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이 육지로 둘러싸인 충청북도, 깎아지른 산길을 왼편에 두고 대청호를 따라 백 굽이를 지나면 청원군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이 나온다. 마을버스가 하루 6번 오갈 뿐 그 흔한 슈퍼마켓 하나 없는 동네다. ‘파리도 길을 잃는다’는 이 벽지 마을에선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벌판의 밭'이란 뜻을 가진 벌랏마을은 40여 년 전만 해도 70가구 4백 명 가량의 주민이 살았지만 젊은이들이 하나 둘 도시로 떠나면서 이제는 22가구 30여명만 남았다. 오전 10시가 돼야 해가 뜨고 오후 3시면 해가 지는 산동
“다른 시 좋은 거 많은데 희한해......”나태주(66·공주문화원장) 시인은 그의 시 ‘풀꽃’ 얘기가 나오자 천진한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43년간 시골 초등학교에서 가르친 선생님다운 순박한 웃음이었다.‘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달랑 세 줄의 이 짧은 시는 2005년 발간된 그의 스물여덟번째 시집 <쬐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에 수록됐다가 2009년 푸른길출판사가 낸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국어교과서에 실리며 대중의 사랑을 받게 됐다. 지난해 3월부터 5월까지 서울 종로의 교보문고 건물 외벽에
"이 정도로까지 무너질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담한 심정입니다."<뉴스타파>의 김용진 대표는 요즘의 KBS 뉴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7년 한국방송(KBS) 기자로 입사해 매체비평 프로그램인 <미디어포커스>와 탐사보도팀 등을 이끌었으나 이명박 정권 들어 각종 탄압을 받다가 지난 2월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MB 시대 해직 언론인들과 함께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KCIJ)를 설립하고 '비영리, 비당파, 독립언론'을 표방하는 <뉴스타파>의 대표를 맡았다. 또 국내 유일의 2년제 정규 저널리즘스쿨인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경기도 수원의 벼룩시장과 안양시 관양시장, 남양주시 나눔장터 등에는 전국의 장을 돌며 판을 벌이는 ‘예술장돌뱅이’들이 종종 나타난다. 손한샘(45)씨를 주축으로 지난 2008년 결성된 프로젝트 예술가팀 ‘겸손한 미술관’에 속한 화가 10여명이 그들이다. 이 예술장돌뱅이들은 시장에서 만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그 대화를 모티브로 그림 등 작품을 만들고 물물교환도 한다. 이 중 화가 김현승(34)씨는 지난 2012년부터 ‘감성우체국’이란 이름으로 손님과 함께 손글씨엽서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어떤 생각으로 예술가들이 장터로 나
다음달 3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제18회 부산국제영화제의 한 프로그램인 ‘한국영화의 오늘’ 에는 완성도가 높은 독립영화 10편을 소개하는 ‘비전’ 부문이 있다. 여기에 첫 장편영화 <셔틀콕>을 걸게 된 이유빈(32·여) 감독은 한국 영화계가 주목하는 신인 중 한 사람이다. 국내 상업영화시장에서는 보기 드문 성장영화(청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담은 영화)로 장편 데뷔를 한 이 감독을 <단비뉴스>가 지난 23일과 지난 6월 두 차례 인터뷰했다. <셔틀콕> 제작 어려워 연출 그만둘 생각도“그땐 내가 천재인 줄 알았어요. 스물다섯 살 때죠
가로세로가 각각 60~70센티미터(cm) 가량인 대형 나무팔레트 위에 흰색, 노란색, 주황색, 빨강색, 암적색, 검정색 등의 에나멜페인트 통 10여개가 놓여 있다. 목장갑을 낀 손에 길이 30cm, 너비 6cm 가량의 붓을 움켜쥐고 흰색, 진녹색, 주황색 페인트를 조금씩 덜어 팔레트에서 섞자 금세 에메랄드빛(녹색)이 만들어진다. 붓질 몇 번 만에 바위 위에 수풀이 생기고 계곡에 시원한 물줄기가 쏟아진다. 작업 중인 벽화주변을 맴돌던 동네 꼬마가 “나도 하고 싶어...”라며 칭얼대자 “옷에 (페인트) 묻는다”고 인자한 웃음으로 달래던
러시아 출신 한국학자 박노자 교수, 소설가 공지영, 가수 신해철, 영화 ‘설국열차’의 봉준호 감독, <딴지일보> 총수 김어준. 강한 개성을 지닌 이 인물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지승호(48) 작가와 인터뷰집을 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전업 인터뷰작가’인 지씨는 2002년 ‘비판적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부터 최근 철학자 강신주와 함께 낸 ‘맨 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에 이르기까지 30여권의 인터뷰집을 출간했다.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200여명의 ‘뉴스메이커’에게 집중 질문을 던진 지승호 작가를 이번엔
“보통 성폭행 사건이 나고 6개월 정도 지나면 주위의 도움을 받아서 피해자와 피해자 가족 모두 안정 상태로 접어들게 돼요. 그런데 나주사건은 가족 전체가 언론에 너무 많이 시달렸어요. 살던 집과 아빠의 직장은 물론이고 아이의 학교와 일기장까지 모두 노출됐죠. 아빠는 언론이 자기들을 매장시켰다는 분노에 아직도 술을 안마시면 잠을 못 잔대요.”포털사이트 네이버(naver)에서 '나주 성폭행사건'을 검색하면 관련 뉴스 2800여건이 뜬다. 이 중에는 피해자가 지난해 8월 성폭행 당하고 구조된 직후 온몸에 상처 입은 모습이 적나라하게 찍힌
해진 후 일어나 해 뜨는 걸 보고 잠든 적이 있는가. 이 세상에서 ‘나’란 존재를 달랑 들어내도 먼지 한 톨 일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을 느껴본 적은? 기름 낀 얼굴, 떡이 진 머리, 트레이닝복 바람으로 방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난 잉여다’를 되뇐 경험은?청년 실업자가 넘치는 사회, 어디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쓸모없는 인간’ 혹은 ‘남아도는 인간’이란 의미의 ‘잉여’를 자처하는 젊은이들이 우글거리는 세상이다. 이런 분위기를 타고 ‘잉여들의 이야기를 쓰는 잡지’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2월 창간돼 최근까지 13호를 낸 <월간잉여>
한국방송(KBS)의 <다큐멘터리 3일>은 72시간, 만 사흘 동안 하나의 대상을 카메라로 밀착 취재한다. 그 대상은 때 놓친 학업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방송통신대의 공부벌레들이 되기도 하고, 필리핀 가난한 마을에 희망을 주는 설탕공장이 되기도 하고, 울릉도 나리분지에 숨어있던 설국(雪國)이 되기도 한다. 약 45분 방송으로 압축된 72시간은 갓 지어 꾹꾹 눌러 담은 밥처럼 따뜻하고도 밀도 있는 감동을 시청자에게 선사한다. '할 말 못하는 방송'에서 덜 비겁해지려는 선택2007년 5월 첫 방송된 후 지난 6월 300회를 넘긴 <다큐 3
“돈 천 석, 사람 천 석, 글 천 석이라는 뜻으로 ‘삼천 석 댁’으로 불리며 호의호식하고 살 수 있는 집안이었지. 그래도 나라를 되찾으려고 가문의 사람들을 다 이끌고 추운 겨울 망명을 떠나지...그게 시작이었어.” 서울 대림동에 있는 낡은 연립주택에서 지난 6월 2일 <단비뉴스> 기자를 맞이한 김시진(78)씨는 깊이 주름진 얼굴과 손에 힘을 주어가며 집안 어른들의 ‘독립투쟁’을 설명했다. 김씨는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항일운동을 이끈 백하(白下) 김대락(1845~1914)의 종증조손(從曾祖孫)이다. 아버지와 할아버지, 종증조부등이 독
“그동안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했습니다.”지난해 4·11총선의 최대수혜자로 부상했다가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문을 거치며 ‘진보 분열의 핵’으로 추락했다는 지적을 받는 통합진보당. 이 정당의 비례대표로 의회에 진출한 뒤 ‘종북’ 논란과 자격심사 파동에 휘말리며 시련의 세월을 보낸 김재연(34)의원은 지난달 30일과 5월 28일 두 차례에 걸친 <단비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억울하게 낭비한 시간’을 안타까워했다.'위대한 진출' 이후 부닥친 통진당의 위기“저는 (북한 추종세력을 일컫는) ‘종북’이 아닙니다. 학생 때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
‘지방에서도 서울 문화를 접하도록 하겠다.’ 2008년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의 말이었다. 강신익 인제대 의대 교수는 칼럼에서 그 발언을 소개하면서 넓은 의미의 ‘문화’ 개념을 끌어와 비판했다. 문화란 인간의 삶이 표현되고 있는 행위와 행위를 이루어내는 전 과정의 사고, 그리고 그에 관련된 삶의 현상을 말한다는 것이다. 만약 유 장관이 넓은 의미의 문화를 말한 것이라면 지역의 삶 전체를 폄훼하는 망언이다. 그러나 유 장관이 ‘문화’를 좁은 의미로 이해했다면 이 발언은 일면 옳다고 할 수 있다. 좁은 의미에서 ‘문화’는 ‘교양’이나
“국정원 사태는 진보냐 보수냐 구분 없이 다 같이 분노하고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국민들이, 야당 지지자건 여당 지지자건 상관없이 다 분노해야 하는 일이라는 거죠.”서울시청 앞 광장이 다시 ‘촛불’의 열기로 뜨거워진 여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사무차장을 맡고 있는 박주민(41) 변호사는 누구보다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 그와 민변 회원들은 지난 18대 대통령선거과정에서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여당후보에 유리한 방향으로 여론을 조작했던 이른바 ‘댓글사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우면서도 마음의 거리는 가장 먼 나라. 경제와 문화 등에서 긴밀하게 교류하면서도 독도나 위안부 문제만 나오면 서로 눈에 쌍심지를 켜는 사이. ‘불행한 과거’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일본 사이에서 특별히 마음고생이 심한 사람들이 있다. 한국인과의 결혼 등으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일본인들이다. 이들은 ‘한일 역사를 극복하고 우호를 추진하는 모임(한일우호추진모임)’을 만들어 ‘반성을 모르는 조국을 대신해 한국인에게 사과하는’ 일련의 노력을 꾸준히 보여주고 있다. 부대표를 맡고 있는 마수부치 하루미(
척추뼈가 도드라질 만큼 깡마른 상체를 드러내고 두 손을 한 데 모은 채 구걸하듯 한강변에 엎드린 남자. <밥줄>이라는 노골적 제목의 첫 앨범에 실린 가수 김거지(28․ 본명 김정균)의 모습이다. 화려한 기계음이 판치는 국내 가요계에 ‘통기타’와 ‘목소리’, ‘진심’을 무기로 도전장을 내민 남자. 뮤직칼럼니스트 김장훈이 ‘구슬프고 애달픔 넘치는 이야기들로 빼곡히 채워진 어쿠스틱의 서정’이라고 음악세계를 평한 싱어송라이터(자작곡가수) 김거지씨를 지난달 5일 서울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27살 데뷔 늦었지만 '독백'으로 인정받은 뮤
개혁노선을 표방하는 군소정당 중 하나인 진보정의당이 ‘재창당 수준의 혁신’을 내걸고 지난 4일 광주를 시작으로 전국 순회 당직선거를 치르고 있다. 오는 21일 전당원대회에서 당명 개정을 포함한 ‘2단계 창당’을 선언한다는 계획이다. 삼성엑스(X)파일 사건의 ‘떡값 검사’ 명단을 인터넷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지난 2월 대법원 판결을 통해 의원직을 상실한 노회찬(57) 진보정의당 공동대표가 이 작업을 주도하며 ‘진보의 재건’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햇살이 뜨거웠던 지난 5월 31일, 서울 여의도의 진보정의당 당사에서 노 대표와 마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