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페이스북 정보유출

▲ 손준수 기자

“몇 년 동안 대중을 몰래 감시해온 저희로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거주지와 종교적 정치적 견해, 순서대로 정리한 친구 목록, 이메일 주소, 전화번호, 자신이 찍힌 수백 장의 사진, 현재 하고 있는 활동 정보를 공개하고 있다니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CIA가 꿈에 그리던 일이지요.”

미국 시사평론매체 <The Onion>의 풍자다. 자연현상의 원리를 밝혀내기 위해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반복한다. 실험을 통해 가설을 검증하는 학문이 ‘과학’이다. 과학은 자연현상뿐 아니라 사회현상에도 적용된다.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하여 통계를 만들면 일반화한 결과가 나온다. 이렇게 도출된 결과는 사회질서나 정책을 만들 때 사용된다. 문제는 인간 스스로 ‘숫자’가 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ICT 기술과 소셜미디어가 발달한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문제점이 커지고 있다. 최근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로 큰 홍역을 치르고 있다. 고객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정보가 미국 대통령 선거에 이용되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인간의 도구화’를 보여준 사례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디지털 봉건시대’도 함께 열렸다. 디지털 디바이스의 출현으로 새롭게 개발된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사람들이 자신의 정보인권을 포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봉건시대에서는 왕과 영주가 개인을 통치했다. 평민, 노예 등은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가 박탈되었다. 통치자의 수탈에 견디지 못한 시민들은 ‘시민혁명’을 일으켰다. 그 결과 국가의 주권, 천부인권, 행복추구권 등 인간의 기본권을 손에 넣었다. 이렇게 어렵게 찾은 권리를 ‘빅데이터’, ‘소셜네트워크’라는 미명 아래 개인은 다시 빼앗기고 있다. 특히 페이스북의 개인정보 유출 사례처럼 주권실현의 장인 ‘선거’에서도 인간은 도구로 이용당했다.

▲ 페이스북은 개인정보 유출로 최대 위기를 맞았다. ⓒ pixabay

디지털 봉건제에서 벗어날 ‘새로운 권리장전’을 맺어야 한다. 최근 한국사회에서 개헌이 논의되는 만큼 ‘정보인권’을 제정하는 게 시급해 보인다. 헌법에서는 인간의 기본권인 평등, 자유 등을 ‘자연권’으로 규정한다. 자연권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부여받은 권리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다. 디지털 기술 기반의 서비스와 인간의 자연권은 등가성이 성립할 수 없다. 헌법이 탄생할 때 ICT 기술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인권에 관한 조항이 없었다. 사회가 변화한 만큼, 개헌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보인권이 헌법에서 보장하는 권리가 된다면, 어쩔 수 없이 자발적으로 제공한 개인정보를 특정 목적을 위해 불법으로 이용하는 행위를 막을 수 있다.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는 “현대 컴퓨터 통신망과 데이터베이스가 마치 죄수를 감시하는 감옥인 ‘파놉티콘’처럼 개인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통제한다”고 지적했다. 권력기관은 개인을 수치화해 쉽게 통제하려고 한다. 디지털 서비스는 통치자의 인프라 역할을 한다. 인간은 잠깐의 편리함을 위해 피를 흘리며 쟁취한 권리를 포기하고 있다. 디지털 파놉티콘에 인간 스스로 구속되려고 한다. 오프라인에서는 ‘국민주권’을 외치며, 직접민주주의에 다가선다. 온라인에서는 역설적으로 봉건제로 돌아가려 한다. 감시의 눈을 넓혀야 한다. 주권자로서 대통령, 국회의원 등 대표자를 감시하는 것뿐 아니라 자연권을 탈취하려는 세력에도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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