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일상에서 농사가 잊힌 지 오래다. 도시인들은 먹거리를 만드는 농부의 ‘얼굴’을 알지 못한다. 도시와 농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농부시장’이 도심에 등장했다. 매월 둘째, 넷째 주 토요일에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는 농부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 먹거리를 사고파는 ‘얼굴 있는 농부시장’, 곧 줄여서 ‘얼장’이 열린다. 얼굴을 보고 나누는 인사처럼, 직접 만나 농산물을 사고 파는 농부와 소비자 사이에는 신뢰와 친밀감이 쌓인다. 농부가 정성을 담아 가꾼 농산물과 가공품으로 건강을 찾는 것은 덤이다.‘얼장’은 도심 속에 농부들과
“학교는 네가 판단해서 감당하기 어려울 것 같으면 사회에 환원해라.”아버지 권영우 박사가 남긴 유언을 읽는 대목에서 목이 멘 권동현 세명대 기획실장이 발간사 낭독을 멈췄다. 몇 초간 침묵이 흐르자 추모식장인데도 격려의 박수가 터져 나왔다. ‘듣지 않는 곳에서 삼가며 보지 않는 곳에서 진실하자’(愼其獨)는 경구를 일생 동안 증명해 보인 민송 권영우 박사의 삶이 엿보이는 대목이었다. 세명대학교 설립자인 민송 권영우 박사 10주기 추도식이 21일 오전 세명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고인
'골목은 한 도시가 변화해온 과거의 시간 동안 사람의 생활사가 고스란히 집약된 곳이자 과거의 생활사가 현재진행형으로 지금과 맞닿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 골목을 따라 세월을 건너며 그곳을 지나간 사람들의 이야기가 겹치고, 실핏줄처럼 얽힌 골목들의 이야기가 어느 모퉁이에서 한데 모여들면 어느 날 거대한 역사드라마가 된다.'구청장이 골목을 소개하는 책을 쓴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윤순영 대구 중구청장이 <골목, 별이 되다>를 쓴 것은 그의 관심사 덕분일 수도 있지만, 더 큰 이유는 대구 중구의 골목들이 만들어온 이야기들이 그만큼 풍
천안 효덕목장, 욕심내지 않는 게 자립의 비법지속 가능한 농업을 위해 유기농사의 중요성은 날로 커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별 농가에서 친환경으로 자립하기는 힘든 실정이다. 연수단은 첫날, 충남 천안시에 있는 효덕목장을 찾아 외부 지원도 부족한 가운데 자립을 이룬 비결을 들었다. 효덕목장은 천안시 유일의 유기축산농가로 농민 스스로 유기농 우유 생산과 가공, 목장체험 등으로 활로를 개척했다.효덕목장에는 김호기(53) 대표의 30년 노고가 서려있다. 이 목장은 1986년 소 네 마리로 축산을 시작한 뒤 2008년 HACCP(식품위해요소중점
“우리 국민이 일해서 수확한 쌀을 일본에 보내고 우리는 먹지도 못했다고 생각하니 마음 아팠어요.”지난 30일 가족여행으로 군산을 찾은 이모(50·광주 운암동)씨가 근대역사박물관을 둘러본 소감을 말했다. 드넓은 호남평야가 펼쳐지고 북쪽으로 금강이 흐르는 군산은 일제강점기 일본이 고리대금업을 통해 쌀을 수탈한 근거지였다. 군산시는 고통스런 역사의 현장을 보존하는 방식의 ‘도시 재생’을 택했다. 2009년부터 시작된 ‘근대문화도시’ 조성사업으로 조선은행, 일본18은행, 미즈상사, 군산세관 등 수탈의 현장들이 기억의 공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 지하철2호선 성수역에 처음 내리는 사람은 역사 안에서 잠시 걸음을 멈추게 된다. 수제화 공장과 가게를 점으로 표시한 커다란 지도와 수제화 조형물이 눈길을 끌기 때문이다. 구두가 만들어지는 과정, 종류, 구두 장인의 이야기로 채워진 ‘슈스팟’이라는 이름의 전시가 약 130m에 걸쳐 펼쳐진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공간 특성이 대번에 드러난다. 80년대부터 구두공장이 모여든 성수동은 한국 수제화 제조업체 70%가 모여 있는 곳이다. 3평 남짓한 작은 신발 가게부터 서울시가 지원하는 대규모 구두 공동 판매장이 지금도 명맥을 잇고 있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다비드 르 브르통이 '걷기 예찬'을 한 지도 어언 10년여, 이제 사람들은 일부러 걷는다. 번잡한 세상과 잠시 동안이라도 단절하려는 듯, 제주 올레길을 찾아 걷고 지리산 둘레길을 따라 걷는다.몸뿐만 아니라 마음을 잃지 않기 위해서다. 사람들은 어지럽고 자극적인 것으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고독해지고 싶어, 자신만의 속도에 맞춰 사색하고 성찰하려고, 기분 좋은 피로감을 느끼기 위해 걷는다. 그래서일까? 번잡한 도시와 떨어져 숲 속을 걸을 수 있는 휴양
서울시교육청 장학관 ‘내정설’ 등으로 공모 중단…학교경영계획서 표절 논란도서울로봇고 교장 공모에 지원한 서울시교육청 장학관이 ‘내정된 인물’이라는 주장이 일부에서 나오는 등 불협화음이 일자 시교육청이 공모 일정 자체를 중단시켰다. 한 로봇고 교사는 “ㅅ 장학관이 서울교육청의 마이스터고 예산 관련 분야를 담당하기 때문에 내정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는 또 “그 장학관이 학교경영계획서를 표절했다”며 의혹을 제기해왔다. 그러나 당사자인 ㅅ 장학관은 로봇고 교장 내정설과 표절 의혹을 부인하면서 교육청의 불편한 입장을 고려해 2
정약용이 예순이 되어 그의 일생을 돌아보며 직접 쓴 묘지명에서 소개한 호는 사암(俟菴)이다. 사암은 ‘초막에서 기다린다’는 뜻인데, 당대에 인정받지 못한 그의 삶과 사상을 후손이 평가해주길 기다린다는 뜻이다.다산으로 더 알려진 정약용이 태어나고(1762) 잠든(1836)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에 있다. 다산은 벼슬살이와 18년 유배생활, 그리고 말년에 고향살이를 하면서 쓴 책이 무려 503권에 이르러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학자요 저술가다. 그가 목민관을 위한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형리들을 위한 <흠흠신서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진다.’조선 시대 영남과 충청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는 길은 세 가지였다. 하나는 문경새재를 넘어 배를 타는 것이고, 두 번째는 추풍령을, 세 번째는 죽령을 지나 단양 장회나루에서 남한강 물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선비들 중에는 죽령을 지나면 과거에 낙방한다는 속설 때문에 죽령을 피해 다닌 이도 있었다고 전해진다.시험을 보러 가는 유생들은 단양 길을 피했다지만, 관직에 오른 선비들은 단양을 찾는 이가 많았다. 남한강과 산이 만드는 절경을 보기 위해서였다. 율곡 이이, 겸재 정선, 추사 김정희, 구운몽을
"와, 저기 단풍 봐. 하늘에 구름도!" 시험이 끝난 날 야외로 향하는 학생들 입에서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지난 5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들은 '지역농업보도실습'을 겸해 사과밭 일손 돕기에 나섰다.충북 제천시 신월동 산자락에 있는 해맞이농원은 학교에서 차로 10분 거리.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산자락 좁은 길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우리 차가 지나갈 때마다 허리를 굽히며 인사한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높다랗게 서있는 감나무는 주황이 파랑의 보색인 줄 어떻게 알았을까? 주황색 감들이 파란색 배경에 알알이 박혀있다.아삭
“남자친구랑 단풍 구경하려고요. 중학교 사생대회 때 왔던 곳인데, 데이트할 장소 고민하다가 생각나서 카메라 들고 왔죠. 그때나 지금이나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 좋네요.“깊게 단풍이 든 나무 아래서 남자친구와 셀프사진을 찍던 이선민(24・노원구 상계동)씨는 국립4‧19민주묘지를 만족스러운 데이트 장소로 꼽았다. 다른 시민들에도 4‧19묘지는 엄숙한 장소가 아니다. 코가 시큰해질 정도로 신선한 가을 공기와 넉넉한 햇살, 곱게 물든 단풍을 구경할 수 있는 휴식 공간이다. 서울시 강북구 수유동
서울시 종로구 누하동에는 영화 <건축학개론>의 주인공 승민과 서연이 아지트로 삼았던 한옥이 있다.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로 좁은 골목길을 돌아 걸어가면 기와지붕에 목재 대문이 있는 조그만 한옥들이 등장한다. 경복궁 서쪽에 있다 하여 ‘서촌’이라 불리는 이곳 한옥마을은 청와대 인근 고도제한으로 조선시대 거주지의 모습이 남아있다. 출퇴근하는 내시들을 위한 작은 집들서촌 한옥은 고래등 같은 북촌 기와집과는 대조를 이룬다. 북촌에는 사대부가, 서촌에는 중인들이 살았기 때문이다. 궐 밖에서
도구를 사용하는 손은 인류와 다른 종을 구분 짓는다. 그런 도구를 만드는 주체 또한 손이다. 밥을 먹고 힘을 내는 ‘밥심’의 근원이 농부의 노력(勞力)이라면 농기구의 효용은 대장장이의 완력(腕力)과 수완(手腕)에서 나온 것이다. 굽은 낫과 괭이, 날 선 칼, 갈라진 쇠스랑, 어디 하나 대장장이의 힘과 솜씨가 들어가지 않은 데가 없다. 그 솜씨는 손에서 손으로 전수된다. 도구의 탄생에서 손은 곧 어머니다.지금 우리는 수(手)공업이라는 말조차 어색한 시대를 살고 있다. 손은 더 이상 도구의 유일한 근원이 아니다.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
‘농경지가 협소하고 논보다 밭의 비율이 높아 과거 주민들은 식량난을 면치 못했다.’사전에서 ‘괴산군’을 검색하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구절이다. 그랬던 괴산이 어느새 국내 유기농의 메카로 떠올라 한살림, 흙살림, 아이쿱생협 등 협동조합의 본거지가 됐다. 농민들이 부족한 생산량을 메우고자 선택한 것은 비료와 농약이 아니었던 셈이다. 좁은 농토는 우리나라 농민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문제다. 대중이 괴산 유기농의 성공에 관심을 쏟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지난달 18일 개막한 ‘2015 괴산세계유기농산업엑스포’는 유기농 분야의 세계 최초 엑
“귀촌하면 많은 분들이 농업에 사명감을 갖길 원합니다. 하지만 너무 어려운 문제입니다. 무엇보다 토지를 구할 수 없어요. 한 뙈기 땅이라도 구하려면 자본이 있어야 하는 거죠.”전북 완주에서 지역마켓 셀러로 일하는 김다솜(25)씨는 일을 하며 자급자족하는 삶을 원해서 귀촌을 결심했지만, 농사지을 땅을 구하기가 어려웠다.충북 청주에 사는 강진호(31)씨도 “귀농하고 처음 2년 정도는 허송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실력이 미흡해 농사로는 적자를 봤고, 피자배달과 우유배달을 병행해야 했다. 농협 대출은 농지나 시설 보유에 50% 자부담 등의
메마르지만 행복한 땅지난 7월 20일 세명대 해외봉사단 ‘몽콜리아’는 8박 9일 일정으로 몽골 봉사활동을 다녀왔다. 재학생 15명으로 구성된 봉사단은 자르갈란트 지역에 머무르며, 마을 시설 보수, 한국어 교육, 나무 심기, 에코백 만들기 등을 진행했다.몽골어로 ‘자르갈란트’는 ‘행복의 땅’이라는 뜻이다. 자르갈란트는 수도 울란바토르에 속하지만, 중심지에서 약 60km 떨어져 있다. 초원 지대이다 보니 주민은 대부분 목축으로 생계를 잇는다. 길을 가다 보면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소와 양 등 가축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밤이 되면 하늘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