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두 사람의 '이리나 마치쉐브스카'가 있다. 26살의 이리나 마치쉐브스카 씨는 할머니의 이름을 받았다. 아버지가 당신 어머니의 이름을 맏딸에게 붙였다. 같은 이름의 할머니 이리나 마치쉐브스카 씨는 올해 81살이었다.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전쟁만 아니었다면. 할머니 이리나 씨는 지난 8일 숨졌다. 러시아 군이 발포한 포탄에 맞아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의 죽음을 전해 들은 지 나흘 뒤인 12일 오후, 손녀는 서울 성북구 월곡동의 어느 카페에 앉았다. 그가 일하는 직장 근처였다. 꿈을 좇아 먼 나라에서 공부하고 일하는 손녀를 할머
하늘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이내 새하얀 섬광이 번뜩였다. 몸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싶은 순간, 우크라이나 제95공수여단 중위는 의식을 잃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그는 콘크리트 바닥 위의 자신을 발견했다. 가장 먼저 머리, 가슴, 팔, 그리고 다리를 만졌다. 그것이 아직 몸통에 붙어 있는지 확인했다. 안도의 순간은 아주 잠깐이었다. 귓속을 찢는 날카로운 이명이 울렸다. 겨우 눈을 들어 주변을 보았다. 숨을 거둔 채 널브러진 동료들이 있었다. 검은 연기도 보였다. 목구멍이 조여져 숨쉬기 힘들었지만, 냄새를 맡았다. 뜨거운 화약 가
지난 11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Volodymyr Zelensky)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한국 국회에서 화상 연설을 했다. 그는 연설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의 민족, 문화, 언어를 없애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역사·언어 교사를 찾아내 학살하고 있다고 말했다.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학생들에게 우크라이나의 역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사를 가 취재했다. 23살의 그는 이름과 은신 지역이 드러나 러시아 군의 표적이 될 것을 염려했다. 이에 따라 이 기사는 그의 이름을 가명으로 적었다. 은신하고 있는 도시는 A시라고 적었다.23살의
지난 3월 26일 는 우크라이나 제95공수여단 중위 데느스 안티포우(Denys Antipov) 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그의 부대는 3월 9일 러시아 무인항공기의 폭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여러 명의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 데느스 씨는 허리에 부상을 입어 병원으로 이송됐다. 군 병원에 입원중인 그는 와 다시 인터뷰했다. 4월 1일부터 2주 동안 여러 차례에 걸쳐 줌(ZOOM) 화상회의와 온라인 메시지 등을 통해 전쟁의 실상을 에 이야기했다.팔다리를 잃고 병원 복도에 누운 군인들데느스 씨는 빠른 부대
알미라 텐(Almira Ten) 씨(60)는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매일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녀는 비좁은 차를 타고 있다. 손녀를 무릎에 앉힌 채 창밖을 걱정스레 살핀다.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포탄 소리에 화들짝 놀라 꿈에서 깬다. 알미라 씨는 3월 21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 며느리, 손주 3명을 데리고 한국으로 들어왔다. 남편 유리 리(Yuri Li) 씨(67)는 아직 우크라이나에 남아있다.
지난 4월 14일, 여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사람이 있다. 이름은 장진영, 나이는 42살, 직업은 프리랜서 사진가. 프리랜서 사진가 장진영 씨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한 이후, 한국 언론인 가운데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들어가 취재했다.나중에 한국 외교부의 허락을 받은 기자들이 2~3일씩 현지 일부 지역을 취재한 경우가 있지만, 그들의 현지 체류 기간과 취재지역은 장 씨의 경우에 미치지 못한다. 그는 전쟁 발발 9일 뒤인 3월 5일 폴란드 국경도시 프셰미실(Przemysl)을 거쳐 우크라이나로 들어간 뒤, 보름 동안 전쟁 현장을 직
칠흑같이 어두운 아조우스탈 제철소 지하 벙커에서 수백 명의 사람이 함께 지냈다. 해가 뜨면 음식과 물을 누가 먼저 먹을 것인지를 두고 다퉜다. 해가 지면, 서로의 온기로 추위를 견뎠다. 변기가 없어, 모두가 양동이 하나에 볼일을 봤다. 생후 4개월 된 아이의 엄마, 스물네 살 안나 자이체바(Anna Zaitseva) 씨는 양초 위에 분유를 데워 아이에게 먹였다.
안드레이 리트비노프(Andrei Litvinov, 38) 씨는 재한 우크라이나인이다. 2010년 한국에 들어와 생활하다가 한국인 아내와 결혼했다. 지금은 다섯 아이의 아빠다. 안드레이 씨는 2015년부터 광주에 있는 새날학교의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새날학교는 광주 고려인 마을 자녀와 북한 이탈주민 자녀 등의 한국 사회 정착을 위해 설립된 대안학교다. 우크라이나에서 전쟁이 발발한 뒤, 그는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심했다. 전쟁에 쫓긴 동포들을 돌보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안드레이 씨는 지난달 5월 1
지난 4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Kyiv) 인근 도시 부차(Bucha)에서 러시아군은 민간인을 학살했다. 서른세 살의 마리아 티모셴코(Mariia Tymoshenko) 씨의 삼촌도 희생자가 됐다. 마리아 씨의 삼촌, 올렉산드르 크리벤코(Oleksandr Kryvenko) 씨는 사망한 지 2주 만에 가족에 의해 발견됐다. 그의 어깨에는 러시아군 총알 두 발이 박혀 있었다.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부차 지역에서 발견된 458구에 대한 조사를 완료했다. 조사 결과 시신 419구에서 고문과 폭행, 총살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8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6개월에 접어들었다. 개전 초기 러시아는 20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해 우크라이나 동·남·북 쪽으로 진격하며 수도 키이우(Kyiv)로 향했다. 키이우로 들어서기 위해 인근 도시 부차(Bucha)와 이르핀(Irpin)을 통과해야 했는데, 이때 러시아군은 군사 시설은 물론 많은 민간 시설을 공격했다.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의 패퇴를 전망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군인과 시민들은 결사항전했다. 러시아는 수도 점령에 실패했다.4월 중순, 러시아는 전략을 바꿔 동부 지역에 병력을 집중시키고 공세를 퍼부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벌써 여섯 달이 넘었습니다.우크라이나 영토의 22%가 러시아에 점령됐고, 수많은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하지만 전쟁은 쉽사리 끝날 것 같지 않습니다.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인 지난 8월 24일, 민간인이 살고 있는 동부 지역에 로켓 폭격을 가했습니다.우크라이나는 남부 헤르손주의 탈환 작전을 실시하면서 8년 전 러시아에게 빼앗긴 크름반도를 되찾겠다고 공언했죠.그런데 우리가 매일 이렇게 접하는 전쟁 소식은 현재 상황을 전달해줄 뿐, 우크라이나 시민들이 어떻게 폭격이 이뤄진 도시에서 살