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0일 경남 김해 영남화훼원예농협공판장은 아침부터 시끌벅적한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했다. 오전 8시에 경매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 남자가 꽃다발이 여러 개 놓인 책상 위에 올라가 꽃을 소개한다.“이파리가 다른 것보다 좀 더 넓고예, 보시다시피 꽃몽오리가 억수로 예쁘게 폈습니더.”벽에 달린 스피커를 통해 남자의 목소리가 공판장에 울려 퍼지자 상인들은 숨죽인 채 경매사가 쥐고 있는 꽃다발을 응시한다. 이내 숫자가 적힌 종이를 잡은 손들이 일제히 올라간다. 남자는 올라와 있는 손들을 향해 꼼꼼하게 눈도장을 찍는다.“자, 39호 2
이맘때 영화팬 중에는 남포동에서 열리던 부산국제영화제(BIFF)를 떠올리는 이가 많다. 남포동은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와 향수를 자극한다. '영화제'를 보려고 방문한 인파(人波)가 그야말로 ‘사람의 물결’을 이뤄 골목골목 밀려들고 비좁은 BIFF 광장은 북새통을 이뤘다. 관객들은 극장가 매표소 앞 긴 줄에 서있으면서도 지루한 줄 몰랐고, 초가을의 쌀쌀함은 어묵과 팥죽으로 달랬다. 남포동의 밤거리는 특히 색다른 정취를 맛보게 했다. 인근 자갈치시장은 심야 영화를 본 관객들이 극장을 빠져 나와 몰려드는 곳이었다. '잡숫고 가이소-' 라며
“여기서 그만할까요? 바쁘신 분들은 나가셔도 좋은데……”쉬는 시간 없이 3시간이나 연속 강의를 하던 강사가 중간에 마무리할 뜻으로 수강생들의 의중을 몇 차례 떠봤으나 자리를 뜨는 이는 거의 없었다. 14일 오후 7시 제천영상미디어센터에서 열린 제1기 제천시민기자학교 강의실 풍경이었다. 강연은 원래 9시에 끝날 예정이었으나 10시에 끝났고 수강생 수도 주최측이 애초 예상했던 20여명을 훌쩍 넘은 40여명이 등록해 바른 언론에 대한 제천시민들의 열망을 드러냈다. 세명대학교 이봉수 저널리즘스쿨대학원장
“식구들한테 미안하죠 뭐, 나만 좋은 데 있으니까. 혼자 행복한 거잖아요.”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문촌4리에 사는 이충재(54세)씨는 나이 쉰을 넘어서자 직업뿐 아니라 사는 곳과 노동의 형태, 그리고 생활방식까지 모두 바꿨다. 그는 2011년 8월 귀농해 복숭아 농사를 시작한 ‘신참 귀농인’이다.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다가 땀 흘려 일하는 육체노동을 하고 싶어 농촌으로 들어갔고, 가족과도 떨어져 독신생활을 한다. ‘기러기 아빠’는 원래 자식과 아내를 외국에 보내고 홀로 사는 아빠를 뜻하지만, 이씨는 가족을 서울에 남겨두고 스스로 ‘
“한 번 생각해보세요. 400평 땅 한 해 일궈 200만원 나온 거예요. 다른 농사도 있긴 하지만 옥수수밭에서 나온 건 웬만한 월급쟁이 한 달 봉급도 안 되죠. 여기서 경비를 빼고 나면……”강원도 원주시 매지리에서 농사를 짓는 청년 임승규(31)씨가 11일 기자와 통화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직업군인이었던 그는 군에 있을 때부터 낙향을 고민하다가 3년전 귀농했다. 농사꾼 아버지가 농산물을 도매업자에게 헐값에 넘겼다는 소식을 듣고 더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세상 물정에 어둡거나 농사일에 힘이 부친 부모님을 위해 임승규씨처럼 귀농한
이름도 생소한 콘삭스(cornsox)는 옥수수로 만든 양말이다. 콘삭스 생산공정은 요리 레시피 같다. 옥수숫대와 잎, 열매를 통째로 발효시켜 만든 투명한 알맹이를 녹인 뒤 가늘게 뽑으면 옥수수실이 된다. 맛있을 것 같은 옥수수양말은 착하기도 하다. 친환경섬유라 피부자극을 주지 않아 착하고, 수익금 10%를 아프리카 식량 부족 국가인 부르키나 파소에 기부하기 때문에 착하다. 강원도 춘천시 운교동에 더뉴히어로즈라는 회사를 차려놓고 ‘착한’ 옥수수양말을 만드는 이가 이태성(31) 대표다. 옥수수가 양말이 될 거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기까지
인천시 계양구 오조산공원에 가면 분주히 움직이는 전동 휠체어 여섯 대를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뇌병변, 청각, 언어장애 등을 함께 지닌 중복 장애인이 대부분이다. 야학교사에게 사진 찍는 법을 배운 날은 여섯 학생이 각자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데 몰입한다. 지체장애가 심해 휴대전화를 손으로 쥐기 어려운 이는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다. 공들여 찍은 사진의 주인공은 대개 야외에서 뛰어 노는 아이들이다.불편한 두 손을 모아 일그러진 얼굴로 휴대전화 화면을 응시하고 있는 오명진(40)씨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그는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세계 최초가 이렇게 쉬울 줄이야”'뭘 먹지?' 매일 적어도 한두 번은 하는 고민이다. 시간을 쪼개 움직이는 바쁜 현대인에게 식사 시간은 업무의 연장인 경우도 많다. 메뉴를 고르는 일도 귀찮은데 이 농산물을 누가 키웠나, 몸에 건강한 것인가, 토종인가 따위는 생각할 여유가 없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 무관심한 사이 유전자 조작 종자와 농약으로 키운 다국적 기업의 농작물이 시장을 장악했다. 생명을 기르는 농업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산업이 된 것이다. 이에 반기를 들고 우리 농업을 온전히 살리려는 사람들이 있다.충북 제천 ‘한가지골
개성의 만수산이 정선아리랑에 나오는 이유수많은 아리랑 중에서도 지역의 역사와 애환, 그리고 자연을 가장 잘 담아낸 것은 정선아리랑일 듯하다. ‘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들고 ‘싸리골 올동백이 다 떨어진’ 곳, ‘한치 뒷산에 곤드레 딱죽’으로 연명하던 곳이 정선아리랑의 본향, 정선이다.정선은 원래 조선 개국에 반대한 고려 유신들이 개성 인근 두문동에 숨어살다가 더 깊은 은신처를 찾아 들어온 곳이었다. 그들은 고려를 그리워하며 나물을 캐먹고 살았는데 그 애환을 정선아리랑에 담았다고 한다. 정선에는 없고 개성에 있는 만수산이 정선아리
서울 한강 노들섬에 있는 노들텃밭에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남들이 땅을 갈고, 씨를 뿌리는 사이 이들은 얼굴에 그물망을 드리운 모자까지 갖춰 썼고 손에는 호미 대신 훈연기(벌을 안정시키기 위해 연기를 내는 양봉도구)를 들었다. 도심 속에서 꿀벌을 키우는 어반비즈서울(Urban Bees Seoul) 회원들이다.열매 안 열리는 옥수수 보고 ‘도시에 벌 키워보자’ 결심 어반비즈 박진 대표(32)는 몇 년 전 공기업에 다니며 서울 근교 주말 농장에서 옥수수 농사를 지었다. 열매가 잘 맺어지지 않아 농장 주인에게 이유를
“빌딩 숲 한가운데 이런 공간이 있었네요. 옥상텃밭에서 티타임이라니 정말 즐거워요!” 지난 달 31일 오전, 홍대역 인근 가톨릭청년회관 옥상은 들뜬 목소리로 가득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서울도시농업 현장답사 참가자들이었다. 답사 프로그램은 서울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의 일환으로 이루어졌다. 20여명 국내·외 전문가와 전날 경쟁을 뚫고 선착순 현장접수에 성공한 시민 15명이 답사를 함께했다.도시인을 자연과 연결하는 ‘다리’“저희 텃밭 이름 ‘다리’는 사람과 자연을 연결한다는 뜻으로 지어졌어요. 흔히 옥상은 위험한 공간, 닫힌 공간이
도시와 농업. 얼핏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는 이제 ‘도시농업’이란 합성어를 만들어낼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됐다. 도시농업은 자투리 공간을 활용해 상추나 토마토 같은 채소를 기르는 수준을 넘어, 이제 계란과 고기에 꿀까지 생산하는 ‘만물농업’이 되어가고 있다. 건강한 먹거리와 지속가능한 도시를 위한 해답으로 ‘도시농업’이 제시되고 있는 지금, 세계 8개국 ‘도시농부’들이 정보와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의 장이 열렸다. 지난달 30일, 제3회 도시농업박람회 국제컨퍼런스가 ‘도시농업과 먹거리혁명’을 주제로 서울시청 신청사 다목적
제천시 최초로 시민단체가 주최한 시장후보 토론회가 무산됐다. 제천시장 후보자 셋 중 둘이 단체의 정치적 성향과 바쁜 선거운동 일정 등을 이유로 불참한 탓이다. 한 후보는 토론회 2시간 전에 일방적으로 불참을 통보해 주최측과 후보자측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지기도 했다. 28일 오후 7시 제천시 화산동 제천시문화회관에서 제천참여연대가 주최한 6.4 지방선거 제천시장 후보자 정책토론∙대담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대담회는 공약에 대한 후보자들 간 토론과 패널 질의응답 등의 순서로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후보자 3명 중 2명이 참석하지 않아 후
흔히 봐온 연한 살구색이 아닌 옅은 푸른색을 띠는 달걀이 지난 3월 한 백화점을 통해 처음 소개됐다. 청란(靑卵)이라 불리는 이 달걀은 1000원 안팎의 비싼 몸값을 자랑하지만 없어서 못 팔 정도이다.문경시에 속하긴 하지만 택시기사도 꺼릴 정도로 험한 산길을 달려 도착한 산양면 청계농장(추산로 119-39)이 자연농법으로 청란을 낳는 청계(靑鷄)를 키우는 젊은 귀농부부의 일터다. 양계장 세 동과 살림집으로 쓰는 아담한 가건물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변에 인가가 없는 외딴 산 속에서 닭을 키우는 이유가 무엇일까 궁금했다.‘그래, 마
경기도 서남부 도시 안산(安山)은 곳곳에 있는 구릉이 평지를 감싸는 지형이어서 ‘편안한 산’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안산은 30년 전만 해도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 않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작은 마을이었다. 서해안 갯벌과 염전, 논과 밭이 맞닿아 있는 지역으로 2만여 명 주민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평온하고 넉넉하게 살았다.역설적이게도 안산은 이런 지리적 특성 탓에 일찍부터 개발의 삽날에 파헤쳐질 수밖에 없었다. 1976년 정부가 ‘반월신공업도시 건설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호주의 캔버라를 모델로 안산을 전원 공업 도시로 조성한다
“권영웅 회원님 와주셨습니다. 반갑습니다.”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학생이 멋쩍게 웃으며 일어서자 박수가 쏟아졌다. 행사장에는 참석한 시민 전원의 이름이 차례차례 소개되고 있었다. 풀뿌리 참여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시민단체가 제천에도 첫 발을 내디딘 것이다.제천참여연대 창립총회와 출범식이 1일 오후 7시 제천시 청전동 코렉스부페에서 열렸다. 이 행사에는 90여명의 회원과 관계자들이 참석해 출범을 축하하고 참여를 다짐했다.공동대표에 이석태 전 세명대 교수, 이철수 판화가, 김한기 신부창립총회에서는 이석태 전 세명대 교수가 상임대표로,
“아까 어떤 엄마가 1000원이라고 해서 온 거예요. 그냥 1000원에 주세요.”“아유~ 그럼 재료비도 안 남아요. 대신 여기 스카프 같이 드릴게.”29일 오전 11시 충북 제천시 왕암동 한방바이오엑스포 공원. 노란 수선화가 한 떨기씩 심어진 화분 판매대에서 흥정이 한창이다. 가격을 깎으려던 젊은 주부는 ‘단돈 2000원’에 수선화 화분과 스카프를 손에 넣었다. 이날 오후 6시부터 비가 내릴 것이란 예보와 달리 장이 시작되기 20분 전인 9시 40분 무렵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천시 취소’라는 공지사항은 아랑곳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