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곽영신

▲ 곽영신 기자
언제 바위의 질감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있었던가. 핸드폰 키패드, 컴퓨터 자판의 감촉은 또렷하지만 바위의 피부가 어땠는지는 기억에 없다. ‘구럼비’란 이름도 그랬다. 영화 속 로봇 이름인 ‘범블비’는 들어봤어도 구럼비는 못 들어봤다. 화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굳어져 길이 팔백 미터 가량의 바위덩어리가 됐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도 쉽게 감이 잡히지 않았다. 

제주도 강정마을 남쪽 중덕 해안에 구럼비가 있었다. 물소 떼. 지난 25일 <한겨레> 탐사보도팀 인턴으로 취재차 찾은 현장에서 본 구럼비의 첫 인상이다. 마치 거대한 물소 떼가 바닷가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듯, 검은 회색의 등을 드러낸 그 바위는 한 마디로 장관이었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듯,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무슨 말인가를 하려는 듯한 모습이었다. 진귀한 볼거리가 많은 제주도에서도 희귀한 지형이란다.
 
이 구럼비를 놓고 강정마을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지금 두 패로 갈려 있다. 한 쪽은 ‘구럼비를 콘크리트에 파묻자’고 나서고, 다른 쪽은 ‘차라리 나를 파묻으라’고 막아 선다. 강정에 건설 중인 해군기지 때문이다. 찬성하는 쪽은 기지가 들어오면 마을 인구도 늘어나고, 종합병원도 생기고, 그래서 전보다 잘 살 수 있을 거라고 말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자연을 망가뜨리고 생활의 터전을 앗아가는 외지인의 개발을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 화가 홍보람 씨(34)가 구럼비를 기록하기 위해 뜬 탁본 작품 <자연이 그린 그림>. 강정마을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전시회를 열 계획이다. ⓒ 홍보람

강정마을은 돌담이 낮은 곳이다. 기껏해야 성인 남자의 배꼽에서 어깨 사이 높이다. 그 너머로 이웃들은 아침 인사와 밤 안부를 나눴다. 그러나 이제는 어떤 웃음과 말소리도 돌담을 넘지 않는다. 생각이 다른 사람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지도 않는다. 찬반으로 갈린 형과 아우는 말을 섞지 않고, 이웃끼리 낫을 휘둘렀다는 소문도 나돈다. 등 돌린 이들은 마트나 사우나도 같은 곳을 가지 않는다고 한다. 전쟁터다.
 
양쪽 다 할 말이 많다. 나이 육십이 넘어서도 힘든 물질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던 해녀는 보상금 유혹을 뿌리치기 어려웠다. 반면 땀 흘려 일궈온 밀감하우스와 마늘밭을 잃게 된 사람들은 결코 기지를 용납할 수 없다. 마른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거대 운석 밑에서 요동치는 개미 떼처럼 주민들은 동요하고 있다. 강정은 저마다의 사정과 분노와 체념들이 뒤엉켜 슬픈 파국을 향해 치닫는 것처럼 보인다.

평화롭던 강정을 이렇게 만든 것은 누구일까. 해군기지가 강정에 들어서기로 결정된 것은 지난 2007년 4월, 주민 1900여 명 중 87명만이 모인 마을총회에서였다. 마을회장 주도 아래 참석자들은 만장일치로 박수를 쳤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주민들은 총회가 열리는 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지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서둘렀을까. 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그들의 마음을 모으지 못했을까. 왜 반대하는 사람들의 얘기도 들어보고 어떤 타협이 가능한지 찾아보지 않았을까.

버스 정류장에서 얼굴이 하얀 중학생을 만났다. 아이는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집에 가면 엄마와 할머니가 싸워요.” 마음이 털썩 주저앉았다.

날이 어둑해졌을 때, 다시 구럼비를 찾았다. 한쪽 바위에 걸터앉아 가만히 손을 대보았다.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구럼비는 낯선 이를 경계하는 대신, 말없이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같았다.

“구럼비는 이 자리를 꼭 지켜야 합니다.”

중덕 해안에 텐트를 치고 강정 마을과 구럼비를 지키려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들 중에는 화가도 있었고 교수도 있었고 어린 아이도 있었다. 검게 탄 얼굴에 사명감이 가득했던 사람들. 구럼비에 매료되고 바다로부터 위로받았기에 지키려한다는 얘기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도대체 어떤 개발 이익이 이 위대한 자연의 선물을 대신할 수 있을까. 구럼비를 콘크리트에 파묻으면서 우리가 건설하는 미래는 과연 어떤 모습이 될까.

▲ 해군기지가 들어설 구럼비 바위와 바다 풍경 ⓒ 김태형 (<한겨레>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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