. 보고 나서 울기도 했다. 자기 부모님의 이야기, 막연히 듣기만 하던 걸 영화를 통해 구체적으로 접하니 놀라기도 하더라. 광주에 산다는 자부심을 갖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5·18을 앞두고 광주에서 시사회 했다는 자체가 의미 있었다."

- 시스템과 구조상 독립영화 시장이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왔다. 반대로 생각하면 좋은 영화들이 나오고 사랑받는 것을 보니 그만큼 저력 있다는 말 아닐까.

"그렇게 볼 수 있다.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독립영화 하는 분들이 고군분투한다. 회차나 상영시간대가 안 좋은데도 그걸 굳이 찾아보는 충성도 높은 관객들도 있고 말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지금 시스템에서 힘든 건 사실이지만 말이다.

더 많은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요즘 감독들이 관객과의 대화를 굉장히 열심히 한다. 지방 곳곳에 가고 관객이 몇 명 모이지 않아도 같이 가곤 한다. 만들 때도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거다. 그렇게 힘을 쏟는데 다음 작품을 위한 충분한 보상 있지 않으면 얼마나 힘들겠나."


* 이 기사는 <오마이스타>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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