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법정근로시간 단축

▲ 손준수 기자

1986년부터 1996년까지를 ‘한국경제의 골디락스’라고 부른다. 대다수 사람들은 이 시기를 ‘3저 호황’과 ‘높은 경제성장률’ 때문에 경제 전반에 전성기가 찾아왔다고 믿는다. 대내외 여건이 좋았던 이유도 있지만, ‘노동의 가치’ 존중도 전성기의 한몫을 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기점으로 노동조합 조직률이 20%를 최초로 넘었다. 제조업 노동자의 임금상승률도 2년 연속 19%를 기록했다. 생활 수준과 노동환경이 향상되면서 경제는 성장했다. 지금의 노동환경은 30년 전보다 후퇴했다. 비정규직 양산, 10% 초반의 노조 조직률, OECD 최장시간 근로 등 상황은 열악하다. 최근 논의된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최저임금 인상과 함께 한국경제의 부흥을 이끌 것으로 보인다. 30년 전처럼 노동의 가치를 존중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법정근로시간 단축은 한국경제의 ‘유효수요창출’을 가져온다. 경제에서 수요는 공급보다 중요하다.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고 믿었지만, 공급과잉은 결국 대공황을 불렀다. 이후 소비가 경제를 살렸다. 소비를 늘려야 공급도 늘고 기업도 성장한다. 그동안 한국의 노동자들은 장시간 동안 공장, 사무실, 가게 등에서 공급을 위해 일을 해왔다. 반면 소비 활동은 적었다. 높은 물가에 비해 낮은 구매력과 더불어 휴식시간이 적었기 때문이다. 공급자도 소비자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여유시간이 생긴다면 노동의 부가가치가 향상되고, 소비도 증가할 수 있다.

▲ 근로시간 단축은 저녁이 있는 삶을 가져온다. ⓒ Pixabay

문제는 ‘노동을 바라보는 프레임’이다. 노동에 대한 지원을 투자보단 비용으로 본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의 생산성과 가계의 소득이 하락하면 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 정부는 기업에 재정지원을 하겠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정부의 결정에 비용을 발생시킨다며 비판한다. 이는 노동에 대한 악의적인 프레임 씌우기다. 기업의 경영 잘못으로 공적자금을 지원하면 ‘투자’로 보지만, 노동에 대한 지원은 ‘비용’으로 폄하된다. 노동자에 대한 지원도 투자로 봐야 한다. 한국은 GDP 대비 내수비율이 61.9%로 84%인 일본보다 한참 낮다. 그동안 한국경제는 수출주도 경제라는 미명아래 저임금, 장시간 노동구조를 유지했다. 그 결과 대기업은 커졌지만, 노동자들은 허리띠를 졸라매었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경제 규모를 갖춘 만큼 노동의 질도 향상시킬 필요가 있다.

경제학자 아서 루이스는 “한 나라의 경제성장 과정에서 어느 시점이 되면 저임금구조가 지속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루이스가 말한 시점을 한국은 30년 전에 지나쳤다. 과거처럼 저렴한 임금에 야근까지 하는 구조로는 희망이 없다. 근로시간 단축은 수출주도경제에서 내수활성화로 가기 위한 첫 단추다. 이를 위해 노동자, 사용자, 정부 등 경제 주체 간 합의가 필요하다. 노동자의 대우가 좋아지면, 소비도 늘고 경제도 성장한다. 단순한 시간 단축을 넘어 한국경제가 탄탄해질 수 있다. 노동자에 대한 존중이 바탕이 된 근로시간 단축은 한국경제를 다시 ‘골디락스’로 이끌 것이다.


편집 : 장은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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