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시설 불안한 곳 많고 국공립은 자리 없어 “어디 맡기나”
[가난한 한국인의 5대 불안 3부] 애 키우기 전쟁

충청북도 청주시에 사는 계모(23·여·일용직)씨는 지난 6월 27일 하늘이 무너지는 소식을 들었다. 생후 4개월 된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엎드려 있던 아기가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아 보육교사가 살펴봤더니 이미 숨을 쉬지 않고 있었다고 한다. 경찰의 부검결과 ‘질식사일 가능성이 있는 돌연사’로 판명됐는데,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계씨는 남편이 일자리를 찾아 타지로 나간 뒤 네 살 난 딸과 젖먹이 아들을 혼자 키워왔다. 들쑥날쑥한 남편 수입으로 두 아이를 키울 수 없어 용역회사에서 하루하루 일거리를 받아 닥치는 대로 일했다. 시댁에도 친정에도 아이들을 부탁할 형편이 되지 못했던 계씨는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한 6월 1일부터 두 아이를 한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맡겼다. 남편이 보내준 돈과 자신의 수입을 합쳐봐야 한 달에 100만원 남짓이어서 다른 곳보다 저렴하고 저녁 늦게까지도 맡아주는 그 어린이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담당 경찰관에 따르면 사고 후 구청에서 해당 어린이집을 조사했지만 38평형 아파트에 수용 정원이 20명인 그 어린이집에서 사고와 연결시킬 만한 특별한 이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계씨는 자신이 직접 아기를 돌볼 수 없었던 처지와 좀 더 주의 깊게 아이를 보살필 만한 시설에 보내지 못한 자책감에 울며 가슴을 칠뿐이었다.    

믿고 맡긴 민간어린이집, 부모와 아이에게 지울수 없는 상처만

서울 중랑구에서 남편과 함께 미용실을 운영하는 이 모(37)씨는 지난해 딸이 생후 6개월 됐을 때 아파트 1층에 있는 어린이집에 보냈다가 두 달 만에 그만 두고, 이후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집에서 돌보고 있다. 어린이집에서 기저귀를 제 때 갈아주지 않아 아기가 요로감염에 걸리는 바람에 일주일이나 입원해서 고생을 했기 때문이다.

“남편과 주말까지 함께 일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곳, 주말에도 운영하는 곳을 찾느라 썩 마음에 들지 않는 어린이집이지만 그냥 보냈어요. 평일에 저녁 10시까지 맡기고 토요일에도 맡겼기 때문에 시간당으로 계산하는 추가요금도 많이 냈어요. 기저귀, 분유 값 등 부대비용을 합하면 한 달에 거의 100만 원을 낸 것 같아요. 그런데 기저귀를 제 때 안 갈아줘 대변이 요로를 감염시키게 했다니.......”

광주시에서 남편과 문구점을 운영하는 임 모(33)씨도 네 살 된 둘째 아이를 볼 때마다 속이 상한다. 2년 전 단독주택 1층에서 개인이 하는 어린이 집에 보냈는데, 뜨거운 물이 다리에 쏟아져 화상을 입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노는 공간과 부엌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아 일어난 사고였다. 임 씨는 그래도 문구점일이 너무 바빠 아이를 어린이집에 계속 보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맞벌이 등의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 하는 부모에게 이런 얘기들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다. 하지만 신문방송 뉴스나 육아관련 인터넷 카페에는 사설어린이집에서 일어난 각종 사건사고 소식이 쉴 새 없이 등장한다.

▲ 광주광역시청 민원게시판에 올라온 고기 없는 '부실 쌈밥' (좌), 블로그에 교사들이 휴대폰으로 찍어 공개한 2칸짜리 어린이집 '급식용 식판' (우).

지난 해 12월에는 서울 성동구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원장이 20여 명의 어린 원생들을 학대한 일이 교사들에 의해 폭로됐다. 원장은 16개월에서 30개월 정도밖에 안 된 아이들을 포함, 원생들의 뺨을 때리거나 신발로 폭행했고, 상한 음식을 먹이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갖가지 구실로 학부모들에게서 돈을 뜯어냈고 서울시에서 지급되는 보조금도 빼돌렸다고 교사들은 고발했다.

지난 6월 14일 광주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급식 밥에서 달팽이가, 국에는 거미가 떠 있는 것이 학부모에게 발견됐다. 이 어린이집은 이에 앞서 흰 쌀밥과 상추 몇 장, 된장과 깍두기가 전부인 ‘고기 없는 쌈밥’을 급식했다가 관련 사진이 인터넷에 올라와 비난받기도 했다.  
 

▲ 문제가 된 칫솔. ⓒ 다음 아고라 게시판
대구시 북구의 한 어린이집에서는 곰팡이가 핀 썩은 칫솔로 원생의 이를 닦게 했다는 고발이 지난 3월 다음 아고라 게시판에 올라왔다. 사진을 제보한 정모씨(31)는 “어린이집에서 개인물품으로 칫솔과 양치컵을 받아와 정리하는데, 칫솔이 검게 썩어 있었다”며 “세살된 딸아이가 쓰레기 시궁창보다 더러운 걸로 양치질을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난다”고 울분을 토했다.

안전사고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어린이집안전공제회에 따르면 지난해 어린이집에서 일어난 영·유아 사고는 3840건이나 된다. 전국 어린이집 중 안전공제회에 가입한 곳은 절반뿐이어서 실제 사고 건수는 7000건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태어나기 전부터 국공립보육시설 입소 대기자 명단에 이름 올려야

전국의 어린이집은 2000년 1만9276개에서 지난해 3만8021개로 10년 사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 중에는 안전한 시설에서 세심하게 아이를 돌보고 교육하는 민간어린이집들도 물론 있다. 그러나 이런 저런 사건사고 소식과 주변에서 들리는 불만족 때문에 민간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기 꺼려하는 부모들도 늘고 있다. 

여섯 살, 세 살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김형인(34·인천광역시)씨는 “첫째 아이는 네 살이 될 때까지 민간어린이집에 보냈는데, 어린이집에서 불미스런 사건이 일어났다는 뉴스들을 보고 걱정이 돼 둘째 아이는 보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민간보육시설에 대한 불신이 높다 보니 상대적으로 시설과 인력에 대한 관리가 낫다고 평가되는 국공립보육시설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높아지고 있다.

이지혜(39·경기도 안양시)씨는 “주변의 얘기를 들어보면 아무래도 국공립 보육시설은 교사들을 관리하니까 민간시설보다 잘 가르치고, 이유식과 같은 식사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또 민간보육시설은 규정보다 적은 수의 보육교사를 쓰지만 국공립은 법정기준을 지킨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덧붙였다.

▲ 국공립 보육시설 노하우가 공유되고 있는 네이버 인터넷 카페 ‘맘스홀릭’.
그러나 문제는 국공립어린이집이 전국에 2000여 곳으로 전체 어린이집의 5%에 불과하기 때문에 입소 희망자는 넘치는 데 들어가기는 ‘하늘의 별따기’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서울시의 경우 이미 정원을 넘긴 국공립 보육시설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부모들에게 대기번호를 부여하는데, 상당수 어린이집의 대기자가 정원의 여러 배에 이른다. 지난 6월 1일을 기준으로 서울 도곡2동 도곡어린이집은 정원 142명에 대기자가 2679명, 삼성1동 삼성 어린이집은 정원 160 명에 3174명이 대기 중이다.

현재 임신 6개월인 주 모(31·서울 행당동)씨는 "아직 아이를 낳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주변에서 미리미리 주변 국공립 시설을 알아보고 입소를 준비하라고 권유하더라"고 말했다. 백 모(서울 발산동)씨는 “둘째 아이를 낳자마자 신청해서 대기번호 1400번을 받은 뒤 2년을 기다려 구립 어린이집에 입소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백선희 서울신학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 부모들이 선호하는 보육시설은 국공립시설이 48.1%, 직장보육시설 24.1% 순이었고 만족도 역시 국공립보육시설이 가장 높았다. 국공립어린이집은 사립보다 보육료가 저렴하면서도 시설과 교육수준, 안전관리 등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안정적인 예산 지원과 관리감독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반면 상당수 민간시설의 경우 보육교사의 보수와 대우가 상당히 낮고 업무 강도는 세기 때문에 이직률이 높은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추은희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은 “최근 썩은 칫솔이나 꿀꿀이죽 사건이 민간 시설에서 발생한 뒤 국공립 보육시설에 대한 부모들의 선호도가 더욱 높아졌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보육수준을 전반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현재 5%대 수준인 국공립시설 비중을 적어도 30%까지는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국공립보육시설 비중이 전체의 75%, 일본은 53.4%, 호주는 34%를 차지하고 있다.

예산 확보부터 민간업체 반발까지, 쉽지 않은 국공립 시설 확충

▲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민간 보육시설. 민간 보육시설은 아파트나 다세대 주택 등 마당이 없는 건물 1층에 위치한 보육시설이 많다. (위 시설은 기사와 무관함). ⓒ 정혜아

그러나 여기엔 지방자치단체들의 예산 부족과 민간어린이집 사업자들의 반발이라는 장애물이 있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 서문희 기획조정연구실장은 “이미 시장을 장악한 민간 어린이집들이 반발한다는 이유 등으로 국공립 보육시설을 1년에 10곳밖에 못 짓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보육시설은 지역밀착형 사업이기 때문에 단체장들이 표를 의식해 민간업체들의 손을 들어주느라 국공립 시설 확충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참여정부 시절 여성가족부 산하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국공립 보육시설 비중을 30%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예산을 확보했으나 민간업체들의 반대로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현정부는 국공립보육시설의 대안으로 ‘공공형 어린이집’과 ‘자율형 어린이집’의 시범사업 계획을 내놓았다. 민간어린이집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정부가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예를 들어 아토피나 비염 등 아이들의 건강을 고려해 공기 질을 개선하는 등 보육 환경에 투자해 평가인증을 얻으면 정부가 일정금액을 지원한다는 것이다.  

▲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국공립 보육시설. 국공립 보육시설은 민간보육 시설에 비해 시설이 좋은 편이다. ⓒ 정혜아

그러나 보육관련 시민단체들은 이런 구상이 보육료 상한선을 무너뜨려 부모들의 부담을 증가시키는 등 문제가 클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손대규 간사는 “특히 자율형 어린이집은 교육내용을 마음대로 정하고 보육료 상한제도 폐지할 수 있다”며 “자율형 어린이집이 확산되면 보육료와 현장학습비, 특별활동비 등을 각각 현재의 1.5배 범위 안에서 지자체별로 인상할 수 있어 부모들의 부담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장지연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네덜란드와 호주의 경우도 우리나라의 ‘공공형’ ‘자율형’ 구상과 비슷하게 보육시설 관련 각종 규제를 폐지하고 수요자에 대한 정부보조금을 확대한 결과 오히려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고 부모의 부담 혹은 정부 지출이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장 박사는 “서비스 전달체계가 시장화 되어있는 상황에서는 국가가 재정적으로 아무리 뒷받침해도 보육의 질과 공공성이 높아지기 어렵다”며 “국공립보육시설 확충을 통해 국가가 관리하는 영역이 넓어지면 민간도 거기에 맞춰 따라가는 것이지 인증제와 같은 방식으로 보육의 질을 높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등 시민단체는 지난 5월 5일 어린이대공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공공형ㆍ자율형 어린이집 시범사업을 폐기하고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과 인력 충원에 주력하라”고 촉구했다. 이들 단체는 “부모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는 국공립 보육시설 확충이라는 근본 문제를 도외시한 채 보육 공공성을 몇 푼의 돈으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가구소득 대비 보육료 비율. 2000년대 중반기준. ⓒ OECD 자료.

서문희 실장도 “정부가 특단의 대책을 세워 국공립 어린이집을 매년 꾸준히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 실장은 프랑스의 경우 3세 이상 어린이 중 희망자 전원을 공공기관에서 무상으로 보육하고 있고 스웨덴과 일본의 경우 보육시설 중 일부 사립이 있지만 모두 법인형태이기 때문에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우리나라의 민간시설과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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