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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코리아’가 덮쳐 온다
[현장] 재활용품 대란 몰고온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
2018년 05월 24일 (목) 01:07:48 김미나 기자 wlswnalsk@hanmail.net

2004년 시작해 올해로 15회째를 맞는 서울환경영화제가 '미세먼지'와 '쓰레기 대란'을 주제로 지난 17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종로구 서울극장에서 열렸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2016년에 개봉돼 지금 한국을 덮치고 있는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초래했던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가 재상영돼 눈길을 끌었다. '세계의 공장'이라던 중국이 '세계의 쓰레기장'으로 변하고 있다고 고발한 이 한 편의 영화가 한국 재활용 쓰레기 대란을 불러오는 과정을 짚어 보았다. (편집자)

세계 최대 재활용 쓰레기 수입 국가인 중국이 지난 1월 1일부터 폐기물 24종의 수입 금지를 본격화하자 한국은 재활용품 수거 대란이란 직격탄을 맞았다. <플라스틱 차이나>란 영화가 촉발한 중국의 쓰레기 금수 조처로 쓰레기 수출 길이 막힌 국내 재활용 업체들이 폐기물 수거를 중단하면서 여기저기서 쓰레기 난리가 벌어지고 있다. 연간 플라스틱 소비량 세계 1위인 우리나라가 ‘플라스틱 코리아’가 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고 있는 <플라스틱 차이나>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무슨 메시지를 던져 주고 있을까.

“중국은 이미 세계의 쓰레기장”

   
▲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를 만든 왕주량 감독(왼쪽)이 영화 기획과 제작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통역을 맡은 임대근 한국외대 교수. @ 김미나

<플라스틱 차이나>를 만든 중국인 왕주량(王久良) 감독은 지난 20일 영화 상영 후 진행된 ‘관객과의 대화’에서 “산둥성 지역의 쓰레기 재활용 현장을 가보고 충격을 받아 영화제작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왕 감독은 특히 쓰레기 재활용 공장의 노동자들과 그 가족의 열악한 생활환경에 주목했다.

“2011년에 제가 처음으로 산둥성 지역에 갔을 때 플라스틱 선별 공장이 5천여 개나 있었습니다. 공장들은 (쓰레기 수입선에 따라) 일본 영역, 한국 영역, 프랑스 영역 등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그 광경을 보고 ‘중국은 이미 세계의 쓰레기장이 되었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포스터 윗부분 작은 글씨로 쓰여 있는 소료왕국(塑料王國)에서 ‘소료'는 중국어로 플라스틱을 뜻한다. 영화 <플라스틱 차이나>는 재활용 쓰레기 처리 공장이 삶의 터전인 노동자와 그 가족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다룬다. @ 네이버

<플라스틱 차이나>는 쓰레기 재활용 산업이 밀집한 산둥성을 배경으로 재활용 공장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쓰레기 산업의 폐해를 고발한다. 재활용 공장에서 일하는 두 가족은 폐기물 더미에 한데 섞여 폐플라스틱을 분류하고, 세척하고, 녹여 다시 고형연료를 만드는 일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쓰레기 재활용 업체 사장인 쿤은 자녀교육과 신분 상승에 대한 꿈을 꾸고 살아가지만 일당이 5달러에 불과한 말단 노동자 펭에게는 이런 꿈은 커녕 하루하루 살아가기도 팍팍하다. 영화는 쓰레기 산업의 현장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양극화와 빈곤의 문제를 조명하고, 쓰레기 산업이 어떻게 중국 시골 마을의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훼손하는지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카메라는 82분 내내 재활용 공장의 노동자인 펭의 열한 살 난 딸 이지에를 따라다닌다. 이지에는 온종일 학교도 가지 못하고 부모를 도와 플라스틱을 선별하거나 부모를 대신해 어린 동생들을 돌본다.

쓰레기에 가려진 진실 조명해야   

   
▲ 재활용 공장에서 일하는 펭과 그의 가족은 종일 쓰레기와 함께 생활한다. @ 네이버

“이 영화를 처음 찍을 때 이지에는 아홉 살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봤을 때가 열한 살이었죠. 이 영화를 3년 동안 찍었는데 이지에는 계속 학교를 가지 못했어요. 이지에가 아홉 살이 되고, 열 살이 되고, 열한 살이 된 해도 학교를 가지 못하는 상황이 굉장히 서글펐어요. 쓰레기 산업은 결코 이들의 가족을 바꾸지 못했고, 소녀를 학교에 보내지도 못했어요. 이들의 인생 아무것도 바꿀 수 없었습니다. 저기서 살고 있는 사람이 얻는 것이라고는 환경오염과 가난, 그것밖에 없었습니다.”

왕 감독은 “쓰레기 산업이 소녀의 삶을 조금도 바꿀 수 없었고, 그것이 바로 중국의 쓰레기 산업이 가져온 문제”라고 강조했다. 쓰레기 산업에는 재활용이란 경제적 효용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경제적 불평등, 빈부격차, 환경, 교육, 여성의 권리 등 많은 문제가 내재돼 있다는 것이 왕 감독의 설명이다.

“유럽이나 일본, 미국, 한국 사람들은 ‘우리가 쓰레기를 보내주면 결국 중국 사람들이 부를 얻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 ‘부’라는 것은 쓰레기 업체를 경영하는 소수의 사람들만 가져갈 수 있는 것일 뿐, 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는 결코 그 부가 돌아 가질 않습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쓰레기 산업이 열한 살 소녀 이지에의 삶을 바꿀 수 없다면 그 산업이 과연 좋은 것인가? 계속해야 하는 것인가? 저는 여러분들에게 바로 그 점을 되묻고 싶습니다.”

   
▲ 영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쓰레기 산. <플라스틱 차이나>는 개봉과 함께 중국 전역에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 네이버

왕 감독은 영화제작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회상했다. 그는 “산둥성에 5천여 개의 쓰레기 재활용 공장이 있었지만 그 공장 어느 곳도 자유롭게 촬영할 수가 없었다"며 “100일 동안 단 한 군데도 촬영 허락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어떤 공장도 카메라를 들고 온 우리들을 반가워하지 않았어요. (그게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란 것을 알고) 카메라로 촬영을 하면 그들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우리가 촬영한 쿤 가족과 펭 가족은 우리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선택한 것입니다.”

영화 한 편으로 뚜껑 닫은 ‘세계의 쓰레기통’

이 영화가 중국의 폐기물 수입 금지를 이끌어냈다고 평가받지만 사실 중국에서는 상영이 금지됐다. 그래서 왕 감독은 온라인용으로 영화를 짧게 편집해 유튜브에 올렸다. 상영이 금지된 영화가 환경운동으로 확산돼 마침내 중국 정부가 재활용 쓰레기 금수 조처를 시행하게 된 배경에는 인터넷의 힘이 있었던 것이다.

왕 감독은 “중국발 쓰레기 대란 이후 산둥성 지역에 있던 재활용 공장들은 가동을 모두 멈추고 폐쇄된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중국정부가 쓰레기를 처리하고 운영하던 공장주들에게 다른 직업을 선택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고, 대출을 받고자 한다면 이자 혜택을 주는 등 직업을 바꿀 수 있는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노동자와 주민은 산둥성을 떠나 새 지역으로 이주해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있다는 것이다.

   
▲ 왕 감독은 “다큐영화를 찍으면서 촬영 대상이 된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면 그 고통이 나에게도 전해지고 또 그들이 기뻐하면 나도 함께 기쁨을 느꼈다"고 말했다. @ 서울환경영화제

“‘중국 속담에 나무는 옮겨가면 죽지만 사람은 옮겨가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있어요. 쓰레기 산업의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재활용 공장에서 열악하게 일했던 이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것, 그것이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에 등장했던 쿤 사장은 현재 쓰레기 재활용 공장의 문을 닫고 좋아하던 차를 몰며 운전기사로 일하고 있다. 펭의 가족은 2014년 고향인 쓰촨으로 돌아갔다. 왕 감독과 촬영 스텝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표를 마련해 주었다.

“이지에의 삶만 특별히 그랬던 것은 아니에요. 거기서 일하는 대부분의 노동자 가족이 모두 같은 상황이었다고 보면 됩니다. 2014년에 이 영화를 찍고 난 후 돈을 모아서 펭의 가족한테 쓰촨으로 돌아갈 수 있는 표를 사줬어요. 펭은 성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그의 삶에 관여할 수 없지만, 어린아이가 학교도 못 가고 살아야 한다는 건 굉장히 비참한 일입니다.”

왕 감독은 “작은 지역의 문제를 해결하자고 시작했는데, 목표를 훨씬 뛰어넘어 중국의 고위층이 관심을 갖고 쓰레기 수입을 전면적으로 금지하게 됐다"며 “영화를 통해 ‘우리 모두 마음속의 쓰레기를 어떻게 처리해야 되지?’라는 물음이 생긴다면 내 역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 제15회 서울환경영화제의 주제는 ‘Eco Now’였다. 선풍기, 파이프 등 주변에서 흔히 버려지는 쓰레기를 재활용하여 만든 ‘마스크 쓴 로봇’은 기후환경과 미세먼지 등 우리 시대 환경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의미한다. @ 서울환경영화제, 김미나

편집 : 김미나 기자

[김미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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