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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은 ‘사람’이 아니다
[현장] '열정페이'에 목매는 수습DJ
2018년 04월 30일 (월) 21:27:56 황금빛 기자 hgb1987@nate.com

‘최저임금’도 없고 ‘노동시간단축’ 혜택도 없다. 나오라면 나오고, 들어가라 할 때까지 있
어야 한다. 무보수에 자리라도 주면 감사하게 생각하고 페이는 열정으로 대신해야 한다. 진보도 보수도, 여당도 야당도 돌아 보지 않는 사각지대. 일부 전문직 수습생들의 현주소다.

올해 스물한살의 송영헌씨(대구)는 클럽이나 축제 등에서 음악을 골라 틀어 주는 DJ(디스크 자키 disk jockey)가 꿈이었다. 여덟 살 때 아버지 차에서 DVD로 공연실황을 본 네덜란드의 아민 반 뷰렌이란 DJ에게 빠져 들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개막식 때 티에스토라는 DJ가 신나게 음악을 틀어 주는 걸 라이브로 보면서 DJ의 꿈을 키워 왔다.

DJ가 되려고 중학생 때 스스로 곡을 만드는 공부부터 시작했다. 유튜브로 독학도 하다 DJ학원에도 갔다. 혼자 2~3년 공부를 하고 열정이 있었던 터라 학원 나간 지 한 달 만에 바로 현장에서 DJ일을 시작했다. 그 때 열여덟 살로 미성년자라 고등학교나 대학 축제 등에서 신나게 일을 했다.

거칠 것 없고 탄탄하게만 보였던 ‘DJ의 꿈’으로 가는 길은 거기 까지였다.

“중학생 때는 DJ활동을 하시는 분들을 접하기 어려워 몰랐는데, 고등학생이 돼서야 현실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힘들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이니까 잘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막상 일을 하면서 듣고 겪어 보니 이게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됐지요.”

“근무시간도 일도 정해져 있지 않아”

송씨는 열심히 하고 잘 하면 꿈에 그리던 ‘DJ박스’로 올라갈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첩첩산중’이었다. 이름난 DJ로 자신의 역량을 신나게 발휘하려면 어렵고 힘들게 단계를 거쳐 올라가야 한다. 통상 견습DJ와 상주(레지던트)DJ들 사이 서열이 정해지고 그외 타임DJ, 메인DJ 등이 존재한다.

견습을 거쳐야 ‘상주DJ’가 될 수 있는데, 레지던트DJ라고도 한다. 병원 레지던트 직급에서 따왔는데, 클럽에 출근해 상주하면서 음악을 틀고 손님을 관리하는 일을 한다. ‘타임DJ’는 여러 클럽을 돌아 다니면서 주로 피크 타임에 한시간 정도 씩 음악을 틀어주는 프리랜서 같은 DJ다. 상주DJ를 하다 경력이 쌓이면 타임DJ가 되기도 한다. ‘메인DJ’는 상주DJ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특정한 클럽의 간판 DJ다.

   
▲ 견습은 보통 클럽에 근무하는 ‘상주DJ’밑에서 배우면서 일하는데 ‘사람’이 아니다. ⓒ pixabay

이런 구조에서 가장 밑바닥이면서 이 일을 하려면 거쳐야 하는 것이 견습DJ다. 견습은 보통 클럽에 근무하는 ‘상주DJ’밑에서 배우면서 일하는데 ‘사람’이 아니다.

“근무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일도 시키는 대로 닥치는 대로 해야 합니다. 견습DJ들의 근무시간은 대체로 저녁 9시부터 다음날 새벽 5~6시까지입니다. 적게는 7시간에서 많게는 10시간까지 일을 합니다.”

견습DJ들은 출근하면 ‘DJ박스’를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부터 시작한다. 선배 ‘상주DJ’가 출
근하면 긴장모드로 들어간다. ‘이것 해라’ ‘저것 해라’ 하면 지체없이 영에 따라야 한다. 담배 술 심부름은 물론 거의 개인비서 같은 일을 하는 경우도 있다.

송씨는 “심지어는 선배DJ들이 ‘스테이지 가서 여자 좀 꼬셔 와봐라’는 것은 물론 ‘일 마치고 여자 꼬시러 가자’는 이야기도 했다”면서 “받아들이기 나름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이런 얘기를 들으면 얼마나 수치심을 느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일단 영업이 시작되면 견습DJ들은 선배 DJ의 업무보조를 하는데, 주로 조명을 ‘찍는다’. 조명을 비추는 것을 이 직종에서는 ‘찍는다’고 한다. 그러면서 DJ교육을 받는데,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직접 음악을 플레이할 기회를 얻기도 한다. 그러나 그건 운이 좋아 좋은 선배를 만날 경우이고, 어떤 견습은 아예 교육은 받지도 못하고 허드렛일과 잡일만 하다 그만두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한다.

교육 못 받고 잡일만, 무보수에 ‘열정페이’로 견뎌

‘견습DJ’들은 이렇게 하루 일곱시간에서 열시간 씩 밤새워 온갖 일을 다 하고도 무보수나 무급에 가까운 처우를 받고 있다. 물론 근로계약서 같은 것은 없다. 송 씨는 “이 직종에서는 근로계약서는 99% 없다고 봐야 한다”며 “일을 가르쳐 주는 거니까 식대나 교통비는 지원해 주지만 페이는 없다는 곳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대체로 한달에 10만원 전후 정도 주는 곳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서울에서 견습DJ 생활을 1년쯤 했던 김 아무개(22)씨는 “아예 한 푼도 안 주는 경우가 많고 일부 업소에서는 교통비만 주는 곳도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견습을 벗어나면서 돈을 받기 시작했는데, 그것도 일주일에 사흘 하루에 8시간씩 일하고 월 30만원을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시급으로 하면 3천원쯤 되는데, 2018년도 최저임금 시급 7천530원의 절반도 안된다.

견습기간도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상주DJ 마음대로다. 보통 견습 기간은 6개월인데 길면 1년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송씨는 “실력이 없거나 배움이 느려서 견습을 오래할수도 있지만, 페이 안 주고 부려먹으려고 그러는 경우도 없지 않다”고 했다.

이처럼 온갖 궂은 일 마다 않고 무보수도 감내하면서 견습을 하지만, 그렇게 죽자 사자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란 데 문제가 있다. 다른 직종에서나 직업에서도 그런
경우가 없지 않지만, 이 곳에서는 이른 바 ‘라인’을 잘 타지 않으면 어려운 견습을 거쳐
도 길이 열리지 않는다.

송씨는 “이 직종에서는 라인을 잘 타야지 장래가 보장된다”며 “그래서 한 번 들어온 견습들은 힘들고 불만이 있더라도 그 사람들과 라인을 만들려고 참고 견디고 다른 데로 가고 싶어도 못간다”고 전했다. 송씨는 이런 현실의 장벽에 부딪혀 여덟 살 때 꿈꾸었던 DJ의 꿈을 접었다.

김 아무개씨도 “강남권 대형 클럽 DJ가 되는 길은 ‘인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형들 따라다니면서 돈 못 받으면서도 인맥 쌓으려고 온갖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다른 부조리한 일들도 벌어진다. 송씨는 대학에서 미디(MIDI, 컴퓨터를 이용한 음악편집이나 특수효과)를 전공해 DJ와 작곡 레슨 등을 하면서 수입을 보충했는데, 레슨생들을 선배DJ들에게 뺏긴 적도 있다고 한다. 그는 “곡 만들 때 사용하는 샘플을 반강제로 뺏긴 적도 있다”며 “지적재산인 음악이랑 작업파일, 작곡프로그램까지 교묘히 빼내갔다”고 말했다.

   
▲ DJ 포함, 클럽 음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단체톡방. ⓒ 손영진

클럽 운영주 마인드도 문제

견습DJ가 근무시간이나 교육받을 내용과 해야 할 일 들에 대해 제대로 정해진 틀이 없이 혹사당하는 것은 클럽 운영주들의 DJ관리 방식 때문이란 지적도 나온다. DJ들의 활동무대인 클럽을 운영하는 업주들은 DJ 인건비를 개인별로 지급하지 않고 ‘DJ박스 페이’라는 명목으로 한꺼번에 지급한다. 그러면 고참 선배들 중 책임자가 자기 몫을 챙기고 나머지 DJ들에게 분배를 해주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이런 구조 때문에 견습DJ는 무급이나 교통비 정도만 받고 일만 하면서 혹사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김 아무개씨는 “이러다 보니 돈 안 주고 밤새 일만 하다 못 견디고 나가는 사람이 많은 것”이라며 “나가면 또 다른 애를 구하면 된다는 마인드로 하니까 견습은 사람 취급을 못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이 직종의 업주들이나 선배DJ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송씨는 “이 직종에서도 좋고 훌륭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면서 “일부 악덕 업주나 생각이 짧은 선배DJ들이 물을 흐리고 있다”고 했다. 그런 가운데 견습DJ들의 권리와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평창 패럴림픽 페스티벌에 참여했던 DJ한민과, DJ영스베비는 견습DJ들이 처해 있는 열악한 환경을 라이브 방송 등을 통해 전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있다. DJ영스베비는 온라인 동영상 채널을 운영하고 있는데, 특히 견습DJ들의 노동 환경 개선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관련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JJVNZTbCQyw)

   
▲ 왼쪽부터 DJ한민, DJ영스베비, 음악평론가 이대화의 방송모습. ⓒ 유튜브 DJ한민 채널 갈무리

손영진(21)씨 등 견습DJ들도 자신들의 권리를 찾고 노동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그는 자신이 만든 곡을 대중 앞에 플레이하고 싶어 DJ로 전직을 희망하고 있는데, DJ세계에서 일어나는 부조리한 일들부터 해결하려고 나선 것이다.

   
▲ 손영진 씨가 익명으로 받은 견습DJ 들의 피해사례. ⓒ 손영진

얼마 전 스웨덴 출신으로 세계적인 DJ였던 아비치의 사망 소식이 전해져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의 애도가 이어졌다. 1989년생인 그는 젊은 나이에 EDM(Electronic Dance Music)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다가 요절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아비치를 보며 DJ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젊고 실력 있는 뮤지션들이 많이 나올 수 있도록 견습DJ들의 정당한 노동권 보장과 처우개선이 하루 빨리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편집 : 안윤석PD

[황금빛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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