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적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게 쌓아 올리던 성에는 두 가지가 있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긴 담장 형태의 성(wall)과, 유럽에서 주로 볼 수 있는 대저택 형태의 성채(castle)가 그것이다. 동양에서는 거의 모든 성이 특정 지역을 방어하기 위한 긴 담장 형태였던 반면, 중세 유럽에서는 봉건영주나 귀족이 자신이 거주하는 저택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형 성채가 일반적이었다. 한양도성이나 남한산성처럼 담장 형태의 성이 전부인 우리나라에 성채 모양 유럽형 성이 있다. 경남 거제시 장목면 대금리 바닷가에 있는 ‘매미성’이다
“이렇게 에두르고 휘돌아 멀리 흘러온 물이, 마침내 황해 바다에다가 깨어진 꿈이고 무엇이고 탁류째 얼러 좌르르 쏟아져 버리면서 강은 다하고, 강이 다하는 남쪽 언덕으로 대처 하나가 올라 앉았다. 이것이 군산(群山)이라는 항구요, 이야기는 예서부터 실마리가 풀린다.”일제강점기 항구도시 군산을 배경으로 한 채만식의 소설 <탁류>는 이렇게 시작한다. 전라북도의 북서쪽에 치우쳐 있는 군산은 금강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 길목에 있다. 드넓은 호남평야를 배후에 둔, 내륙 곡창지대와 서해의 풍성한 어장을 모두 갖춘 곳이다. 농수산 자원이 풍부해
“최근 각 지방대들이 위기 극복을 위해 교육과정 개편, 학과 구조조정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그 효과를 떠나 지방대의 각자도생은 불가능합니다. 학령인구(만 6~21세)가 감소해 대학 입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고, 재정이 풍부한 수도권 대학과의 격차도 더 벌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구조적인 문제를 지방대의 개별 노력으로만 극복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지방대의 위기는 정부의 공적 지원을 통해 함께 연대하고 협력하는 공공성 차원에서 해결해야 합니다.” 임은희(43)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지난달 26일 <단비뉴스>
“도시락을 배달하면서 필요하면 전기수리 같은 것도 해줘요. 콩도 심어주고 깨도 베어주고….”도시락을 실은 냉동탑차가 ‘덜컹’ ‘끼익-‘하며 시골길을 달린다. 운전석엔 까만 마스크를 쓴 조경수(53) 씨가 앉았다. 그는 2012년부터 제천시니어클럽에 소속돼 도시락을 배달하는 운전기사다. 시니어클럽 소속 오색정식품제작단에서 만든 도시락을 혼자 살거나 몸이 불편한 노인에게 배달한다. 그는 매일 170~200km 정도 운전한다. 경북 상주에서 서울까지 매일 달리는 셈이다.익숙한 경로라 속도를 낼 법한데, 조경수 기사는 조수석에 앉은 기자를
서울 한강 하류의 선유도는 산이 섬이 됐고, 강 건너편 난지도는 모래섬이 산이 됐다. 인간사회의 문명화는 자연파괴라는 대가를 치르며 이뤄져왔다. 한강 하류의 명승이었던 해발 80m 선유봉은 일제 강점기 여의도 개발을 하면서 평평한 섬으로 전락한 반면, 난지도는 서울이 급속히 커지면서 야트막한 모래섬에서 해발 98m 쓰레기 산으로 솟아올랐다. 인간의 뒤늦은 반성과 자각으로 파괴된 자연을 복원하는 움직임이 일면서 선유도는 ‘물과 생명’을 테마로 한 공원으로 재생했고, 난지도는 물질문명의 발전이 가져올 후유증에 경각심을 일깨우는 생태공원
겸재의 ‘양천팔경’ 중 최고는 선유봉화보나 다른 그림을 보고 그린 것이 아닌, 우리나라 산수를 직접 가서 보고 화폭에 담은 ‘진경산수화’(眞景山水畵)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은 한성의 주요 명승을 많이 그렸다. 그는 65세에서 70세까지 지금 서울 양천구 일대인 양천현감으로 있으면서 ‘양천팔경첩(陽川八景帖)을 남겼다. 양천현 일대에서 경관 좋은 곳을 골라 화폭에 담았는데, 개화사∙귀래정∙낙건정∙선유봉∙소악루∙소요정∙양화진∙이수정 등 여덟 곳이다. 팔경 중 세 곳은 지금도 남아 있는데, 약사사로 이름을 바꾼 개화사와 선유
서울의 거리와 건물은 각양각색의 모양을 뽐내지만 시민들은 대개 무표정하다. 지하철과 버스는 바삐 움직이는데 승객들은 문명의 이기에 몸을 맡긴 채 휴대폰에 빠져 손가락만 움직일 따름이다. 요즘은 모두들 마스크를 쓰지만 지친 시민들 마음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쳇바퀴 돌 듯하는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떠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내가 찾아가는 휴식처가 있다. 도심에서 멀지 않고 남산이나 인왕산처럼 높지 않아 오르는 데도 부담이 없는 응봉산이 바로 그곳이다.자연이 만든 81m 높이 전망대 서울지하철 경의
충북 제천의 사립고 1학년 이예선(17) 양은 교실에서 성적 때문에 친구들끼리 서로 견제하는 상황을 종종 겪는다. 그는 “수업 시간에 깜빡 졸다가 필기하는 것을 놓쳤을 때 잘하는 친구에게 노트를 좀 보여 달라고 하면 빌려주기 싫어하거나 통째로 안 보여주고 딱 집어서 그 부분만 보여준다”며 “다들 인(in)서울 대학을 못 가면 어떻게 하나 하는 스트레스가 정말 커서 입시경쟁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대에 가면 성인이 되는 첫 출발점에서 낙오된다는 두려움이 있어 그럴 경우 재수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다”며
지난 5일 오전 대전역에서 택시를 타고 “산내 골령골로 가주세요” 하자 택시기사가 힐끗 돌아보며 혼잣말처럼 툭 던졌다. “대전 사람들도 잘 안 가는 곳인데…”. 그도 초행길인지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고 출발했다. 대전역에서 동남쪽 옥천 방향으로 30분쯤 달려 도심을 빠져나가자 건물과 인적이 드문 산속으로 난 왕복 2차선 도로로 들어섰다. 택시가 임마누엘교회 앞에 이르자 표지판 하나가 나타났다. ‘이곳은 대전교도소 보도연맹 산내 학살 현장입니다.’
누룩은 시간이 띄운다. 오랜 인고의 시간을 견딘 누룩은 ‘선생’ 칭호를 얻은 적도 있다. 고려 문신 이규보는 <국선생전>(麴先生傳)'에서 누룩을 선생으로 의인화해 당시 문란하던 정치와 사회상을 풍자했다. 그런 ‘국선생’이 근래까지 머물던 충북 제천시 누룩 발효 공장 ‘중앙곡자’가 세월의 무상함을 애써 견디다 58년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진다. 누룩곰팡이 대신 먼지만 수북한 공장 충북 제천시 중심가인 명동에 있는 제천컨벤션센터에서 큰 길을 건너 작은 블록을 두 개 지나면 낡고 허름한 단층 건물이 나타난다. 2차선 도로를 따라 길게 서있
지난 2018년 7월 중순 어느 날 오후 5시 15분경, 제천에서 일하는 환경미화원 이 아무개(61) 씨는 퇴근을 하려고 주차장으로 내려가다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껴 주저앉았다. 작업반장인 장 아무개(62) 씨가 급히 이 씨를 차에 태워 5시 30분쯤 제천의 한 병원으로 옮겼다. 이 씨는 뇌경색 진단을 받았으나 제천에는 뇌경색 수술을 할 수 있는 시설과 의료진을 갖춘 병원이 없어 큰 병원으로 옮겨야 했지만 갈 수 있는 병원을 제때 찾지 못했다.제천의 권역응급의료센터로 지정돼 있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은 물론 인근 큰 도시의 병원들에
‘잘 가요 종복삼촌’ 이후 풀무질 서점 1년 반 “26년 두 달 하고 10일만에 서울 명륜동 풀무질 일꾼의 삶을 마쳤습니다.” (<단비뉴스> 2019년 10월 7일 ‘잘 가요 종복삼촌’ 기사 참조)청춘을 바쳐 서울 성균관대 앞 인문사회과학 서점 풀무질을 꾸려왔던 은종복(55) 씨가 작년 6월 12일 서점을 그만두고 떠난 지 1년 반이 다 돼 가는 11월 20일, 책 읽기 좋은 가을 날 저녁에 찾아간 서점 풀무질에서는 작은 토론회가 열리고 있었다. 50㎡ 남짓한 지하 서점 안에 이름도 나이도 다른 사람 서너 명이 모여 페미니즘과 관련
지난 3일 오전 11시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발열검사를 하고 있는 서울시청 1층 로비는 기온이 내려가 쌀쌀했다. 이날 서울의 최저 기온은 섭씨 2.7도로 올 가을 들어 가장 낮았다. 로비 입구에 설치돼 있는, 공항입국장에 있는 것과 같은 열화상 카메라 앞을 지나가자 발열검사를 하는 직원은 체온이 정상이라는 듯 아무런 제지를 하지 않았다. 직원에게 체온이 몇 도인지 모니터에 뜬 것을 핸드폰으로 찍어 달라고 해서 받아 보니 34.1도였다.체온이 35도 밑으로 떨어지면 의학적으로는 ‘저체온증’으로 진단한다. 저체온증이 되면 혈액 순
▲ 유튜브에서 로파이 채널 중 가장 많은 이들이 듣는 ‘Chilled Cow’의 실시간 로파이 음악. 기사 읽기 전 재생 버튼을 눌러 음악을 들으면서 기사를 읽으면 분위기가 살아난다.바쁜 일상을 끝내고 금요일 밤을 불태운 이들의 토요일 낮은 요즘 유행하는 로파이(lo-fi)와 같다. 로파이는 저음질(low-fidelity)의 약자로, 음질을 의도적으로 떨어뜨려 LP나 카셋트 테이프로 듣던 음악처럼 지직거리는 질감으로 편안한 느낌을 주는 힙합 장르다. 졸린 듯 누워있는 고양이가 미디움 템포에 맞춰 꼬리를 살랑거리는 듯하다. 공장이 모
“최근 우리 회사의 물동량이 준 걸 보면 제조업 위기라는 말이 확실히 와 닿아요. 5년 전이랑 비교하면 회식을 가도 식당에 사람이 없고, 특히 공단으로 출퇴근할 때 움직이는 차량 숫자가 확 줄었어요. 활력을 잃었죠. 저는 여기서 진짜 위기를 실감했습니다.”지난 8월 24일 경북 구미의 국가산업3단지에서 만난 엘에스(LS)전선의 한 30대 노동자는 구미의 제조업 위기가 심각하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직원끼리 앞으로 구미로 유입되는 기업은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하곤 한다”며 “나아질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대기업 빠져나간
우리나라에는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신흥도시들이 많다. 주로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펴면서 조성한 대규모 공단이나 공업도시들이 그렇다. 동해안 벨트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울산과 포항이 자그마한 어촌에서 대규모 공업도시로 변천한 도시들이다. 그중 포항은 작은 어촌에서 세계 5위 규모 제철소와 인구 50만 도시로 변모한 만큼이나 그 땅의 역사도 심한 변천과 굴곡을 겪었다. 지금 포항은 형산강을 가운데 두고 그 위쪽으로 형성된 상업∙행정 중심지와 그 아래쪽으로 조성된 제철단지 등 크게 두 덩어리로 이뤄졌다. 그중
1990년 4월 어느 날. 제주도 성산읍 성산일출봉에서 남서쪽으로 4km쯤 떨어진 해발 134m 대수산봉 서쪽 산자락에 흰색 콘크리트 건물 한 채가 들어섰다. 길이 100m, 폭 50m, 높이 10m의 길쭉하게 생긴 건물로, 외관만으로는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 수 없다.축구장 3분의 2 정도 크기의 직사각형 건물은 벽 두께가 3m에 이르고 두께 1.2m 천장 위에 1m의 빈 공간을 두고 그 위에 1m 두께 지붕을 올린 매우 특이한 구조다. 900평 정도 넓이에 높이 5.5m의 건물 내부에는 가로 세로 1m짜리 콘크리트 기둥 27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