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추적단 불꽃 지음/이봄/1만 7천 원2020년 3월, 텔레그램에서 ‘박사방’을 운영하던 조주빈이 검거됐다. 그보다 두 해 앞선 2018년 메신저 앱 텔레그램에는 ‘n번방’, ‘고담방’, ‘박사방’ 등 미성년자를 포함한 일반 여성들의 성 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하는 대화방들이 생겨났다. 이들은 피해 여성들의 신상을 이용해 그들을 협박하고, 지속적으로 성착취 영상을 찍도록 강요했으며, 이를 텔레그램 채널을 통해 유포한 것으로 알려졌다. ‘추적단 불꽃’은 이 사건을 처음 취재하고 보도했다. 기자를 꿈꾸던 대
정시에 퇴근하는 걸 ‘칼퇴’라고 부르며 회사 복지처럼 여기는 한국에서 과로는 딱히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서울신문> 특별기획팀 유대근, 김헌주, 이범수, 홍인기, 오세진 기자는 2017년,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라는 7회 분의 기획보도에서 과로로 숨진 이들과 유가족 54명의 사례를 발굴하고 심층 인터뷰했다. 1천여 명의 직장인을 대상으로 직접 설문조사를 하고, 관련한 정부 자료를 찾아내어 과로의 심각성을 알렸다. 한국 사회에 너무 만연해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과로가 ‘진짜 심각한 문제’라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해 매 기사마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조지 오웰 지음/이한중 옮김/한겨레출판/1만2000원태양이 지구를 돌던 때가 있었다. 고대 철학이 세계를 정리한 이래 지구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은 땅에 눈을 두고 별의 운행을 헤아렸다. 믿음을 깨뜨리는 자들이 나타났다. 땅에 박은 고개를 들고 별을 좇았다. 그들은 지구를 중심에서 밀어냈다. 실로 움직이는 것은 하늘이 아니라 대지라고 외쳤다. 코페르니쿠스는 세상이 지구를 향해 회전하는 것이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퍼뜨렸다. 티코 브라헤는 맨눈으로 행성과 혜성의 궤도를 관측해 기록으로 남겼다. 케플러는 브라
볼테르의 소설 <캉디드>에는 ‘낙관주의자’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주인공 캉디드는 스승 팡글로스에게 현재는 ‘가능한 모든 세계 중 최선’이라는 낙관주의를 배운다. 캉디드가 죽을 고비를 넘기고 이게 정말 좋은 세상인지 물을 때도 팡글로스의 답은 같다. 1000대 매를 맞지 않았다면 도망치지 못했을 것이고, 도망치지 않았다면 노파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그랬다면 노파가 주는 빵으로 허기를 달래지 못했을 것이기에 지금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것이 팡글로스의 낙관주의다.미국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가 인도인의 소 경배 의식을 재해석하자 팡글
“옥천군민 20%가 <옥천신문>을 유료 구독해요. 허투루 쓰는 기사가 없기 때문이죠. 다른 지역 주민들은 기자를 만나기 힘들 때가 많아요. 보통 언론사 빌딩이 으리으리하고 보안이 철저하니까요. 하지만 옥천에서는 할머니들이 길 가다가 옥천신문사에서 쉬어 갈 정도로 문턱이 낮아요.”황민호 <옥천신문> 상임이사는 충북 옥천군 지역주간지 <옥천신문>의 유료화 성공 원인으로 지역 밀착 보도를 들었다. 그는 “포털 사이트에서 옥천을 검색하면 주로 보도자료를 받아쓴 똑같은 기사만 나온다”며 “포털이 커져도 지역 공론장에는 백해무익하다”고 지적했
뉴욕타임스의 디지털 혁명/송의달 지음/나남/481쪽/2만8000원1851년 <뉴욕타임스>는 신문사였다. 창간호의 제호는 '뉴-욕 데일리 타임스'(New-York Daily Times)였다. 1896년, 적자에 허덕이며 시장에 매물로 나온 <뉴욕타임스>를 아돌프 옥스가 인수했다. 현재까지 5대에 걸쳐 <뉴욕타임스>를 이끄는 '옥스-설즈버거 가문'의 시작이다.19세기 말 미국은 황색 저널리즘이 횡행했다. 조셉 퓰리처의 <뉴욕 월드>와 월리엄 허스트의 <뉴욕 저널>이 경쟁적으로 흥미 위주의 선정 보도를 일삼았다. 아돌프 옥스는 황색 저널
‘믿음’을 가지는 것. 어느 때부터인가 사치로 들리는 말이 돼버렸다. 믿기 보다는 의심하고, 그래야 거친 세상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또 다른 믿음’이 하나의 규칙으로 자리 잡았다. <메기>는 이 위태로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모습을 풍자로 풀어낸다. 믿고 있는 당신, 진정 안전한가요?피해자가 걱정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믿는 척’ 하려는 우리영화 <메기>는 2018년 작품이다. 여러 독립영화를 통해 주목받은 이옥섭 감독의 첫 장편영화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02년부터 지원한 ‘인권영화 프로젝트’의 열네 번째 작품이기도
“탐사보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교과서 같은 역작.”2018년 한국기자상 심사위원회가 <서울신문>의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에 대해 내놓은 평이다. <서울신문> 탐사기획팀 유영규, 임주형, 이성원, 신융아, 이혜리 기자는 2018년 9월 3일부터 12일까지 8회에 걸쳐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을 연재하여, 그해 한국기자상 기획보도상을 받았다. 이들은 환자를 돌보다 누군가를 살해하는 것을 ‘간병살인’으로 규정하고 실태 파악을 시도했다. 이에 대한 대규모 심층분석은 처음이었다. 마땅한 통계도 없는 상황이었다. 정부는 간병살인에
마음을 움직이는 인터뷰 특강/지승호 지음/창비/1만5000원인터뷰 전문 작가를 꿈꾼 적이 있다. 그 꿈은 좋은 인터뷰 기사들을 읽으면서 시작됐다. 월간지 <인물과 사상> 권두에 실리던 두툼한 분량의 인터뷰는 일간지보다 긴 호흡으로 문제적 인물과 그의 사상을 깊이 있게 담아냈다. <씨네21> 김혜리 기자의 인터뷰 모음집 <진심의 탐닉>도 수작이다. 김혜리 기자의 섬세한 시선이 거침없는 질문과 어우러지면서 인터뷰이를 더욱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낸다. 인터뷰란 ‘근사한’ 사람들을 만나 춤을 추듯 대화하며 그의 속마음을 끌어내고, 사람의 한
‘신장위구르자치구’, 우리만 모르는 이야기지난 7월 미국 상무부는 14개 중국 기업을 블랙리스트에 올리며 이들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단행했다. 이들 기업이 신장위구르자치구 내 소수민족에 대한 구금과 강제노동을 자행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같은 달 UN 인권이사회는 신장 지역에서 자행되는 불법 구금 등의 행위를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에 대해 중국은 내정 간섭이며 명백한 허위 사실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한국 언론도 이 문제를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사안의 내막을 제대로 보도했는지 돌아보면 의문점이 남는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제
경쟁은 흥미롭다. 누군가와 경쟁하는 일은 긴장과 동시에 쾌락을 일으킨다. 많은 이가 게임을 하며 얼굴 모르는 상대와 경쟁을 즐긴다. 다른 이가 벌이는 경쟁을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전 세계 수많은 사람이 올림픽과 월드컵부터 미국 메이저리그, 영국 프리미어리그 등 스포츠 대회 관람을 즐긴다. 어르신이 많이 모이는 공원에서도 바둑 한판이 벌어지면, 그 주위에 구경꾼이 모여든다.경쟁은 승패가 명확하게 갈려야 재미있다. 시합 내내 열심히 축구공을 쫓아 뛰어다녔는데, 경기 뒤 선생님이 ‘모두가 승자’라고 선언해서 김이 빠지는 경험을 해본 이
“뉴스는 역사의 초고다.”워싱턴포스트의 발행인 캐서린 그레이엄은 앞서 회사를 경영한 남편 필립 그레이엄의 말을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다. 캐서린 그레이엄은 1960년대 초반부터 30여 년 간 발행인이자 대표로 일하면서 워싱턴포스트를 세계적 언론으로 성장시켰다. 그가 재임할 당시 워싱턴포스트는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닉슨 대통령의 사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이끌어냈다.그의 말처럼 뉴스는 사초(史草) 역할을 한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기록해놓은 신문과 방송 덕에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고 과거의 오류를 바로 잡을 수 있다. 과거에 해결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해발고도 8,850m 에베레스트다. 8,000m 이상 고봉 14개 모두가 히말라야에 있다. 세세풍 쎄르마(31) 씨는 히말라야 바로 밑 산간지역에서 살았다. 한국에 와서는 한국인들도 꺼리는 ‘가장 낮은 일’을 하고 있다. 세세풍 씨는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에서 하청노동자로 일한다. 그는 네팔에서 대학에 다닐 때 경영학을 전공했다. 한국에 온 지 8년이 됐다. 대학에 다니다가 한국어 시험을 치고 한국으로 오게 됐다.시 쓰기는 세세풍 씨의 어릴 적부터 취미였다. 그는 네팔에 있을 때부터 꾸준히 시를 쓰곤 했다
세상은 바꿀 수 있습니다/이용마 지음/창비/1만6000원한국의 공영방송은 오랫동안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공영방송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수난을 겪었다. 건강한 공론장의 역할을 하지 못하고 시민들에게 비난받고 끝내 외면받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유튜브와 대안 언론들까지 등장하면서 공영방송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 가고 있다. 안팎으로 어려움에 직면했지만, 공영방송 구성원 가운데는 좋은 언론을 만들기 위해 오랫동안 노력해온 이들도 많다. 이 책의 저자, 이용마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그는 어느 날 암에 걸렸다. 50살도 되지 않은 나이
9만여 관중이 운집한 캄프 누(FC 바르셀로나 홈구장), 레알 마드리드 수비수 세르히오 라모스가 리오넬 메시의 정강이를 거칠게 걷어찬다. 주심은 급하게 경기를 중단하고 퇴장을 선언한다. 메시의 동료 선수들이 모여들어 라모스에게 항의하지만, 그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카를레스 푸욜의 뺨을 가격하고 만다.2010년 11월 29일 라리가 13라운드에서 벌어진 이 초유의 사건은 ‘엘 클라시코'(전통의 경기)의 분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뺨을 맞은 푸욜은 스페인 대표팀의 부주장으로 라모스에게는 고참 격 선수다. 엘 클라시코가 뿜어내는 열기와
퓰리처상은 미국 내 언론과 예술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세운 이들에게 주어진다. 언론 분야는 공익 보도, 탐사 보도, 해석 보도 등 여러 부문으로 나뉘는데 지난해 퓰리처상 위원회가 '오디오 보도(Audio Reporting)'를 신설하면서 총 15개 부문이 됐다. 퓰리처상 위원회의 설명을 보면, 새로운 사실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해 공익에 기여한 오디오 보도에 상이 주어진다.그 첫 번째 수상작은 미국 공영 라디오방송(National Public Radio·이하 NPR)의 주간 라디오 프로그램 <디스 아메리칸 라이프(This Ameri
저는 죄를 지었습니다. 어릴 적 패스트푸드점에서 ‘서핑하는 구피’ 장난감을 가지고 싶어 부모에게 떼를 썼습니다. 기어이 한 손에는 햄버거를, 다른 손에는 구피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에릭 슐로서가 쓴 <패스트푸드의 제국>을 볼 때까지는 몰랐습니다, 구피 장난감과 햄버거는 탐욕의 죄악임을.<패스트푸드의 제국>에는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가 어떻게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지배하는지 나와 있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어린이들을 공략했습니다. 문화와 자본을 결합해 패스트푸드가 어린이의 친구인 것처럼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여기에 장난감과 놀이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