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기운이 감도는 강변길. 산자락을 휘감은 물안개를 느껴보려고 차창을 내리자 축축한 공기가 메마른 가슴속을 적신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지역·농업문제세미나’ 탐방단(단장: 이봉수 교수)이 지난 이틀간 지리산 노고단과 피아골, 뱀사골에서 느낀 장엄하고 비장한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빨치산의 역사를 품은 지리산은 험준하지만 넉넉한 산자락과 골짜기마다 사람이 정착할 터를 내주었다. 탁 트인 섬진강은 곳곳에 물굽이와 모래밭을 펼쳐 삶의 터전이 돼주었다. 섬진강은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팔공산 자락의
“훼손은 1년, 복원은 100년 걸린다는 말이 있어요. 훼손되거나 파괴된 자연생태계가 되돌아 갈 수 있도록 돕는 행위를 복원사업이라고 합니다. 저희들이 하는 건 복원사업이고 진정한 복원은 저희가 복원시킨 50마리 곰이 (자연으로 돌아가) 생태계를 복원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국립공원공단 종복원기술원 문광선 복원기획부장은 반달가슴곰 복원의 의의를 그렇게 설명했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훼손된 생태계가 복원되려면 100년도 부족하다. 지리산은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며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이 찾아왔다. 사람들 발길이
“급할 때 차도 없고 버스는 안오고… 그럴 때 전화 한 통이면 택시가 와서 실어다 주니 너무 좋지요.”충북 제천시 백운면 덕동리에 사는 이아무개(66·여) 씨는 얼마 전 인천 아들집에 갑자기 갈 일이 생겼다. 반찬을 좀 해달라는 전화가 와서 나가려고 보니 하루 세번 다니는 버스 첫차는 오전 8시10분에 가고 없어 전화로 택시를 불렀다. 다음 버스는 점심 시간 다 돼 오는데 그걸 타고 나가면 인천 가면 날이 저문다. 이 씨가 이날 전화로 부른 택시에 편승해 덕동리 마을로 갔다. 오전 8시 25분에
망망한 호수 위에 점 하나로 둥둥 떠보면 사방이 온통 기암절벽이다. 빼어난 풍경 속으로 들어가는 순간 인간도 자연의 일부가 된다. 퇴계 이황과 단원 김홍도, 직필 때문에 죽은 김일손 등 수많은 문신과 화가가 옥순봉을 찾았으나 필봉이 무딤을 한탄해야 했으리라. 옛 글과 그림은 과장이 허용됐지만 옥순봉 앞에서는 표현이 궁했을 것 같다.켜켜이 쌓인 석벽을 가까이서 보면 절묘하게 깎인 자태에 놀라고, 멀리서 보면 솟아오른 위용에 압도된다. 이웃 나라 태산이 부럽지 않다. 아기자기한 우리 자연이 더 포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일까? 옥순봉, 구담
세종시 조치원역에서 충북 봉양역을 잇는 충북선 고속철사업 추진을 둘러싸고 제천 지역 정차역을 제천역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과 봉양역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 지역 갈등이 심해지고 있다.정부가 지난 1월 ‘충북선 철도 고속화’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대상 사업으로 선정해 사업추진을 본격화하면서, 충북도가 충북선 고속철의 제천지역 정차역을 봉양역으로 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제천시민 중 상당수가 “제천 패싱”이라며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시종 지사 “제천역 돌아가면 고속화사업 목적 어긋나”충
눈길 닿는 곳마다 평온하다. 초가지붕 볏짚도, 마을 흙길도 온통 누런 빛으로 순박하다. 고택 기와지붕은 언제 봐도 묵직하다. 잘 어울린 집들처럼, 주인들도 서민이든 선비든 모두 ‘하회마을’ 사람으로 한데 모여 같이하는 삶을 이뤘다. 집집으로 초대하는 좁은 골목을 벗어나 소나무 무리가 멈춰 서있는 흙길을 걸어본다. 하회마을 만송정에서 부용대로 가는 길, 휘돌아가며 마을을 품어주는 낙동강 물결을 볼 차례다.“다리 건너 저리 가던 게 까마득하지” “바닷가에 사는 것은 강가에 사는 것만 못하고 강가에
‘청년들로 가득 차라’는 뜻에서 ‘청FULL몰’로 이름 붙인 제천 청년몰이 텅텅 비어가고 있다. 7일 오후 제천중앙시장 2층 청풀몰을 둘러보니 12개 청년몰 가게 중 문을 열고 영업하는 곳은 ‘엄마의 오븐’ 과 ‘한굼’ 등 6곳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가게가 아예 비어있거나 물건이 있어도 문을 닫은 채 영업을 하지 않았다.제천 청년몰은 가게 22곳 중 8곳만 영업‘청풍맛길’이라 불리는 1층 청년몰 식당가로 가봐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청년몰 식당으로 개업한 10곳 중 영업을 하는 곳은 손만두집과 돈가스집 등 2곳뿐이고 나머지 8곳
지난달 14일 오전 10시 일본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 마츠가에 국제터미널. 나가사키항에서 하시마섬(군함도)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이곳에 환경재단의 ‘피스앤드(&)그린보트’ 한·일 참가자 38명이 모였다. 피스&그린보트는 한일 양국 시민 1000여명이 약 일주일간 함께 배를 타고 한중일 유적지를 돌며 동아시아 역사와 환경문제를 생각하는 프로그램이다.“모두 우산은 접어주세요. 군함도에 들어가서는 우산을 쓸 수 없습니다. 지금 비가 오는데 들어갈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요. 가 봐야 압니다.” 비바람 탓 연중 100일만 들어갈 수 있는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이 정식 개관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와 가깝다. 지상 6층, 연면적 1,920㎡(580평) 규모다. 기념관 정면에는 전태일 열사가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열악한 여공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쓴 자필 편지를 텍스트 패널로 디자인해 부착했다. 지나는 시민 누구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서울시는 앞서 한 달 전 시민들에 기념관을 공개하고, 각종 전시와 공연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를 보여
판문점선언 1주년, 전국에서 ‘평화손잡기 운동’남북정상회담 판문점선언 1주년을 기념하는 'DMZ(民)+평화손잡기' 행사가 27일 강화를 비롯해 파주 임진각, 양구 두타연, 고성 통일전망대 일대에서 열렸다. DMZ평화인간띠운동본부가 주최한 인간 띠 잇기 행사는 강화∼고성 구간 500㎞를 1m 간격으로 서로 손을 잡고 늘어서는 것으로 전국 각지에서 동참한 이들을 포함해 주최측 추산 20만명이 참가했다.참가자들은 지난해 4월 27일의 의미를 되새기며 오후 2시 27분부터 서로 손을 잡으며 인간 띠를 만들었다. 행사 참가자들은 통일과 평화
‘1474년: (조선) 성종, 의림지 수축 논의’‘1662년: 현종, 제언사(堤堰司) 설치'‘1908년: 의림지수리조합 결성’‘1914~1917년: 의림지 시설 보수’‘1972년: 태풍으로 붕괴된 서쪽 제방 복구’‘1976년: 의림지와 제림, 문화재 지정’‘1987년: 의림지 관개구역 경지정리’역사박물관 연표에 ‘의림지 역사’는 단 일곱 줄지난 1월 9일 문을 연 충북 제천시 모산동 의림지 역사박물관 전시실의 ‘의림지 역사’는 단 일곱 줄이다. 제천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고대 시기 저수지 의림지의 역사와 유물, 학술자료 등을 수집
‘어디 색다른 카페 없을까?’ 충북 제천시 청전동 286번지. 청전(靑田)동은 의림지 아래 있어 이름 그대로 가뭄을 타지 않는 '푸른밭'이 있는 동네다. 너른 들판 한가운데로 의림지와 유수지인 솔방죽을 잇는 ‘푸른길’을 걷다 보면 길가에 주인 없이 손님을 기다리는 가판대가 있다. 새빨간 딸기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데 눈길을 한번 주거나 발길이 끌린다면,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보라. 그곳이 보통 카페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흙 바닥에, 커피 향 대신 달큰한 딸기잼 향이 감도는 ‘딸기하우스’다. 인적이
‘흙에서 자란 내 마음 / 파아란 하늘 빛이 그리워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 풀섶 이슬에 함추룸 휘적시던 곳’정지용의 시 ‘향수’의 고장, 옥천의 좋은 흙에서 농민들이 마음을 다해 기른 묘목을 전시판매하는 옥천묘목축제가 성황리에 끝났다. 지난 3월 28일부터 나흘간 열린 옥천묘목축제는 올해로 스무 돌을 맞았다.향수를 느끼게 하는 고향 같은 옥천기차역에서 내려 잠시 옥천읍내를 돌아다녀 보면 이곳이 정지용 시인의 고향임을 금방 알 수 있다. 옥천역 앞 ‘지용시비’에는 그의 시 ‘고향’이 새겨져 있고, 작은 영화관에도 ‘향수시네마’라는
그림이나 사진을 감상할 때 흔히 “한발 물러서 보라”고 한다. 하지만 청풍호를 마주할 때는 그보다 더 멀리, 더 높은 곳에서 봐야 한다. ‘내륙의 바다’, 그 진가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그리 중요해 매사를 밭게만 살아왔는지… 닥치는 일들에 몸도 마음도 종종 걸음 치며 한치 앞만 보고 달려왔다.‘이제는 물러서서 더 큰 그림을 보자.’ 청풍호반 케이블카를 타고 보니 탁 트인 절경에 절로 아량이 생긴다. 위로는 하늘이, 아래로는 땅이 있다. 그 중간쯤에서 둥둥 떠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현실과 아득히 멀어져 자연 속에 덩그
“한국에서는 학생을 전국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고, 수능·고시 등 특정한 방식의 테스트를 통과하면 인정받고 출세하는 길이라고 보는 ‘왜곡된 능력주의’가 짧게는 해방 이후, 길게는 조선시대 과거제도부터 뿌리 깊게 이어져 내려왔죠. 이런 사고방식이 상대적으로 능력이 부족하거나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을 멸시·혐오하는 것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88만원 세대> <#혐오_주의> 등의 저자인 박권일(43)씨는 우리 사회에서 지방대 혐오가 심해지는 이유 중 하나로 ‘과잉 능력주의’를 꼽았다. 그는 지난 14일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 전화인터
대학생들의 익명 고발 페이지인 페이스북의 ‘캠퍼스 대나무숲 텐덤’에 지난 1월 12일 세종시 한 대학 연기과 교수의 ‘갑질’을 고발하는 글이 올라왔다. 교수는 학생 집합 명령, 경멸과 무시 발언, 과도한 사생활 간섭 등이 문제가 되자 사과문을 발표하고 사직서를 냈다. 그런데 이 게시글에 대한 반응이 놀라웠다. 교수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지방대를 비하하는 댓글이 쏟아진 것이다.“잡대(지잡대) 올스타전 찍노.”“너네가 지잡대지 군대냐?”“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좝? 진짜 극혐쓰.”온라인에 넘실대는 멸시와 비하의 물결‘익명의 바다’인 인터
고개 위 나무 천로(天老)를 뵈었고 / 시냇물은 돌에 부딪혀 시끄럽구나산이 깊어 범과 표범이 많으니 / 저물지 않아도 사립문 닫아야 하네단종이 유배생활을 달래기 위해 노산대에 올라 지었다는 시다. 사방이 산과 강으로 둘러싸여 섬과 다름없는 그곳에서 느꼈을 고립감은 창덕궁 돈화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시작됐으리라. 1주일을 걸려 도착했다던 영월. 행정구역으로는 영월군에 속하고 거리로는 제천에 가까운 영월군 주천면을 찾았다. 술이 샘솟는다 하여 붙여진 주천(酒泉)이라는 지명과 달리 이곳에서는 술 냄새 대신 고기 냄새가 식욕을 자극한다.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