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헌법 3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능력에 따라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지닌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늘날 지방대의 위기는 여기서 ‘능력’을 잘못 해석하고 교육의 ‘균등’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다. 대학이 어느 지역에 있는가와 상관없이 청년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고등교육기관으로 존중받아야 비로소 헌법 제31조의 가치가 지켜지고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가 담보될 것이다. 나는 지역대학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줄탁동시(啐啄同時)’, 즉 알을 깨고 나오기 위해 병아리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껍질을 쪼는 노력이 필요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가까이 다가가면 안 됩니다! 이제 그는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방사선 오염 덩어리입니다.” 사랑하는 남편에게 다가가려는 아내에게 의사가 외친다. 또 다른 부모는 눈을 제외한 온몸의 구멍이 막힌 채 태어난 딸을 두고 마음이 무너진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논픽션 <체르노빌의 목소리>에 나오는 원전 사고 희생자들의 모습이다.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는 인간이 상상하지 못한 비극을 불러왔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논리는 공고하다. 경제성과 효율성의 논리. 이 논리는 원전의 안전성에 관한
그들은 인류가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빛의 기둥’을 보러 나온 지역 주민들이었다. 때마침 하늘에서는 달이 밝게 빛났고, 눈이나 꽃가루 같은 것이 날렸다. ‘빛의 기둥’을 보러 철교로 나온 주민들은 주변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자신들이 판타지 세계에 갑자기 떨어진 게 아닌가 생각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들이 응시했던 신비로운 ‘빛의 기둥’은 체르노빌 원전 폭발 후, 방사능에 공기가 이온화해 발광한 것이었다. 눈발이나 꽃가루처럼 흩날리던 먼지는 방사능 낙진이었다. 체르노빌 원전이 터진 날 밤, 제어되지 않은 원전의 민낯을 철교에서 응시
사실 처음 이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마지막 비상구>라는 책 제목은 너무 비상해 보였다. 비상구는 화재 등의 위급상황에서 쓰는 단어가 아니던가.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비상구라기엔 지구 수명이 한참 남지 않았을까?’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책을 펼쳤다. 이런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책을 펼치자마자 ‘대한민국은 세계 4대 기후악당’ ‘기후위기대응지수(CCPI)가 61개국 중 58위로 바닥권’과 같은 표현들이 쏟아졌다. 하지만 내가 이 책을 진심으로 대하며 읽기 시작한 건 원전밀집지역 이야기가 나올 때부터였다.어린 주현이가 ‘생존배낭’
십 년 전,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네팔로 교육 봉사를 간 적이 있다. 우리가 갔던 학교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버스로 몇 시간을 달린 후, 두 시간 정도 등산까지 하고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이었다. 사실 카트만두에서 묵었던 게스트 하우스도 하루에 전기가 4시간밖에 들어오지 않는 데다 그마저도 수시로 끊기곤 했었는데, 그렇게 깊숙한 곳에 있는 학교이니 전기는 꿈도 꿀 수 없었다. 전기뿐 아니라 수도 시설도 없어, 산에서 흘러내려오는 물로 고양이 세수를 하고 화장실도 땅을 파서 천막으로 겨우 가린 곳을 사용했다. 그곳에서 열흘 정도
38년의 교직 생활을 마감하면서 돌아보면, 교육자로 보람 있었던 성과는 학교숲가꾸기 사업으로 교정을 녹색정원으로 만든 것, 환경교육에 힘써 쓰레기양을 반 이하로 줄여 쾌적한 환경으로 탈바꿈시킨 일이다. 경기도청에서 실사를 나온 공무원이 ‘퇴임 이후에도 계속 실행되도록 인계를 잘하라’고 권유한 말이 귓가에 남는다.지난 총선거에서 사용한 비닐장갑이 63빌딩 7개 높이, 투표용지가 원목 23만 그루 분량이라는 통계에 기절할 뻔했다. 지구촌이 코로나19로 신음하는 가운데, 미세먼지는 평년보다 훨씬 줄어서 연일 청량한 하늘을 볼 수 있으니
정치적으로 ‘창조적 파괴’가 일어난 순간이었다. 광장은 조국 수호와 퇴진을 따라 갈라졌고, 공화주의가 증발된 의회에서는 정당간 총력전이 펼쳐졌다. 진영을 중심으로 분열된 사회는, 민주주의가 독재 외의 방법으로도 ‘파괴’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하지만 파괴적이었던 권력 게임은 모순적인 현상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그 현상은 진영 갈등보다 조용하지만 민주주의를 구조적으로 훼손하는 것이다. ‘20대 80의 사회’, ‘세습 중산층’, ‘상인 우파와 브라만 좌파’ 같은 말로 불리는, 새로운 불평등이 조국 사태를 거치며 공론화됐다. 진영 갈등이
장면 하나.적갈색 단상 앞으로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중년의 어른들이 겹겹이 엉겨서는 일그러진 표정으로 싸운다. 몸과 몸이 부딪히고, 삿대질과 고성이 오간다. ‘국회’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이런 장면이 떠오른다. 십 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생생하다. 그렇게 TV 화면을 통해 처음 국회를 마주했다. 지난 20대 국회의 패스트트랙 정국은 오랜 기억의 데자뷔였다. 싸움의 내용은 달랐지만, 싸우는 장면만큼은 다를 게 없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질문은 하나다. ‘왜 싸우는 걸까?’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선 국회 본연의 역할, 국회의원이 할
‘교과서’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예문 중에 “고정 관념이나 교과서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혀 있으면 적응력이 뛰어날 수가 없다”가 있다. 그러나 언제 어디서나 교과서적인 판단은 옳다. 교과서적이라는 것은 교과서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에 의해 오직 정답만을 의미하며, 경우에 따라서 옳고 그름이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이미 그 이름이 좋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어 중용이 불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적응력을 이유로 교과서적인 판단을 비판을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교과서적인 판단 때문에 환경에 적응할 수
<영상 주요 내용>영상은 기사 및 저자 소개 - 우수작 선정 이유 - 보완점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희가 선정한 기사와 그 저자를 간략히 소개한 후에, 이 기사를 우수작으로 선정한 이유를 먼저 밝힙니다.1) 대중과 예술을 잇다 2) 예술가의 이야기를 담다 3) 필력으로 재미를 더하다, 이렇게 세 가지의 이유로 이 기사의 우수성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습니다.아쉬운 점으로는 1) 기사 소재 선택 2) 멀티미디어 활용 3) 브랜딩화의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영상 기획 의도>‘비평왔수다’는 “비평이 뭐냐?(What) 수다 떠는
이기는 습관을 기르라는 자기계발서가 있다. 항상 열정적으로 집요하게 승리를 향해 달리다 보면 그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이미 지친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소리다. 이기면 좋겠지만 그만큼 잃는 것들도 많은 법이다. ‘번아웃 증후군’이 오거나 삶의 소소한 여유와 재미를 놓칠 수도 있다. 경주마는 눈 옆을 가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지 않던가. 너무 빨리 달리면 풍경도 제대로 못 보고 여행이 끝나버린다.경쟁에 익숙한 우리나라가 ‘이겼다’는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주간지 <시사IN> 663호에서 천관율
'비상구’는 화재나 지진 따위의 갑작스러운 사고가 일어날 때 급히 대피할 수 있도록 특별히 마련한 출입구라는 뜻으로, ‘살아남기 위한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거기에 ‘마지막’이라는 말이 더해져 제목의 묵직함이 배로 와 닿았다. 이 책은 ‘기자·PD 사관학교’로 널리 알려진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의 원장과 대학원생들이 수많은 자료를 정리하고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한 뒤 <단비뉴스>에 보도한 기사들을 엮은 것이다. 당장의 편리함을 앞세워 무심하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안전하고 건강한 삶을 유지하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말해준다.
너무 정치적이기 때문에 오히려 탈정치화하는 영역이 있다. 젠더(성)와 환경이 대표적이다. 이 문제들은 제도·구조적 변화를 요하는 것은 물론, ‘지금 여기의 삶’을 새롭게 감각할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관성을 벗어나 일상을 정치적으로 사고하는 일은 매우 번거롭기에, 오히려 탈정치화해 도덕의 차원으로 격하되는 경향이 있다. “차별하지 맙시다”나 “환경보호”와 같은 구호가 그렇다. 이런 말은 도처에 넘쳐나지만 ‘당연한’ 혹은 ‘지루한’ 규범으로 치부될 때가 많다.문제는 또 있다. 기후문제는 전문지식과 여러 담론이 겹겹이 싸여 있어 이해하
올해 초부터 친구들과 비건(완전채식)·환경 스터디를 하고 있다. 비건 및 환경 관련 글을 읽거나 영상을 보고, 감상을 나누는 모임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환경문제에 부채감이 있었다. 관심은 있었지만, 너무나도 크고 두려운 현실 앞에 어찌할 바 모르고 외면했기에 마음의 빚이 쌓여갔다. 시간이 흘러 부채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커졌을 때 스터디를 하게 됐다. 더 이상 외면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했다. 우선 기후위기가 왜 왔는지, 우리가 무얼 잘못했는지, 막연히 두려워할 게 아니라 제대로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마음속 부채감 때문에 만난
대한민국에서 정규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면 발전소에 대한 기본지식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에서 반복·심화하여 학습했을 것이다. 나 역시 교과서를 통해 발전에너지의 종류와 장·단점에 대해 수없이 수업을 듣고 과제를 했다. 그리고 학습 빈도가 잦아질수록 이에 대한 편견 역시 단단해졌다. 성인이 된 후, 원자력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가 왔다. 신고리 원전 사건이다. 처음엔 단순 님비(NIMBY)현상이라 치부하고 관심을 갖지 않았다. 하지만 생각보다 오랫동안 뉴스에 나오면서 나도 자연스레 관심을 갖고 지켜보게 되었다. 원전건설에
“이놈, 벼멸구가 왜 이리 많아. 쌔빠지게 해놓으니까 다 망치네, 다 망쳐.” 할아버지는 올해 들어 농사를 접었다. 수지가 안 맞는 것은 진작 알았지만, 도무지 날이 안 받쳐줘 버틸 수 없었던 탓이다. 해가 갈수록 병충해는 심해지고, 폭염도 때 이르게 찾아와 이겨낼 재간이 없다고 했다.나이든 농민 농사 접게 만드는 이상기후지난해 논 몇 마지기 하지도 않았는데, 유난히 힘이 빠진 건 순전히 날씨 때문이었다. 사실 할아버지의 농사에 손을 많이 보태지도 못했지만, 이상기온은 내가 도와드릴 엄두조차 못
2011년 3월 11일 14시 46분경 일본 도호쿠 지역에서 진도 9.1의 대지진이 일어났다. 도쿄에 있었던 나는 죽음의 공포를 경험했다. 대지진은 초대형 쓰나미를 불러왔다. 10미터(m)의 쓰나미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를 덮쳤다. 자연재해는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다. 재앙의 시작은 ‘돈’이었다. 쓰나미로 발전소가 정전되고 전기를 끌어 올 수 없었을 때, 바닷물을 부어서라도 노심 온도를 낮춰야 했다. 그런데 바닷물을 부으면 원자로는 용도 폐기된다. 원자력 건설비용이 아까워 신속한 결정을 못한 것 등 복합적 사유로 ‘인재’가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