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5.8, 포항 5.4 지진을 잊었나요?”지난 8월 14일자 <한겨레> 1면 하단에는 이런 제목의 의견광고가 실렸다. 2016년 경주지진과 2017년 포항지진이 발생한 위치와 고리·월성 등 인근 원전의 분포를 지도에 표시한 이 광고에는 33명의 ‘광고주’ 이름이 나란히 실렸다. 농부, 화가, 교사, 언론인, 변호사, 종교인 등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참여한 것이다. 내년에 100주년을 맞는 3.1절까지 모두 333번의 광고를 싣는다는 목표로 ‘탈원전 333 릴레이 의견광고 33인’을 기획한 이원영(
“많은 분들이 그렇게 죽어갔는데, 우리는 살아 있잖아요. 살아있는 사람들이 제대로 못 하면 되겠어요?”양윤경(58) 제주4.3희생자유족회장은 70년 전 제주도민의 10분이 1이 처참하게 학살된 4.3사건을 직접 목격할 수 있었던 나이는 아니다. 그러나 그는 집안의 종손이었던 큰아버지(5촌 당숙)가 당시 경찰에 총살되는 바람에 그의 양자로 입적돼 자라야 했다. 또 작은 할아버지가 난리통에 행방불명되는 등 생계를 꾸려갈 남자 어른들이 드문 집안이라 일찍부터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서귀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
“우리가 이렇게 간절하다는 것을, 참정권이 단순히 정치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인권과 생존권의 문제라는 것을 시민사회와 국회, 정부 등 사회 전반에 알리고 싶었어요.”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 회원인 김정민(17)양은 지난 3월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머리를 ‘빡빡’ 깎았다.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라고 촉구하는 기자회견에서 김윤송(16), 권리모(16)양과 함께 삭발식을 한 것이다. 김양은 같은 날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앞에서 청소년 참정권 보장을 요구하는 천막농성도 시작했다. 어깨까지 닿았던 머리카락을 과감
“광대, 나 할 말 있어.”지난 5월 23일 제주시 아라이동 은성사회복지관의 보물섬학교 임시교실. 13세부터 16세까지 남녀 청소년 11명이 네모난 앉은뱅이 탁자를 디귿자로 이어 붙여 빙 둘러 앉아 있다. 곱슬머리에 모자 달린 웃옷을 입은 남학생이 손을 들고 ‘광대’를 부르자 흰 칠판 앞에 앉아 있던 선생님이 미소를 띠며 발언기회를 준다. 아이들이 ‘광대’라고 부르는 선생님은 보물섬학교에서 8년째 가르치고 있는 김광철(31) 교사다. 이 학교 아이들은 선생님의 별명을 부르며 친구처럼 서로 말을 놓는다.선생님 별명을 부르고 말을 놓는
“영상의 포인트는 웃음입니다. ‘어떻게 차별화된 웃음을 드릴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지금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을 우리의 스타일과 시각으로 제작하는 재미가 있어요.”20대 남녀가 주고받는 군대나 영화 이야기, 친구들 사이에서 흔히 일어나는 갈등 상황을 웃음으로 버무린 동영상들이 2년여 만에 페이스북 팔로워(구독자) 약 40만 명, 유튜브 구독자 68만 명을 만들었다. 친구 한 명과 ‘더블비’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영상 크리에이터(창작자) 장명준(25·인덕대 휴학생)씨 얘기다. 지난 5월 7일 서울 동대문역 부근의
“강원도가 복원하겠다고 애초에 약속을 했는데, 지금 애매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복원할 의지가 실제로 있는 건지 의심이 들어요. 돈이 많이 들어가니까 하기 싫어서 빙빙 돌리는 태도 같습니다.”평창동계올림픽을 위해 스키장 등이 조성된 강원도 정선군과 평창군 일대의 가리왕산이 지난 2월 올림픽이 끝난 후에도 복원되지 않아 산사태 등의 우려를 낳고 있다. 환경단체들은 빨리 복원할 것을 촉구하고 있지만 체육계와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왕 만든 스키장을 활용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환경단체가 보는 가리왕산의 문제점을 알아보기 위
“스물한 살부터 혼자 살기 시작했어요. 치안 걱정이 없으면서도 값이 싼 곳을 찾느라 기숙사, 하숙집, 원룸, 고시원, 옥탑방 등 온갖 곳을 옮겨 다녔죠. 임대차 종류별로도 월세, 반전세, 깔세(일정 기간 월세를 한꺼번에 미리 내는 것) 등을 다 경험했고요.” 경기도에 있는 집에서 서울까지 통학이 어려워 대학 시절 ‘1인 가구’ 생활을 시작한 이승주(32) 뉴시스 기자는 스물아홉에 입사한 후에도 ‘방 한 칸’을 확보하기 위해 동동걸음을 쳐야 했다. 수습을 마친 2015년 3월 산업부 부동산팀에 배치됐는데, 자신의 그 파란만장한 ‘주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들만 대학원에 진학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제 주변엔 예술에 대한 열정 하나로 대학원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아요. 이들은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해요. 저 또한 과외와 대학원 조교 일로 돈을 벌며 공부를 병행하고 있고요. (2년) 등록금 2천만원은 현실적으로 크게 와 닿는 금액이었어요.”기대 컸던 예술경영대학원, 들어가 보니 ‘본전’ 생각학부 시절 경영학을 전공한 이지현(26)씨는 3학년 때 회화를 부전공하면서 ‘예술경영’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래서 경희대, 성균관대, 중앙대 등 여러
“독자가 자신이 아는 거리와 가게 이야기를 읽게 하자.” 영국 틴들 뉴스페이퍼 그룹 레이 틴들(91) 전 회장의 말이다. 틴들 그룹은 200여개 지역신문들을 거느린 영국 10위권 미디어 그룹이다.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 이후 서구의 많은 신문방송이 폐업, 감원 등 소용돌이를 겪었지만 이 회사는 인위적 감원 없이 오히려 성장세를 보여 주목받았다. 틴들 전 회장은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웃에게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세세히 알려준다면 독자는 신문을 찾을 것”이라고 주장했다.지역구 의원 재판, 아파트 택배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이 있잖아요. 우리 주위에 환경관련 정보나 지식은 이미 많이 널려 있어요. 검색만 해도 충분히 찾아볼 수 있죠. 중요한 건 그걸 ‘어떤 관점에서 바라볼 것인가’예요. 흩어져있는 환경관련 정보를 환경철학적, 환경정의적 시각에서 꿰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것, 그게 ‘에코큐레이터’가 하는 일이죠.”이철재(46) 환경운동연합 생명의 강 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지난 2013년 ‘에코큐레이터’라는 직함을 스스로 만들었다. 환경·생태를 뜻하는 ‘에코(eco)’와 박물관·미술관 등의 전시기획자를 일컫는 ‘큐레
‘인천 초등생 피살사건’이 처음 알려지고 열흘쯤 후인 지난 4월 8일, 김이광민(37·부천시 청소년법률지원센터) 변호사는 한 일간지에 ‘조현병 소녀에게 살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나’라는 글을 기고했다. 경찰이 피의자 A(17)양의 정신 질환을 의심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을 무렵이었다. 김이 변호사는 글에서 “청소년의 행동 이면에는 부모와 사회의 영향이 있는데, 지금 한국은 청소년들이 정상적 정신건강을 가지기 힘든 사회”라고 진단했다. 그래서 A양에게 범죄의 책임을 묻는 것과 함께 사회의 책임도 돌아봐야 한다고 주장했다.범죄 환경 만
비행기로도 11시간이 넘는 타지에서 날아온 독일 생태학자가 아무런 연고 없는 경북 영주 내성천과 사랑에 빠졌다. 카리나 슈마허(Karina Schumacher·33) 내성천살리기 활동가 이야기다. 그는 2012년초 한국에 정착해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기장)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 독일복음선교연대(EMS) 생태선교동역자로 5년간 교육자료 제작, 생태교육 등의 일을 해왔다.학문 연구를 넘어 현장활동에 집중하고 싶었던 그는 2017년 초 영주로 내려가 '내성천 살리기 운동'에 뛰어들었다. 지난 7월 26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회화나무 카페
“스스로를 부정하고 비정상적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영상을 보고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댓글이 종종 달려요. 그럴 때 정말 (유튜버 활동) 잘했다 싶어요.”동성애자 등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이 심한 우리 사회에서 온라인매체 유튜브(YouTube)를 통해 ‘소수자의 목소리’를 당당하게 내는 ‘퀴어 유튜버’들이 있다. ‘퀴어(Queer)’는 영어권 국가에서 다양한 범주의 성소수자들을 일컫는 말이다. 퀴어 유튜버들은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반박하거나 다양한 성적지향 등을 설명하는 영상을 제작한다. 이들 중 특히 주목받고 있는 ‘수낫수(Soo not
지난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외쳤다. 국민주권을 강조한 말이지만, ‘우리말 지킴이’ 이수열(89) 솔애울 국어순화연구소장에 따르면 이 문장엔 문제가 있다. ‘~으로부터’는 영어의 프롬(from)을 번역한 잘못된 표현이고, 제대로 쓰자면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조문과 기사문장 등 일상에서 잘못 쓰이는 우리말을 찾아내 기꺼이 ‘잔소리꾼’ 역할을 하고 있는 이 소장을 지난 5월 27일 서울 은평구 불광동 자택에서 만나고, 지난 20일 전화로 한 번 더
“공장은 지방에 있더라도 본사는 서울에 많아요. 피치 못하게 전국 각지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상경 투쟁을 하게 돼요. 그런 사람들이 투쟁 과정에서 편하게 자고 먹고 쉬고 빨래라도 해서 입고 나갈 수 있는 열린 공간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 이게 ‘꿀잠’이 생긴 이유죠.”건물 개조작업 위해 여름 내내 땀 흘려 ‘꿈꾸는 자 잡혀간다’고 쓴 시인 송경동(50)은 지난여름을 비정규직 노동자의 집 ‘꿀잠’에서 해머드릴 등 연장을 들고 보냈다. 꿀잠은 파업 중이거나 해고당한 비정규직 노동자와 그들을 돕는 사람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다.
“이 밀가루요? 제가 개성에서 날라 왔고요. 이 씨앗이요? 저 나진·선봉에서 가져왔어요. (웃음) 한번 드셔보세요.”정갈하게 묶은 머리에 빨간색과 흰색이 섞인 모자를 단정하게 눌러쓴 채광실(41·여) 씨가 손님에게 농담을 던지며 호떡을 건넨다. 14년 전 북한을 탈출한 그가 개성과 나진·선봉에서 호떡 재료를 가져올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 ‘탈북자 사장님’이 운영하는 푸드트럭 ‘꿈꾸는마차’ 앞에 모여든 손님들은 그의 밝고 친절한 웃음에 장단을 맞추며 호떡과 어묵 등을 사 간다. 금요일인 지난 5월 19일, 경마 경기가 끝나고 사람들
“우리는 누구보다 ‘나다운 삶’을 살아가고, 우리가 살아가는 삶 그 자체로 세상에 ‘선한 영향’을 미치고 그 작은 영향들이 모여서 언젠가 선한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이게 저희 슬로건입니다. ‘나다운 삶’을 사는 사람이 정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는 거죠.”서울 신림동 신원시장 끝자락의 후미진 골목. 세세한 길 안내가 없으면 찾기도 어려울 듯한 허름한 건물 지하에 이런 생각을 가진 청년들의 아지트(근거지)가 있다. 복합문화공간이자 ‘문화예술혁명단체’라고 자부하는 ‘작은따옴표’다. 지난 2014년 2월 스물두 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