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가요 종복삼촌’ 이후 풀무질 서점 1년 반 “26년 두 달 하고 10일만에 서울 명륜동 풀무질 일꾼의 삶을 마쳤습니다.” (<단비뉴스> 2019년 10월 7일 ‘잘 가요 종복삼촌’ 기사 참조)청춘을 바쳐 서울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을 꾸려왔던 은종복(55) 씨가 작년 6월 12일 서점을 그만두고 떠난 지 1년 반이 다 돼 가는 11월 20일, 책 읽기 좋은 가을 날 저녁에 찾아간 서점 풀무질에서는 작은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50㎡ 남짓한 지하 서점 안에 이름도 나이도 다른 사람 서너 명이 모여 페미니즘과 관련
우리나라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신흥도시들이 많다. 주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펴면서 조성한 대규모 공단이나 공업도시들이 그렇다. 동해안 벨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울산과 포항이 자그마한 어촌에서 대규모 공업도시로 변천한 도시들이다. 그중 포항은 작은 어촌에서 세계 5위 규모 제철소와 인구 50만 도시로 변모한 만큼이나 그 땅의 역사도 심한 변천과 굴곡을 겪었다. 지금 포항은 형산강을 가운데 두고 그 위쪽으로 형성된 상업∙행정 중심지와 그 아래쪽으로 조성된 제철단지 등 크게 두 덩어리로 이뤄졌다. 그중
1990년 4월 어느 날. 제주도 성산읍 성산일출봉에서 남서쪽으로 4km쯤 떨어진 해발 134m 대수산봉 서쪽 산자락에 흰색 콘크리트 건물 한 채가 들어섰다. 길이 100m, 폭 50m, 높이 10m의 길쭉하게 생긴 건물로, 외관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다.축구장 3분의 2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 건물은 벽 두께가 3m에 이르고 두께 1.2m 천장 위에 1m의 빈 공간을 두고 그 위에 1m 두께 지붕을 올린 매우 특이한 구조다. 900평 정도 넓이에 높이 5.5m의 건물 내부에는 가로 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기둥 27개가
영랑은 왜 고향에서 시를 썼을까?영랑은 전남 강진 시골에서 태어나 1915년 강진공립보통학교 졸업 후 상경해 서울 휘문의숙(지금의 휘문고)을 졸업한 똑똑이였다. 하지만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신사참배와 창씨개명을 거부하고 강진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살이를 했다. 출소하고 나서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고향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다.그는 자기가 거처하던 영랑생가 사랑채에서 시 87편을 지었다. 그는 그의 시 속에는 남도의 방언이 살아있다. 그중 ‘오매 단풍들겄네’를 읊어보면 서정적이면서도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심취하게
추석 명절을 엿새 앞둔 지난 25일 오후 한 시쯤, 서울 종로구 통인동 통인시장. 작년 이맘때만 해도 추석 대목을 앞두고 제수 장을 보러 온 사람들과 관광객들로 북적대던 시장 안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200m쯤 되는 시장 골목에 장을 보러 나온 이는 열댓 명뿐이었다. 그나마 구경만 하고 지나가거나 물건값만 물어보고 가는 이가 대부분이고 물건을 사는 사람은 고작 서너 명이었다. 코로나19 이후 관광객들 발길이 뜸해지면서 악세서리 공방을 하던 가게에는 문을 닫고 임대 공고가 붙어 있었다. 시장 입구에 손 소독제를 비치하고 시장내 취
한낮의 강화터미널은 “힘들어서 어디 나가질 못해”라며 푸념하는 친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 어딘가 한산하고 풀이 죽어 있는 듯하다. 리모델링한 승강장만 시끌벅적할 뿐 주변 상가는 적막하다. 그냥 틀어 놓은 슈퍼마켓의 텔레비전에서 트롯 노래소리만 조그맣게 들릴 뿐이다. 70년 전으로 돌아가는 타임머신, 카페 ‘조양방직’서울 지하철 9호선 김포공항역에서 김포골드라인으로 갈아타고 구래역에서 내려 800번 버스로 한 시간이 채 안 돼 닿는 강화터미널의 평일 인상은 늘 그렇다. 터미널을 빠져나오면 보도블록
“우리 하청노동자는 직영노동자와 같은 일을 하는데도 근속 5년이 넘도록 최저임금 수준의 급여를 받고, 일체의 상여금‧수당도 없었습니다. 설‧추석 때 명절 보너스도 직영은 통상임금의 50%를 받지만, 하청은 근속연수에 따라 50만 원 미만으로 차등 지급받았어요. 직영노동자가 휴가 기간이라 일거리가 없으면 하청노동자는 무급 휴업을 가야 했고요. 심지어 현장에서 위험한 석면해체 작업을 할 때 직영은 휴업하고, 하청이 전부 떠맡아 일하기도 했습니다.” 현대건설기계 사내 하청업체인 서진이엔지에서 용접일을 하다 지난달 24일 사측의 폐업으로
빼앗긴 땅이 돌아왔다. 누구나 마음대로 누리는 공원으로. 그런데 왜 하필 이름이 부산‘시민’공원일까? 부산광역시 진구 부전동(옛 범전리) 일대는 일제가 대한제국을 강제병합한 1910년 일본 수중에 들어갔다가, 광복 후에는 미군 부대에 수용됐다. 뺏긴 땅은 100년만인 2010년 1월 시민들의 노력으로 되찾았고, 2014년 5월 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시민’ 두 글자를 이름에 새겨 넣은 것은 다시는 이 땅을 남에게 뺏기지 않겠다는 굳은 다짐이다. 부산 지하철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를 마신다 소주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나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똥’이라는 글자를 들여다본다. 한 음절 안에 똥이 만들어지고 배설되는 과정이 담겨있다. 치경 파열음 ‘ㄸ’과 입술을 동그랗게 말아 발음하는 ‘ㅗ’. 연구개에서 공기의 흐름을 차단해 만드는 받침 ‘ㅇ’까지. 입의 가장 앞부분에서 이(齒) 사이를 경쾌하게 때리고, 동그란 동굴 속에서 잠시 머물다가, 가장 여린 부분에서 파열하는 모습이 꼭 똥이 생겨나고 배출되는 것만 같다. 스스로를 ‘기똥차게’ 나타내는 똥은 그야말로 똥 취급을 받는다. 똥차, 똥개, 똥물, 똥걸레…. 똥이 접두사로 붙으면 그 단어는 놀림말이 되거나, 낮잡아 이르거나,
농사지어 10남매를 길러낸 할머니는 내게 시골에 내려와 농사짓고 살라 했다. 요즘 청년들은 취업하기 어렵다는 말을 들은 직후였다. ‘밥을 굶진 않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아무리 취업이 어렵대도 시골에 내려와 산다는 건 달갑지 않았다. 농가 인구 중 65세 이상 비율이 거의 절반에 이르고 농가소득은 점점 줄어드는 상황에서 농가의 미래가 지속 가능할지 의문이 들었다.그런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면서 ‘농’(農)의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미국과 유럽 등 코로나 사태가 심각한 국가에서 발생한 식료품 사재기 현상을 봤기 때문이다. 서로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9인 이하 요양시설 노인요양공동생활가정 ㄱ요양원에 사는 김광수(가명·81) 씨는 작년 7월 30일 아픈 곳도 없는데 ‘병원에 입원하라’는 요양원장의 지시에 따라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한 병원에 입원했다. 그는 병원에 들어가서도 특별한 처치나 치료도 없이 병실에서 열흘을 지내고 퇴원해서 요양원으로 돌아왔다. 요양원으로 돌아와서 보니 못 보던 노인이 새로 들어와 있어 간호조무사에게 물었더니 자신이 입원하면서 생긴 빈자리에 들어온 특례입원자라고 했다. 노인복지법 장기요양급여 제공기준 제46조는 ‘수급자(요양원 입
“한국의 농촌이나 농업 또는 농민이 당면한 위기들, 즉 농의 위기는 먹거리 위기와 연결돼 있고 그 위기의 연결고리가 대안의 연결 고리라고 생각해요.“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의 위기는 먹거리의 위기와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라고 지적하며 ‘한국의 먹거리 위기와 대안’이라는 주제로 농업농촌문제세미나 두 번째 특강을 진행했다. 설탕 소비 증가···가공식품 중심으로 변한 우리 식탁 시대가 흐르면서 한국인의 식품 소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주목할 것은 설탕 소비 증가이다. 1965년에는 1인당 평균 1.3kg의 설탕을 소비했지
“우리나라 대학들은 지금까지 수요자인 학생이 교육 서비스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수익자 부담 원칙’을 내세우며 높은 등록금을 정당화해 왔습니다. 이 논리에 따르면 코로나19 때문에 비대면 수업을 하며 강의의 질이 떨어진 상황에서는 당연히 대학이 학생들에게 보상을 해야 합니다.”지난 5월부터 대학등록금 반환운동을 펼쳐온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의 권연수(24·이화여대) 활동가는 6월 10일 <단비뉴스> 이메일인터뷰에서 “코로나 사태로 부실해진 대학교육은 ‘부당이득’ ‘불완전이행’ ‘학습권 침해’에 해당하기 때문에 등록금 일
"도시 중심, 산업 중심의 발전전략이 유일한 길인 것처럼 온 국민이 일종의 발전 드라이브와 기획에 아무 생각 없이 동참했고 때로는 강요당했고 설득당하면서 달려온 것이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가 진정한 의미의 발전, 지속가능성 그리고 개인·조직 차원의 행복 등에 관해 별로 생각해보지 않았죠."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농업구조 변화와 농촌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한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에서 “농업·농촌·농민의 지속가능성이 한국사회 지속가능성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말했다.
1592년 5월 23일, 해 질 무렵, 부산 황령산 봉수대 봉수군 배돌이는 다급하게 산꼭대기로 뛰어 올라갔다. 바다를 내려다보니 적선들이 부산포를 향해 새까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 1만8700명이 배 7백 척에 나눠 타고 부산포로 쳐들어온 것, 즉 7년을 끈 임진왜란의 시작이었다. 임진왜란 첫 보고 올린 황령산 봉수대봉수군 배돌이는 바로 봉수대로 올라가 다섯 연대(煙臺) 중 네 곳에 불을 지펴 연기를 피웠다. 적이 침입하면 네 개의 연기나 횃불을 올리게 돼
국도변에 찰옥수수를 파는 노점상들이 등장한 걸 보면 할머니와 함께 쌓은 추억이 떠오른다. 평생을 충청도에서 산 할머니는 옥수수를 ‘옥수꾸’라 불렀다. 평생 옥수꾸 농사를 지어 아들 다섯을 다 키워냈다는 게 할머니의 자부심이었다. 시골 집에 손주들이 모이면 삶은 옥수꾸를 한 쟁반 쌓아놓고 수십번도 넘게 한 당신의 인생 이야기를 처음처럼 하곤 했다. 가난하고 배고프던 시절 지겹도록 먹은 옥수꾸가 물리지도 않는지, 아버지와 삼촌들은 어릴 적 먹을 때보다는 맛이 덜하다고 투덜대면서도 알알이 꽉 찬 하모니카를 불었다.한여름 더위를 고소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