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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기술인의 사회’를 만들 것인가
[전문가칼럼] 홍은주
2011년 08월 27일 (토) 10:57:29 홍은주 lucyhong08@naver.com

   
▲ 홍은주 한양사이버대 교수(전 iMBC 사장)
세상에는 드물지만 창조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소수의 사람들이 무에서 유를 만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들이 만들어낸 가치사슬 속에서 일하면서 사회를 구성해 나간다. 시인이나 예술가처럼 정신적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술처럼 유형의 가치를 창조해 내는 사람들도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유형의 기술적 가치 창조자는 거의 대부분 이과나 공과대학에서 나온다. 과거 20년간 미국 경제를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이끈 빌 게이츠가 그렇고 전통적 휴대전화의 4대 천황이었던 노키아와 삼성, LG, 모토로라를 단숨에 침몰시키고 스마트폰의 눈부신 세상을 만들어낸 스티브 잡스가 그렇다. 페이스북의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는 중ㆍ고등학교 시절 프로그램을 만들기 시작했으며 하버드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다.
 
기술가치 창조자의 역할은 세계로 열린 시장인 글로벌 시대에 더 빛이 난다. 가령 아이폰4의 미국 판매가격은 600달러가 넘는데 납품제조 원가는 178달러에 불과하다. 아이폰의 부품은 일본과 한국, 독일이 만들고 제조는 중국이 하는데도 대부분의 돈은 애플이 가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 제도는 이 같은 기술가치 창조자들이 도저히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이다. 고등학교 교육제도 자체가 오로지 암기식 대학 위주의 교육에 맞춰져 있어 창의적인 기술교육이 가능하지도 않고 '안전한 자격증' 지상주의인 사회 분위기 때문에 머리 좋고 창조적인 이과 인재들은 의과대학에 줄을 서는 형편이다. 그나마 지금까지 창의적 기술인재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공학과 기술을 배우고 전념할 수 있도록 역할을 해 온 것이 명문 실업계 고등학교의 역할이었다.
 
실업계는 일반계 고등학교 커리큘럼과 달리 일정 시간을 기술과 실무교육에 할애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명문 실업계 고등학교들은 열심히 시설과 설비에 투자하고 정보기술(IT)과 각종 디지털 미디어, 해킹 방지, 인터넷, 정보 등 전문교육을 시행해 기술인재들이 고등학교 때부터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해왔다. 가장 창의적으로 기술지식을 흡수할 나이인 고등학교 때부터 관련 교육을 받다가 동일계 진학제도를 통해 이과대학이나 공과대학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그야말로 기술인재, 기술가치 창조인재들이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 역할을 해 온 것이다.
 
그런데 최근 정부가 갑자기 이과계 실업고등학교의 동일계 진학을 막는 조치를 발표했다. 실업계 고등학교를 졸업해 직장에 취업한 학생들에게만 동일계 진학혜택을 준다는 것이다. 해당 기업에서 적당히 일하다 대학 진학을 하려는 실업계 졸업학생에게 좋은 일자리를 줄 리도 없고 아무리 머리가 좋은 기술인재라도 직장에 취업해 몇 년 일하다 보면 가치창조와는 거리가 먼 '보통인재'로 전락할 것이다. 명문 실업계 고등학교는 사실상 문을 닫으라는 통보인 것이다. 그래서 요즘 명문 실업계 고등학교들과 재학생, 졸업생, 부모들은 갑자기 내려진 사망선고에 넋이 나간 상태다. 이대로 가면 명문 실업고등학교 지원자들은 모두 일반고등학교에 진학해 눈부시게 발전하는 기술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대학진학용 사회탐구 커리큘럼에 몰두할 것이고 나중에는 의대 진학 대열만 길어지게 될 것이다.
 
누구나 교육은 백년대계라고 한다. 교육이 정말로 백년을 내다보는 중요한 일이라면 이렇게 시합 도중에 경기 규칙을 갑자기 바꿔서는 안 된다. 애플과 구글의 움직임에 숨을 죽이고 우리도 '크리에이티브 리더(Creative Leader)'가 필요하다고 외치면서도 잠재적 창조기술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는 유일한 교육통로를 이렇게 하루아침에 막아버리는 황당한 사회, '죽은 기술인의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 이 칼럼은 <아시아경제>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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