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아직은 척박한 환경에서 꿈 키우는 피겨선수 조경아

지난 달 7일 자정, 자크 로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평창”을 외치는 순간 많은 국민들은 각자 올림픽 선수라도 된 듯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그 순간, 진짜로 평창 무대에서의 영광을 꿈꾸고 있는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조경아 선수(14·과천중)는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트위터에 “평창이닷!ㅋㅋ”라고 썼다. 7년 후 평창 동계올림픽 무대에서 화려한 피겨 연기를 펼친 뒤 메달을 목에 거는 그 순간을 그리면서.

경쟁의식 아닌 우정으로 똘똘 뭉친 샛별 5인방

▲ 97년생 동갑내기들. (시계방향으로) 조경아, 이호정, 박연준, 김해진, 박소연 선수.

조 선수는 지난 1월 태릉빙상장에서 열린 제65회 전국 남녀종합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 여자 싱글 주니어부에서 우승을 차지해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았다. 김해진, 박소연, 박연준, 이호정 등 동갑내기 피겨 샛별 5인방 중 마지막으로 국가대표가 된 조 선수는 무엇보다 친구들과 함께 훈련을 할 수 있어 신이 났다고 한다.

“친구들이랑 같이 훈련하게 돼 좋고 (김)연아 언니, (곽)민정 언니랑 함께 훈련한다는 사실이 새로웠어요. 분위기도 좋고 재밌어요. 민정 언니가 분위기메이커고요. 친구들 만나면 쉬는 시간에도 수다 떨고 스케이트 타다가도 한마디 툭 던지고 지나가고요. (웃음)”

지난 6월 태릉빙상장에서 만난 조 선수는 동갑내기들과 경쟁하기보다 서로 응원하며 힘든 훈련시간을 즐겁게 견뎌내고 있다고 말했다. 끈끈한 동료애로 똘똘 뭉친 5인방은 피겨 세대교체의 주역들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조경아 선수와 어머니 신윤정씨. ⓒ 정혜정

조 선수는 초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처음 스케이트화를 신었다. 안양종합운동장 실내빙상장에서 진윤기 코치(34)에게 피겨를 배우기 시작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실력이 눈에 띄게 늘자 차츰 선수로서 목표를 갖게 됐다. 어머니 신윤정씨(46)는 매일 딸에게 물었다고 한다.

“경아야, 오늘 목표는 뭐야?”
“더블악셀 (공중에서 2바퀴 반 회전한 후 착지하는 점프)을 완벽하게 뛰는거야.”
“그래, 오늘은 더블악셀 하나만 뛰어도 성공이겠다.”

모녀는 매일 작은 목표를 세웠고 어린 경아는 그 목표를 하나씩 이뤄나갔다. 나날이 실력이 늘었지만 시련의 순간도 있었다. 2009년 마지막 날 지상훈련 도중 발목을 삔 것이다. 전국남녀종합 피겨스케이팅 선수권대회를 일주일 앞둔 시점이었고, 이 부상 때문에 대회에서 기량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하지만 절치부심, 1년 후 대회에서는 주니어부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다.

'피겨 여왕' 나온 나라임에도 훈련 환경 여전히 아쉬워

▲ 태릉국제스케이트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일반인에 개방하고 있다. ⓒ 태릉선수촌홈페이지

꿈에 그리던 국가대표가 된 조 선수는 훈련 환경이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일반인들 사이에서 마음 편히 연습하기 힘들었던 이전과 달리 국가대표 선수촌인 태릉에서는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는 실내빙상장에서 훈련을 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피겨스케이팅, 쇼트트랙, 아이스하키 3종목의 국가대표들이 함께 이용하기 때문에 한 종목을 여유 있게 타긴 어렵다. 실내빙상장은 오전 6시에 문을 열어 오후 10시에 닫는데 피겨스케이팅선수들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훈련한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400미터 트랙을 갖춘 태릉 국제스케이트장은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 장소다. 그런데 이곳은 등록 선수(06시~08시, 18시~20시)와 국가대표 선수(08시~10시, 16시~18시)를 위한 훈련시간보다 일반(10시~19시)에게 공개된 시간이 더 많아 선수들이 한 곳에서 훈련하지 못하고 한국체대 빙상장 등 여기저기 옮겨 다니고 있다. 조 선수는 이런 점이 아쉽다고 한다.

“전지훈련을 가보니 외국 링크는 일반 개장 시간보다 선수들을 위한 훈련 시간이 많아서 부러웠어요. 우리는 그게 안 되니까 밤늦게까지 훈련하고 또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타야하는데 그게 좀 힘들어요.”

지난 8일 단비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국제스케이트장 관리자는 선수보다 일반인에게 더 많은 시간을 개방하는 것에 대해 “태릉선수촌은 대한체육회에서 관리하는 것이고, 우리는 정해진 규칙을 따를 뿐”이라고 말했다. 관리자에 따르면 비수기(3월~6월, 10월)에는 하루에 300~400명, 성수기(11월~2월) 때는 1천 명에서 많게는 2천여 명이 국제스케이트장을 찾는다고 한다.

▲ 조경아 선수가 웃으며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정혜정

중학생 조경아의 일상은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촘촘히 짜여있다. 집에서 태릉선수촌까지는 꼬박 1시간 거리. 오전 9시에 태릉실내빙상장에 도착해 지상훈련으로 몸을 풀고 10시 부터 12시까지 코치에게 레슨을 받는다.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먹고 사이버 강의로 학교 수업을 대신한다. 이 시간에 가끔 마사지를 받기도 한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는 다시 지상훈련 시간이다. 스트레칭, 계단뛰기 등을 반복하며 체력을 보강한다. 지상훈련이 끝나면 표현력과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 발레 학원으로 향한다. 발레 학원에서 돌아와 저녁을 먹고 집 근처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에서 빙상훈련으로 하루를 마감한다. 밤 12시까지 스케이팅 연습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새벽 1시. 다음날 오전 훈련을 위해 바로 잠자리에 든다.

▲ 조경아 선수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 정혜정

국가대표 훈련 때문에 학교 수업을 할 수 없어 대신 듣는 사이버 강의는 제도적으로 제공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적으로 온라인 학습 사이트에 가입해 하루 1~2개 강의씩 공부하는 것이다.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중 김연아(21‧고려대)와 김민석(19‧고려대)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중고등학생들인데, 이들은 오전 10시에서 오후 2시 사이에 태릉빙상장에서 훈련하고 이후 과천시민회관링크장, 목동아이스링크장 등을 돌며 밤늦게까지 연습하느라 수업에 참여할 수 없다. 그래서 대부분 빙상장과 빙상장을 옮겨 다니는 시간에 짬을 내 사이버강의를 듣거나 학교 숙제를 해결한다. 어린 선수들은 이런 일상이 버겁고, 수업과 훈련을 체계적으로 병행할 수 있는 여건이 허락되기를 희망한다.

▲ 연아언니와의 만남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조경아 선수. ⓒ 정혜정
조 선수는 가장 닮고 싶은 선수로 ‘연아 언니’를 꼽았다. 그러자 옆에 있던 어머니가 ‘연아 효과’를 설명했다.

“연아 선수가 얼굴만 보여줘도 애들 태도가 달라져요. 애들이 힘들어서 펜스에 붙어 있다가도 연아 선수가 링크에 등장하면 (활주)속도를 높이고 점프를 뛰기 시작해요. 연아 언니한테 잘하는 모습 보여주고 싶어서요. (웃음) 연아 선수 등장 자체가 후배들한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후배들은 ‘피겨여왕’ 김연아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김 선수는 또 그런 후배들을 위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훈련 환경 개선을 촉구하지만 현실은 그리 빨리 나아지지 않는 듯 하다. 

열심히 연습해서 ‘연아 언니의 영광’을 이어가겠다는 조 선수 옆에서 신 씨는 조심스럽게  어머니로서의 바람을 내비쳤다.

“오늘 행복하지 않다면 어떻게 내일의 행복을 꿈꿀 수 있겠어요.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면서 경아가 즐겁게 스케이트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린 선수들이 좀 더 안정적으로 훈련할 수 있는 공간, 보다 충실하게 공부를 병행할 수 있는 환경이 허락됐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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