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가 톈안먼 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학생들과 시민들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유혈사태를 일으켜 중국 현대사에 큰 충격을 준 정치적 참극

이후 민주화 요구시위는 전국적으로 확대되고 톈안먼에서는 지식인, 노동자, 일반 시민 등 100만 명이 연일 대대적인 집회를 개최했다. 1989년 6월 4일 새벽 계엄군이 톈안먼 광장에서 무기한 농성을 벌이던 학생, 시민들에 대한 무력진압을 전개, 군의 발포로 수천 명의 희생자(중국 정부는 200명 사망 주장)가 발생하는 최악의 유혈사태가 발생하였다.

덩은 상하이 시절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황에서 사업을 하고 있던 아버지의 지인들을 찾아가 거액의 돈을 빌려 공산당 자금으로 쓰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톈안먼 사태를 유혈 진압하면서 수백, 수천 명을 희생시키는 것은 덩의 입장에선 일관성을 보여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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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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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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