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특강] 박상현 메디아티 콘텐츠랩장
주제: 스타트업 미디어, 이렇게 뽑는다

서울 대학로 옛 샘터사옥에서 열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강정수 메디아티 대표 강연 뒤에 박상현 콘텐츠랩장 강연으로 이어졌다. 박 랩장은 메디아티의 협업공간에 둥지를 튼 스타트업 미디어들을 소개한 뒤 학생들 견학을 인도했다.

메디아티가 입주한 옛 샘터사옥은 지난해 9월 다음커뮤니케이션 이재웅 창업자가 인수해 ‘공공일호’ 사업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가 김수근 씨가 공공성과 상업성이 조화를 이루도록 설계했는데 김성구 샘터사 대표가 출판업을 계속하기 위해 건물을 내놓자 이재웅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가 인수했다. 이 창업자는 건물의 공익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메디아티처럼 공익성이 있는 업체에 싼값으로 임대하고 있다.

▲ 이재웅씨가 설립한 부동산회사 공공그라운드의 첫 번째 사업장인 공공일호는 옛 샘터사옥으로 대학로의 상징적 건물이다. Ⓒ 이민호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하기 전 샘터사는 건물 4층을 월간 <샘터> 사무실, 지하층을 샘터파랑새극장으로 운영했고, 1·2·3층은 카페나 은행에 임대했다. 공공그라운드가 인수하지 않았으면 8층 건물을 지어 임대수익을 많이 올릴 수 있는 곳이었다. 빨간 벽돌과 담쟁이 넝쿨이 조화로운 벽면, 시민들이 오가거나 비도 피할 수 있는 1층 개방형 통로, 노점 상인이나 버스 운전사에게도 열린 화장실, 김수근의 제자인 건축가 승효상이 개조한 전망 좋은 5층 직원식당 ‘도래샘’까지 모두 사라질 뻔했다.

▲ 공공일호 건물 1층의 개방형 통로는 건축 설계에 공공성이 접목된 사례로 회자된다. Ⓒ 이민호

공공일호는 이윤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공공그라운드 ‘임팩트 투자’의 결실이었다. 메디아티는 2월에 장충동에서 옮겨와 <샘터>가 떠난 4층에 자리 잡았다. 건물 설립 취지와도 잘 맞았다. 올드 미디어가 있던 자리에 뉴미디어의 실험장이 생긴 셈이다.

박상현 콘텐츠랩장은 “(메디아티의) 투자자는 손해 볼 각오로 공격적인 투자를 하라고 한다”며 “다른 창업 투자자들이 미친 짓을 한다는 얘기를 한다”고 전했다. 그만큼 미디어 산업은 채산성을 맞추기가 힘든 시대가 됐다. 그는 언어 문제가 크다고 했다. 영어는 전세계가 사용하기에 <뉴욕타임스> 같은 미디어는 전세계를 대상으로 수익을 낼 수 있다. 반면 남북한을 합쳐도 한국어 사용자가 1억이 안 되는 환경은 한국어를 쓰는 미디어의 생존을 어렵게 한다.

박 랩장은 “메디아티는 수익이 안 나올 가능성이 높은 매체에 투자한다는 점에서 엔젤투자자가 맞다”고 말했다. 메디아티는 투자하면 안정적으로 돈 되는 분야에 투자하는 회사가 아니다. 방송·신문 등 전통 매체조차 시청자·독자가 점점 줄어 미래 수익을 걱정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새로운 미디어 모델을 발굴하겠다고 나선 게 메디아티다.

수익성 고민보다 더 중요한 것

“저희가 해외 미디어를 기초부터 분석해 어떻게 작동하는지 연구하는 ‘미디어 리버스 엔지니어링’(MRE)이라는 행사를 합니다. 좋은 사례들을 소개하고 연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근본적인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영어 매체로 작동하는 모델이 이렇게 작은 시장에서 작동할 수 있겠냐는 겁니다.”

▲ 강연 중 질문을 받고 있는 박상현 콘텐츠랩장. Ⓒ 이민호

세계적인 저널리즘 연구기관인 하버드대 니먼랩(Nieman Journalism Lab)과 인터뷰할 때나 <뉴욕타임스>와 협업 미팅을 할 때 외국 손님들이 메디아티가 투자하는 스타트업의 수익 모델이 뭐냐고 묻는다. 박상현 랩장은 답할 때마다 담배 한 대를 꺼내 피우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게 어렵다는 얘기다. 메디아티의 첫 투자 사례인 <닷페이스>는 ‘닷페이스 피플’이라는 기부 가입 모델을 만들어 행사 초대 등 혜택을 주는데 수익 창출을 위한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메디아티는 ‘런웨이’ 단계에서 스타트업의 운영진과 비즈니스 모델을 연구한다. 6개월 프로그램인 이 단계에서 4천만원을 투자하고 협업 공간을 제공하며 맞춤형 교육과 멘토링을 실시한다. 메디아티의 더 중요한 목표는 젊은이들이 직접 만든 디지털 미디어로서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오는 ‘플레이어’를 찾는 일이다. 당장 돈을 버는 캐시카우를 만들기보다 미디어 스타트업 투자와 멘토링으로 성장해 우선 의미 있는 미디어로 성장하면 그 다음에 먹고 사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고 자연스레 새 투자자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랩장은 “각 분야에서 레거시 미디어가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다면 그것이 의미 있는 플레이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 어떻게 투자하나

박상현 랩장은 “콘텐츠 제작 투자를 논의하는 회의를 막 마치고 강연장에 왔다”면서 “새로운 팀과 3개월 넘게 논의해왔는데 무엇보다 콘텐츠를 만드는 열정을 본다”고 했다. 공대생이 박수받는 무대를 만들고 싶다는 <긱블>의 박찬후 대표를 예로 들었다. 그는 콘텐츠에 미쳐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핵이 터지면 삼겹살은 어디에서 익을까’라는 영상은 이틀 밤을 지새우고 3일 만에 나왔다. 팀원들과 뜻이 안 맞아 도움을 못 받는 상황에서, 만화 같은 영상을 만드는 툴도 배워가면서 만들었다.

“콘텐츠를 만들 때 중요한 것은 비디오 전공이 아닙니다. 구글 뉴스랩 팰로우십 지원자 면접을 보면 포트폴리오 영상을 설명하면서 자신이 ‘야매’로 배웠다는 분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요즘 영상 툴을 배우는 방법은 많습니다. 누가 시키거나 도움을 받지 않아도 방법을 스스로 찾으면서 콘텐츠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정말로 하고 싶은 마음이 있냐는 거예요. 내가 정말로 하고 싶어서 도와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지만 도와주지 않아도 우리는 할 거라 하는 사람을 만나면 시너지 효과가 납니다.”

▲ 따뜻한 사연과 그에 맞는 요리 레시피를 제공하는 <왈이네 아침식땅>. Ⓒ <왈이네 아침식땅>

메디아티의 첫 투자 대상으로 선정된 <닷페이스>와 <왈이의 아침 식땅>은 자기들만의 독창적인 감각이 있었다. 메디아티는 <닷페이스>가 뉴스미디어로서 가야 할 방향을 예상했지만, 메디아티를 떠날 때쯤 <닷페이스>는 그들만의 방향을 설정했다. 팀원들 생각대로 고집한 결과,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했다.

<왈이네 아침식땅>은 20대 중후반의 불행한 출근길 표정을 바꾸겠다는 목표로 시작했다. 매일 아침 자기 사연을 이야기하고 거기에 맞는 요리 하나를 설명해준다. 음성 콘텐츠와 그림이 조화를 이룬다. <왈이네>는 메디아티에서 제시한 방향을 자기들 나름의 아이디어로 발전시켜 가져왔다. 그냥 이야기만 들려주는데 그치지 않고 실제 음식을 배달하는 시범까지 했다.

▲ 메디아티 협업 공간에서 일하는 <왈이네 아침식땅> 팀원들. © 이민호

”여러분이 고집을 피워서 저희 말을 듣기 시작하면 그 순간 여러분은 학생이 됩니다. 여기는 학교가 아니고 우리는 투자자일 뿐입니다.“

콘텐츠를 만드는 감각에 프로페셔널리즘이 더해지면 차원이 다른 콘텐츠가 나온다. <디에디트>(the edit)의 경우 열정만 뜨거운 20대가 갖지 못한 경험이 있다. 잡지사 기자 출신이 만든 <디에디트>는 리뷰에 정성을 다한다. 콘텐츠를 최대한 광고주에 맞추려 노력하고, 생산되는 시간, 광고주가 원하는 품질을 보장한다. 이는 광고주가 <디에디트>를 먼저 찾게 하는 원동력이 됐다. 광고주든 독자든 그들이 원하는 콘텐츠를 만드는 것은 프로페셔널리즘이 작동해야 한다.

▲ <디에디트>는 ”사는(Live) 재미가 없으면, 사는(Buy) 재미라도“를 모토로 한다. 재치 있는 리뷰 영상과 감각적인 제품 사진을 보여준다. Ⓒ <디에디트>

미디어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팀들의 비즈니스 마인드는 의외로 약하다. 콘텐츠 만들기, 소통하기 자체가 좋아서 시작한 사람들이 많다. 어느 단계에서 수익을 내기 위해 조직에 쓸모없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나가게 하는 것도 중요한 비즈니스 마인드다. 많은 기업들이 그때 잘라버려야 하는 사람들을 자르지 못해서 주저앉아버린다. 이런 잔인한 결정은 어렵다.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면서부터 구성원들에게 앞으로 6개월, 1년 뒤, 혹은 2년 뒤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를 물어봐야 한다. 서로 뜻이 다르면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끼리 일해야 한다.

외적인 것보다 중요한 건 ‘뉴스’다

박 콘텐츠랩장은 형식에 치중하는 기성 언론의 획일성이 창의성을 죽인다고 비판했다.

“모 일보에 칼럼을 쓰면 ‘랩장님 2,225자 써주세요. 아니 2,180자입니다’ 그래요. 아니 이게 말이 되어요? 어떤 아이디어를 쓰면서 거기에 맞춰 쓸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경력 15~20년 기자들을 만나면 그래요. 5년 두드려 맞고 싫은 소리 들으며 배우면 어떤 글을 쓰든 2180자 이렇게 끝난대요, 자기도 모르게. 생각해보세요. 이게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아세요? ‘Think outside the box’(상자 바깥을 생각하라)가 아니라 ‘Think literally inside box’(상자 안에서만 생각하라)는 거예요.”

▲ <닷페이스> 3부작 ‘Here I am’. 미성년자 성매매 현장과 매수자의 목소리를 담아 화제가 됐다. 성매수자가 차 안에서 “교복 챙겨왔어”라고 묻고 있다. Ⓒ <닷페이스>

”<닷페이스>는 히어 아이 엠(Here I am)이라는 프로젝트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고등학교 여학생이 성매매를 했을 때 성매수를 한 남성뿐 아니라 여학생들도 처벌을 받습니다. 돈을 받고 성매매를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건 말이 안 된다.’ 어린애들이기 때문에 아무리 애들이 돈 받고 성매매해도 사회의 책임이라는 거죠. 10대 여학생이 거기까지 가도록 놔두는 것은 사회가 잘못한 건데 학생들을 처벌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거죠. 그걸 다 알면서 공감을 일으키지 못하는 것은 미디어가 ‘후져서’ 그렇습니다.”

양복을 입은 중년 남성이 진지한 자세로 전하는 뉴스 형식 보다, ‘뉴스’ 그 자체가 더 중요하다. 지상파 3사 뉴스 신뢰도는 지난 2월 KBS 14.9%, MBC 6.7%, SBS 6.3%에 불과했다. 종편인 JTBC만 44.6%의 신뢰도를 기록할 뿐이었다. 올드 미디어보다 뉴미디어가 더 전달력과 영향력이 높을 수 있는 시대가 왔다.

<닷페이스>는 성매수 남성을 찾아 차에 올라타서 인터뷰를 했다. ‘히어 아이 엠’ 시리즈 1편은 페이스북에서 163만회 조회를 기록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성매매 근절을 위해 포주와 성구매자만 처벌하는 노르딕 모델 도입 청원 글이 올라왔고 5만9천여 명이 동의했다. 지난 17일 메디아티는 12번째 투자사로 ‘실패 없는 경험’을 친근하게 도와주는 <포브미디어>를 선정했다. 올해 10~12개 투자사가 더 등장할 예정이다. 세상을 바꾸기 위한 의미 있는 플레이어의 등장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8년 1학기 [저널리즘특강]은 한승동 김영미 오연호 강정수 이정환 최경영 박인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이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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