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 대한 믿음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왜 서로의 이름을 바위나 나무처럼 오래도록 남을 곳에 새기고 싶어 할까. 소설가 김영하는 "사랑도 자아도 불안정하니까 안정돼 보이는 곳에 자신들의 이름을 새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랑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믿는 무엇을 어딘가에 새겨 남기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와 가장 가까운 곳, 그래서 언제 어디서든 꺼내볼 수 있는 곳에 믿음을 새기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타투를 하는 사람들이다.타투의 의미에 대해 처음 생각해본 건 친구 때문이었다. 어느 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손목에 작은 타투
한 여자가 사랑하는 남자를 따라 택시를 탄다. 결혼을 반대하는 아빠를 뒤로하고 고향을 떠난다. 새롭게 정착한 미국에서 세탁소를 개업하고, 딸을 낳고, 그렇게 행복하게 잘살았다. 아니, 그렇게 행복하게 잘 살았다면 좋았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현실은, 온 힘을 다해 산다 해서 반드시 그에 걸맞은 결과가 나오는 건 아니다. 어느새 중년이 된 여자는 모든 것에 실패한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인다. 세무 조사원은 영수증을 꺼내들며 가게 운영과 상관없어 보이는 노래방 기계를 산 이유를 묻는다. 필요해서 산 물건이라는 증명을 하지 못하면 세탁소를
“기자라는 직을 가지고 있으면 저널리즘과 비즈니스, 기술, 이 세 가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자가 되면 ‘내가 돈 벌러 다닐 것도 아닌데 (비즈니스에) 영향을 받겠나’라고 생각을 하시고 싶으시겠지만 결코 그렇게 안 된다는 걸 잘 아실 겁니다.”국내 뉴미디어 업계에서 대표적 동향분석가로 꼽히는 이성규(46)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지난달 27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저널리스트의 삼각 지배’라는 도표를 보여주며 이렇게 말했다.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 초청으로 ‘최신 뉴미디어 흐름에
<그날 밤 체르노빌>은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다. 체르노빌에 관한 자료를 총망라했다. 저자인 영국 저널리스트 애덤 히긴보덤은 체르노빌 원전 사고 20주년인 2006년 영국 <가디언>이 발행하는 주간지 <옵서버>의 의뢰를 받아 취재에 착수했다. 체르노빌을 방문해 관련자를 인터뷰하고 조사 보고서와 논문, 재판 기록과 같은 공문서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편지와 일기, 사진과 회고록 등의 일상적 기록물도 방대하게 수집하고 조사했다. 사고 발생 30주년인 2019년 또다시 러시아를 방문해 추가로 취재한 뒤 13년 동안의 취재물을 묶은 것이 이 책이다.
“테러 피해자를 지원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청년들의 우울증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지역 의료공백의 해법은 없을까. 여러분이 원하는 솔루션 아이템에 투표해 주세요.”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니스의 지역신문 <니스마땅>은 뉴스레터를 통해 한 달에 한 번 독자들에게 다음 솔루션 기사의 주제 선정을 부탁한다. 독자는 세 가지 이슈 가운데 가장 궁금한 것을 선택한다. 주제가 정해지면 기자들은 취재를 시작하고, 문제의 해법을 찾아 나선다. 독자들은 지역사회의 관심사를 파고드는 기자들을 응원하고, 좋은 기사가 나오길 기다린다. 지난 6월 현지
가난은 잘 보이지 않는다. 숨겨지고 가려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가난이 세상 밖으로 드러날 때가 있다. 홍수가 발생해 사람이 죽거나, 추위와 더위에 허덕이는 장면이 필요할 때, 언론은 쪽방을 찾는다. 정치인들은 좋은 옷을 입고 쪽방에 들어와 손을 잡거나 물품을 기증한다. 언론과 정치의 관심은 ‘가난한 일상’이 아닌 ‘가난의 이미지’를 향한다.
‘영화를 촬영할 때, 다른 감독이나 작가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그 감독이나 작가가 만든 영화의 대사나 장면을 인용하는 일. 프랑스어로 ‘존경’을 뜻한다.’ ‘오마주'의 사전적 의미다. 창작자가 다른 창작자에게 할 수 있는 존경의 표시 가운데 최선은 ‘오마주'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영향을 받았고, 그 흔적을 모든 사람에게 보여주고 인정하는 행위는 능력을 인정받고자 하는 창작자에겐 큰 용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마주’하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는 일 또한 쉽지는 않다. 존경을 표하고 싶은 사람을 발견하고 그 발견의 과정에서 잃어가던 자
탁월한 스토리텔러들/이샘물, 박재영/이담북스/25,000원한국 기자들은 ‘하루살이 생태계’에서 일한다. 공공기관, 국회의원, 시민단체가 자료를 발표하면 기자들은 쏟아지는 정보를 정리하여 기사로 옮긴다. 이 기사는 발표 당일을 넘기지 않고 세상에 나온다. 같은 자료를 보고 제한된 시간 안에 쓰는 ‘하루살이’ 기사는 누가 쓰든 차별점이 거의 없다.한국에서 신문 기자로 일하고 미국에서 현지 언론계를 연구한 두 저자는 이 관행에 질문을 던진다. 천편일률인 정보 정리 형식의 기사 말고, 다르게 쓸 수는 없을까? 언론계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
“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죠. 외국에서 직접 취재하려면 비용이 수천만 원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고 절차도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디지털화로 인해 취재의 장벽이 확실히 낮아졌습니다. ‘직접 취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거죠. 글로벌 플랫폼으로 취재원이 자신의 뉴스에 관한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코로나19 팬데믹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점거, 우크라이나 전쟁 등 희대의 사건들을 미국 워싱턴에서 취재한 김수형(45) SBS 정치부 국제팀 기자가 지난달 29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외다’는 ‘그르다’의 옛말이다. 오른쪽은 옳은 방향이지만 왼쪽은 그른 방향을 말한다. 거의 모든 인간의 언어들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좋은 것은 오른쪽(right), 안 좋은 것은 왼쪽(left)로 표현하는 게 일반적이다. 한지원 작가의 그림책 <왼손에게>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살아온 오른손과 그렇지 못한 왼손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오른손잡이인 한 작가는 무거운 짐을 들고 나서 빨개진 오른손을 보며 “내가 오른손이면 화가 나겠는데?”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 책의 시작이라고 했다.똑같이 생겼으나 서로 다른 것오른손은 억울하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은 미디어와 저널리즘의 주요 현안에 관해 현직 언론인과 전문가들이 강연과 토론에 나서는 '저널리즘특강'을 매년 가을학기에 개설한다. 2022년 특강은 ‘21세기 언론인과 리영희 정신’부터 ‘인공지능 저널리즘의 도전과 응전’까지, 언론의 영혼과 도구를 아우르는 7개 주제로 구성됐다. <단비뉴스>는 강연과 문답 내용을 기사와 영상으로 독자들에게 배달한다.(편집자)“유신정권이 들어선 후인 1974년 재야의 시민들이 모여 ‘민주회복국민회의’라는 단체를 결성합니다.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이 시작된 거죠. 당시 단체의 대표를
“북극곰이 살고 있는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습니다.” 기후위기를 다룬 기사에 쓰이는 대표적인 표현이다. 기사만이 아니다. 영상물에도 이를 다룬 내용은 빠지지 않는다. 기후위기를 상징하는 표현이자 장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역효과를 부르기도 한다. 내 옆에서 발생하지 않는 일이기 때문에 독자와 시청자가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못 느끼게 만든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국내 기후변화 보도의 현황과 개선방안>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하면서, 기후위기 보도가 수용자로 하여금 기후위기를 ‘당장 나에게 중요한 문제’로 느끼게 만들어야 한다고
<뉴요커>(The New Yorker)의 ‘관타나모의 어두운 비밀’(Guantánamo’s Darkest Secret)은 2020년 퓰리처상 피처 기사(Feature Writing) 부문 수상작이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육하원칙에 따라 언제, 어디서, 누가 무엇을 했는지에 주목한다. 반면 피처 기사는 ‘어떻게’와 ‘왜’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새로운 관점으로 사건을 기술하고 재구성하는 것이 특징이다. 좋은 피처 기사는 독자로 하여금 보고, 듣고, 느끼게 한다. 퓰리처상 심사위원회는 ‘관나타모의 어두운 비밀’에 대해 17년 동안 자유를
숨겨진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대중은 끊임없는 문제 제기에 어쩔 수 없는 피로감을 느낀다. 해결되지 않은 새로운 문제가 반복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과 로이터저널리즘이 펴낸 <디지털 뉴스 리포트>에 따르면, 한국 응답자의 54%가 ‘뉴스를 보지 않으려고 적극적으로 노력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1970년대 베트남 전쟁에 관한 비밀을 담은 미 국방부의 기밀 보고서 ‘펜타곤 페이퍼’가 세상에 알려진 뒤 미국 사회에서 반전 운동이 일었다. 닐 쉬한(Neil Sheehan) <뉴욕타임스> 기자가 한 국제관계 전문가로부터 펜타곤 페이퍼 사본을 전달받으며 보도가 시작됐다. 베트남 전쟁의 명분을 만들려는 목적으로 베트남의 미국 침공을 조작했다는 사실을 보고서는 암시했다. 당시 닉슨 정부는 국가 안보를 위해 <뉴욕타임스>와 <워싱턴포스트> 등의 후속 보도를 막아달라며 사법부에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미 연방대법원은 언론의 자유가 국가
영화 <애프터 양>은 제목 그대로 인공지능로봇 ‘양’(저스틴 H. 민)의 전원이 꺼진 이후 남은 가족들에 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인간이 인공지능로봇과 구별 지을 수 있는 다른 점은 무엇일까. 방대한 지식 저장 능력과 몇 초 만에 계산해 내놓는 수학 문제 정답 등 알고리즘 세계를 인간은 따라잡을 수 없다. 인간답다고 말할 때 대부분 기계적이지 않다는 의미를 내포한다. 기계적이지 않다는 건 사람의 감정을 읽는다는 의미다. 감정을 통해 교류한다는 의미다. 즉, 감정을 느낄 수 있느냐 아니냐가 인간이냐 아니냐를 가르는 기준점이 된다.만약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미치코 가쿠타니 지음/돌베개/13,000원2021년 1월 6일, 미국 의사당이 점령당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그날 오전 백악관 앞에서 “죽도록 싸우라”라며 지지자들을 선동했다. 지지자들은 연방의회 의사당 창문을 깨고 난입했다. 상원의장석을 점령하고 무장 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시위대와 경찰을 포함해 5명이 사망했다. 이들의 의회 폭동은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당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의회폭동이 일어나기 3년 전, 민주주의를 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