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에는 하굣길에 강가에 매어놓은 소를 몰고 가야 했지요.” (황두리촌놈)“자라바위라고도 합니다. 장마철에 무척 큰 자라가 올라와 있어 모두 잡으려고 했는데...” (솔무정박)“우리는 오리바위라고 했어요. 하굣길에 저기서 수영하다가 죽을 뻔했어요.” (꽃바위)잔잔한 물가에 나룻배가 쉬고 있는 정경을 담은 흑백사진. ‘강 한가운데 보이는 것은 황소바위’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그 아래 저마다의 기억을 담은 댓글들이 이어진다. 사진에 찍힌 곳은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에 있던 황석나루. 남한강 북쪽 황석리에 살던 학생들은 강 건너 학교
“1987년 6월 항쟁 이후 12월에 대선이 펼쳐졌어요. 선거부정을 막고자 대학생들이 고향으로 내려가서 감시단 활동을 하는 ‘국민운동본부’가 생겼는데, 제가 그곳에서 활동했죠. 저는 단양에 내려가서 선거 당일 참관인을 했는데, 혹시나 투개표 부정이 일어날까 걱정했어요. 공중전화 이용에 대비해 바지 호주머니에 백 원짜리 동전 300개를 넣어놨던 기억이 나네요. 자리를 비우면 안 될 것 같아 식사 시간도 마다하고 빵을 준비해갔을 정도였습니다.”<중부매일> 이보환 기자는 학생 시절 스스로 겪고 공부한 자산들이 자연스레 기자로 활동할 수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은 나도 관심이 있었습니다. 가톨릭대 제 강의는 화요일만이므로, 그 외 날이라면 내가 스쿨 견학도 겸해서 세명대로 갈까요?”인터뷰 요청을 하자 흔쾌한 답변이 돌아왔다. 젊은 예비 저널리스트들을 만나고 싶다는 그의 말이 진심으로 들렸다. 17일, 우에무라 다카시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을 방문했다. 이봉수 교수의 <언론과 한국사회> 강좌 중 ‘언론의 독립과 자유, 책임’이라는 주제에 맞춰 강의 앞부분 잠시 강단에 섰다.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 언론인은 20여 명 청년 저널리스들과 스스럼없이 대화
인터넷에서 보는 만화, 웹툰은 요즘 엔터테인먼트(오락)산업의 대세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문화방송(MBC) <무한도전>과 <마이 리틀 텔레비전>, 한국방송(KBS) <해피투게더> 등 인기프로그램에 웹툰 작가가 출연하고, MBC 수목드라마 는 웹툰 자체를 소재로 했다. 그런데 작가들을 도와 웹툰을 기획하고 유통하는 피디(PD)라는 직군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웹툰 피디의 세계를 알아보기 위해 카카오에서 분사한 ‘다음웹툰컴퍼니’의 박정서(37) 대표를 지난 6월 3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동의 사옥
충북 제천시 의림지의 둘레길을 따라 걷다 보면 널찍한 온실 모양의 ‘의림지 다육촌’이 눈에 들어온다. 제천 토박이 장금자(65) 씨와 아들 부부가 운영하는 다육식물 (줄기·잎에 수분이 많아 두꺼운 육질을 이룬 식물) 가게다. 가게 안에는 500여 종의 크고 작은 다육식물이 쪼르륵 줄을 맞춰 앉아 있다. 이파리들이 모두 촉촉하고 통통하다.우울증 치유해 준 ‘인생 식물’ 화가 모네에게 수련, 고흐에게 해바라기가 있었다면 장금자 씨에게는 염좌(다육식물의 일종)가 있었다. 30대 후반 예고 없이 찾아온 우울증에 고통받던 그는 ‘식물을 키워
“장애인이 여행을 잘 갈 수 있으면, 유모차도 잘 갈 수 있고 노인도 잘 갈 수 있어요.”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이끄는 홍서윤(30) 대표는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다닌다. 국내여행은 물론이고 작년에는 혼자 유럽여행도 다녀왔다. 더 많은 장애인들이 여행을 다닐 수 있도록 돕자는 뜻으로 동료 8명과 함께 지난해 6월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를 만들었다. 장애인이 휠체어를 타고 여행을 할 수 있다면 거동이 불편한 노인, 유모차를 끌고 다니는 엄마도 여행을 쉽게 할 수 있다는 게 홍 대표의 생각이다. 장애인의 이동권, 관광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참여연대, 한국여성단체연합(여성연합), 시민평화포럼. 이들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다. 하나는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 시민후원으로만 운영되는 단체라는 것이고 또 하나는 정현백(63·성균관대 사학과) 교수가 대표 또는 의장을 맡았다는 점이다. 많은 교수들이 대외 활동에 대한 부담스런 시선 때문에, 혹은 연구논문에 치우친 평가시스템 때문에 시민운동과 거리를 두고 있지만 정 교수는 다른 길을 걸어왔다. 여성연합과 참여연대 대표를 각 6년씩 지내며 시민운동 최 일선에서 활동했고, 지금도 서울시 성평등위원회와 한겨레 열린편집위원회 위원장
“누가 나를 평가할 때 다른 건 다 인정할 수 있지만, 학생을 아끼는 점에서 (1등이 아니라) 2등을 하라고 하라면 서러울 것 같아요. 나는 진심으로 내 강의에 들어온 학생 모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한 강의 수강생 100여 명의 이름과 얼굴을 다 기억하는 교수, 학생들이 어떤 문제로 찾아가든 자기 일처럼 진지하게 조언하는 스승, 정원 초과로 수강신청 못 한 학생을 위해 학과 사무실까지 찾아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선생님. 모두 연세대 고정식(63·철학과) 교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논문 실적으로 교수의 능력을 평가하는 대학 분위기에
지난 6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도입에 대한 국민투표가 시행된 것을 계기로 각국에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스위스의 기본소득 도입안은 76.7%의 반대로 부결됐지만, 핀란드가 시범도입을 결정하는 등 진지한 접근을 하는 나라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국회에 의석을 갖지 못한 녹색당이 지난 20대 총선에서 기본소득 도입을 주요 선거공약으로 제시했다. 소득불평등 해소와 탈핵에너지전환 등 진보적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있는 녹색당의 하승수(48) 공동운영위원장을 지난 5월 19일 서울 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
평생 무를 들고 씨름한 사람. 개인육종가 강갑수(63) 박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농고와 농대를 거쳐 ‘무(Raphanus Sativus)의 잡종 연구’로 1991년 박사학위를 받은 이후 정부산하기관과 기업을 거쳐 개인 연구자로 일하는 지금까지 그는 ‘종자 주권’을 생각하며 무의 품종 개량에 대부분의 시간을 쏟아왔다. 충청북도 충주시의 개인 농장에서 일본무를 육종하는 강 박사를 지난 5월 28일 만나 육종에 바친 시간을 되돌아봤다. ‘무 박사’의 갈라진 손바닥과 붉게 그을린 뒷목정오 무렵, 충주시
서울시 중랑구 망우1동 산 57번지. 망우리 공원이 있는 곳이다. 서울 청량리에서 경기도 구리·남양주시 방면 51번 버스를 타고 ‘딸기원 서문’ 정류장에서 내리면 인적이 드문 철물 공장이 먼저 보인다. 이정표도 없는 진입로를 따라가면 시큰한 풀냄새가 나기 시작하고 그제야 묘비와 무덤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시인 박인환과 한용운, 아동 문학가 방정환, 화가 이중섭, 독립운동가 겸 정치인 조봉암… 격동의 근대사를 살다간 영혼들이 이름 모를 많은 이들과 함께 이곳에 잠들어 있다.김영식(53) 작가는 망우리 공원에 묻힌 역사적 인물들의 이야
“아기를 갖고 싶다니/그 무슨 말이 그러니/너 요즘 추세 모르니...계산을 쫌 해봐/너랑 나 지금도/먹고 살기 힘들어...맞벌이 부부되면/집에서 누가 애를 봐/우리는 언제 얼굴 봐/주말에 만나거나/달 말에 만나거나...니 개도 못 키우면서/주제에 우리가 무슨 누굴 키우냐...”지난해 8월부터 11월까지 방영된 엠넷(M.net)의 신인가수 경연프로그램 <슈퍼스타케이세븐(K7)>에서 중식이밴드가 ‘아기를 낳고 싶다니’를 부르며 등장했을 때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반응은 열광적이었다.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의 애환을 적
거침없는 정치풍자로 눈길을 끌고 있는 인터넷매체 <직썰>이 지난해 6월 ‘제1회 그네문학상’을 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화법을 가장 익살스럽게 흉내 낸 참가자 10명에게 1만원짜리 상품권을 한 장씩 주는 소박한 공모전이었다. 가장 재미없는 응모작에 주는 ‘핵노잼상’에는 박 대통령의 자서전인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가 부상으로 준비됐다. 이 공모전에 페이스북을 통해 461명, 트위터를 통해 75명이 참여했다. 공모과정과 재미난 수상작들의 내용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하루를 쓰다’에는 많은 뜻이 있어요. 하루를 ‘살다’라는 뜻도 있고, 글로 ‘쓴다’, 또 하루를 써서 ‘공유’하는 것까지 의미하는 거죠.”아트랩 꿈공작소 대표 최성문(44) 작가는 바쁜 일상 속에 시간의 의미를 잊고 지내는 사람들에게 ‘우리 모두의 하루는 소중하다’고 말을 건넨다. 그는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숫자와 이름을 받아 달력을 만드는 ‘하루를 쓰다’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24일 서울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최 작가는 활기 가득한 모습으로 ‘하루’의 의미를 설명했다.
어머니는 기름때가 꾸덕꾸덕 묻어 있는 아버지의 무거운 작업복을 손으로 눌러 빨았다. 아버지는 철도 정비창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다. 그의 손을 거치면 고장 난 열차도, 집 안 보일러도 새 숨이 붙었다. 소년은 그런 아버지의 손끝이 신기했다. 그래서 소년도 아버지 곁에서 나무 깎는 문구용 칼로 모형 비행기며 군함 따위를 만들었다. 그 소년이 이제 육십 줄에 접어들었다. 그의 손에는 목각인형이 쥐어져 있다. 팔과 다리, 머리 등에 줄을 매달아 조종하는 인형인 마리오네트를 국내에서 매우 드물게 제작하는 작가이자 가족 인형극단 <보물>의 대
학창시절 교장실에 가 본 학생이 몇이나 될까. ‘권위적인 교장실과 주눅 든 학생’이 많은 이들의 상상 속 그림일 것이다. 하지만 서울 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실은 사뭇 다르다. 뻥튀기의 고소한 냄새와 감미로운 통기타 소리가 학생들의 발길을 이끈다. 방 가운데 커다란 마이크와 앰프가 설치돼 있고, 벽에는 학생들의 꿈을 적은 포스트잇 쪽지가 가득 붙어있다. 국내 최초 모험상담가이자 가수인 방승호(55) 교장이 만들어 낸 낯선 풍경이다. 지난 5월 17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아현산업정보학교를 찾았을 때, 방 교장의 왼손 새끼손톱에는 미용과
지난 5월 29일 서울 강남구 논현역 부근의 한 건물 지하에 있는 북티크(booktique)에 들어섰을 때, 일요일 오전인데도 별실에서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토론을 하고 네댓 명은 홀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문을 연 북티크는 독서모임과 영화상영, 파티 등이 이뤄지는 복합공간으로, 서점과 카페가 함께 있는 ‘콜라보서점’이기도 하다. 서가와 홀, 2개의 별실로 구성된 공간에 최대 수용 인원은 80명 정도라는데, 홀은 공연장처럼 계단식으로 돼 있었다. 사회적기업인 북티크를 운영하는 박종원(34) 대표는 “서점이 중심이 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