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 대신 ‘지출삭감’ 선택한 미국, 재정·금융 진퇴양난
[두런두런경제] 박경철 제정임 고광철의 생생토크

박경철(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진행자): 8월이 시작된 이번 주에는 지난주 폭우에 따른 피해 복구 작업과 함께 수해 논쟁이 이어졌습니다. 최악의 피해를 입은 서울에 대해서는 방재시설에 대한 투자를 외면하고 겉모습만 치장하는 정책을 재검토해야한다는 지적이 무성했습니다. 이번 폭우는 또 신선식품 물가상승을 다시 부추기기도 했습니다. 원가보장을 요구하는 낙농가의 원유공급 중단 사태도 이어져 이래저래 물가걱정이 컸습니다. 나라 밖에서는 미국이 뉴스의 중심이었습니다. 그동안 지지부진 했던 채무한도 증액 협상은 성공했으나, 더블딥(경기회복 중 재침체)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세계경제를 흔들었습니다. 8월 첫째 주,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고광철 소장,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제정임 교수 모셨습니다. 이번 주 어떤 뉴스에 주목하셨습니까?

고광철(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장): 우선 세계경제의 불안, 미국경제의 심각성으로 인해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뉴스라고 생각합니다. 국내에서는 지난주부터 계속 문제가 됐습니다만, 삼성그룹이 MRO, 즉 소모성자재구매대행 사업에서 손을 떼는 문제가 앞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사안이라고 봤습니다. 또 여당을 중심으로 인천공항공사를 국민주 방식으로 매각하자는 논의, 그 전에 대우해양조선과 우리금융지주에 대해서도 거론됐습니다만, 이 문제가 우리 경제의 주요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제정임(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저는 미국의 더블딥 우려와 인천공항매각 논란에 대해서는 고 소장님과 같고요, 여기에 국무총리실 금융감독개혁태스크포스(TF)가 지난 2일 국회에 개혁안 잠정보고를 했는데,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뉴스에 주목했습니다.

박: 저도 제 교수님과 같은 이슈들을 꼽았습니다. 우선 두 분 다 주요 뉴스 톱으로 미국의 더블딥 우려를 꼽아주셨는데요, 화요일 저녁 이후 공포가 가중되면서 지난 목요일 저녁에는 순식간에 위기국면으로 번졌죠. 공포지수가 2000년대 들어 가장 높아졌습니다. 

고: 증시가 4%이상 폭락했습니다.

실제 성장률 0% 실업률 9.2%로 확인한 더블딥 공포, 불안정성 가중시켜

박: 미국 의회가 디폴트(채무지불불능)를 막기 위해 정부 지출을 줄이고 채무한도를 늘리기로 합의하면서 한 숨 돌리는 것처럼 보였는데, 오히려 상황이 악화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 우선 국가채무 한도를 증액하는 데 성공해 핵폭탄은 막았지만, 미국의 국가채무가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상황에서 관리가 제대로 될 것인가 하는 불신을 가라앉히지 못했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국가채무한도 증액 합의를 하면서 정부 지출을 향후 10년간 2조 4천억 달러, 연간으로 치면 2400억 달러씩 줄이기로 했는데, 이렇게 지출을 줄이면 경제를 살리기 위한 펌프 역할을 하는 돈이 제대로 돌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진 것입니다.  결국은 정부긴축에 따른 경제 부진이 걱정된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그 상황에서 미국 경제의 부진이 구체적인 숫자로 확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국내총생산(GDP)이 1사분기 0.4% 성장에 이어 2사분기에 1.3% 성장에 그쳤습니다. 실업률도 지난 6월에 9.2%를 기록해 올 들어 가장 높았죠. 성장률은 낮고 실업률은 높고 경제를 살리기 위한 재정은 긴축으로 돌아서기 때문에 ‘이런 상태로는 미국 경제가 회복되기 어렵겠구나’ 하고 판단하는 겁니다. 그로 인해 금융시장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았습니다. 공포가 지배하면 투자자들이 과민반응을 하는데 미국 경제가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그 이상으로 투자자들이 과민 반응을 하면서 주가가 폭락했다고 생각합니다.

박: 실제 통계치를 다시 보니까 지난 2년간 미국 경제가 성장했다고는 하지만 재고투자와 정부지출을 빼니까 성장률이 제로(0)더군요. 재고투자와 정부지출을 뺐을 때 경제성장률이 제로인 국가에서 정부지출이 줄어들면 어떻게 되겠느냐? 나름대로 합리적인 걱정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동시에 경제 지표들이 나쁘게 나오니까 공포가 커진 것 같은데요. 제 교수님 보시기에는 미국의 더블딥 가능성에 대해 고개가 끄떡여지는 부분이 많습니까?

제: 미국사람들이 알파벳 디(D)로 시작하는 단어를 싫어한다고 하죠. 디폴트, 이게 두려워서 덜덜 떨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니 더블딥이 현실화하고 있습니다. 더블딥에 대한 공포가 현실화하는 이유는 아까 고 소장님이 지적해주신 것처럼 부채한도를 상향조정하면서 정부 지출을 앞으로 10년 간 2조4천억 달러나 줄여야한다는 것이 우선 첫 번째입니다. 정부 지출이 미국의 소비와 투자를 살리는 중요 요소 중 하나였는데 그것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거든요. 또 하나는 동시에 부정적인 실물지표가 한꺼번에 쏟아진 것이죠. 2분기 GDP증가율이 전문가들이 예측한 1.8% 보다 낮은 1.3%에 불과했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지난 6월의 소비지출이 전달에 비해 0.2% 줄어들어 2년 여 만에 소비지출 감소세를 기록했다는 것도 가슴 철렁한 숫자였습니다. 제조업 수주실적도 5월에는 0.6% 증가했다가 6월에는 0.8% 하락세를 기록했고, 앞으로의 경기 동향을 전망해주는 미국 공급관리협회의 제조업지수 7월 숫자가 2009년 7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 역시 더블딥에 대한 우려를 증폭시켰죠. 미국이 재정지출을 줄이는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미국 경제학자 폴크루그먼 등은 이런 지적을 합니다. “재정적자를 줄이는 방법은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많이 거둬서 메우는 방법이 있고, 가난한 사람에 대한 정부지출을 줄이는 방법 두 가지가 있는데 이번에 선택한 방법은 정부지출을 줄여 가난한 사람들이 혜택을 덜 받게 하는 것이다. 이런 선택의 결과 성장률은 더 하락할 것이고, 실업은 더 증가할 것이고, 계층간 불평등은 더 심화될 것이다.” 이런 걱정들이 한꺼번에 쏟아지고 있기 때문에 더블딥에 대한 공포가 더 무섭게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박: 월스트리트 저널이나 파이낸셜 타임스 같은 외국 언론에서는 ‘더블딥이 있다, 없다’로 치열한 논쟁을 하고 있는데, 막상 우리나라 신문들을 보면 ‘더블딥 없다’고 단정하는 분석기사가 막 나옵니다. 물론 제3자가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생각이 드는데, 정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정부가 진지한 고민도 없이 ‘미국 더블딥 없다’고 말하는 듯 보입니다. 이건 ‘미국에 더블딥이 생긴다하더라도 우리는 문제가 없다’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지 않습니까.

고: 미국에 더블딥이 있을 것인지 아닌지는 예측하기가 굉장히 어렵죠. 미국 전문가들조차도 의견이 팽팽히 엇갈리고 있습니다. 우리 정부는 일단 ‘더블딥 가능성이 낮다’고 발표를 했는데, 더블딥이 없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나친 공포에 따른 경제혼란을 막자는 의도라고 생각됩니다. 지금 미국 경제는 병실에 들어가 있는 환자라고 할 수 있는데,  더블딥은 환자가 숨이 넘어가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이 현재 숨이 넘어갈 정도는 아니지 않나, 상당기간 골골하며 살아갈 것이다, 더블딥은 미국 경제 부진만이 아니라 유럽 재정위기가 폭발하고, 중동의 기름값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할 때 나타날 텐데, 그런 최악의 상황으로 갈 확률은 낮다’고 보는 게 정부 시각인 것 같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렇게 말하고 있다고 봅니다.

박: 그렇게 말씀하시니 고개가 끄덕여지는데요, 그냥 미국 증시 이틀 떨어지니까 바로 ‘더블딥 없다’고 나와서 ‘생각은 해 보셨나’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제 교수님, 그래서 미국에서3차 양적완화 이야기가 벌써 나오지 않습니까? 문제는 환자가 병실에 있는데 양쪽에 링거를 달아 한 쪽은 재정투입, 다른 한 쪽은 통화정책을 쓰는 것인데, 재정쪽은 링거줄을 막았으니 반대쪽 링거줄로 영양을 공급해야하는데, 문제는 혈관이 약하다는 것이죠. 지금 인플레이션 등 문제가 많아 그쪽으로 넣어도 영양은 안 돌고 부작용만 생겨요. 실제 돈이 돌아야 하는데, 돈이 돌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3차 양적완화로 문제를 풀 수 있다면야 어떤 식으로든지 하면 되죠. 뿌려놓은 국채가 있으니 다 회수하면 어마어마한 달러가 나올 수 있는데, 이걸 못하고 있는 미국의 고민 어떻게 보십니까?

제: 잘 아시겠지만 ‘양적완화’라는 것은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시중의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돈을 푸는 거죠. 중앙은행의 정책금리가 거의 제로인 상태에서 금리정책을 쓸 여지가 없기 때문에 이런 비상처방을 쓰는 겁니다. 미국 정부는 지난 2008년과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서 각각 1조 7천 억 달러와 6천억 달러를 양적완화 정책으로 풀었습니다. 그것으로 인해 전 세계에 돈이 넘쳐나, 우리 시장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고요. 물가상승 압력이 높아지고 주식 같은 자산 시장에 거품이 커지는 부작용이 있었습니다. 아까 얘기해주신 것처럼 지금 재정지출을 확대하기 어려워지면서 두 링거 중 하나인 양적완화밖에 수단이 없는 것 같은데, 문제는 지난 두 차례 양적완화 정책이 경제회복, 그러니까 소비와 투자를 되살리는데 도움이 됐다는 증거가 별로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인플레 즉 물가상승이나 투기를 부추기는 부작용이 워낙 분명해서, 미국 연준 내에서도 3차 양적완화에 대해 반대의견이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양적완화대신 다른 수단을 생각해보자는 주장이 있습니다. 미국 은행들이 연준에 지불준비금을 예치하는데, 법적 의무금액을 넘어 초과로 예치한 지불준비금에 대해 약간 높은 금리를 지급하는데, 이 금리를 낮춰서 은행들이 그 돈을 기업이나 가계에 대출하도록 유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론적으로는 약 1조 6천억 달러가 시중에 풀릴 수 있다고 하는군요. 하지만 이 방법 역시 효과를 확신할 수 없어 논의만 하고 있다고 합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 연준의 양적완화는 인플레 우려 때문에 단행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대신 연준이 앞으로 기준금리를 장기간 올리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다든지 보유중인 국채의 만기를 늘리는 방식으로 사실상 시중에 돈을 푸는 것과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는 다른 정책을 쓰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음주 금융통화위원회, 금리인상으로 고공행진 물가 잡을 수 있을까

박: 고 위원님, 문제는 우리나라의 대응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사실 대외 노출도, 민감도가 큰 나라라 아무리 외환보유고를 쌓아 놓고 있다고 해도 외국인들이 자산 팔고 뛰쳐나가면 순식간에 흔들리지 않습니까?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다음 주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가 있네요. 지금까지의 한은의 스탠스를 보면 한 달 건너 한 달로 금리를 인상하는 ‘베이비 스텝’을 이어 갈 경우 이번에는 금리 인상 타임인데요.

고: 지난 6월에 금리를 올렸거든요. 7월에 한번 쉬고 8월에는 올릴 수 있지만 지금 상황은 그렇게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원장님 말씀대로 미국의 더블딥 공포와 관련해 한국 증시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많이 떨어졌습니다. 아무래도 수출의존도가 높은 국가이기 때문이죠. 대만도 수출의존도가 높은데 우리가 특히 대기업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훨씬 타격을 많이 받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투자자들을 어떻게 진정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고요. 반면에 금리와 관련해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역시 물가상승률입니다. 7월 소비자물가상승률이 4.7%로 올랐습니다. 굉장히 높은 수준이죠. 이 물가상승률만 본다면 금리를 올려야겠죠. 국제통화기금(IMF) 한국담당 과장이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연 4%정도는 돼야한다”고 권고했는데, 현재 연 3.25%입니다. 4%기준은 우리나라 성장률을 봤을 때 중립적인 수준이다, 이 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한다면 물가상승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에 금리를 올려야한다는 권고였습니다. 물가를 보면 금리를 올려야하지만, 성장둔화에 대한 우려 때문에 일각에서는 내년 1월까지는 유지해야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은행 금통위가 굉장히 고심하고 있을 것입니다.

제: 금리정책과 관련해서 지적해주신 것처럼 올려야하는 요인과 올리기 어려운 요인이 둘 다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가 냉정하게 따져보면, 미국경제의 더블딥 우려가 불안요인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아직 ‘가능성’ 수준입니다. 우리에게 떨어진 ‘발등의 불’은 벌써 올 들어 7개월째 4%가 넘는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물가입니다. 이게 정부에서 하는 것처럼 설렁탕집 가격담합조사를 하는 방법 등으로 해소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물가상승으로 인한 민생 피해와 거시경제적 부작용이 크기 때문에 더블딥을 당장 경험하고 있는 상태가 아닌 한 올릴 수 있을 때 빨리 올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까 IMF가 제시한 4%라는 선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 일정한 목표선까지 올릴 수 있을 때 빨리 올리고요, 더블딥이 현실화한다면, 다시 금리를 낮춰서 경기 악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더블딥 우려 때문에 ‘이번 달도 못 올리겠다’ 하기보다는 물가상승에 대응해 점진적으로 금리를 올리면서 더 어려울 때 활용할 수 있는 정책 수단을 확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고: 첨언하자면 개인 부채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부채가 늘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적절한 금리인상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자를 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힘들겠지만, 금리가 워낙에 낮기 때문에 돈을 더 빌리게 되는 유인이 많다, 유인을 줄이기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는 게 사실입니다.

내부 문제점 짚어줄 혁신안 없어...  청렴의무 강화, 취업 제한 등 재탕 대책뿐

박: 이번 주 뉴스 중 또 말이 많았던 것 하나가 금융감독 혁신안인데요, 금융관료들의 강철 같은 갑옷은 정말 깰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통령까지 금융감독원을 직접 방문해서 서슬 퍼렇게 개혁을 명령했는데, 금융관료들이 그 명령에 스파이크를 날렸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개혁안이 나왔습니다. 우선 제 교수님은 개혁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제: 우선 짧은 인상부터 말씀을 드리면, 태스크포스가 구성된 것 자체가 대통령의 지시로 황급하게 됐는데, 당시 구성원의 인적 비율을 보니 금융관료 출신들이 주도하는 위원회였어요. 과연 제대로 된 개혁안이 나오겠나 하는 걱정들을 했는데, 보고된 잠정개혁안을 보니 역시 걱정한 대로였습니다. 그 사이에 민간위원이 ‘정부 각본에 들러리가 될 수 없다’며 사퇴하고 나가는 파동도 있었는데, 별로 변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보고 내용을 보면 금융관료들이 저지른 정책 실패에 대한 냉엄한 평가나 반성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축은행 문제의 주된 원인 중 하나가 금융감독이 독점적으로 이루어지고 외부의 감시와 견제가 없었다는  부분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한 근본적 대책도 담기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금감원 직원들의 청렴의무를 강화하겠다, 유관기관 취업을 제한하겠다는 등등의 대책은 이미 금감원 차원에서 발표한 대책의 재탕, 삼탕이었다는 것이고요.

고: 이번 저축은행사태로 인한 금융체계 개편은 출발부터 성격이 모호했습니다. 저축은행 사태가 금융감독원의 내부비리에서 생긴 문제냐, 아니면 감독체계가 잘못된 것이냐, 이 두 가지에 대한 분석이 제대로 안됐습니다. 저축은행이 상호신용금고에서 은행으로 바뀌고 그 은행을 감독하는 담당자가 10여년 이상 유착관계를 맺어왔죠. 그 유착관계를 통해서 프로젝트파이낸싱(PF)부실을 초래하는데도 눈을 감아줬고, 그 돈의 일부가 정치권으로 갔을 것이라는 추정이 있고. 이런 문제를 내부 비리의 문제로 포커스를 둘 것인지 감독 체계가 잘못된 것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뚜렷한 판단이 이뤄지지 않은 채 TF를 서둘러 구성한 것이죠, 그래서 3개월 동안 서로 토론을 했습니다만 그런 방향이 없었기 때문에 이번 개혁안이 빈수레처럼 소리만 요란하다는 비판이 나온 것입니다. 저는 금융감독원의 내부비리 문제가 상당히 있지 않았나, 소위 체계 개편의 문제, 제도를 개편한다고 문제가 다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에 문제가 있는 것인데, 그 부분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 먼저 이뤄졌더라면 지금과 같은 비판은 듣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고 소장님이 이야기하신 것처럼 금감원의 인적인 요소, 내부의 운용 잘못이 상당히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동시에 그렇게 내부가 부패했는데도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오래 갈 수 있었던 것은 외부에서 들여다 볼 수 있는 감시나 견제의 체계가 마련돼 있지 않았던 탓이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 금융감독혁신 태스크포스가 시작된 것이 저축은행의 고질적인 부실과 비리 때문인데 저축은행이 지금과 같은 부실과 비리의 덩어리가 된 데는 분명히 금융정책의 실패가 작용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저축은행의 이름을 바꿔줘서 공신력을 높여준다든지, 대출 한도를 턱없이 높여줘서 과도한 동일인 대출이 이뤄지게 한다든지 등등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번 태스크포스가 한 것처럼 근본적인 정책의 문제를 짚지 않고 그냥 감독체계 내부의 문제만 다뤘을 때 제대로 된 개혁안이 나올 수 있겠는가 회의적입니다. 만일 다시 한다면 저축은행 부실과 감독실패를 낳은 금융정책의 문제점 자체를 처음부터 되짚어서 무엇이 잘못됐고 어떤 대안이 필요한가를 먼저 냉정하게 진단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태스크포스를 주도한 주축이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의 고위관료들이었기 때문에 스스로의 잘못을 파헤치는 게 불가능했다는 것이죠. 일단 태스크포스 구성자체가 획기적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으로 금감원의 문제를 낳은 중요한 요소 하나가 검사와 제재권을 금감원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검사는 이번에 보니 예금보험 공사의 공동검사권을 강화한다는 부분이 들어가긴 했으나, 예보라는 것도 사실 금융위원회의 울타리 안에 있기 때문에 과연 독립적인 견제가 되겠는가 회의적입니다. 한국은행에 어느 정도의 견제가 가능할 만큼 검사권을 공유하게 해야 하는 것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또 이번에 얘기가 됐다가 성사되지 않은 것 중 하나가 검사권은 금감원이 갖되 제재할 수 있는 권한은 금융위원회가 행사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두 단계에서 투명하게 노출되는 부분이 있으니 검사권과 제재권을 분리하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결정이 미뤄졌습니다. 저는 그 부분도 긍정적으로 검토돼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되려면 정책의 문제부터 다시 짚고 검사권과 제재권의 공유, 분산 방안이 반드시 담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아무리 좋은 안을 내더라도, 만약에 식품위생법 개정안을 요식업협회에 맡겨서 만들면 보는 사람이 불편하듯이, 외부에서 합리적인 전문가들이 들어가서 내놓았으면 조금 다른 모습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 전문가들을 들러리로 세울 것이 아니라, 책임감을 가지고 정책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태스크포스가 제 역할을 할 수 있겠죠.

박: 정부에서 하는 위원회나 TF가 항상 이런 모습인 게, 제가 예전에 정부의 외부공모직 심사위원으로 잠깐 참여했는데, 아무리 의견을 내도 반영될 방법이 없더라고요. 어떤 소수의견은 상하배제 범위에 들기 때문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게 일반적인 관행이더군요.

제: 저도 정부가 주관하는 심사위원회나 정책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는 위원회에 더러 참석했습니다만, 어떤 위원회는 참석위원들이 아주 비판적이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니까 회의를 다시 안 열더군요.

밥그릇 챙기기 보다 금융건전성 높여 소비자 보호할 방법 마련해야

박: 고 위원님 보시기에 이번 개혁안에 ‘이것만은 들어가야 한다’면 어떤 게 들어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고: 기술적으로 예보의 공동검사나 단독조사 확대 등 나름대로 성의표시를 했는데요, 단순히 이런 것보다는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기획재정부 그리고 금융위원회 등 감독 관련 부처들이 다시 한 번 만나서 조직체계를 다시 장기적으로 개편해야 합니다. 지금 현재의 체계 개편은 이명박(MB)정부에서 만들었기 때문에 이 정부에서 고칠 수가 없어요. 잘못된 것을  알아도 고치게 되면 실패를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음 정부에서 고쳐야 하는데 고치는 방향을 두 가지로 잡으면 됩니다. 하나는 ‘금융소비자를 얼마나 제대로 보호할 것인가’ 또 하나는 ‘금융회사의 건전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자신들의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대개 검사나 감독을 하겠다고 달려드는 기관들은 다 자기네 일자리와 관련돼 있습니다. 자기들이 검사나 감독을 하면 자기 식구를 그 자리에 보낼 수 있거든요. 검사나 감독권이 없는 곳은 인사의 숨통을 못 틔우기 때문에 권한을 갖겠다고 욕심을 부리는데, 그런 기득권을 내려놓고 소비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금융건전성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를 목표로 장기적인 체계 개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박: 저는 하나만 딱 붙였으면 좋겠어요. 검찰총장 청문회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인데요, 위장전입에 대해 “딸의 문제여서 감정적으로 실수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사과한다”고 하더군요. 그러다가 “국민이 똑같이 하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더니 “법대로 처벌하겠다”고 하고요. 기본적으로 권한과 권력을 가지고 이끌어가는 분들은 더 강력한 처벌기준이 적용돼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라는 생각이 듭니다. 권력자의 부정비리 경우에는 미국식으로 감형 없는 500년형 정도를 매겨버리면 과연 비리가 발붙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러셀이라는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인간이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가능성 만큼이다. 자신의 잘못이 드러나거나 처벌될 가능성이 낮으면 죄의식이 없다.” 굉장히 섬뜩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부패나 비리의 비용이 높다면 아무리 이익이 커보여도 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부패나 비리의 비용이 굉장히 낮고, 부패나 비리를 통한 눈앞의 이익은 굉장히 크다보니 고질적인 부조리가 개선되지 않고 있습니다.

박: ‘권한 권력 비례 가중처벌법’, 이런 거 하나 만들면 깨끗하게 끝날 것 같은데요.

고: 법안 발의를 하나 해서 사회를 개혁하는데 일조해야 하겠군요.(웃음)

박: 오늘 두 분 말씀 들으면서 우리 사회 문제점까지 동시에 짚어본 것 같습니다. 오늘 두 분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기사는 KBS2라디오 <박경철의 경제포커스>와 제휴로 작성했습니다. 일부 내용은 분량 상 생략했습니다. 방송 내용은 <박경철의 경제포커스> 8월 6일 다시 듣기를 통해 들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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