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지 부양 대신 인플레 잡아야 ‘저성장 고물가’ 극복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고광철의 생생토크

박경철(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이번 한 주는 무기력과 공포가 주식시장을 지배했습니다. 미국 부채 협상 타결 이후에 시장 변동성이 커졌고, 유럽에서 시작된 재정위기가 미국을 거쳐서 다시 유럽을 강타하면서 세계 증권시장이 패닉(공포) 상황으로 빠져들었습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RB)가 ‘2년간 제로(0)금리 유지’라는 역사상 최초의 결정을 내렸지만 프랑스 위기설이 또 불거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현행 3.25%로 동결했습니다. 8월 둘째 주, 국내외 경제를 진단해보겠습니다. 함께 해 주실 두 분은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고광철 소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입니다. 증시의 변동성이 엄청났던 가운데 증권사직원이 목숨을 버리기도 했는데, 돈이 우리 삶에 너무 많은 영향력을 미치는 것 같지 않습니까?

고광철(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장): 주가폭락으로 자살한 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돈에 대한 배금주의가 만연한 것은 사실입니다만, 시장의 움직임에 투자자들이 일희일비(一喜一悲)하는 것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국민의 대부분이 주식 투자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식으로 인해 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지만 여기서 벗어나 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주식시장의 움직임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그로 인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타격을 받는 투자 패턴이나 풍토가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이런 가운데서도 빚을 내서 투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풍토나 관행이 개선돼야 하지 않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박: 저는 청년들이 제게 ‘돈은 어떤 의미입니까’하고 질문하면 ‘돈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인간적인 존엄성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적 존엄성을 누릴 수 있을 만큼의 돈은 성실과 노력, 근면으로 획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럴 수 없는 사회는 건강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존엄성을 누릴 수 있는 만큼의 돈 이상을 욕망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의 문제이니 중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실과 노력, 근면의 가치로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가질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두려움이 이런 상황의 원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 교수): 네, 많이 노력했는데도 갈수록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누릴 최소한의 돈을 벌기 힘든 그런 사회가 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감을 갖고 구조를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서울 뿐 아니라 피해 입은 지방, 외곽 지역에 관심 기울여야

박: 존엄한 삶, 참 중요한 문제인데요. 그 와중에 태풍이 지나갔지 않습니까? 농민 할아버님이 물 폭탄을 맞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이 TV에 나왔습니다. 서울에 물 폭탄이 떨어져서 외제차가 잠기면 큰 이슈가 되지만 다른 곳에서는 생존의 문제에 쫓겨도 일과성 뉴스로 처리되는 상황입니다. 이런 분들 도울 방법이 없겠습니까?

고: 지금도 이런 큰 재해나 재앙이 닥쳤을 때 정부가 재해 예비비를 동원해서 돕고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늘 그렇지만 상당히 부족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국회에서 추경을 편성해서라도 도와달라고 정부에 압력을 넣고 있는데, 정부는 나름대로 현재의 예비비로 충당해보려는 그런 상황입니다. 이런 공적인 자금으로 돕는 데 한계가 있기 때문에 언론사들이 수재민 돕기 모금도 하는데 이런 운동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부나 지방자치단체들이 피해 규모를 좀 더 정확하게 산정해서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서라도 돕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서울에서 피해가 있었을 경우 집중적인 조명을 받았지만, 서울에서도 외곽지역은 많은 피해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보도가 되지 않았습니다. 지방은 더욱 그렇고요. 이런 경우에도 정부가 좀 더 제대로 피해를 산정해서 도와주려는 노력이 절실한 것 같습니다.      

제: 농업은 예로부터 천재지변에 많이 좌우됩니다만, 유럽에 출장 가보니 선진국일수록 농업 재해와 관련한 보험들이 많이 발달돼 있더군요. 규모가 큰 농가도 많고, 제도도 잘 되어있고, 그에 대한 인식도 잘 돼있는 편인데, 우리도 하늘만 바라보는 ‘천수답 농업’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양한 농업 재해 대비 보험이 마련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지금도 있기는 하지만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보험에 대한 농민들의 인식도 충분하지 않고요. 다양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는 보험이 정교하게 마련되고, 농어민들이 충분히 인식하고 활용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박: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서울 강남에서는 수해복구를 위해 자원봉사자들이 나섰는데 지역 주민들은 참여를 안 한다는 얘기도 있고요. 참 어떡하면 좋죠? (웃음) 자, 경제도 안 좋은데 날씨까지 악재를 보탠 한 주였는데요, 두 분께서는 어떤 뉴스에 주목하셨습니까?

고: 지난주와 마찬가지로 이번 주에도 요동치는 국제 금융시장과, 그로 인해서 국내 증시가 큰 충격을 받고 있는 상황이 가장 큰 관심을 끌었고요. 두 번째로는 조남호 한진중공업 회장이 귀국을 함으로써 한진중공업 사태가 어느 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인지에 주목했습니다. 또 하나는 부산저축은행의 부실로 인한 예금자들의 피해 구제에 관한 것입니다. 예금보호 법정한도인 5천만 원이 넘는 사람들, 더 많이 예금을 한 사람들이라든지 후순위채를 산 사람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를 놓고 정치권과 정부가 상당히 공방을 벌였지 않습니까. 그게 상당히 중요한 뉴스가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제: 미국의 신용등급이 강등되면서 세계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고 있는 것과, 조남호 회장 귀국은 고 소장님 생각과 같습니다. 세 번째로 지금 영국에서 실업과 빈곤에 찌든 청년층이 중심이 된 폭동 사태가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부분이 있어서 주목했습니다.

박: 앞의 두 가지는 피할 수 없는 이슈였던 것 같고, 저는 경제 이슈는 아니지만 글로벌 위기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서울시의 무상급식 투표 진행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주목했습니다. 일단 금융시장 이야기, 피할 수 없지 않습니까.

세계경제 3대 엔진이 위험요인 내포, 국가별로 대응체계 마련해야

제: 미국의 위기, 유럽의 위기에서 영국의 폭동까지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세계사의 현장을 요즘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선 현재의 금융시장 불안을 촉발한 직접적인 계기는 신용평가회사인 에스엔피(S&P)가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이었던 트리플에이(AAA)에서 더블에이플러스(AA+)로 한 단계 강등한 것이죠. 여기에는 미국정부와 의회가 국가부채한도를 상향조정하는 과정에서 채무불능사태, 즉 디폴트 위기는 피했지만 재정지출을 10년 동안 2조4천억 달러 줄이는 계획 때문에 미국경제의 회복이 앞으로 더 어려워질 것 같다는 판단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자산으로 평가되던 미국 국채 신용등급이 강등됐다는 소식이 각국 금융시장에 충격을 주면서, 우리 증시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큰 폭으로 떨어졌습니다. 이후 벤 버냉키 미 연준 의장이 미국의 기준금리를 앞으로 2년 동안 안올리겠다, 제로로 묶어두겠다는 발표를 해서 시장이 진정되는 기미도 있었습니다만 앞으로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남부유럽의 재정위기가 중심 국가인 프랑스의 은행 위기로 번질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것을 포함해서 추가적인 불안 요인이 많기 때문에 세계 금융시장은 한 치 앞도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박: 고 위원님, 정부나 중앙은행은 최종대부자 역할을 하고 있고, 마지막 보루인데요. 지금은 이게 흔들리고, 반대로 예전에 손 벌렸던 기업이나 금융부문은 오히려 조금 나아진 반대 상황이 됐습니다. 앞으로 각국 정부간의 국제 공조는 잘 될 수 있을까요?

고: 2008년 말 금융위기를 되짚어본다면 국제 공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에는 상당히 국제 공조가 잘 이루어져서 재정을 풀어 위기를 극복해 왔는데 풀어놓은 재정을 어떻게 거둬들일 것인가, 즉 출구전략을 쓰는 시점을 놓고 공조가 깨졌습니다. 각국이 서로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 출구전략을 늦추거나 당기면서 먼저 살겠다는 움직임을 보여서 이미 국제 공조가 깨진 상태고요. 세계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미국 내에서조차 경제에 대한 미국 행정부의 리더십이 무너졌습니다. 이번에 S&P가 등급을 낮춘 것도 단순히 재정적자, 정부 부채가 많다는 것뿐만이 아니고 그 부채를 해결해 나갈 능력이 미국 정부와 정치권에 없다는 것 때문입니다.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이 없는 상태, 그리고 이를 도와줄 유럽도 지금 남유럽과 북유럽으로 갈가리 찢긴 상태 아닙니까. 이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이제 세계 경제를 뒷받침할 만한 나라가 중국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그러나 중국도 물가 때문에 지속적으로 금리를 낮춘 상태를 지속하기가 어렵고 오히려 금리를 올려야 할 상황이어서 위험한 세계경제를 떠받칠 수 있도록 힘을 합치고 공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나라는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그래서 국제 공조라는 것은 서로가 말은 할 수 있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지 않나 생각합니다.

박: 제 교수님, 금융위기가 지금 유럽-미국-유럽-미국 하다가 이제 프랑스까지 유탄을 맞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이 화살이 어디로 가겠습니까?

제: 지금 유럽-미국-유럽-미국 하는 상황이 상당 기간 계속되리라고 보고요, 프랑스만 해도 남부 유럽을 구제해 줄 국가였는데 금융위기가 확산되면서 채권자인 프랑스 은행들의 위기까지 거론되는 것이니까 어디까지 번질 것인가가 굉장히 걱정되는 부분입니다.

박: 스위스 빼고 다 큰일 났다는 이야기를 하죠.

제: 네, 그렇습니다. 미국과 유럽은 세계 경제의 큰 구매자들 아닙니까. 큰 수출시장이죠. 중국이나 우리나라는 선진국 시장에 상품을 많이 수출해서 먹고 사는 나라들입니다. 현재 금융시장이 출렁이고 있습니다만, 이 상황이 그대로 가면 중국이나 한국 같은 동아시아 수출 국가들의 실물경제에도 타격이 전이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세계 경제의 3대 엔진으로 과거엔 미국, 유럽, 일본을 꼽았는데 지금 일본은 지진과 원전사고의 여파로 수렁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새로운 세계 경제의 3대 엔진으로 일본을 빼고 중국을 넣어서 미국, 유럽, 중국을 이야기하는데, 중국도 지금 물가상승 때문에 경착륙이 우려되는 상황에 있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위기가 장기화하면서 중국의 실물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이 추가되고 중국까지 경착륙하게 되는, 그래서 세계경제의 3대 엔진이 다 힘이 빠지고 문제가 생기는 상황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박: 저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적이 바로 중국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미국이나 프랑스가 부도날 일은 만무하니까요.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진짜 적은 무엇이냐, 이 상황에서 만약 중국의 산업생산이 둔화되거나 수출이 둔화되면서 경착륙으로 가면 이것은 진짜 대형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네, 우리한테는 특히 그렇죠. 제 1의 수출입, 교역 상대니까요.

국민의 삶의 질 고려한 성장 고민할 단계

박: 고 위원님, 그런 측면에서 우리도 나름대로 대처를 해야 하는데, 지금 중국에 대한 무역 의존도가 22%라면 미국의 두 배가 넘지 않습니까. 이게 우리가 마음대로 어찌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요. 지난번 금융 위기 때는 정부에서 나름대로 유동성을 공급 한다든지 금리를 낮춘다든지 하는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우리 역시 한은 총재가 기준금리를 동결한다는 발표만 했습니다. 그렇지만 또 물가는 잡겠다는 이야기를 이전에 했고요. 우리에게 지금 가능한 합리적 대책이 있는지, 어떻게 보십니까. 

고: 정부의 대책이라고 하면 재정과 금융 두 가지로 나눠 볼 수가 있겠습니다. 금융에서는 물가 때문에 금리를 좀 올려야 할 상황 같지만 현재 국제 금융시장의 침체를 우려해 한국은행이 연 3.25%의 금리를 올리지 않은 것입니다. 당분간 현재의 수준에서 완화 기조를 유지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했고요. 다른 어떤 나라보다 건전하기 때문에 재정 쪽에서 실탄을 활용할 여력은 있습니다만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와 달리 복지가 늘어나는 추세에 있어서 이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추가로 재정을 지출하는 상황은 어려울 것입니다. 즉, 통화 정책은 현재 기조를 유지하고 재정에서는 별다른 대책이 없을 것이라고 봅니다. 다만 금융시장, 즉 주식시장과 외환시장의 변동성을 완화하는 수준의 대책은 있을 것입니다. 금융위원회가 공매도를 금지했지 않습니까? 주가가 떨어질 때를 노리기 때문에 주가 하락을 자초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공매도를 3개월간 금지했는데, 저는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이 주가 하락을 막는 효과가 크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변동성을 조금 줄여보자는 소극적인 조치라고 할 수는 있겠습니다. 이렇게 외환시장이라든지 주식시장의 변동성을 줄이는 정책은 동원되겠지만 세계 경제에 대한 뾰족한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수출의존도가 거의 100%에 가까울 정도로 높기 때문에 과연 수출을 어떻게 할 것인가, 수출 지역을 어떻게 다변화할 것인가 그리고 환율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가, 내수를 어떻게 늘릴 것인가 하는 것들을 중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대로 금융 쪽에서는 더 이상 대책이 없을 것 같고 재정을 동원할 수도 없기 때문에 내수를 늘리기 위해서는 뭐니 뭐니 해도 기업이 돈을 쓰게 만들어야 됩니다. 투자를 하게 만들어야죠. 제도적으로 규제를 완화하면서 기업이 투자를 하게 만들고 내수 확대를 이끌어나가는 것이 중장기적인 대책이지, 우리가 달리 단기적으로 세계 경기 침체에 대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은 별로 없어 보입니다.  

박: 제 교수님, 미국이나 유럽 같은 경우는 경기가 나빠졌지만 그 나라 정부에게는 재정 지출을 감행하면서 경제를 살릴 여력이 없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을 다 채운 셈이니 방법이 없죠. 그나마 신흥국들은 국가 재정지출을 좀 무리하면 할 수 있으니까 일정 부분 경기를 부양할 수는 있겠습니다. 문제는 우리도 설령 국채를 발행해서 재정 투입을 한다 하더라도 통화 완화 기조까지 유지한다고 하면 물가 부분이 심각해진다는 것입니다. 지금 생산자 물가는 급등해 천장까지 뚫렸습니다. 그런데 한은 총재는 물가 4%를 잡겠다고 이야기했단 말이죠.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하면서 물가 4%를 잡겠다는 것은 절대로 배고프지 않게 먹을 것은 실컷 먹는데 체중은 유지하겠다는 말과 같이 들립니다. 그래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있느냐, 이것은 레토릭, 즉 수사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 측면에서 겁이 나는 것이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물가는 올라가는데 경기는 둔화되면 백약이 무효한 그런 상황 아니겠습니까. 여기에 대해서 선제적인 무엇인가를 해야 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제: 우리가 스태그플레이션, 즉 저성장 고물가라는 아주 심각한 상황까지는 아직 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성장이 둔화하면서 물가가 올라가는 완만한 의미의 스태그플레이션 단계에 들어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아까 말씀하셨듯이 먹을 것 실컷 먹으면서 체중을 유지하겠다는 것이 허무맹랑한 목표인 것처럼, 성장도 목표대로 성취하고 물가도 잡겠다는 무리한 두 마리 토끼 잡기를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책의 우선순위를 명확하게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성장 목표에 집착하지 말고 성장의 ‘질’에 집중해야 합니다. 수출 대기업들이 밖에 나가서 돈을 많이 벌어왔지만 대기업 창고에만 쌓여 있어서, 국내총생산(GDP)는 증가하는데 국민의 삶의 질과는 아무 상관없는 그런 성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장률은 조금 낮을지 몰라도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성장, 내부에서 돈이 돌아 충실하게 내수가 진작되는 성장 전략을 써야 합니다. 한 쪽으로는 고물가를 잡기 위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출 대기업에게 여러 가지 지원을 집중하고 고환율 정책을 쓰는 정책을 지양해야 합니다. 대신 내수를 기반으로 하는 중소기업들이 보다 많은 투자와 고용을 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에게 지원을 집중하는 방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서민들과 빈곤층에게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가는 복지 정책을 통해서 양극화의 한 쪽 끝단에서 점점 더 쓸 돈이 없어지는 계층의 구매력을 높여주어 내수가 잘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재정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건 사업 대신 복지나 교육에 투자를 하면 내수 진작에 효과가 큰 것으로 나옵니다. 이렇게 내수가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재정 지출을 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무슨 돈으로 감당할 것이냐 하는 재정 건전성의 문제가 나오겠죠. 미국의 경우에는 부유층의 감세를 유지하면서 재정 지출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경제가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평가를 받아 신용등급도 강등되고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그 방향을 따라가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유층이나 대기업들에 예정돼있던 법인세 등의 감세 계획을 철회하고 오히려 담세 능력이 있는 계층에게 일정 정도 증세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금을 부담할 충분한 여력이 있는 계층이 책임을 분담해서 재정을 확충하고, 확충된 자원을 중소기업과 서민, 빈곤층을 위해서 투자의 개념으로 쓰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박: 고 위원님, 이것도 상당히 논쟁적인 주제이긴 한데 버냉키 의장이 2년 간 금리를 동결하겠다는 선언은 일반인이 듣기에는 평범해 보이지만 사실상 중앙은행이 물가를 포기하겠다는 말 아닙니까. 중앙은행의 목표 자체가 전환되는 중대사건 내지는 중대선언이었을 수도 있는데 그만큼 상황이 급합니다. 미국이 그렇게 나올 정도라면 우리도 금리·환율 정책에 대해서 다양한 의견들을 모아야 될 것 같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고: 2년 간 제로 금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제가 알기로는 중앙은행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중앙은행은 바로 오늘 오후에 하는 금리 회의의 내용도 예고를 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입니다. 2년 동안 금리를 올리지 않겠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는 것이죠. 하나는 2년 동안 미국 경제가 좋아질 가능성이 적다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그렇기 때문에 통화정책은 지속적인 완화 정책으로 가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경제 우선순위를 따진다면 당장 급한 것은 물가 안정입니다. 7월 달에도 소비자물가가 4.7%나 올랐고 이번 폭우로 인해서 생선, 야채 등 모든 물가가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물가를 잡는 게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금리 정책을 쓸 수 있는 형편이 안 됩니다. 미국이 2년 동안 제로 금리를 유지하는데 우리와 금리 차이가 계속된다면 미국에 있는 많은 돈이 우리나라로 쏟아져 들어올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게 되면 또 다시 환율이 떨어지고 원화 값이 비싸지기 때문에  원화 정책이 딜레마에 빠진 것 아니겠습니까. 올해 외국 투자 기관들은 대체로 한국은행이 한두 차례 정도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한국은행이 금리를 동결했고 또 미국이 제로금리를 2년 간 유지하기 때문에 최소한 올해는 금리를 못 올리거나, 물가를 걱정한다면 한 차례 정도 올리는 선에서 통화정책을 마감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제 교수님 말씀에 많이 동의를 하는데, 세금을 통해 재정을 확보하는 것도 동의하지만, 일부에서는 그것이 성장을 둔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합니다. 법인세율 인하 같은 경우 철회하는 쪽으로 지금 이야기가 되고 있지 않습니까. 이 경우에도 대외적으로 약속한 사안이고, 기업들이 투자를 늘리도록 유도하는 시점인데 철회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 않느냐 하는 지적도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

박: 그런 부분들에 대한 의견 조율이 필요한데 저는 일단 소득세의 경우에는 세율 단계를 좀 개편했으면 좋겠어요. 예를 들면 8천만 원 이상의 소득자에게는 일괄적으로 소득세를 매기고 있는데 사실 저도 포함되겠지만 왜 내 세금 걱정을 정부에서 해주냐, 나는 1~2% 정도 더 내도 아무 문제없다는 분들도 많아요. 단계를 좀 더 늘려서 1억 이상의 소득자, 2억 이상의 소득자, 10억 이상의 소득자는 조금 더 담세하도록 하는 거죠. 한 5억 버는데 세금 1~2% 더 낸다고 해서 가계가 흔들리겠습니까. 이런 담세에 대한 선량한 자세 변화도 필요하다고 봅니다. 다음 주제로 조남호 회장 귀국 얘긴데요, 제 교수님, 기자회견을 보시면서 소회가 어떠셨습니까.

정리해고 타당성, 재교육 체계, 사회안전망 등 제도개선 논의하는 청문회 되어야

제: 글쎄요, 국회에서 불러도 안 나오고 54일 동안 해외로 돌아다니다가 드디어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기대감을 좀 갖지 않았겠습니까. 혹시 뭔가 해결의 카드를 갖고 오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농성하는 사람들의 유일한 요구가 정리해고를 철회해 달라는 것인데 그것은 안 된다는 얘기더군요. 사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간의 행적도 그렇고, 이번에 내민 카드도 그렇고, 과연 책임 있는 경영자의 자세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정리해고라는 것이 경영상 불가피한 상황일 경우 할 수 있도록 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제도니까 ‘무조건 불가능하다’, ‘정리해고는 없어져야 한다’고 하는 것은 현행법 상 어렵다고 봅니다. 그러나 보도된 내용을 종합해보면 한진중공업이 지난 연말에 ‘배를 수주하지 못해서 인력을 줄여야 한다’고 정리해고를 했는데, 그 부분에서 먼저 경영책임을 져야할 수주 담당 임원은 문책이 없었습니다. 또 노조의 주장에 따르면 과거 여러차례 노사 분규가 있었을 때 다음에는 절대로 정리해고를 하지 않겠다는 몇 차례의 노사간의 약속이 있었는데 이를 깬 것이라고 합니다. 해당 경영진은 책임을 묻지 않고 오히려 임원들의 평균 연봉을 올려준 것, 주주들에게 주식배당을 한 것 등을 종합할 때 과연 경영상 불가피한 사유에 의한 정리해고인지, 아니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유일한 목적에서 노동자들을 쓰다 버리는 부품처럼 생각을 한 것인지에 대해서 철저한 규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청문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조남호 회장을 불러놓고 그 부분들에 대해 차근차근 따져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고 위원님, 지금 이 사태를 보면 조남호 회장은 사용자 측의 상징적인 전선에 서 있는 느낌이 있고, 조남호 회장이 물러날 경우 선례가 된다는 사용자 측의 전체적인 생각을 대신해 방패로서 서있는 느낌입니다. 반대로 근로자 측은 여기서 막지 못하면 앞으로의 고용 안정성은 기대할 수 없다고 해서, 겉으로 보면 한진중공업 대 노동자의 문제지만 사실 궁극적인 3자들은 뒤에 다 있단 말이죠. 이 상황에서 청문회가 열리는데, 청문회의 방향이 어떻게 가야한다고 보십니까.

고: 이번 사태는 보는 사람에 따라서 너무나 극명하게 엇갈리는 사안입니다. 그래서 어느 한 쪽으로 평가하기 조금 어렵습니다만 저는 조남호 회장이 청문회에 서기까지 사태가 악화된 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한두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정리해고가 이루어지고 지난 6월 27일 노사간의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미 합의가 이루어진 사안에 대해서 노동단체라든지 야당, 진보 단체가 희망버스를 기획하면서 이 사태가 사회적으로 굉장히 주목을 받게 되었고요. 그 와중에 김진숙 민노총 지도위원이 타워크레인에 올라가서 200일 이상 농성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관심을 끌었는데 기업의 노사 문제를 노사간에 맡겨두고, 법 테두리 내에서 해결 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관행도 필요합니다. 이것을 정치, 사회적 문제로 확산시켜가는 것도 곤란하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제 청문회가 이루어지면 조남호 회장은 증인으로 출석을 하게 되고 김진숙 위원은 참고인으로 와 달라고 했는데, 김진숙 위원이 정리해고 철회 없이는 내려가지 않겠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청문회가 열려도 김진숙 위원이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조남호 회장이 경영자, 경영 그룹의 상징처럼 되어있는데 이게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 문제에만 포커스를 맞춰서 한 기업인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으로 초점이 맞춰진다면 우리 사회에 큰 도움이 안 됩니다.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나서 한 경영자가 50일 이상 해외에 다녀왔다, 참 문제가 많다는 식으로 청문회를 이끌기보다는 이런 정리해고가 과연 법적으로 타당했는지, 정리해고자들의 고충과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우리의 사회안전망은 충분한 것인지 짚어봐야 합니다. 그리고 정리해고자들을 재교육시키기 위한 사회적인 직업 교육체제는 제대로 되어있는지, 그 사태의 저변에 깔린 정규직, 비정규직의 격차는 완화시킬 방법이 없는 것인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가 청문회를  열려면 한 기업인을 데려다 놓고 매도하기보다는 이런 제도적인 개선 방안을 이끌어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굉장히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박: 말씀하신 대로 근로자들의 고충, 그리고 97년 외환위기 이후 진행돼온 노사관계 변화에 대해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전기가 되면 좋겠는데, 문제는 의원님들이 그럴만한 의지를 가진 분들인지 하는 생각도 들고요.

고: 그렇게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박: 오늘 금융 이슈가 너무 중요했기 때문에 런던 사태는 다뤄보지도 못했네요. 오늘 두 분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 기사는 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 상 생략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8월 13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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