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1일 오후 2시 무렵, 서울 홍대입구역 2번 출구 앞에서 ‘세월호를 지켜보는 작은 음악가들의 선언’ 공연이 조용히 시작됐다. 행인들은 무심히 지나치고, 시끄러운 차량 소리에 노래가 묻혔다. 음악가들이 노란 종이로 만든 바람개비를 건네자 지나가던 몇 사람이 발길을 멈췄고, 곧 20여명으로 불어난 청중이 보도에 둘러서서 귀를 기울였다. 기타 하나, 스피커 하나가 공연 장비의 전부인 음악가들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곡 ‘미안해, 정말 미안해’ 등을 혼신을 다해 불렀다. 흐린 하늘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이광
정보(information)를 시각작품(graphic)으로 표현한 ‘인포그래픽’은 직관적이며 통렬하다. 그리고 친절하다. 방대한 자료와 수치를 일정한 흐름에 따라 일목요연하게, 인상적으로 정리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보를 다루는 언론계에서는 디지털 기술과 접목한 인포그래픽에 일찌감치 주목했고, 많은 투자를 해왔다. 워싱턴 주 캐스케이드 산맥의 눈사태를 다룬 미국 <뉴욕타임스>의 퓰리처상 수상작 ‘스노우폴(Snowfall)'은 인포그래픽의 매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보도물이었다. 영국의 <가디언>도 인포그래픽을 활용한 선구적 보도로 명
지난 5월 19일 새벽 4시, 한국생명의전화 상담원이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서울 마포대교 위에서 10대 소년이 건 전화였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학업까지 중단한 소년은 막막한 마음에 다리를 찾았다고 했다. 상담원은 곧바로 경찰에 신고했고 출동한 경관들이 소년을 설득했다. 그 순간 비슷한 또래의 한 여학생이 다리 난간 쪽으로 상체를 내밀고 떨어지려 하는 것을 경관이 발견하고 재빨리 붙잡았다. 경찰이 아이들을 안정시키고 함께 마포대교를 떠나려할 때 다리 아래쪽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한 남성이 막 물에 뛰어든 것이었다. 곧바로 1
‘강진구 노동전문기자(공인노무사)’. <경향신문> 강진구(47) 기자의 기사에는 이런 바이라인(필자표시)이 달린다. 강 기자는 지난 2012년 10월 시험에 합격, 국내 언론사 기자 중 최초로 공인노무사 자격증을 가진 노동담당기자가 됐다. 이후 ‘500대 기업 고용과 노동’, ‘간접고용의 눈물’, ‘헌법에만 있는 노동3권’ 등 열악한 노동현실에 대한 심층기획물을 잇달아 내놓아 뜨거운 독자 반응과 함께 각종 언론상을 받았다. 강 기자가 노동문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11년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으면서부터. 서울대 사회학과
관객 1만명도 쉽지 않은 독립 다큐멘터리(기록) 영화시장에서 누적 관람객 500만명(민족문제연구소 추산)이라는 이변을 낳은 작품이 있다. 이승만, 박정희 등 전직 대통령들을 비판적으로 다룬 역사물 <백년전쟁>이다. 이 다큐는 지난 2012년 11월 26일 개봉한 후 유튜브(youtube) 등 온라인 사이트에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 정도 흥행이면 연출자가 유명세를 치르기 마련인데, 김지영(47) 감독은 의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자신을 ‘지독하게 평범한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김 감독을 지난 5월 22일 서울 청량리
불편하다. 정신없이 웃다가도 문득 뒷맛이 씁쓸해진다. 지난해 11월부터 다음 웹툰에서 연재되고 있는 ‘노점묵시록’에 대한 반응이다. 2011년 ‘산송장’이라는 문제작과 함께 등장했던 금사리 백봉장군(33·본명 지정환)이 새로운 작품으로 독자들의 눈길을 끌어당기고 있다. ‘본격 코믹시사만화’, ‘노점에서 한국근현대사를 읽을 수 있는 작품’이라는 평이 댓글로 달린다. 떡볶이, 오뎅, 붕어빵 따위를 파는 노점을 배경으로 주인공이 요리대결을 펼치는 이야기 속에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범 등 우리 사회의 갖가지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만인 대
“설마…하는 생각이 만연한 게 가장 심각한 안전 불감증입니다. 세월호 사건도 ‘설마 사고가 나겠어?’ 생각하면서 과적하고, 설마 하면서 낡은 배에 증축도 하고, 그러다 그 설마 하던 사고가 난거죠. 원자력은 더 심각합니다. 원자력 사고가 난다는 상상 자체를 금기시 하죠.”지난해 11월 ‘대한민국도 원자력발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내용의 저서 <한국탈핵>을 낸 뒤 전국을 돌며 강연 중인 김익중(55) 동국대 의대 교수는 ‘원전업계의 대표적 안전불감증이 뭐냐’는 질문에 조용하지만 힘 있는 어조로 이렇게 답했다. 지난 5월 20일 협동조
부모의 성(姓)을 둘 다 받아 이름이 네 글자인 사람은 종종 편견어린 시선을 받는다. 혹시 동성애자가 아닐까. 과격한 페미니스트(남녀평등주의자)는 아닐까. 90년대 이후 ‘부모 성 함께 쓰기’ 운동을 펼치고 호주제 폐지에도 앞장섰던 한의사 고은광순(59)의 경우 전자는 아니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의 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그것도 수많은 ‘안티(반) 페미니스트’ 남성들로부터 ‘꼴통(외곬) 페미’라는 공격을 받았던 ‘싸움닭’ 출신이다. 그녀가 3년 전 충북 옥천군 청산면에 한의원을 내고 정착했다. 남편과 두 아들은 서울에
"노동자의 편에 섰다기보다 연구의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논리가 설득력과 정당성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씨 등 ‘삼성백혈병’ 희생자들에 대해 최근 삼성 측이 유감을 표하고 대화에 나서는 등 오랫동안 산업재해 연관성을 부인했던 태도를 바꿨다. 여기에는 ‘또 하나의 약속’ 등 이 사건을 다룬 영화의 파장도 작용했지만 이에 앞서 줄기차게 진실규명을 요구해 온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반올림)’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다. 환자와 가족, 인권운동가, 노무사 등과 함께
"배에선 유사시에 선장이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데, 세월호는 선장이 1년짜리 계약직, 가까이서 보조를 돕는 조타수도 6개월 계약직이었어요. 그렇게 되면 자기 배에 대한 애착이 생길 수가 없어요. 6개월 뒤에 일할지가 불분명하면 업무에서도 서로 손발이 맞을 수가 없는 거죠. 서로 이름도 몰랐으니까." 쌍용차, 재능교육, 콜트콜텍 등 노동자들이 절규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손길을 내밀어 온 ‘40년 노동전문가’ 하종강(60) 성공회대 노동아카데미 교수는 세월호 참사의 이면에 위험 수위에 이를 만큼 늘어난 비정규직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영화 '겨울왕국'은 기후변화 이야기로 볼 수도 있습니다. 왕국이 갑자기 얼어붙으니 식량문제가 발생하고 얼음장사는 일자리를 잃어버렸죠. 기후변화가 우리 삶을 어떤 식으로 흔들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겁니다."'겨울왕국'에서 주인공 엘사는 자신이 가진 얼음마법을 통제하지 못해 나라 전체를 겨울로 몰아넣는다. 영화에서 묘사하진 않았지만 갑작스런 기후변화로 왕국은 기본적인 농산물조차 확보하지 못해 식량난을 겪었을 수도 있다. 식량난이 물가폭등과 실업, 치안악화 등으로 이어지면 왕국은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가랑비에 옷 젖듯 우리 가계부 적시
농성하고 삭발하고 타워크레인에도 올랐다. 손해배상금으로 2천4백만원을 청구당하기도 했다. 파업에 가담한 노동자 이야기가 아니다. 두산그룹의 중앙대학교 인수 이후 ‘대학의 기업화’에 저항하다 퇴학까지 당하고 11년 만에 대학을 졸업한 노영수(31·노동당 동작구당협협의회 사무국장)씨 얘기다. 그는 지난 3월 출판한 책 <기업가의 방문>에서 '해고'까지 당하며 목격한 ‘기업대학’의 민낯을 속속들이 고발했다. 지난 4월 서울 신도림역 부근의 한 카페에서 노씨를 만났다.“두산이 중앙대를 인수한 이후 가장 큰 변화는 의사결정구조의 수직화입니다
“제2롯데월드 짓는 거 보면 서울의 정체성이나 역사성은 안중에도 없는 거 같아요. 두바이 따라 하기도 아니고. 세빛둥둥섬도 그래요. 우리도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 같은 명소를 갖고 싶다는 그 의도가 싫은 거예요. 내 가치가 아닌 남의 것만 따라하려는 거 같잖아요?”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정석(52) 교수는 서울시정개발연구원(현 서울연구원)에서 13년간 북촌과 인사동 보전, ‘걷고 싶은 도시’, ‘마을 만들기’ 등의 프로젝트를 수행해온 도시설계 전문가다. 2007년 3월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서울시의 도시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왔
그는 장기하의 노래 ‘별일 없이 산다’의 가사처럼 “별다른 걱정 없이 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아들(24)은 중학교만 마치고 ‘가방끈’을 놓았지만 “기타도 잘 치지, 주위에 좋은 어른들 많지, 스펙이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자랑했다. 생활비에 대해서는 “이 책 쓴 인세로 술 마시고 저 책 쓴 인세로 쌀 사면 된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충북 제천시 덕산면 사내실 마을에 10년째 살며 어린이 역사만화를 그리고 있는 이은홍(54)작가. 그런데 한때 그는 치열하고도 ‘불온한’ 청년이었다.화염병보다 강했던 만화 '깡순이'이 작가는 80,
2037년 강원도 춘천. 과거로 여행을 떠나 현재를 바꾸려는 시도는 가장 중대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사람들은 잃어버린 첫사랑, 추억, 고향과 같은 사소한 것들을 찾아 타임머신을 탄다. 66분짜리 영화 <망대>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맥거핀(관객의 주의를 돌리는 속임수)으로 활용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한 댄서를 미래의 춘천에서 2013년 현재로 파견된 ‘시간감시관’으로 설정하고 그의 눈으로 춘천의 한 재개발 동네를 바라본다.독특한 장치로 재개발 서글픔 담아 “요즘 춘천이 개발되는 방향을 보면 서울처럼 되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오찬호 교수는 한 대학의 ‘인권과 평화’ 강의 시간 때 2008년 KTX 여승무원들의 정규직 전환 투쟁을 다뤘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설명하고 연대의 소중함을 강조하려 했다. 그러나 한 경영학과 학생의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라는 말에 그는 수업을 정상적으로 진행할 수 없었다. 그는 그 학생이 다른 학생들에게 ‘꼴통’으로 비판받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다른 학생들도 대부분 그 발언에 공감한 것이다. 강의실은 곧 “너도 저렇게 생각하지?”라는 수군거림으로 채워졌다고 한다.
해방 후 한반도의 정정이 점점 불안해지던 1948년, 가는 눈매의 키 작은 소녀가 서울 흑석동 산꼭대기의 ‘남관 미술연구소’문을 두드렸다. 어떻게든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마음에,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무작정 전차를 타고 시내를 헤매다 도착한 것이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남관(1913~1990) 선생은 그녀를 보며 그저 허허 웃었다. 그날로 선생의 문하생이 된 소녀는 ‘남자들과 내외하느라’ 하루 종일 석고상만 보며 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선을 그렸다.당시 풍문여고 2학년이었던 소녀의 검고 풍성하던 머릿결은 이제 듬성한 은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