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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달리다 뒤돌아보는 인디언처럼
[글케치북] ‘빠른 95년생’의 회한
2018년 09월 05일 (수) 09:38:39 이연주 PD joann2001@hanmail.net
   
▲ 이연주 PD

"너는 생일이 언제야?"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흔히 받게 되는 이 질문은 나에게 스트레스였다. 나는 95년 4월 15일 태어났지만, 주민등록상으로는 95년 2월 26일로 등록돼 94년생들과 함께 학교를 다닌 '빠른 95년생'이기 때문이다.

90년대 한창 조기교육이 유행이었을 때 태어난 나는, 조기교육 열풍에 힘입어 내가 태어나지도 않은 날이 생일이 되었다. 학창시절 나는 94년생을 따라가느라 바빴다. 아니 93년생, 92년생들까지 따라가려 애썼다. 초등학생이 공부해야 할 산수를 유치원 때 배웠고, 초등학교 때는 중학생 때 배워야 할 영어 문법을 익혔다.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에 잘 적응하기 위해서 미적분을 배웠다. 남들보다 앞서나가야만 성공할 수 있는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계속 뛰어가야 했다.

앞서가려 뛰기만 했던 학창시절. 대학은 다를 줄 알았다. 다른 사람들을 쫓아가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대학도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재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았다. 선배뿐 아니라 후배들도 저마다 위를 향해 쫓아가고 있었다.

   
▲ 내 꿈이라고 했던 길이, 사실 다른 누군가의 기대와 꿈이 아니었을까. ⓒ pxhere

나는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다. 여유롭게 영화도 찍고 음악도 만들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면 졸업 후에 내가 들어갈 회사는 없었다. 토익 점수가 남들보다 10점은 더 높아야, 대외활동을 하나라도 더 해야 내가 가고 싶은 회사에 한 발자국 가까워질 수 있었다.

그러다 대학마저 졸업했다. 진로를 찾으라는 부모의 조언에 쫓기듯이 대학원에 진학했다. 잠시 멈춰 나를 돌아보니 내가 없었다. 지금까지 나는 부모의 기대와 선배들의 조언, 누군가 이루어 놓은 삶을 따라가기 바빴다. 누구보다 빨리 더 멀리 가기 위해 노력했는데, 정작 진짜 나는 뒤에 놔두고 달려왔다.

라캉은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한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타인’은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의식의 세계와 별개로 타자처럼 존재하는 ‘타자성’을 말한다. 나는 이 말을 내 멋대로 해석했다. 현대인은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걸 하는 게 아니라 남이 나에게 기대하는 일을 한다. 남의 욕망을 내 욕망인 것처럼 받아들여 결과적으로 남들과 똑같이 되고 만다.

돌아보면 나는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 살아왔다. 주위 동료들도 모두 기자나 PD가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구나,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내가 정말 무엇을 욕망하는지는 뒷전이었다. 나는 사라지고 없었다. 그리고 빨리 달려야 했다. 인디언은 말을 타고 빨리 달릴 때 가끔 뒤를 돌아본다고 한다. 영혼이 너무 뒤처져 따라오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빠른 몇 년생’은 사라졌고, 지금은 조기교육이 아닌 적기(適期) 교육이 유행이다. 빨리 가는 것만이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셈이다. 사람들은 남들만큼 공부를 잘해야 한다거나 큰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깨어나고 있는 듯하다.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을 놓치지 않고 즐기려 한다. 현재는 다시 돌아오지 않으므로.

빨리 가면 남들처럼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된다. 느리더라도 현재의 나와 함께 발맞춰 걸어 가야겠다. 느리게 살면서 더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아야겠다.


 편집 : 박선영 기자

[이연주 기자]
단비뉴스 시사현안팀장, 전략기획팀, 미디어콘텐츠부 이연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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