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자의 언어로 말하는 진실이 독자에 가닿지 못하는 일이 있다. 2018년 <한겨레>는 노인 요양 문제의 진실을 시민들의 마음에 가닿게 할 저널리즘을 시도했다. 권지담, 이주빈, 정환봉, 황춘화 기자가 요양문제를 취재했다. 권지담 기자는 한 달간 요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모두 3부작으로 구성된 기사의 ‘1부 요양orz’는 요양원에 사는 노인들과 노인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의 목소리를 담았다. ‘2부 요양원 비리’는 제도 문제를 다뤘다. ‘3부 대안’은 대안이 될 수 있는 국내외 모범사례를 다뤘다.
얼마 전 남자친구가 취업을 했다. 건설현장에 필요한 장비를 납품하는 중소기업이었다. 그는 매일 거래처의 현장으로 출근했다. 최근 그의 팔에는 원인 모를 두드러기가 나기 시작했다. 새로운 작업 현장에서 일한 지 일주일 만이었다. 개미에 물린 것 같은 자국 수십 개가 오른팔 군데군데로 퍼졌다. 병원을 두 곳이나 다녀왔지만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며 잘 먹고 잘 자라는 처방만을 받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현장에서는 꼭 공업용 마스크를 쓰라고 잔소리를 하는 것, 면역력을 위해 주말에 몸보신 음식을 사주는 것뿐이었다. 일을 시작하자마
저널리즘 모포시스/한국언론정보학회 기획/임종수 외 12인 지음/팬덤북스/1만8000원기자에 대한 조롱과 모욕이 보편화된 세상이다. 언론사 누리집과 포털 뉴스의 댓글창을 보면 ‘기자’는 없고 ‘기레기’만 있다. 댓글만 보면 한국은 사실 확인 없는 허위조작정보, 정치적으로 편향된 기사, 각종 진영논리로 갈등만 부추기는 기사를 내놓는 기자로 가득하다. 이 말이 처음 생겨났을 때는 일반 수용자 수준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기사를 생산하는 기자와 언론사를 통칭하는 용어로 사용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단순히 자신의 의견과 다른 기사를 썼다는 이유만
“우리 사회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게 무엇이든, 그건 대중매체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다른 한편 우리는 대중매체가 그리 신뢰할 만한 정보의 원천이 아니라는 것 역시 안다.”독일 사회학자 니클라스 루만은 <대중매체의 현실>에서 이렇게 썼다. 신문과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대중은 기존에 몰랐거나 굳이 알 필요가 없던 정보를 알게 됐다. 루만은 사람들이 이러한 정보들을 원래 알고 있었던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모두 대중매체를 통해 습득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준희 방송진행자 겸 한양대 겸임교수는 “
여자전쟁/수 로이드 로버츠 지음/심수미 옮김/클/2만원 "신이 페미니스트가 아니라는 건 명백하다. (중략) 도대체 왜 전 세계 인구의 51%나 되는 여자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평등하고 인간적인 대우를 받기 위해 운동을 벌여야 하는가?"영국 방송사 아이티엔(ITN)과 비비시(BBC)에서 30년간 기자로 살아온 수 로이드 로버츠(Sue Lloyd-Roberts)는 3번째 ‘10억 여성 궐기 대회(One Billion Women Rising rally)’가 열린 런던의 트래펄가 광장에서 자문했다.
올해 초 바이든 행정부 출범 후 첫 한미정상회담이 열렸다. 회담 하루 전, 청와대 관계자가 워싱턴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전 협력 논의 가능성이 있다”라고 알렸다. 국민들에게 한미 협력의 구체적인 사례를 확실히 보여주고자 한다는 것이다. 회담에서는 한미 미사일 지침 문제와 함께 원전 수출 협력 방안이 실제로 논의됐다. 양국 정상은 공동성명을 통해 원자력 발전 시장 진출을 위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이 합의에 대해 국내 언론은 어떻게 보도했을까. 빅카인즈를 통해 <조선일보>와 <한겨레>의 기사 중 ‘원전 수출’ 키워드가
<장애인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 제29조 1항은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모든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어야 하며, 장애인은 이를 주체적으로 표현하고 향유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마땅히 지닌 ‘성에 관한 권리’와 ‘성적 자기결정권’을 법률을 통해 다시 명시적으로 규정하는 까닭은, 장애인에겐 이러한 당위가 현실과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현실에서 장애인의 성에 관한 권리는 존중되지 못해왔고, 심지어 성적 욕구나 자기결정권을 지니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기도 한다.장애인과 성을
“현대 저널리즘의 변화는 상당 부분 기술 변화에 의해서 촉진되고 설명되죠.”방송진행자 겸 미디어비평가로 잘 알려진 정준희 한양대 정보사회미디어학과 겸임교수는 지난 3월 25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사회교양특강에서 ‘저널리즘과 수용자의 관계’를 1부 주제로 삼았다. 그는 강연을 시작하면서 대중매체는 기술 발전과 함께 태동했고 저널리즘의 변화도 상당 부분 기술 변화에 의해 촉진됐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날 저널리즘의 혼란은 기술 변화를 무시한 결과, 수용자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벌어진 문제라고 진단했다.
더 저널리스트: 어니스트 헤밍웨이/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김영진 엮고 옮김/한빛비즈/1만6000원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기자 시절에 작성한 기사 25편을 담은 책이다. 헤밍웨이의 기사는 대개 인물이나 특정 상황을 묘사하며 시작한다. 나머지 내용은 헤밍웨이가 목격하거나 겪은 장면들로 채워진다. 기사를 읽으면 헤밍웨이가 본 현장이 눈앞에 펼쳐진다. 소설을 읽는 느낌과 비슷하다. 헤밍웨이가 쓴 기사는 ‘문학 저널리즘’에 속한다. 문학 저널리즘은 문학의 이야기 전개 방식을 차용하되 사실만 다루는 보
“나는 흑산을 자산으로 바꾸어 살려 한다. 흑은 무섭다. 흑산은 여기가 유배지라는 걸 끊임없이 깨우친다. 자(玆) 속에는 희미하지만 빛이 있다. 여기를 향해서 다가오는 빛이다.” – 소설 <흑산>, 김훈 영화는 형 정약전과 동생 정약용의 유배 길로 시작한다. 약용과 그 형제들을 아꼈던 정조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즉위하자 노론 벽파는 남인을 제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그들은 남인 시파에 속했던 약용 형제들을 천주교를 받아들였다는 이유로 성리학을 부정하는 사교 집단으로 몰아붙였다. 이미 실권은 수렴청정하는 대왕대비 정순왕후로 넘어갔고
헨리는 새로운 삶을 찾아 엘살바도르에서 미국으로 왔다. 갱과 마약에 휘둘리며 인생을 내버리기 싫었다. 뉴욕 롱아일랜드에 정착해 학교를 다니며 미래를 꿈꿨다. 헛되었다. 열아홉 살 되던 해, 헨리는 미국에서 추방됐다. 지역 갱 조직에 연루됐다는 혐의였다.카를로타는 아들을 아꼈다. 에콰도르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어렵게 아들을 낳았다. 초등학교에 보내서도 해코지를 당할까 걱정돼 아들 손을 잡고 다녔다. 헛되었다. 열다섯 살, 아들은 숲속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부검 결과 마체테(벌목용 칼)로 베인 흔적이 있었다.알렉스는 늦은 나이에 고등학
싸우는 저널리스트들/로베르 메나르 지음/성욱제 옮김/바오/1만2000원홍콩 언론의 자유를 상징하는 <빈과일보>가 지난달 24일 폐간했다. 빈과일보는 1995년 창간해 중국 정부에 비판적 입장을 견지해온 매체다. 홍콩 내 반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홍콩 국가보안법이 시행된 후 신문사 간부가 구속되고 회사 자산이 동결됐다. 자진 폐간의 형식을 밟았지만 실제로는 정부의 언론 탄압이었다. 홍콩의 다른 매체들도 상황은 비슷하다. 홍콩보안법 검열에 대항할 방법이 “거의 없어 보인다”라는 홍콩 기자들의 말은 현지의 절망적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고
미얀마정치범지원협회는 협회 사이트에 ‘군부에 의해 살해당한 이'들의 수를 알리고 있다. 쿠데타가 일어난 지난 2월 1일부터 7월 8일까지 898명. 공식적으로 사망이 확인된 사람 수만 세기 때문에 실제 사망자는 이보다 많다. 미얀마 군부 세력이 폭력으로 독재를 이어갈수록 이 숫자는 하루가 다르게 늘어난다. 시민들은 ‘정치 주체로서 시민’이라는 존재 가치와 ‘독재로부터의 해방’이라는 미얀마 민주주의를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항쟁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다시 태어나도 우리>에서 린포체(환생한 큰 스님
언론에 관한 시민들의 불신이 커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여전히 취재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는 기자들이 있다. 한국기자협회는 지난 1967년부터 그 해의 좋은 언론 보도를 찾아 상을 주고 있는데 바로 ‘한국기자상’이다. 한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상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상과 함께 취재보도부문, 경제보도부문, 기획보도부문 등 7개 부문에서 상을 수여한다. 2017년 <한겨레>가 보도한 ‘공공기관 부정채용 민낯’ 기획 기사는 그 해 제49회 한국기자상 기획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공식 심사평에서는 이 기사를 이렇게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윌리엄 맥도널드 엮음/윤서연 외 6명 옮김/인간희극/2만5000원부고기사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알린다. 뉴욕타임스는 1851년 창간호를 낸 이래로 매년 1천 건이 넘는 죽음을 알려왔다. 저명인사의 죽음으로 한 시대를 조명했다. 부고전문기자는 미리 저명인사의 이야기를 쌓아놓는다. 건강이 악화됐다는 소식이 들리면 미리 기사를 쓴다. 그래서 작은 평전이라 불릴 정도로 깊은 기사가 나온다. 부고기사를 기다리는 부고중독자까지 생겼다. <뉴욕타임스 부고 모음집>은 2019년 한국어로
송연순(89)과 정기숙(88)은 한국전쟁 참전용사다. 국군이 서울을 수복하고 얼마 뒤 열여덟 연순은 여자 의용군 2기생으로, 열일곱 기숙은 춘천여고 학도병으로 참전했다. 연순과 기숙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되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과거를 숨겼다. 자녀들도 그들의 참전 사실을 2000년대에 들어서야 알았다. 그들은 왜 자랑스러운 과거를 숨겼을까? KBS 춘천의 현충일 특집 다큐멘터리 <연순, 기숙: 71년 전 그 소녀를 만나다>는 지난 50년 동안 그 사연을 꽁꽁 싸맨 이유를 풀어낸다. 내가 있던 곳, 전장송연순(
기자는 무엇으로 사는가/한국기자협회 엮음/포데로사/1만1700원소설가 김훈은 기자였다. 30년 가까이 현장을 글로 옮기는 일에 몸담았다. 그는 현실을 기사에 담아내는 데 거듭 실패했다. 박정희 유신체제에서 전두환 신군부까지 어두운 세월을 지나며, 감방에서 신음하는 이들을 문장에 쓰지 못하고 동물원을 돌면서 기사를 냈다. 슬프고 더러워 회사를 나왔다. 그는 언론을 떠났다가 돌아오기를 되풀이했다. 육하(六何) 너머에 인간의 진실이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었다고 김훈은 현장을 떠나 소설을 쓴 이유를 밝혔다. <한겨레>로 돌아와 사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