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미세먼지 국민소송 첫 재판 열려

지난해 최악의 미세먼지로 온 국민이 불편을 넘어 공포를 느끼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 국민들이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미세먼지 손해배상 재판이 시작됐다. 한-중 양국 정부가 미세먼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않고, 특히 ‘중국발 미세먼지'가 국민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하는데도 우리 정부가 중국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는 책임을 묻는 국민소송이 재판에 들어간 것이다.

▲ 미세먼지로 온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가운데 한국과 중국 정부를 상대로한 미세먼지 국민 소송 재판이 시작됐다. ⓒ Pixnio

작년 5월 소송제기, 중국 정부 불출석에 1년반 지연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6부(재판장 박상구)는 12일 오전 10시 서울지법 민사법정 565호에서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우리 국민 91명이 한-중 양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미세먼지로 인한 손해배상’ 소송의 첫 재판을 열었다. 이 소송은 작년 4월 최 대표 등 국민 7명이 ‘한국 정부가 미세먼지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고 중국 정부도 오염원 관리를 제대로 못해 우리 국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1인당 300만원씩 모두 2100만원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면서 제기했다. 작년 5월에는 원고를 91명으로 늘리고 피해배상액도 2억7300만원으로 늘려, 중국정부에 재판 참석을 통보했으나 끝내 불응해 1년 6개월여가 지난 이날 첫 재판이 열렸다.

이날 재판에서는 원고와 피고 출석 여부를 확인한 뒤 한국 정부 대리인의 의견을 청취했다. 대리인 이국현 변호사는 “대한민국 정부는 그동안 미세먼지 해결을 위해 다각적으로 노력해왔고 해결을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며 “원고가 주장하는 법적 책임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앞서 서류로 제출한 답변서에서 “정부는 미세먼지 원인 파악과 대응책 마련을 꾸준히 하고 있고, ‘고의 또는 과실, 법령 위반 여부, 법령 위반과 손해 사이에 인과 관계가 없으므로’ 정부의 법적 책임은 없다”고 주장했다.

정부 “법적 책임 없다”, 원고측 “전국민 건강 문제, 정책 전환해야”

소송을 제기한 국민 91명의 대리인인 지현영 변호사는 “손해 증명과 과실에 따른 인과 관계를 막연하다고 정부가 주장할 수는 있지만, 국가 배상 문제이고 국가에 책임을 묻는 소송인만큼 그 요건을 완화하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이번 미세먼지 소송은 전 국민의 건강을 위해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응과 정책 변화를 촉구하기 위한 것인 만큼 피해 입증을 명확히 할 수 있는 피해자들만이 아닌 일반 국민도 참여해 제기했다는 것이다.

원고측은 또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환경부 자체 노력만으로는 해결 불가능하다”며 “에너지 정책, 노후 자동차 문제 등 전 부서에서 다각적이고 종합적으로 다뤄져야 할 문제인 만큼 전 정부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가 미세먼지 문제를 국가적 아젠다로 해야 한다고 해놓고 구체적인 조처가 없는 점도 지적했다. 원고측은 특히 중국은 '생태 문명 건설'을 내걸고 그동안 환경보호 관리 감독 개선 상황을 되돌아보며 엄격한 환경보호 감독과 단속을 상시화 하는 데 반해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문제 해결 태도는 너무 소극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재판은 시민들이 환경오염으로 정부에 구체적인 피해에 대한 치료비 등을 청구하기 위해 진행됐던 종전 소송들과 달리 전반적인 미세먼지 대책을 제대로 세우지 못한 정부의 정책 전환과 적극적 대응을 요구하는 것이 특징이다.

뉴델리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나쁜 서울 공기

원고들은 2017년 3월 21일 미세먼지 오염 정도가 참을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자 수많은 사람들이 각종 호흡기 질환으로 고통받고 면역력 저하로 위기에 처한 만큼 아이들과 가족의 생존권을 위해 소를 제기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울의 공기품질지수는 179로 인도 뉴델리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나빴다.

또 미세먼지 원인을 명확히 밝히고 한국과 중국 정부가 상호 협력하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중국을 상대로도 소송을 진행하게 됐다. 중국이 국제 사회 일원으로 오염물질을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오염원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상세한 설명과 자료 제출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서도 중국이 특히 과도한 탄소 배출로 지구온난화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대표적인 국가여서 대한민국 정부와 함께 피고로 지정했다.

이번 소송에 참여한 ㄱ씨는 지난해 3월 춘천 봉의산 전망대에 오르고 난 뒤 천식 증세가 나타났다. 검사 결과 상세 불명의 천식으로 판명됐고, 이후로도 호전되지 않아 미세먼지에 따른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원고들은 “모든 국민은 행복추구권을 가지며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가 있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통치기간에는 미세먼지 대응책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고 원인이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며 “이로 인해 야외활동을 맘껏 즐기지 못하는 등 정신적 고통을 입은 데 따른 위자료를 청구한다”고 말했다.

원고 소송 대리인 배영근 변호사(법무법인 자연)는 “미세먼지 문제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가 중국과의 관계에서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도 밝혀주길 원한다”며 “그동안 정신적 손해만 청구해 왔는데, 앞으로는 원고들이 개인적으로 미세먼지에 대응하기 위해 구매한 간이측정기나 병원비 등 경제적 비용에 대한 재산적 손해까지도 추가로 청구를 늘려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과 타국 상대 동시 소송은 처음

환경재단에 따르면 본국과 타국 정부를 상대로 동시에 진행되는 환경소송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환경 문제와 관련해 국가 간 소송에서 조정으로 해결된 사례는 있다. 캐나다 콜롬비아강 연안 트레일에 있는 민간 용광로가 배출하는 아황산가스가 미국의 워싱턴주의 농작물과 삼림자원에 손해를 끼쳐 미국과 캐나다간 논쟁이 발생한 트레일 제련소 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이 사건은 국경을 초월한 대기오염이라는 새로운 사례에 국가의 관리 책임을 적용하고 인정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는 판결이다.

▲ 환경재단 미세먼지센터는 지난 3월 국회의원회관 앞에서 '국회, 정부, 지자체가 뿌연 하늘을 방치한 것을 엄중히 경고한다'는 기자회견을 갖고 국회의원에게 옐로우 카드를 전달하는 캠페인을 벌였다. ⓒ 환경재단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진행된 서울 대기오염 소송이 있다. 이 소송은 대기오염으로 고통받고 있는 천식환자 23명이 국가와 서울시, 자동차회사를 상대로 진행한 국내 최초의 대기오염 소송으로 의미가 있었지만 원고가 패소했다.

재판부는 한중조약에 따라 재판 참석을 요구하는 문서를 중국정부에 송달했지만 도달 여부를 회신받지 못해 현 상태로는 중국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우선 우리 정부만을 대상으로 공판을 진행하기로 했다. 지 변호사는 “중국과의 문제는 협력하는 방식으로 해나가는 게 낫다고 판단해 중국을 대상으로 하는 추가 소송계획은 아직 없다”며 “앞으로 대한민국 정부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다른 나라를 피고로 한다는 것이 국제법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국민의 생명을 위협한다는 예외 사항으로 중국정부의 재판 출석을 계속 촉구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국선 국민소송 승소, 정부정책 전환 계기

외국에서는 영국의 비영리단체 클라이언트 얼스(clientearth: 지구의 고객)가 영국의 환경 정책이 대기오염을 감축하는 데 미흡하다며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적이 있다. 이 소송은 영국 정부가 환경정책 방향을 재정립하는 계기가 됐고, 고등법원도 영국 정부에 환경정책 개선을 명령했다.

지 변호사는 “이번 소송은 정부가 제 구실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건강을 유지하기 위한 비용이 들었다는 자각을 하게 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며 “우리 국민이 정부 정책은 위에서 밑으로 하달되는 것만이 아니고 국민이 정책을 바꿔 나가는 인식의 변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두번째 재판은 12월 7일 오후 3시 30분에 열리며 원고측 증인신문을 한다.


편집: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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